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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한다.
캠퍼스 투어란 학생들이 지망하는 대학을 미리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대학을 둘러본 뒤, 부자는 마지막으로 매사추세츠로 온다. 메사추세츠에는 하버드가 있다. 아버지인 ‘나’가 졸업한 곳이다.
‘나’는 하버드에서 대학원을 나왔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는 다시 하버드로 왔다. 하버드에 온 것은,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에 아들 또한 오기를 바라며, 모교를 방문한 그. 그런데 캠퍼스 곳곳을 다니는 동안, 그는 깊이 묻어 두었던 추억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학생이었던 그에겐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하버드에서의 시절. 자칫 유리되고 고립될 뻔했던 그의 세계를 다채롭고 눈부신 기억으로 채워주었던 단 ‘한 사람’. ‘나’는 과거의 그때, 케임브리지에서의 찬란했던 여름을 회상한다.
1977년 케임브리지.
스물여섯 살의 ‘나’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학교를 비운 지금, 그만이 하버드를 지키고 있다. ‘나'는 갈 데가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이라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게다가 ‘나'는 종합시험에 한 차례 떨어졌다. 딱 한 번의 재시험 기회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재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는 하버드에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 고국인 이집트에서는 그를 추방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제 ‘나'는 곧 학교에서도 추방될 위험에 놓였다. 무덥고 외로운 여름, 고독한 사막 한 가운데에 놓여 있던 ‘나’. ‘나’는 집과 학교와 카페를 전전하며 어떠한 소통이나 교류 없이, 오직 책만 읽는다. ‘칼라지’를 만난 날은 그런 무수한 날들 중의 하나인, 어느 날이었다.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속사포처럼 떠들어대서,
칼라니슈니코프, 약칭 칼라지(칼라니슈니코프는 자동소총의 종류다.)로 불리는 그. 칼라지는 미국 한복판에서 신랄하게 미국을 비난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비방하고 헐뜯는 그에게서 ‘나’는 기이하고 새로운 충격을 받는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나’. 다혈질에 떠들썩하며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칼라지.
언뜻 보면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다. 하버드의 유학생으로 와 있는 ‘나’와 달리, 칼라지는 택시 운전사를 하고 있다. ‘나’는 미국 영주권을 얻었지만, 칼라지는 영주권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이집트계 유대인이고, 칼라지는 튀니지 출신의 베르베르인이다. 서로를 적대시해야 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이라는 얘기다.
사회적 위치와 계급, 민족으로 봤을 때 그들은 어울릴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 머나먼 타국에서 이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불안과 번민과 외로움이란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은, 묘한 호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점차 칼라지에게 빠져든다.
그에게서 과거의 향수와 현재의 자유와 미래의 희망을 느낀다. 그들은 거울을 보듯 닮은 점이 많았다(p81). 프랑스어로 소통하고 프랑스를 동경하지만, 그들의 모국은 프랑스가 아니었다. 그들의 태생적 천분과도 같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신봉하지도 않았다. 칼라지의 말대로, 그들은 유대인답지 않은 유대인, 아랍인답지 않은 아랍인(p160)이었다.
또한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선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다.
반면 ‘나’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다. 그들은 고국에서나 타국에서나 이방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방인으로서,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모든 것과 모든 이를 경멸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같았다. 경멸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게 표현됐을 뿐(p84), 그들은 증오와 반감과 분노라는 서로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간파하고 긴밀하게 공유한다.
이들의 특별한 유대감, 견고하게 맺어진 우정과 사랑.
카뮈의 표현처럼, 신들이 내려와서 산다는 티파사(알제리에 있는 고대 유적. 카뮈가 특별히 사랑한 곳이다.)의 봄이 그들에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차가운 대서양과 광활한 태평양(p330)가 아닌, 따스한 지중해가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성립하기가 매우 희박한, 아랍인과 유대인간의 우정이 그들을 단단하게 결속하고 있었다.
그러나‘나’와 칼라지의 미래는 이미 처음부터 나와 있다.
아들을 데리고 온 ‘나’의 회상으로부터, 칼라지는 과거의 사람임이 명시되기 때문이다. 회상으로 진행되므로, 칼라지와 ‘나’의 ‘현재’는 아련하게 감겨드는 과거의 추억임을 은밀하게 명시한다. 애틋하고 내밀한 감정이 문장과 문장의 사이마다 흠씬 스며드는 이유는, 회상이기 때문에 더 돋보이고, 두드러진다.
아들을 데리고 온 현재의 시점.
‘나’는 그때의 시절이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령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은 생각과 선택을 하지 않을까? ‘나’는 칼라지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느낀다. ‘나’는 부유한 가정의 애인 앨리슨이 사는 하버드의 세계와 칼라지와 같은 부랑자가 사는 이민자의 세계에서 갈등한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 지하의 저급한 카페와 술집이 가져온 괴리에 괴로워한다. 그가 편입해야 할 세상은 어디일까. 칼라지의 곁인가, 앨리슨의 곁인가. 하버드의 삶인가, 카페 알제의 삶인가.
‘나’는 칼라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은 칼라지가 나타나기 전으로 돌아갈 터였다. (…) 결국 그는 우리의 삶에서 퇴장하고 모든 상황은 칼라지를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세상을 자신의 모습대로 재창조하려는 그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으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p287
칼라지에 대한 ‘나’의 이 평가는 씁쓸한 진실일까, 아니면 그 순간의 착각이었을 뿐일까.
이에 대한 답은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다. 유령처럼 방황하던 ‘나’를, 사막에서 고립되어 있던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이방인이었던 ‘나’가 이방인이 아니게 되기까지, 그 여정을 함께한 이가 누구였던가. 책장을 덮으면, ‘나와’ 칼라지가 보냈던 하버드 스퀘어에서의 시간과 공간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오롯이 느낄 것이다. 낯선 이방인이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친밀감의 정서가, 어느덧 독자인 나의 마음에도 번연히 파고들었으므로.
1. 칼라지의 고향은 튀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튀니지의 시디 부 사이드라는 마을이다.
칼라지는 자신의 고향이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디 부 사이드를 말하면, 대다수가 모른다는 반응을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튀니지 관광청이 매사추세츠 관광사무소보다 훨씬 더 무능하기 때문(p114)이라고 덧붙인다.
글쎄. 시디 부 사이드는 유명한 관광지다.
튀니지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곳. 튀니지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관광지다. 칼라지의 주장에 반박한다. 튀니지 관광청은 결코 무능하지 않다.
2. 《하버드 스퀘어》는 작가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 평가받는다.
화자인 ‘나’처럼 저자 또한 하버드에서 수학했다.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작가의 학력을 반영하여, 책에는 문학적 레퍼런스가 다양하게 나온다. 미국 및 서양 문학에 조예가 있는 독자들의 경우 책을 보며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만끽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등장한다.
프랑스어, 이탈리어, 아랍어, 라틴어, 루마니아어까지 등장한다고. 번역자님의 노고가 상당했을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 난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케농크(p180), 앙 수르딘(p198) 등의 단어는 검색을 한 번 해봤다. 하지만 한글 발음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ㅜㅜ
3. 칼라지는 ‘나’에게 책 몇 권을 빌려달라고 한다.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나’는 사드와 모파상, 발자크, 스탕달의 책을 빌려준다. 사드라니! 다행히(?) 칼라지는 사드를 역겹다고 평했다.‘나’는 삶의 경험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그토록 쉽게 충격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p227)고 하지만, 사드의 책은 충분히 충격을 받을 만하다(사드의 책을 안 읽어봤지만 앞으로도 절대 읽을 생각이 없다).
4.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이자 주로 만난 카페의 이름은 ‘알제’다.

참고로 ‘알제’는 알제리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이 알제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졌는데, 튀니지, 알제리, 팔레스타인 등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다.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일대의 아랍권 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이다)인들의 공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알제에는 아랍의 노래가 흐르고, 티파사의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프랑스어가 오고간다. 작중 배경은 미국이지만, 카페 알제의 분위기가 반영되어서 그런 것인지 이국적이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생각엔 미국 독자들 또한 한국 독자가 느끼는 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비슷하게 느꼈으리라고 본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p74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p199
우리는 미국에 정착하지 않고 미국을 잠깐 빌려 쓰고 있었다.
p241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p270
가난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이미 너덜너덜하기 때문에 도움을 거절한다. (…) 반면에 부자들은 그 돈을 (…) 우정에서 나오는 호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돈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은 그 돈을 즉시 갚지만, 부자들은 그냥 잊어버린다.
p306
※ 출판사의 도서 협찬을 받고 작성하였으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