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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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중 시간적 배경은 2020년대, 정확히 말하자면 2024~2027년으로, 공간적 배경은 미국이다. 이 시기 자연은 기후 변화로 인해 정상적인 생태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비가 고작 육칠 년에 한 번씩 내린다. 이 얘기는 곧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물이 휘발유보다 몇 배나 더 비싼 세상이 되었고, 도처에 굶주리는 자가 넘쳐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경찰은 오히려 뇌물을 요구하거나 재물을 강탈하는 집단이 되었다. 공권력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마약중독, 방화, 강도,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일상적인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켜야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인 로런 올라미나는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떨어진 소도시, 로블리도라는 곳에 살고 있다. 여기 또한 각종 범법적 행위가 횡행하고 있지만,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장벽이 지켜주고 있다. 로런의 가족은 장벽이 둘러싼 폐쇄형 주택단지의 구성원이다. 그녀의 부모님,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직장을 다녀서 수입이 있다. 그리고 로런의 아버지 올라미나 목사는 교회 목사로서, 동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올라미나 목사의 지도하에 동네 사람들은 순찰대를 결성하여 안전을 도모한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로런은 사격하는 법을 배웠다. 총을 구하는 것은 불법이나 모두가 총을 소지하고 총기 사용법에 숙달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해당할 확률이 높으니까.

 

 

강도, 강간, 살인이 넘치는 밖의 상황에 비하면 안전한 상황이기는 하다. 그런데 로런은 안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라도 밖의 사람들이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을 상정하고, 또 경계한다. 그녀는 비상 배낭을 만들어 놨다. 말 그대로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주로 생존용품들로 채워진 배낭이다. 로런은 자기처럼 이 배낭을 모두가 갖출 것을 주장하지만 동요를 염려한 아버지에 의해서 기각된다. 하지만 로런의 선견지명이 옳았다. 그녀의 비상배낭은 요긴하게 사용된다.

 

 

동네를 향한 습격이 점차 빈번해진다. 그리고 로런의 가족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동생 키스가 죽고, 아버지가 실종된다. 결국 마약 중독자들에 의해 동네가 불탄다.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혼란 속에서 로런은 간신히 탈출한다. 원래 로런은 열여덟 살이 되면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동네의 생존자, 해리와 자라와 함께 북쪽으로 길을 떠난다. 이제 그들을 지켜줄 장벽은 없다. 사방이 적이다. 그들은 과연 무사하게 목표한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가 창시한 디스토피아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왔을 때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산다. 훔치고, 시체를 뒤지고, 죽인다. 아니면 마약에 중독돼서 불을 지르고 쾌락에 미쳐 살인한다. 여덟 살짜리가 강간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식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약자라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 아이나 노인이라고 안심했다가, 오히려 소지품을 강탈당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화폐경제는 그나마 유효해서 돈이 있으면 물이나 식량, 총과 탄약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부자들은 경비원을 고용하고 보안 체계를 확실하게 해놓는다. 총과 무기로 무장한 안전 구역이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체계는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불안한 시스템이다.

 

이 책의 현실은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공감하며 책을 봤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이 올 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로런처럼 나도 비상 배낭을 하나쯤 구비해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런은 길을 가는 도중 점점 동료들을 늘려간다. 로런의 일행은 수를 불려가며 하나의 집단이 되다시피 한다. 로런의 동료들은 대부분 그녀보다 연상이다. 그런데도 이 집단의 리더는 로런이다. 열여덟의 소녀는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생존하기에 합당한, 비범한 자질을 갖췄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로런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는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진행되는 스토리를 따라간다. 로런은 차분하고 명철하게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요약하고 설명한다. 로런은 크게 당황하거나 초조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며,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빠른 상황 판단과 깊은 주의력을 갖춰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한다.

 

또한 로런에게는 특이한 증상이 있다. 그녀는 초공감증후군이란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이들의 고통과 쾌감을 공유하는 증상이다. 남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시, 남에게 고통이 가해지면 그녀도 고스란히 느낀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녀는 적을 공격하다가 똑같은 고통을 받고 위기에 처한다. 안 그래도 절망적인 상황인데 오히려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부여했다.

 

로런이 처한 현실은 열여덟 살 소녀에게 너무 불리한, 지나치게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그녀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일기에서 보이는 로런의 굳건한 의지와 지혜가, 이 현실을 거뜬히 이겨낼 것이라고 낙관했기 때문이다.

 

로런은 살아남겠다는 생존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 의지는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생존 의지가 아니다. 그녀는 일행들을 배려하고 위한다. 일행을 구하려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또한 로런의 비범함은 일행을 선정하는 데 있다. 그녀는 약자를 돕고, 일행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라 해서 무작정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로런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공동체의 으뜸가는 사명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지키는 것(p571)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로런이 무절제한 자비심과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일행의 인선에 유리한 구성을 고려하는, 냉정한 판단력도 지녔다. 위험한 시대, 생존자 집단에 걸맞은 이상적인 리더인 셈이다.

 

 

로런에게는 종교가 있다. 목사인 아버지의 종교는 아니다. 그녀는 지구종이란 종교를 믿는다. 사실 이 종교는 그녀가 창시한 것이다. 그녀의 책 지구종: 산 자들의 책(이하 지구종)에 의하면, 변화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종이고, 지구종은 지구 생명을 새로운 땅에 퍼뜨리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주는 하느님종이고, 오직 우리(인간을 의미한다)만이 지구종이다. 지구종의 숙명은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p135)이다.

 

로런은 그녀의 종교를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이 종교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하고 더 합리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그녀의 생각과 사고, 계획을 읽으며 든 생각이 있었다. 로런, 네가 정말 열여덟이 맞단 말이니…….

 

매력적인 주인공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같은 디스토피아 장르이자 여성 주인공으로서 공통점이 있는 헝거게임의 캣니스가 생각났다. 로런과 캣니스는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행동하는 전사라는 점이다. 캣니스 이후로 모처럼,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단권이 아니다. 속편이 있다.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라는 책이다. 전작보다 더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진다고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로런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자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역경을 슬기롭게 잘 이겨낼 것이다. 그녀의 또다른 우화를 기다린다.


 




.

 

1.

 

장이 시작할 때마다 한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 삽입된다. 지구종: 산 자들의 책(이하 지구종)이란 책이다. 이 책에서 인용된 구절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라면 한 번 읽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은 가상의 책이다. 작중에서 로런이 저술한 책인 것. 처음으로 돌아가보니, 저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로런 오야 올라미나라고.

책 속의 책, 지구종의 문구들을 몇 가지 발췌한다.

 

 

천재성이란 본질적으로 적응력이자, 집요하고 긍정적인 집착이다. 거기서 집요함을 빼면 남는 것은 한순간의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 적응력을 빼면 남는 것은 파괴적인 광신(狂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p7

 

그대가 손대는 모든 것을 그대는 변화시킨다.

그대가 변화시킨 모든 것은 그대를 변화시킨다.

변치 않는 진리는 오로지 변화뿐.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 p8

 

문명은 지성과 마찬가지로 적응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기도 하고, 적절히 수행하기도 하며, 수행하지 못하기도 한다. 문명이 제몫을 다하지 못하고 내부 또는 외부의 통합된 힘마저 문명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문명은 무너져야 마땅하다. p177

 

다양성을 포용하라-

단결하라.

()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으면 멸망당할 것이다. p345

 

 

2.

 

로런의 세상에서 밀, 옥수수, 호밀, 귀리 등은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엄청 비싸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토리빵을 먹는다. 예전엔 도토리를 먹는다는 생각 자체를 역겹게 여기기도 했다고 하는데, 달라진 상황에선 도토리빵이 선호 식품이 된 것이다. 현재 검색을 해보니 도토리빵을 취급하는 제과점이 있기는 있다. 물론 이 빵은 현대인의 기호에 맞게 설탕과 밀가루 등의 다른 성분을 첨가하여 만든 것일 터. 로런이 좋아하는 도토리빵은 거의 무미(無味)에 가깝겠지.

 

 




인상깊은 구절


 

로런 대비는 할 수 있어. 그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이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 그 일을 끝까지 견뎌낼 대비, 다 끝난 후에도 계속 살아갈 대비. 우린 살아남을 계획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해. 미친 사람, 자포자기한 사람, 악당,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지도자 같은 사람들한테 휘둘리지 않으려면!” p95

 

 

로런 심연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어요. () 이제 내려다볼 때가 됐는지도 몰라요. 느닷없이 떠밀려서 추락하기 전에, 손으로 붙잡거나 발을 디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할 때가 됐다고요.” p116

 

로런 변화는 진실이에요. 변화는 계속 진행되는 거예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요. () 난 모든 것이 모든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p38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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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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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표지를 언급해야겠다.

어머! 표지가 왜 이렇게 귀여워! 귀여워서 미치겠잖아! 마치 빵 공장에 온 듯한 기분이다. 거기다가 띠지까지 아주 안성맞춤 찰떡궁합! 띠지의 저 표시를 보세요. 인쇄할 때 커팅 비용이 추가로 들었겠는데? 출판사 디자인실에서 열일하셨구나! 이 책은 꼭 띠지를 부착한 모습과 제거한 모습 두 부분을 감상해야 합니다!! 띠지에 가려진 식빵 부분이 있거든요. 나도 빵 속으로 파묻히고 싶다……생각만 해도 흐뭇한 걸? 아직 책장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흐뭇한 기분은 뭐지? 아무쪼록 전독시양장본도 이런 식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며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 책은 곽재식의 단편 소설집이다. 저자 곽재식 교수님은 유퀴즈에 출연한 분이라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분이다. 공학 박사로 숭실사이버대 교수로 재직 중. 과학자인데 부업으로 소설가이기까지 하다. 과학자&소설가인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소설가로서의 영역이 전공인 과학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 추리소설에까지 미쳐 있다. 왜 이렇게 세상에는 다재다능하며 박학다식한 분이 많은 걸까?(또 딴 곳으로 얘기가 새려는 중;;)

 


이미 다수의 소설을 펴낸 바가 있는 곽재식 교수님께서 내신 이번 신간은 앞서 말했듯,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사이트에 올린 소설들을 모아서 수록한 책. 2018~2021년 사이 공개된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라는데 주로 SF적인 성격이 짙은 단편들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 소설()은 특별히 많은 조회수가 나올 것을 생각하며 쓰는 글도 아니고, 원고료를 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쓰는 글도 아니다. () 공모전을 위해 쓴 글도 아니고, 대단한 문학적 야심으로 힘겨운 고뇌 끝에 쓴 글도 아니다. ()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써간 이야기들이다. 가장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 가는 대로 정성스럽게 쓴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p296

 

 

저자가 집필에서 이미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우리 독자도 마찬가지! 큰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된다. SF라 해서 특별히 무겁거나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일상적이며 현대적인 이야기들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반전이 살짝 담긴 내용들이랄까? 그런데 읽을 때 계속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란 책이다. 몇몇 단편에서는 베르베르식의 익숙한 데자뷰가 느껴지기도 했다.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종류의 기발한 SF 단편들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각 단편들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덧붙인다.

 

1.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이 책의 제목이자 대표 단편. 사람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이 기발하게 돋보인다. 마지막 부분과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을 쓴 동기를 알 수 있는데, 작가의 적극적인 홍보를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다. 나도 빵을 좋아하는 악당이며, 이 악당들의 행성에 살고 있으니까!

 

2. 이상한 녹정 이야기: 무려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연결되는 이야기!

 

3. 시간여행문: 면역성을 갖고 있지 않은 미래의 바이러스가 넘어오면 어떡하겠냐는 가정(작중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질문이다)에 섬뜩했다. 지금의 우리 인류는 코로나19에도 쩔쩔매는데, 미래의 바이러스는 얼마나 더 무시무시하겠는가.

 

4. 신들의 황혼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 만들어진 것과 만들어낸 사람. 마술사와 사람이 들여다본 세상은 얼마나 달랐을까.

 

5. 슈퍼 사이버 펑크 120: 현실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내용. 짜증 한 번 안 내고 침착하게 과업을 수행한 김 박사님께 박수를. 나 같으면 열 받아서 진작 때려치웠을지도. 보안 프로그램 다운, 팝업 허용, 계정 가입 등등. 우리나라 시스템은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

 

6. 판단: 이 얘기도 현실적으로 너무 공감이 갔다. 이 얘기를 들으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다;;

 

7. 차세대 대형 로봇 플랫폼 구축 사업: 김 박사님. 슈퍼 사이버 펑크 120에서 등장한 김 박사님과 동일인이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무한한 인내심에 경의를. 그리고 박 과장님?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으십시다, ?

 

 

8. 멋쟁이 곽 상사: 군인은 단정한 복장이 생명이지요. 암요.

 

9. 기억 밖으로 도망치기: 결말이 슬펐다.

 

10. 지상 최후의 사람일까요: 내가 만약 지상 최후의 사람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혼자가 된다는 건, 혼자 남는다는 건,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모든 단편을 감상하고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드리는 말.

작가님! 다음엔 떡볶이 좋아하는 선인들의 행성 편도 써주시죠! 악당이 나왔으니까 이번엔 선인도 등장해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 떡볶이는요, 이건 순전히 제가 좋아해서……헤헤. 죄송합니다; 빵이나 사먹으러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ㅎㅎ도 하러 가야겠네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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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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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프롤로그에 상당히 놀랐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프롤로그와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도 차분히 기다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잖아. 분명히 노련한 솜씨로 프롤로그와 연결되는 지점을 준비해뒀을 거야. 그리고 난 그 부분에서 감탄사를 터트릴 준비만 하면 되는 거고.

 

내 예상(?)이 맞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되, 독자가 도중에 이탈하지 않고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흡입력 있는 전개를 밀고 나간다. 사실 첫 장면만 자극적(?)일 뿐,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를 견지한다. 처음 받았던 긴장감이나 충격이 완화되며 오히려 반발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을 법한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 히가시노가 능숙하게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를 보면, 마치 마법과도 같다. 역시 믿고 보는 작가답다.

 

몽환화의 주요 내용은, 한 노인에 대한 의문의 죽음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은퇴 후 사람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고, 식물을 키우는 데 전념했던 아키야마 슈지. 그런 그가 갑자기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아키야마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이 움직인다

먼저 손녀인 아키야마 리노가 있다. 그리고 그녀를 돕는데 가모 소타가 가세한다. 소타가 리노를 돕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형인 요스케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또 한 가지. 소타는 리노와 함께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첫사랑 이바 다카미와 갑작스럽게 조우하게 된다. 갑자기 연락을 끊고 만남을 중단해서 상처를 줬던 첫사랑 이바 다카미. 그녀는 소타와 마주치자마자 또 의문의 잠적을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조사를 진행할수록, 소타는 다카미 또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담당 형사인 하야세 료스케 또한 진상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그에게는 단순 미제 사건으로 끝날 듯한 이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과거 아들이 슈지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한 명목이랄까. 그는 이 사건에 뭔가 깊은 내막이 있음을 짐작하고, 진상에 차츰 다가가기 시작한다.

 

 

리노와 소타, 그리고 하야세

소설은 이 세 사람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들의 조사 과정에서 점차 드러나는 진실. 아키야마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한 비밀에는, 어떤 꽃이 있다. 자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노란색 나팔꽃. 이른바 몽환화라 불리우는 꽃이다.





 

파란 장미처럼, 노란색 나팔꽃은 자연에 존재할 수 없다

나팔꽃을 구성하는 색소에 노란색은 아예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한, 노란색 나팔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란색 나팔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에도 시대에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렇다면 에도 시대에 존재했던 노란색 나팔꽃은 뭐란 말인가? 어느 순간에는 존재했다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노란색 나팔꽃. 이 알 수 없는 비밀 때문에 노란색 나팔꽃은 금단의 꽃이자, ‘몽환화라고 불리게 됐다. 몽환의 꽃. 그 뒤를 쫓으면 쫓는 자가 멸하고야 마는 금단의 꽃.

 

노란색 나팔꽃, 즉 몽환화에는 중요한 포인트가 숨어 있다

몽환화가 숨기고 있는 비밀, 그 비밀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흐름, 그리고 그 역사에 연관된 가문의 내력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몽환화가 가진 의미 또한 드러나게 된다. 몽환화가 미친 사회적 영향과 파장이 프롤로그와 연결되며, 또 소타는 그가 몰랐던 가족에 얽힌 진실을 깨닫게 된다.

 

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히 몽환화는 금단의 꽃이 맞다

그 꽃을 이용한 주체는 사람이었고, 꽃에서 초래한 비극 또한 사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진상을 알았을 때, 금단의 꽃을 찾은 금기를 범한 이들에 대한 연민 또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몽환화에 대한 비밀을 숨기고자 한 사람, 찾고자 한 사람, 이용한 사람, 희생당한 사람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소타가 새롭게 다짐한 결의는 묵직하게 와닿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의무와 책임만을 다해야 하는 길일지라도, 그 길을 반드시 가야할 의미가 있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기 마련이니까.

 



 

 

1. 프롤로그에서 도쿄 올림픽이 언급된다.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막연히 연대를 최근으로 추정했다.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을 떠올린 것이다. 한데 도쿄 올림픽은 두 번 시행되었다. 1964년과 2021. 책의 집필 연도(2013)를 고려하면 작중 언급되는 도쿄 올림픽은 응당 1964년을 의미한다. 머나먼 후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언젠가 각주가 생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2. 하야세는 아키야마 슈지에게서 아들 유타에 대한 은혜가 있다고 했다. 과거 유타는 도둑 누명을 쓸 뻔했는데, 우연히 슈지가 유타의 누명을 벗겨준 것이었다. 이후 슈타의 죽음을 알게 된 유타는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꼭 슈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고.

 

유타가 도둑 누명을 썼을 때, 유타의 죄는 명백한 것처럼 보였다. CCTV에 찍힌 장면을 보고 아버지인 하야세 또한 유타의 죄를 믿을 뻔했더랬다. 유타는 격렬히 부정했으나, 하야세는 아들의 부정을 믿지 않았다. 그는 죄를 완강히 부인하는 아들에게 사과를 권할 참이었다. 한데 알고 봤더니 사실이 아니었다. 다행히 하야세가 그 말을 하기 직전, 진상이 밝혀졌다. 만약 하야세가 사과를 종용했더라면, 유타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유타가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관성적으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깨달은 바도 있다. 부모라면, 자식의 말을 일단 믿어야 된다는, 간단하며 간명한 진실에 대해서.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는다면, 그 누가 믿는단 말인가.

 


인상깊은 구절

요즘 세상에 이토록 단순한 범죄는 없다. 그리고 단순할수록 검거는 어려워진다. 단서가 적기 때문이다.

p150

 

이바 다카미 모른 체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p392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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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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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나는 추리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장르에 관심을 많이 가진 편이다.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한데 대만 추리 소설은 처음 읽는다. , 아니, 장르를 떠나서 대만 책은 아예 처음이었다!

 

덕분에 모처럼 생경하면서도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대만 작가가 대만을 배경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사회, 문화, 경제 체제 등이 전반적으로 낯설었지만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는 없었다. 작가가 매끄럽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는데다가, 번역가가 친절하게 주석으로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서구 문화를 수용한 공통점이랄까, 동질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어서인지 작중에서 묘사된 대만의 모습은 매우 친숙했다.

 

제목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을 보자마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제목부터 시작해 표지까지 노골적으로 영화가 연상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후기를 통해 이 제목이 영화의 오마주임을 밝혔다. 하지만 내용상의 유사점은 거의 없다.

 

뒤표지의 책소개를 보니까 탐정vs경찰vs괴도vs킬러, 라는 문구 아래 네 사람이 각자 다른 추리를 펼친다고 되어 있다. 5성급 특급호텔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드나든 사람도, 단서도, 목격자도 전무한 상황. 이 소개를 보고 막연히 상상했다. 밀실 살인에 대해 네 사람이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대립하는 전개인가 보다. 흑거미클럽이나 독초콜릿 사건같은 전개 양상을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밀실 트릭은 탐정인 푸얼타이가 초반에 진작 풀어버린다. 범인도 일찌감치 특정한다. 당황했다. 뭐지? 벌써 얘기가 끝난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작가는 나 같은 하수 독자의 예측 따윈 훨씬 뛰어넘는 단계를 몇 차례나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작가가 마련해 둔 길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와의 추리 대결은 포기했지만, 추리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매력적인 점이 있다. 한 명의 독보적인 인물이 추리를 독식하지 않는다. 탐정, 경찰, 괴도, 킬러. 이 네 명의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며 추리하는 과정에서 진상이 드러나는데, 이들의 추리는 각각의 허점이 있지만 서로의 허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네 명의 추리가 연쇄적으로 맞물린다. 마침내 진상이 밝혀질 때, 시작 단계서부터 작가가 촘촘하게 준비했던, 자그마한 퍼즐들이 차근차근 맞춰져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반전의 연속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정체를 알게 된 후, 이들이 했던 행적들을 돌아보니 작가가 글 속에 이미 단서와 복선들을 세밀하게 뿌려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다시 읽으면 인물들의 행동이 색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재독이 필요한 소설이다.

 

살인 사건이다. 범인의 동기 및 원인, 그리고 범행 결과는 비극적이랄 수 있겠는데, 분위기는 의외로 어둡지 않다. 오히려 이상하게 활기찬 느낌이다. 자국인인 대만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목 캉티뉴쓰란 어감에서부터 희비극이 어우러진 냄새가 난다. ‘캉티뉴스는 칸디디우스Candidius를 음역한 것이라는데, 나는 칸디디우스보다 캉티뉴쓰가 훨씬 마음에 든다. 또한 책 제목의 폰트나 컬러풀한 색깔을 볼 때, 출판사가 일부러 의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고. 그리고 표지에 대해 말한 김에 또 한 가지 추가하자면, 표지는 우리나라 판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처럼 굿즈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굿즈 장인 알라딘께 건의합니다! 캉티뉴쓰 호텔 굿즈 만들어주세요!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 캉티뉴쓰 호텔에 대해서 더 얘기해보겠다. 거기다가 체포된 범인이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이다. 불행히도 호텔의 미래가 선명하다. 사람들이 기피하며 찾지 않게 되겠지.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은 난 캉티뉴쓰 호텔에 가보고 싶어졌다. 첫 장에서 묘사된 모습에서 설렜다. 신비한 호수 캉티호의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순백색 건물의 캉티뉴쓰 호텔. 작가가 밝히기로는 타이완의 르웨탄이란 곳이 캉티호의 모티브라고 한다. 타이완의 3대 비경 중 하나라고. 이렇게 가고 싶은 곳이 또 한 곳 추가되었다. 언제 대만 여행을 가서, 르웨탄 근처의 고급 리조트에 묵으며 좁쌀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캉티뉴쓰 호텔과 캉티호를 설명한 내용을 보며 르웨탄에 가보고 싶게 된 것처럼, 이 책을 보며 대만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또 생겼다. 책에 나온 대만 고유의 음식들이 구미가 당긴다. 책에서 묘사한 내용을 봤을 뿐인데 무척 먹고 싶어졌다. 겸사겸사 여기에 나온 식음료들을 한 번 찾아봤다.

 



홍구이궈 : 타이완에서 명절이나 행사 때 만들어 먹는 붉은 떡.

 




산주저우루 : 좁쌀술이라고 소개되는데, 우리나라 막걸리 같은 느낌이다.

 





차예단 : 간장, 찻잎, 오향 등을 넣고 삶은 계란.

 




쭝허탕 : 배추, 물만두, 각종 완자를 넣고 끓인 국물요리.

 

 

얼른 코로나19가 풀려서, 조속히 대만 여행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1. 캉티뉴쓰 호텔 살인 사건 담당 검사인 왕 검사. 그는 초반 이 사건을 접하고, 밀실 상황에 대한 의견을 차례대로 내나 바로 부정당한다. 모든 의견이 부정당했을 때 왕 검사가 느끼는 기분이 내가 느끼는 기분이었다…….

 

2. 탐정 역할인 푸얼타이는 동물학자로 범죄 연구는 취미라고 밝힌다. 그는 살인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한데, 시신을 막 발견했을 때 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쓰러진 사람보다 먼저 생존 여부를 확인한 그것은 작은 새끼 매, ‘아쿠였다. 이곳 캉티호 방언으로 '코야오'라 부르는 송골매다. 절벽에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코야오는 개발로 호텔이 들어서면서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에 이른다. 안 그래도 멸종위기에 몰려 있는 종인데. 겨우 코야오에서 살고 있던 아쿠가 둥지 밖으로 내쳐진 채 푸얼타이에게 구조된 것은, 범인에 의해서였다.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려는 와중 아쿠의 부모를 죽이고, 아기 새인 아쿠는 절벽 밑으로 차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쿠가 가장 이 소설의 피해자다. 물론 살해된 사람도 억울하겠지만, 그에겐 어느 정도 인과가 있다. 범인이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매 살해라 주장한다면 억지일까.

 

3. 밤에만 향기가 난다는 야합화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졌다.

 

4. 리밍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변호사 거레이. 자그마치 열네 살이나 연하인 남자와 연애 중인, 성공한 그녀. 작중 등장인물 중에서 그녀가 가장 멋있었다.

 

5. 괴도 인텔 선생. 멋지게 뒤통수를 맞다. 괜히 김전일의 괴도신사가 생각났다.

 

6. 괴도, 킬러에 심지어 CIA까지 언급되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전개라서 등장인물들은 황당의 연속. 그런데 작가의 역량 덕분인지 독자인 나는 그다지 황당하진 않았다. 적어도 무리수이거나 뜬금없는 상황 연출은 아니었던 듯.

 

 

인상깊은 구절



왕쥔잉 잊지 말아요, 디테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걸…….” p18

 

푸얼타이 그건 우리가 일부일처제를 너무 숭고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야. 마치 신성불가침의 신앙인 양. 사실…… 그건 그저 종족 유지에 가장 유리한 제도에 불과해.” pp47~8

 

차이궈안 그런데 명탐정들은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p65

 

뤄밍싱 수사 방법은 많고 살인 수법은 하나야. 그 수법을 모르겠으면 용의자를 잡아다가 물어보면 되잖아.” p179

 

옳고 그름은 원래 흑백이 분명히 나뉘는 것이 아니고, 정의의 검도 영원히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배신죄를 저지른 자본가의 선택이 수백 명 직원들의 생계를 위함일 수도 있고, 비참한 처지에 몰린 피해자가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p333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고, 모든 동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p333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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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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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한다. 

캠퍼스 투어란 학생들이 지망하는 대학을 미리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대학을 둘러본 뒤, 부자는 마지막으로 매사추세츠로 온다. 메사추세츠에는 하버드가 있다. 아버지인 가 졸업한 곳이다.

 

는 하버드에서 대학원을 나왔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는 다시 하버드로 왔다. 하버드에 온 것은,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에 아들 또한 오기를 바라며, 모교를 방문한 그. 그런데 캠퍼스 곳곳을 다니는 동안, 그는 깊이 묻어 두었던 추억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학생이었던 그에겐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하버드에서의 시절. 자칫 유리되고 고립될 뻔했던 그의 세계를 다채롭고 눈부신 기억으로 채워주었던 단 한 사람’.는 과거의 그때, 케임브리지에서의 찬란했던 여름을 회상한다.

 

 

1977년 케임브리지.

스물여섯 살의 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학교를 비운 지금, 그만이 하버드를 지키고 있다. ‘'는 갈 데가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이라서 돈을 벌어야 했다. 게다가 '는 종합시험에 한 차례 떨어졌다. 딱 한 번의 재시험 기회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재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는 하버드에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 고국인 이집트에서는 그를 추방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제 '는 곧 학교에서도 추방될 위험에 놓였다. 무덥고 외로운 여름, 고독한 사막 한 가운데에 놓여 있던 ’. ‘는 집과 학교와 카페를 전전하며 어떠한 소통이나 교류 없이, 오직 책만 읽는다. ‘칼라지를 만난 날은 그런 무수한 날들 중의 하나인, 어느 날이었다.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속사포처럼 떠들어대서, 

칼라니슈니코프, 약칭 칼라지(칼라니슈니코프는 자동소총의 종류다.)로 불리는 그. 칼라지는 미국 한복판에서 신랄하게 미국을 비난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비방하고 헐뜯는 그에게서 는 기이하고 새로운 충격을 받는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 다혈질에 떠들썩하며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칼라지.

언뜻 보면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다. 하버드의 유학생으로 와 있는 와 달리, 칼라지는 택시 운전사를 하고 있다. ‘는 미국 영주권을 얻었지만, 칼라지는 영주권이 없다. 게다가 는 이집트계 유대인이고, 칼라지는 튀니지 출신의 베르베르인이다. 서로를 적대시해야 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이라는 얘기다. 

 

사회적 위치와 계급, 민족으로 봤을 때 그들은 어울릴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 머나먼 타국에서 이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불안과 번민과 외로움이란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은, 묘한 호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는 점차 칼라지에게 빠져든다

그에게서 과거의 향수와 현재의 자유와 미래의 희망을 느낀다. 그들은 거울을 보듯 닮은 점이 많았다(p81). 프랑스어로 소통하고 프랑스를 동경하지만, 그들의 모국은 프랑스가 아니었다. 그들의 태생적 천분과도 같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신봉하지도 않았다. 칼라지의 말대로, 그들은 유대인답지 않은 유대인, 아랍인답지 않은 아랍인(p160)이었다.

 

 

또한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선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다. 

반면 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다. 그들은 고국에서나 타국에서나 이방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방인으로서,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모든 것과 모든 이를 경멸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같았다. 경멸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게 표현됐을 뿐(p84), 그들은 증오와 반감과 분노라는 서로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간파하고 긴밀하게 공유한다.

 

이들의 특별한 유대감, 견고하게 맺어진 우정과 사랑. 

카뮈의 표현처럼, 신들이 내려와서 산다는 티파사(알제리에 있는 고대 유적. 카뮈가 특별히 사랑한 곳이다.)의 봄이 그들에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차가운 대서양과 광활한 태평양(p330)가 아닌, 따스한 지중해가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성립하기가 매우 희박한, 아랍인과 유대인간의 우정이 그들을 단단하게 결속하고 있었다.

 

 

그러나와 칼라지의 미래는 이미 처음부터 나와 있다. 

아들을 데리고 온 의 회상으로부터, 칼라지는 과거의 사람임이 명시되기 때문이다. 회상으로 진행되므로, 칼라지와 현재는 아련하게 감겨드는 과거의 추억임을 은밀하게 명시한다. 애틋하고 내밀한 감정이 문장과 문장의 사이마다 흠씬 스며드는 이유는, 회상이기 때문에 더 돋보이고, 두드러진다.

 

아들을 데리고 온 현재의 시점. 

는 그때의 시절이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령 다시 돌아간다 해도, ‘는 아마 똑같은 생각과 선택을 하지 않을까? ‘는 칼라지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느낀다. ‘는 부유한 가정의 애인 앨리슨이 사는 하버드의 세계와 칼라지와 같은 부랑자가 사는 이민자의 세계에서 갈등한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 지하의 저급한 카페와 술집이 가져온 괴리에 괴로워한다. 그가 편입해야 할 세상은 어디일까. 칼라지의 곁인가, 앨리슨의 곁인가. 하버드의 삶인가, 카페 알제의 삶인가.

 

 

는 칼라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은 칼라지가 나타나기 전으로 돌아갈 터였다. () 결국 그는 우리의 삶에서 퇴장하고 모든 상황은 칼라지를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세상을 자신의 모습대로 재창조하려는 그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으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p287

 


칼라지에 대한 의 이 평가는 씁쓸한 진실일까, 아니면 그 순간의 착각이었을 뿐일까. 

이에 대한 답은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다. 유령처럼 방황하던 , 사막에서 고립되어 있던 를 세상으로 이끌어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이방인이었던 가 이방인이 아니게 되기까지, 그 여정을 함께한 이가 누구였던가. 책장을 덮으면, ‘나와칼라지가 보냈던 하버드 스퀘어에서의 시간과 공간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오롯이 느낄 것이다. 낯선 이방인이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친밀감의 정서가, 어느덧 독자인 나의 마음에도 번연히 파고들었으므로.


 덧


 

1. 칼라지의 고향은 튀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튀니지의 시디 부 사이드라는 마을이다.

 칼라지는 자신의 고향이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디 부 사이드를 말하면, 대다수가 모른다는 반응을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튀니지 관광청이 매사추세츠 관광사무소보다 훨씬 더 무능하기 때문(p114)이라고 덧붙인다.

 

 

글쎄. 시디 부 사이드는 유명한 관광지다.

튀니지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곳. 튀니지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관광지다. 칼라지의 주장에 반박한다. 튀니지 관광청은 결코 무능하지 않다. 

 


2. 하버드 스퀘어는 작가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 평가받는다. 

화자인 처럼 저자 또한 하버드에서 수학했다.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작가의 학력을 반영하여, 책에는 문학적 레퍼런스가 다양하게 나온다. 미국 및 서양 문학에 조예가 있는 독자들의 경우 책을 보며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만끽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등장한다

프랑스어, 이탈리어, 아랍어, 라틴어, 루마니아어까지 등장한다고. 번역자님의 노고가 상당했을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 난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케농크(p180), 앙 수르딘(p198) 등의 단어는 검색을 한 번 해봤다. 하지만 한글 발음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ㅜㅜ 

 

3. 칼라지는 에게 책 몇 권을 빌려달라고 한다.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는 사드와 모파상, 발자크, 스탕달의 책을 빌려준다. 사드라니! 다행히(?) 칼라지는 사드를 역겹다고 평했다.‘는 삶의 경험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그토록 쉽게 충격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p227)고 하지만, 사드의 책은 충분히 충격을 받을 만하다(사드의 책을 안 읽어봤지만 앞으로도 절대 읽을 생각이 없다).

 

 

4.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이자 주로 만난 카페의 이름은 알제.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바라본 지중해의 풍경



참고로 알제는 알제리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이 알제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졌는데, 튀니지, 알제리, 팔레스타인 등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다.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일대의 아랍권 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이다)인들의 공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알제에는 아랍의 노래가 흐르고, 티파사의 포스터가 붙어 있으며, 프랑스어가 오고간다. 작중 배경은 미국이지만, 카페 알제의 분위기가 반영되어서 그런 것인지 이국적이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생각엔 미국 독자들 또한 한국 독자가 느끼는 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비슷하게 느꼈으리라고 본다.



인상깊은 구절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p74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p199



우리는 미국에 정착하지 않고 미국을 잠깐 빌려 쓰고 있었다.

p241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p270


가난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이미 너덜너덜하기 때문에 도움을 거절한다. (…) 반면에 부자들은 그 돈을 (…) 우정에서 나오는 호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돈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은 그 돈을 즉시 갚지만, 부자들은 그냥 잊어버린다.

p306



※ 출판사의 도서 협찬을 받고 작성하였으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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