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우리 멋
조자용 지음 / 안그라픽스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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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조자용 선생님께 갑자기 뺨을 맞아 이가 툭 부러졌다는 에피소드는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자용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역시나 조자용 선생님의 글을 읽기 시작하자, 그가 사랑하고 연구한 분야도 그렇게 그의 행보도 신비스럽고,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니나이', '원제이', '까치부처님', '코주부도깨비' '도깨비의 눈물' 또는 '정암'이라는 인물 등 생소하고 낯선 이야기 투성이었다. 신세계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라지거나 변질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 전통문화를 괄시하여 이야기 되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의 원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존재 자체가 특별하고, 귀중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 그런 문화의 원형을 들려준 것은 우리의 조부모, 친지, 동네 어르신들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그런 가족관계나 마을 공동체가 사라짐으로써 그 원형을 재현하고, 들려줄 사람이나 여유가 없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코코'에서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죽은 자는 아예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럴수록 '책'의 소중함을 느낀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역할...

요즘 나는 심신이 무겁고, 침체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안 하려 했다. 그런 나의 핑계를 무색하게 한 주자용 선생님의 활동은 파격적이고, 도전적이었다. 1979년~1982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잘 인식이 없을 때에 민화전, 기우제, 돼지머리 고사, 음복, 무당굿을 진행하며 세계에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에 애를 썼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된 일화들은 신기하고 흥미로우며, 흥이 난다.

특히 1979년 전시회 개막 퍼포먼스로 기우제를 드리자, 진짜로 비가 내린 이야기라든가, 처녀귀신을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험들은 작가 당사자도 놀라고, 신기하게 느꼈다. 이렇게 전통문화에 진심이었던 그의 일생은 가난하였지만 그가 말한 '멋'있고, '신나는' 일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 사람의 멋을 알려면 먼저 한국 도깨비와 호랑이를 사귀어야 하고, 한반도의 신비를 깨달으려면 금강산과 백두산을 찾아야 하고, 동방군자 나라의 믿음을 살펴보려면 산신령님과 칠성님 곁으로 가야 하고, 한국 예술의 극치를 맛보려면 무당과 기생과 막걸리 술맛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이어 '사랑이나 믿음은 그저 사랑하고 믿는 것이다. 거기 이유를 달고 쪼개고 부수고 이리저리 재고하는 일은 할 짓이 아니다. 나의 경우 신라 시대 도깨비 기와를 찾아다니던 그 미치광이 움직임이 사랑이자 믿음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어쩜 황홀한 고백인가. 자신이 무엇에 인생을 바치며, 인생을 어찌 살아왔다를 가장 명료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 동화로 다시 살아났으면 좋을 재미나고, 신기하면서 의미를 전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민중의 애환을 '웃음'으로 보듬어 위로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고, 조화로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을 표현한다. 지금 시대에 다시금 살려내어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짧은 평은

"조자용선생님에게 듣는 우리 전통문화 이야기. 신나고, 흥이나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많은 비밀의 상자같은 책! 들어봤나요? 거북이가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려주고, 처녀귀신이 괘씸한 사람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 살려주고, 용의 소리와 씨름하는 도깨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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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깊은 구절

p18. 우리나라에는 문둥이춤이나 곱사춤, 장타령 따위의 불구자를 모델로 한 민간 예술이 남아 있다. 그것은 성한 사람이 비웃고 놀리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거꾸로 곱사나 난쟁이, 문둥이가 불우한 운명을 초월한 경지에서 얼빠진 성한 사람들을 훈계하고 풍자하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p18.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는 율동과 춤이 있고, 언어를 가진 민족에게는 고유의 소리며' 문화 때문에 변질되기도 하는 등 온갖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어느 한 모퉁이에서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왔다. 그 누군가는 결코 높은 사람들이 아니다. 넥타이 신사들이 아니다. 한국의 멋은 절름발이 장타령 속에 건강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p19. 불우한 팔자에 대한 번뇌를 초월하고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살 다 간 니나니가 참다운 예술가로 보인다. 그이 장타령에는 박력과 달관, 해학과 풍자, 더불어 때로는 깜짝 놀라게 하는 창작도 있었다.

p20. 우리 민악이나 민화에 빠져들면서 나는 그 '니나니'류 예술의 박력과 난폭성에 도취되고 말았다. 가사를 지은 사람도 알 수 없고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낙관도 없는 그런 민예의 세게. 그 끈질기고 억센 물결 속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형식에 구애된 흔적도 없는, 그저 신바람 속에서 터져 나온 예술을 우리는 그저 못난이의 속기로만 여겨왔다. 내가 보기에 못난이는 그들이 아니라 예술의 극치를 깨닫지 못하는 멀쩡한 사람들이다.

p21. 니나이 원제이에게는 분명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세속적 부귀영화를 초월한 달관의 세계였는데, 내 생각엔 그것이 우리나라 서민 예술의 고향이라 믿어진다.

p24. 그는 세속을 초월한 경지에서 또 하나의 밝은 세상을 발견해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거지나 기생이나 우리 사회에서 천대 받는 존재가 틀림없다. 그런 만큼 그들은 체면이나 오르지 못할 욕망 때문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 것을 초월한 그들에게는 보다 자유롭고 큰 이상 세계가 있다.

p25. 당초 무당이란 임금과 같은 위치에서 백성을 다스리며 제사를 지내는 이들이었다. … 우리가 느끼는 극치의 흥은 결국 모두 무당의 굿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 흥을 우리는 '신난다'라고 표현한다. … 무당굿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무당의 예술적 가치보다 신통력에 더 치중한다. 춤을 얼마나 잘 추느냐보다 신이 얼마나 올랐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적인 멋의 핵심은 천대 받던 거지나 기생이나 환쟁이나 무당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 대중의 참여를 간과해선 안 된다.

p39. 음악이나 춤이나 노래나 글이나 그림을 지금은 예술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조상은 그것을 '가락'이라고 불렀다.

(p40.)가락이란 사람의 일거일동을 예술적으로 재어보는 척도다. 무슨 일이든 멋있게 느껴졌을 적에 우리는 '가락을 안다' '한가락 한다' 등의 말로 표현한다. …우리가 가락을 통하여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인의 멋'이었다.

p43. 그림이나 조각에 담긴 웃음의 멋은 '장난기'이다.

근현대의 우리 문화계 역사에서 늦게나마 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행이자 복이었다. 그와 같은 한국인이 칠십 평생을 이 땅에 살았기에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더욱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그 비워진 크나큰 거목의 자리는 한동안 쉽사리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2001년

이만주 I 문화 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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