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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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은 - 제국의 어린이들

일제강점기 시절, 잘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도 힘들고 학교에 수업료를 내지 못해 곤란해 하고 때론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쓰인 글이 있다. 물론 이런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 나름대로는 안전한 어린이였다는 방증인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절, 소중히 쓰인 글이며 당시 어른들의 생활에 감춰져 있던 어린이들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조선인, 일본인 상관없이 잘 쓰여진 글들을 각 주제 별로 모아 놓은 이 책에서 우리는 시대에 변함없는 어린이들만의 순수함과 당시 식민 생활이나 전쟁 위험으로 인한 두려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반복적인 일상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에 살건, 어떤 계급에 속하건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신비한 존재들이다.

수업료를 걱정하는 화자의 마음, 당시엔 너무나 흔했을 어린 아이들의 죽음, 부모도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며 밥을 얻어 먹고 다니는 거지 어린이에 대한 연민보다 마음 아팠던 건 전쟁으로 인해 더욱 곤란해진 생활과 황국 신민으로서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 바치고 싶다고 열의를 보여주는 글이다.

🔖어린이는 결코 부모 물건이 되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느 기성 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고, 각자가 독특한 삶이 되어 갈 것입니다.

당시에도 어린이를 향한 성숙한 어른들의 시선은 이러했으나, 답답한 벽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은 일본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잘못된 사상을 마음에 품고 살아갔다.

전국 각지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열린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는 고장의 학생들의 글도 읽을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시가지였던 현재 구도심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아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아이들의 눈이 의외로 정확하고 그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세상을 대신 보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간을 내어 진지하게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들이 차마 어른들에게 하지 못했고, 해도 소용없을 거라 여겼던 그들만의 진심 어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아이들이 전쟁과 노동으로 희생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책임 있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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