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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한설 지음 / 예담 / 2014년 6월
평점 :
스물아홉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그 스물아홉이 끝나고 서른의 첫날을 맞이하기까지. 네 명의 스물아홉 청춘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여자의 상황에서, 여자의 시각으로, 저마다의 스물아홉을 그려냈기에, 그 ‘여자’라는 공통분모가 묘한 동질감을 안겨줬던 것 같다.
아직 스물아홉이 되지 않은 나는 저자가 지은 제목을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스물아홉이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 나이인가?’라는 생각을 가진 채
정인에서 수정, 수정에서 효선, 효선에서 민재, 그리고 민재에서 미영이라는 인물로 이어지는 그들의 1년을 훔쳐봤다.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춘 이야기였다. 마치 드라마 대본집을 읽는 것처럼 인물들의 캐릭터가 제각각 또렷하게 다가왔고,
한 명의 인물을 둘러싼 다수의 인물이 가져오는 갈등도 나름 신선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리 길지 않았고, 그 다음 사람,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 후 다시 되돌아오는 전개는 호흡이 짧은 르포르타주 느낌이었다.
서너 살 많은 언니들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모인 그녀들의 모습을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들의 스물아홉 1년 간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1월부터 시작된다.
네 명의 스물아홉 친구들, 그리고 그녀들의 정신적지주 역할을 하는 듯한 서른아홉 미영이라는 인물. 여자 다섯이 모였다.
분명 그 가운데 나랑 가장 비슷한 인물이 있을 것 같았다. 여자 여럿 모이면 다 다른 듯해도 그 중에 가장 나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있었던 전례가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 있었다. 수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다.책을 읽는 내내 수정이라는 인물이 답답하기도 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흠 많은 여자라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감정 하나 분간하지 못해서 제 상처를 제 스스로 만드는 미련한 여자라는 부분에서는
공감, 또 공감. 글 쓰고 싶어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글에 도움이나 주고 앉아있는 미련한 여자라는 부분에서도 공감, 또 공감.
1월 스물아홉, 괜찮다고 하기엔 미안한 / 2월 스물아홉 병 / 3월 불안감 때문에 가장 빛나는 순간 / 4월 당신이 아파서 울던 늦은 밤 /
5월 ‘사나운 개’ 같은 남자를 원해요 / 6월 사랑의 단맛과 쓴맛 / 7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 8월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
9월 나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 10월 용서할 수 없는 이유 / 11월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다 / 12월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목차는 1월부터 12월로 이어지고, 각 챕터의 숫자 뒤에는 저자가 정의내린 스물아홉 인생들의 한 달 이야기가 차례차례 들어있다.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빛이 나는 당찬 이십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지도. 때로는 반짝반짝.
하지만 이내 옆에 아무도 없구나, 그동안 난 뭘 하며 살았던가, 하며 갑자기 돌변하는 마음. 그것들로 인해 곤두박질치듯 내려가는 우울함 역시
스물아홉 그녀들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사랑에 대한 기대로 설레다가 이내 그 믿음에 대한 혹독한 배신감에 사로 잡혀 미련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런 다이나믹한 그래프의 삶.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상승하는 그래프는 이야기 속 여자들의 삶이 아니었다. 오르다가 내려가고, 또 한없이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팍’하고 오른다.
그리고 언젠가 또 내려갈 일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일테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보면, 언젠가는 다 잘될 거예요’ 이렇게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진탕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고 ‘우리 이 모임 계속할까?’라고 누군가가 말할 때 ‘좋아!’라고 바로 대답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일상과 닮아 있고,
그게 진짜라는 생각도 했고.
스물아홉이라는 이십대의 마지막 순간은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그맘때쯤 성취해야 할 것들, 특히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서
'성취한 자'와 '아직인 자'로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묘한 시기. 여전히 혼자인 게 잘못도 아닌데 괜히 주눅드는 시기.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갑갑해지는
답없는 시기. 그렇기에 괜히 '아홉수 아홉수' 하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들 앞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모든 스물 아홉들에게, 저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의 입술을 빌려 말한다.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할 정도로 아직 너무, 우리는, 젊어, 라고.
전반전 29분. 골은 후반전, 아니 연장전에서 만날 수도 있다. 언제 들어가냐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한 번뿐인 우리들의 삶에서 골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
타이밍은 모두 다르니깐. 그러고보니 그녀들 이야기의 귀결이 묘하게도 이 광고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정인이를 통해 저자는 이 광고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일본의 한 광고 영상 링크를 첨부하며.
모두의 아홉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