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한설 지음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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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그 스물아홉이 끝나고 서른의 첫날을 맞이하기까지. 네 명의 스물아홉 청춘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여자의 상황에서, 여자의 시각으로, 저마다의 스물아홉을 그려냈기에, 그 ‘여자’라는 공통분모가 묘한 동질감을 안겨줬던 것 같다.
아직 스물아홉이 되지 않은 나는 저자가 지은 제목을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스물아홉이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 나이인가?’라는 생각을 가진 채

정인에서 수정, 수정에서 효선, 효선에서 민재, 그리고 민재에서 미영이라는 인물로 이어지는 그들의 1년을 훔쳐봤다.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춘 이야기였다. 마치 드라마 대본집을 읽는 것처럼 인물들의 캐릭터가 제각각 또렷하게 다가왔고,

한 명의 인물을 둘러싼 다수의 인물이 가져오는 갈등도 나름 신선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리 길지 않았고, 그 다음 사람,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 후 다시 되돌아오는 전개는 호흡이 짧은 르포르타주 느낌이었다.

서너 살 많은 언니들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모인 그녀들의 모습을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들의 스물아홉 1년 간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1월부터 시작된다.

네 명의 스물아홉 친구들, 그리고 그녀들의 정신적지주 역할을 하는 듯한 서른아홉 미영이라는 인물. 여자 다섯이 모였다.

분명 그 가운데 나랑 가장 비슷한 인물이 있을 것 같았다. 여자 여럿 모이면 다 다른 듯해도 그 중에 가장 나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있었던 전례가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 있었다. 수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다.책을 읽는 내내 수정이라는 인물이 답답하기도 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흠 많은 여자라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감정 하나 분간하지 못해서 제 상처를 제 스스로 만드는 미련한 여자라는 부분에서는  

공감, 또 공감. 글 쓰고 싶어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글에 도움이나 주고 앉아있는 미련한 여자라는 부분에서도 공감, 또 공감.

 


1월 스물아홉, 괜찮다고 하기엔 미안한 / 2월 스물아홉 병 / 3월 불안감 때문에 가장 빛나는 순간 / 4월 당신이 아파서 울던 늦은 밤 /

5월 ‘사나운 개’ 같은 남자를 원해요 / 6월 사랑의 단맛과 쓴맛 / 7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 8월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

9월 나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 10월 용서할 수 없는 이유 / 11월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다 / 12월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목차는 1월부터 12월로 이어지고, 각 챕터의 숫자 뒤에는 저자가 정의내린 스물아홉 인생들의 한 달 이야기가 차례차례 들어있다.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빛이 나는 당찬 이십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지도. 때로는 반짝반짝.

하지만 이내 옆에 아무도 없구나, 그동안 난 뭘 하며 살았던가, 하며 갑자기 돌변하는 마음. 그것들로 인해 곤두박질치듯 내려가는 우울함 역시  

스물아홉 그녀들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사랑에 대한 기대로 설레다가 이내 그 믿음에 대한 혹독한 배신감에 사로 잡혀 미련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런 다이나믹한 그래프의 삶.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상승하는 그래프는 이야기 속 여자들의 삶이 아니었다. 오르다가 내려가고, 또 한없이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팍’하고 오른다.

그리고 언젠가 또 내려갈 일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일테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보면, 언젠가는 다 잘될 거예요’ 이렇게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진탕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고 ‘우리 이 모임 계속할까?’라고 누군가가 말할 때 ‘좋아!’라고 바로 대답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일상과 닮아 있고,  

그게 진짜라는 생각도 했고.

스물아홉이라는 이십대의 마지막 순간은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그맘때쯤 성취해야 할 것들, 특히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서

'성취한 자'와 '아직인 자'로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묘한 시기. 여전히 혼자인 게 잘못도 아닌데 괜히 주눅드는 시기.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갑갑해지는

답없는 시기. 그렇기에 괜히 '아홉수 아홉수' 하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들 앞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모든 스물 아홉들에게, 저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의 입술을 빌려 말한다.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할 정도로 아직 너무, 우리는, 젊어, 라고.

 

전반전 29분. 골은 후반전, 아니 연장전에서 만날 수도 있다. 언제 들어가냐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한 번뿐인 우리들의 삶에서 골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

타이밍은 모두 다르니깐. 그러고보니 그녀들 이야기의 귀결이 묘하게도 이 광고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정인이를 통해 저자는 이 광고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 한>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일본의 한 광고 영상 링크를 첨부하며.

 

모두의 아홉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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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2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완결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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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1,2 - 임이슬, 퍼플로맨스공모전 수상작



작년 처음으로 진행된 퍼플로맨스공모전. 이는 교보문고가 기획한 공모전으로 저자가 출판사나 출판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책을 스스로 출판하는 자가출판시스템을 ‘퍼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대회인데,  

첫 회에 1,000여 편이 응모되었다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다음 해를 듬뿍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사랑이라는 소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주제일 터. 그렇기에 ‘로맨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런 공모전을 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원최 사랑이야기 만들어내는 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이런 대회에는 관심을 전혀 갖지 않았는데 막상 수상작을 읽어보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서 허황된 사랑이야기라도 한번 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꿈틀거렸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무슨 제약이 존재할까. 사랑이라는 행위 앞에서 뭘 얼마나 재고 따질 수 있을까.  

‘진짜 사랑’이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래서 퍼플로맨스공모전은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 같다.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받은 임이슬 작가의 <유성의 연인> 1권과 2권을 읽었다. 사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판타지 장르의 로맨스소설은  

난해한 느낌이 큰 게 사실인데,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다져진 익숙함 덕분인지 막 심하게 불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배 당한 선비와 조선시대로 불시착한 미래에서 온 여자의 이야기. 이렇게 소개글을 적는 지금도 약간 손가락이 오글거릴 정도긴 하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사랑이야기를 진지함과 풋풋함으로 버무린 이 이야기를 꽤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광해군 1년 1609년 8월 25일’에 기록된 거대한 비행물체에 대한 단 한 줄의 기록이 모티브가 되어 발상의 전환을 꿰하는 신비한 사랑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신기했다.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 역시 이 기록된 한 줄을 통해 뻗어나간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같은 기록 한 줄로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사랑이야기가 그려진다는 그 자체에 ‘역시 글을 쓰는 건 이런 매력이 있구나’를 느끼기도 했고.
단순한 틀, 남자와 여자 주인공 단 두 사람만의 사랑이야기라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배경이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조금 집중해서 읽으면 ‘재밌는 시간여행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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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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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1,2 - 임이슬, 퍼플로맨스공모전 수상작



작년 처음으로 진행된 퍼플로맨스공모전. 이는 교보문고가 기획한 공모전으로 저자가 출판사나 출판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책을 스스로 출판하는 자가출판시스템을 ‘퍼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대회인데,  

첫 회에 1,000여 편이 응모되었다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다음 해를 듬뿍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사랑이라는 소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주제일 터. 그렇기에 ‘로맨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런 공모전을 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원최 사랑이야기 만들어내는 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이런 대회에는 관심을 전혀 갖지 않았는데 막상 수상작을 읽어보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서 허황된 사랑이야기라도 한번 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꿈틀거렸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무슨 제약이 존재할까. 사랑이라는 행위 앞에서 뭘 얼마나 재고 따질 수 있을까.  

‘진짜 사랑’이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래서 퍼플로맨스공모전은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 같다.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받은 임이슬 작가의 <유성의 연인> 1권과 2권을 읽었다. 사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판타지 장르의 로맨스소설은  

난해한 느낌이 큰 게 사실인데,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다져진 익숙함 덕분인지 막 심하게 불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배 당한 선비와 조선시대로 불시착한 미래에서 온 여자의 이야기. 이렇게 소개글을 적는 지금도 약간 손가락이 오글거릴 정도긴 하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사랑이야기를 진지함과 풋풋함으로 버무린 이 이야기를 꽤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광해군 1년 1609년 8월 25일’에 기록된 거대한 비행물체에 대한 단 한 줄의 기록이 모티브가 되어 발상의 전환을 꿰하는 신비한 사랑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신기했다.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 역시 이 기록된 한 줄을 통해 뻗어나간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같은 기록 한 줄로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사랑이야기가 그려진다는 그 자체에 ‘역시 글을 쓰는 건 이런 매력이 있구나’를 느끼기도 했고.
단순한 틀, 남자와 여자 주인공 단 두 사람만의 사랑이야기라서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배경이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조금 집중해서 읽으면 ‘재밌는 시간여행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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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레이먼드 조 지음, 박형동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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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 호아킴 데 포사다, 자기믿음에 대한 이야기



‘자기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동조 성향’이라는 심리용어와 접목시켜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빅터 로저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불확실한 말 한마디의 파급력에 대해 특별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그 말 한마디가 가져오는 힘은 생각보다 크고 뾰족하다.  

순간의 생각에 의해 입에서 뱉어진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넘어 무섭게 느껴졌으니깐.


173의 아이큐를 가진 빅터 로저스. 그는 서번트증후군을 앓았던 사람이었을테다. 비상한 천재지만 너무 비상하고 조금은 느려서 그 누구도 그가 천재일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 그런 그의 아이큐가 173이 아닌 당연히 73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그를 저능하고 무능한 ‘바보’로 취급하기 바빴다.  

부러 괴롭히려거나 잘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73이라는 숫자 앞에 붙은 ‘1’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동 조성향, 남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려하는 경향. 한 명 두 명이 빅터를 향해 뱉은 ‘바보’라는 단어는 결국 빅터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옮아졌고, 그렇게 바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빅터는 스스로도 ‘나는 바보야’를 입에 달고 살게끔 만들어 버린다.  

빅터의 이야기와 교차시켜 등장하는 로라의 이야기 역시 동조성향, 그리고 생각 없이 뱉은 말 한마디로 인생이 서글퍼진 케이스다.  

예쁜 외모 탓에 유괴의 경험을 가진 로라, 그녀의 부모는 ‘못난이’라는 애칭을 로라에게 붙여주며 늘 그녀가 스스로를 못났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데 일조한다.  

딸 의 예쁨을 인위적으로 ‘못났다’로 만들어 버리면 다신 그런 불행이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거다. 자기 비하, 자기 불신에 휩싸여 당당하지 못하게 살아온 로라는 바보라는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7년 간 제 능력, 제 날개 한 번 펼 수 없었던 빅터와 일맥상통하는 대상이었다.

 

‘사 실은 넌 비상하고 명석한 사람이야’, ‘사실은 넌 정말 예쁘단다. 널 보고 있으면 심장이 얼마나 떨리는지 몰라’. 이렇게 ‘사실’을 말 했더라면. 아니, 그냥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말은 그들에게 뱉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살아오는 동안 받았던 기나 긴 고통이 애초에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나비효과’로 불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듯,  

그렇게 내 작은 말 한마디에 상대방의 인생 전체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뭐든 쉽게 말하기 꺼려질 거다.

빅터를 바보라고 놀리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던 사람들, 로라에게 일부러 비난의 말을 쏟아 부었던 그녀의 부모님,  

이들의 무책임한 말이 불러온 결과는 한참이나 시간을 돌고 돌아서야 제자리로 새로고침될 수 있었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옳을 확률, 사실 높다고 믿었고 그래서 나 역시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내 생각을, 내 결정을 많이 뒤바꾸기도 했다.  

때로는 내 주장이 그다지 신빙성이 높지는 않았기에, 남들의 일목요연한 주장들 앞에서 작아지기도 했고, ‘그냥 그럼 그렇게 해요’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고, 나는 왜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알리기 보다는  

‘좋은 게 좋은거고, 둥글게 둥글게, 튀지 않고 물렁물렁하게’ 사는 게 제일 편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 혼자와 다수의 의견이 갖는 대립 아닌 대립 속에서 이기고 싶은 생각보다도, 싸우면 피곤하니깐, '묻어가자'라는 생각이 내 속에도 자주 출몰하고 있단 걸 알았다.  

 

하지만 때로는 다수의 말 속에 숨은 '단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작은 단점이 가져올 커다란 상처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자라났다. 말 한마디의 힘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거나, 한참 돌고 돌아서 가게끔 만드는 큰 힘이라면,  

반대로 일으켜 세워주고, 아픔을 다독거릴 수 있는 것도 그 말 한마디라는 걸 알았다. '좋은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거겠지.

물론 제일 먼저 상대의 말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인간이 되어야하는게 선행되어야 할테고.

바보 빅터, 17년 간 바보로 불리며, 불리는 대로 바보처럼 살았던 그는 결국 멘사의 회장이 되어 그간 발산하지 못한 자신의 포텐을 마음껏 터뜨릴 수 있게 된다.

바보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라는 작가는 늘 평범한 일상의 어느 한 조각을 통해  

가장 평범한, 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진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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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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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 박범신, 소소한 관계가 실은 말하고자 한 것




1.


이 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독백을 통해 존재의 가치와 익숙한 관계를 뛰어 넘는 초월적인 관계의 유무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초로의 작가 박범신은 마치 자신이 말을 하듯 분신 같은 화자를 한 명 만들어서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등장시켰다. 하지만 길고 긴 이야기를 주도하는 메인 화자는 ‘ㄱ’으로 정의되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이 소설의 시작이기에, 그래서 그 상황을 설명해주는 화자는 박범신을 닮은 노작가지만, 진짜 이야기의 시작은 그 다음부터다.

‘혼 자 사니 참 좋아’ ‘둘이 사니 더 좋아’ ‘셋이 사니 진짜 좋아’로 구성된 3장의 이야기에서 ㄱ은 ㄴ과 ㄷ이야기를 꺼냈고, ㄴ은 ㄱ과 ㄷ이야기를 꺼냈으며, ㄷ은 ㄱ과 ㄴ의 이야기를 꺼냈다. ‘덩어리진다’는 다소 모호한 단어를 줄곧 써대며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거울 같고 분신 같은 존재인지를 묘사하고 있었다.
박 범신, 어려운 고어들을 써가며, 어려운 문장을 구사하며 전체적으로 이 책을 ‘어려운 책’으로 만들어버린 그의 작품은 독자가 마주하기엔 사실 좀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보려고 내 나름 노력했던 건 ‘마지막 페이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이 세 명의 기구한 만남이, 그리고 이성간의 사랑, 동성간의 사랑을 떠나 1:1로 맺어지는 각각의 관계 속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떠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런지가 제일 궁금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리되가는 그들의 관계를 알아가는 건 어려운 문장들 속에서도 내 흥미를 끌어올려 준 좋은 동기가 되었다.

실용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등장인물이 수십 명에 달하는 대서사시도 아닌, 단 3명의 주거니받거니하는 이야기들이 전부인 책이지만, 그래도 너무 어려운 감이 있어서 종이에 끄적거려봤다.











인물을 정리했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그려봤고, 그렇게 해본 결과, ㄱ과 ㄴ과 ㄷ이라는 세 사람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 ‘하트’를 그려 넣을 수밖에 없었다. ‘셋 이서 사랑했으니 그건 우정이 아닐까요’라고 묻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주장하는대로, 그리고 끝까지 읽어본 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들 속에는 우정보다는 사랑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랑’은 좀 독특했다. 초월적인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존재 근원적인 사랑의 감정. 뭐 그런걸 말하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2.


소 설을 읽으면서 영화 <몽상가들>이 떠올랐다. 끝까지 본 영화는 아니고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고있는 작품인데, 남녀의 수만 다를 뿐, 세 사람이 공유하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큰 틀은 통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라서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여자라서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써 사랑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로가 하나가 되었다가, 또 지극히 개인적인 개인으로 각각 살아가다가, 자신의 연약한 부분들을 가지고 만나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그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소소한 풍경>속 ㄱ과 ㄴ과 ㄷ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던가 싶다.








3.


플 라토닉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라는 물음으로 토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소설쓰기 수업이었는데 소설가가 진행하는 수업에서 어느날 플라토닉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주제가 던져졌고, 나보다 나이가 두 배는 더 많을,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그간 당신들이 겪었고, 또 들었던 다양한 정신적 교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모였던 10인 안에서는 ‘플라토닉 사랑은 가능하다’라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는 '질투'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ㄱ으로 정리되는 '나'가 ㄴ과 ㄷ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ㄷ이 ㄱ와 ㄴ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분노'하지 않았다. '질투'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둘만의 공간에 '나도 들어갈래'라는 말은 뱉었지만 결코 그 단어가 둘 중 한명을 미워해서,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던 건 결코 아니었다.

플라토닉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지 꽤 되어 가물가물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열띤 토론이 다시금 생생해졌다. 적어도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박범신 작가가 그려내려던 게 흔한 에로스적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발췌>



오빠 때문인지 그의 누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흰 운동화-갈색 구두로 이어지는 비의적인 동행의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긴 팔이 슬며시 뒷덜미를 지나와 반대쪽 어깨에 얹힐 때 플루트 연주가 뚝 끊기고 봄비 소리만 가슴으로 막 들어온다. 그는 내게도 죽은 오빠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오빠-누이동생의 우연한 부합은 너무도 신비하다.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내 눈빛에 깃든 죽음의 이별을 한순간 느꼈을 수도 있다. 직관은 사실의 눈을 뛰어넘으니까.
49쪽






“이 주름 사이로 때로는 바람이 지나가는 게 느껴져.” 그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가 자신의 이마에 놓인 가로 주름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거짓말!” ㄷ이 키드득 웃는다. 2층 베란다에서 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당이다. 강이 오늘따라 가깝게 다가와 보인다. “정말이야. 지금도 그런걸. 바람이 이 골짜기로 지나가고 있어.” 그가 부연하고, 그녀가 한 손으로 그의 가로 주름을 툭툭 친다. 오누이 같다. “그럼 이 주름들, 바람의 길이네!” 그녀가 계속 웃는다.
65쪽






“내가 그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플롯이란 한마디로 인과론(因果論) 같은 거 아니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죽는다면 소설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의 진술에 바쳐지는 것. 그리고 인과론은 당연히 시간의 꼼꼼한 관리로써 미학적 균형을 얻는다. 그게 플롯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게 작가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야. 작가들은 관리자에 가까운 표정을 갖고 있어. 정말 지겹다. 자유로워지려 쓴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쓰면 쓸수록 부자유해지는 이 갑갑증, 얼마나 환장할 일이겠니.”

“물론, 플롯 없이 쓰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프다. 딜레마야. 하기야 뭐,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 모두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94쪽




우물에게는 비밀이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거대한 비밀이지요. 내가 딛고 선 굳은 땅 밑에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 호수의 물이 흘러 나가는 구부러진 강이 있으며, 그 강은 또 다른 수많은 지류로 이어져 있다고 상상하면 늘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내가 내 힘으로 작두샘의 손잡이를 움직여 그 거대하고 신묘한 비밀을 지상의 한낮으로 퍼 올리는 거지요.
비밀이 없는 세상은 사막처럼 황막할 뿐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단지 사막에 있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아름다운 건 아닐 거예요. 다른 종족에게는 비밀로 해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더욱 아름다운 거잖아요.
155쪽




그 녀는 감성적인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인 나를 한 단계 끌어올려 음악의 깊은 안뜰로 인도해준 가이드이자 친구, 혹은 그 이상이었어요. 화성학이나 간단한 작곡법 또는 프로듀싱하는 법 따위를 가르쳐준 것도 그녀였지요. 그녀를 사랑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랑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나는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천연스럽게 상대편을 장난감처럼 자주 취급하면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부서지지 않는 장난감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므로 사랑은, 두려워요.

모든 사랑에는 그런 위엄이 다 깃들어 있어요. 훼손하기 위해 욕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많아요. 예컨대, 형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나는 세계 전부를 잃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고 존중해야 할 아무런 가치도 남겨 갖지 못했어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지요. 내 존재 자체가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된 것이었어요. 아버지와 형을 사랑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예요.
179쪽





봄은 천 개의 빛깔을 갖고 있어요.
기 쁘고 슬프고 화나고 즐겁고 밉고 죽고 싶고 미치고 싶은 그 모든 감정 말이에요. 희로애락과 애오욕이 요지경처럼 뒤섞인 채 다가와 우리들 마음을 천 갈래로 흩어놓는 것이 봄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해요. 모든 건 그날의 햇빛과 천 갈래 봄빛 때문에 비롯됐었다고.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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