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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무 아래서 - 제3의 詩 8
권혁웅 지음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봄은 고양이로다
권 혁 웅
1
봄날의 나무는 누구에게나 혀를 내미네 아랫도리를 가렸던 거적 치마를 벗어버리네
저 나무가 그려내는 연초록 春畵 어딘가에 一枝春心을 걸어두고 싶네
담벼락을 타고 뱀풀이 만들어놓은 길이 있네
그 길은 폐허로 가는, 무성한 길이네
블록 담은 저 나무 쪽으로 한껏 몸을 기울여
나무를 떠받치고 있네
2
골목 어귀의 대흥 복덕방, 노인들이 편을 나누어 楚漢志를 벌였네 텅텅거리는 소리 요란하네 어떤 이는 싸우다 지쳐 평상 위에 누웠네 봄 풍광이 펼쳐놓은 빗살 무늬 아래서 졸고 있네
정오의 그늘이 몸을 바꿀 때
그들도 봄햇살 아래
풀려날 것이네
3
아스팔트 위 타이어가 그어놓은 일탈의 끝에서 바람에 날리는 고양이털을 보았네, 햇살과 숨바꼭질하는 솜털을 - 압착된 육신을 벗어버린 껍질이 자유롭네
아이들이 분필로 그린 엄마 아빠는
호박만한 머리통에 가느다란 팔과 다리,
누구나 노인이네 그애들이 끌고 간
긴 줄의 끝에서
거짓말처럼 金氏喪家→50m를
만나기도 하네
- 시집 중에서
* 권혁웅은 영화감독으로 치면 확실히 스타일리스트다. 이성복이 홍상수式의 '무자비하게 드러내기' 기법을 사용한다면, 권혁웅은 이명세式의 어떤 기억에 대한 치장을 그의 시적 방법으로 삼는 듯하다. 그 '치장'은 때로 삶의 황폐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때론 그 반대편으로 치달아서, 아주 무거운 것을 (어이없게, 그러나 의미있게) 사소한 것들로 축소시킨다. 가령, '블록 담은 저 나무 쪽으로 한껏 몸을 기울여/나무를 떠받치고 있네'와 같은 구절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혹은 <지독한 사랑>에서 보여줬던 약간의 애니메이셔닉한 풍경을 보여주고, '어떤 이는 싸우다 지쳐 평상 위에 누웠네'와 같은 구절은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의 광산 결투신의 끝자락을 연상시킨다.
이때, 어떠한 이미지나 광경은 그 본래의 모습보다 왜곡된 모습(여기에서의 '왜곡'이란 말은 몰가치성의 왜곡이다)으로 나타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건,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는게 이명세 영화, 권혁웅 시의 전언이다. (홍상수 영화에서의 '기억의 왜곡'이라는 말과는 또 다른 의미의.)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맞닥뜨린 어떠한 일보다도, 우연히 마주친, 이를 테면 '金氏喪家 →50m'의 팻말 같은 것은 (그것은 마치 이명세 감독이 자주 쓰는 클로즈 업의 기법을 연상시킨다.) 일상에 도저한 슬픔의 상념을 극대화시킨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幻의 영역이다. 이러한 幻의 이미지가 잘 어우러진 이 시는 그러니까, 가벼운 일상의 소묘를 넘어 어떠한 삶의 비극적 정조와 맞아떨어짐으로써 울림을 자아낸다.
봄이 고양이라면, 겨울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