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 제1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80
나희덕 지음 / 민음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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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천정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묻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정정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 그러했다
- 시집 권두시

나희덕의 「천장호에서」는 고요한 산정호수의 풍경을 통해 일상을 살아내는 각 개인의 지난한 관계맺음을 노래하고 있다. '얼어붙은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행위는 작은 일탈의 행동이고 그 행동 후에 시적 화자에게 관찰되는 것은 '새떼 대신 메아리만 정정 날아오르'는 쓸쓸한 풍경이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 그러했다'라는 진술은 앞의 풍경과 조응하여, 관계의 단절 뒤에 찾아오는 숙명적인 고독감을 보여준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고, 그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시적 화자는 삶의 근원적인 고통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가 보여주는 단아하고 알찬 세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별자들의 고독과 그 고독에 대한 차분한 응시에 닿아있다. 풍경과 자아가 구체적 모습을 가지고 조우하는 순간을 시인은 예리한 눈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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