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각은 황후 지지파와 소의 추대파의 대립을 예의 관롱 집단과 산동 집단의 대립 항쟁으로 해석한다. 진인각에 따르면 황후 지지파는 관롱 집단의 대표적 존재인 장손무기 외에, 산동 집단 의 대표 격인 이적을 빼고는 관롱 출신이거나 최소한 관롱파에 속했던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
...
이에 반해 소의 추대파는 모두 산동 집단에 속하지만, 지위와 신망은 이적에 못 미쳤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56~57쪽

중국 학자 진인각은 이 장손무기 일가와 관료와의 연결을당 이전 즉 북조 시대부터의 혼인 관계에서 찾는다. 그리고 무기 일파를 관통 집단, 즉 주로 당의 수도인 장안의 섬서陝西지방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왔던 집안 출신들의 집단으로 본다. 이에 반해 섬서의 동쪽 지역, 예를 들면 산서山西· 하남南· 산동山東 등의 각 지역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왔던 집안을 산동(섬서성 동부에 있는 화산華山의 동쪽이라는 의미) 집단으로 생각했다. 무 소의의 집안은 원래부터 그 산동 집단의 한족寒族, 즉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집안이었다. 허경종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만 소의를 옹립하려는 관료들 가운데에 산동 출신자가 많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황후 지지파와 소의 옹립파는 이 양 집단의 항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명쾌한 분석이다.

51쪽

그러나 이처럼 한번 시험을 당한 적이 있는 인간은 대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게 되는 법이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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