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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평점 :
황지우에게 있어서도 '눈'은 중요한 시적 모티프이자, 시의 출발점이다.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밭에 기침을 하자'고 말했던 김수영의 간절한 외침처럼, 황지우에게 있어서의 '눈'이라는 자연물은 그 자연물로서의 의미를 넘어, 시인이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하는, 흡사 게릴라와 같은 모습으로 시의 전면에 부각된다.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는'(「12월의 숲」) 현실 속에서 시인은 '눈 맞는 겨울나무 숲'으로 간다. 이것은 황지우 개인의 실존적 고뇌이자, 반민주적 정권의 군화 아래 짖눌리는 당대 민중들의 모습이다.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나무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버리고
인근 산의 적설량(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 12월의 숲, 부분
눈이 함북히 쌓인 겨울나무숲은 그것 자체로 현실의 알레고리가 되고, 시인은 눈 맞는 겨울나무숲에서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한 냉혹한 현실에서도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그것을 기다리면서 부단히 '그 기다림의 대상에게로 가는 일'이 황지우가 일궈낸 소중한 시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황지우에게 있어서의 '눈'의 의미가 보다 극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작품은 「눈보라」라고 할 수 있다. 눈이라는 속성이 그렇듯이, 눈은 그 서늘하도록 느린 움직임으로 (원효로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세상을 뒤 덮는다. '눈보라는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는 동시에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즉, 모순에 찬 우리의 현실을 어떤 모순지점의 꼭대기까지 데려다 놓아준다. '오류 없이 깨달음 없'다는 선언문적인 구절은 지나간 현실, 그냥 쉽게 지나쳐버린, 즉, 소통하지 못한 과거와의 대화를 가능케해서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또다른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준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에서의 '무등산'은 '현실'의 등가물로 쓰이고 현실을 뒤엎어 현실을 호도하게 만들어 버리는 듯한 '눈'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그 눈은,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지나간다. 이성복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아픔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아픔이야말로, 살아있음의 뜨거운 경보 장치로서 작용한다.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의 눈보라는 그런 '아픔'과 같은 의미물로서 작용하는데, '네 몸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라는 '아픈' 인식을 끌어냄으로서, 삶의 괴로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게 된다. 슬픔이 독이 되고, 희망이 광기가 되어버리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시인은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픈 시대를 '눈보라'라는 극적 상황에 의해 전경화 시켜낸다. 눈보라가 훑고 지나간 길, 그 길은 결국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켜주고, 마침내,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라는 비장한 현실 인식을 가능케한다.
이 시에서의 '눈'의 의미는 일견 세상을 뒤덮어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이미지를 전복시킴으로서, 그 눈이 감싸고 있는(어쩌면 은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을 가능케 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쓰이고 있다. 그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시인은 진정한 '길'을 추구하게 되고, 그 길의 추구를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보편적 인식에 이르게 함으로서 자칫 무디어 지고 무화될 수 있는 우리의 현실 인식을 쇄신시켜준다. 그것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서 지각을 환기시키는 시적인 방법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작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