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문자 (17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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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Historian 2020-02-25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1쪽
측천문자의 제정 역시도 맥을 같이한다. 문자의 신비한 힘을 믿었던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문자를 만든 것이다. 도키와 다이죠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측천문자는 근방에도 보급되어 그 뒤 125년 가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나라 왕조의 교양인들이 일찍부터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 일본인이 베껴 쓴 왕발 시문집의 사본(경운 4년) 속에도 월月과 지地가 측천문자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간다 키이치로 박사가 소개한 대로이다. 경운 4년은 측천의 사후 2년이다.
 

진인각은 황후 지지파와 소의 추대파의 대립을 예의 관롱 집단과 산동 집단의 대립 항쟁으로 해석한다. 진인각에 따르면 황후 지지파는 관롱 집단의 대표적 존재인 장손무기 외에, 산동 집단 의 대표 격인 이적을 빼고는 관롱 출신이거나 최소한 관롱파에 속했던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
...
이에 반해 소의 추대파는 모두 산동 집단에 속하지만, 지위와 신망은 이적에 못 미쳤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56~57쪽

중국 학자 진인각은 이 장손무기 일가와 관료와의 연결을당 이전 즉 북조 시대부터의 혼인 관계에서 찾는다. 그리고 무기 일파를 관통 집단, 즉 주로 당의 수도인 장안의 섬서陝西지방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왔던 집안 출신들의 집단으로 본다. 이에 반해 섬서의 동쪽 지역, 예를 들면 산서山西· 하남南· 산동山東 등의 각 지역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왔던 집안을 산동(섬서성 동부에 있는 화산華山의 동쪽이라는 의미) 집단으로 생각했다. 무 소의의 집안은 원래부터 그 산동 집단의 한족寒族, 즉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집안이었다. 허경종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만 소의를 옹립하려는 관료들 가운데에 산동 출신자가 많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황후 지지파와 소의 옹립파는 이 양 집단의 항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명쾌한 분석이다.

51쪽

그러나 이처럼 한번 시험을 당한 적이 있는 인간은 대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게 되는 법이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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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스스로를 개별적인 인격체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의 행동을 보면 사실상 예측 가능할 정도로 획일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뭐, 우리의 새로운 세계에서는 가능성이나 기회는 확률 앞에서 무용지물이지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과거로 인해 발목이 잡히게 되었어요.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과거로부터 추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죠."

"당신에 대해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광고가 올라오는 거예요. 광고주가 당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그때그때 내놓게 되면 당신은 매순간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속내를 누군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 인터넷 광고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소름 효과라고 하는데, 이를 억제하기 위해 엉뚱한 광고를 끊임없이 끼워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당신의 속내를 누군가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당신은 그들에게 보다 손쉽게 속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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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역사
마조리 간.재닛 윌렌 지음, 전광철 옮김 / 스마트인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12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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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차는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된 볼보였다. 엔진 소리가 얼마나 멋지던지 경찰차로 재탄생하기 전에 끝내 주는 속도로 그 지역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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