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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베쓰야쿠 미노루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두 기사와 각각의 종, 이동식 간이 숙박업소의 주인과 그의 딸, 의사와 간호사, 목사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황야의 한 귀퉁이에 세워진 이동식 간이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이들은 간호사를 시작으로 하여 한사람씩 두 기사에게 살해 되고 종1은 거인 브리아레오와 싸우겠다며 풍차에 치여서 죽고, 종2는 기사들의 의도한 바에 의해 죽음을 두려워한 딸에게 죽임을 당한다. 결국 두 기사를 제외하고 마지막 남은 딸은 자살을 하고 이동식 간이 숙박업소에는 두 기사만이 남겨진 채 작품은 막을 내린다. 세상을 편력하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두 기사, 그러나 두 기사외에 모든 이들이 죽거나 죽임을 당하지만 세상은 이전과 다를바 없이 가을에서 겨울로 움직여 간다.
죽고 죽이는 것을 통해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정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진 않지만 끊임없는 사건과 문제를 일으킨다. 왜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그 죽음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세상을 편력하려면 이러한 죽음들이 필요한 것인지, 결국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과 두 기사가 사람들을 죽여나가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저는 수많은 의문들이 들었다. 어떤 것도 확실히 답해주지 않고 의문을 던지고 사라지는 그런 수수께끼같은 책.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작정 던져주는 의문들 속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작가는 돈키호테와 닮은 두 기사가 결투와 죽임 통해 세상을 편력하고 자신들을 기사다운 영웅으로 그려내었고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게 너희들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편력하고 자신다운 영웅이 될 것이냐? 라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익살꾼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역으로 익살꾼이 되어야만 비로소 영웅이 될 수 있다」라고 작가가 책의 서문에 실었듯이 작가가 생각하는 이시대의 영웅은 돈키호테를 닮아야 한다. 돈키호테는 익살꾼인 동시에 우리들마음속의 영웅이다. 그의 풍차를 향한 도전은 우리에게 실소를 자아내지만 결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연민과 마음의 감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영웅을 꿈꾸는 우리들은 돈키호테와 같은 모습을 스스로에게 투영하진 않는다. 우리는 영웅이라면 멋지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역사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영웅주의’는 한 인물이 그의 비범함을 통한 개인전 수난의 극복을 전체 역사의 흐름과 연관짓는 방식을 통해 일인의 영웅을 만들어 가는데 이러한 영웅들은 익살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의 삶의 각 분야에서 성공하고 존경받는 영웅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의 수난을 익살과 재치라는 무기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사례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보다는 어떤 때는 눈물을 어떤 때는 웃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킨다. 나는 그런 영웅의 모습이고 싶다. 남과 다른 비범함을 지닌 특별한 영웅이기 보다는 남과 같지만 웃음을 통해 그들에게 좀더 가깝게 느껴지는 친근한 영웅이고 싶다. 이 책의 두 기사는 자신들의 방법인 죽음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려 애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 섬뜩한 이말이 내게는 기사의 정신과 죽음을 영웅이 되는 방법으로 택한 이들이 할수 있는 최선의 친절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질문들 속에서 헤메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적어도 내가 어떤 모습의 영웅이고 싶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