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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과의 대화 - 우주의 끝에 다다르려는 작곡가의 온평생
진은숙 지음, 이희경 엮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평점 :
이희경 엮음 - 진은숙과의 대화
현대음악의 거장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진은숙 선생님의 대화가 출간됐다. 단순히 음악 하는 사람끼리 주고 받는 대화가 아니라 연구자, 과학자와 함께 하는 대화도 있어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진은숙 선생님의 여정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60대의 나이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점점 빠질 텐데 이 긴 생머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뿐. 여전히 음악적 열정은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젊은 날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럼프와 시련을 겪은 뒤 더 단단해져서 더욱 음악에 깊이 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배운 게 음악밖에 없고 음악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할 수 밖에 없는 것.
언젠가 작가는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오로지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거란 소리를 들었는데 역시 창작자의 삶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이것 뿐인 것. 그럴 때 그 힘든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듣는 사람이 음악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아 놓아야 해요. 옛날 음악부터 누구의 음악은 어떤지 많이 쌓아 놓으면 새로운 것을 들었을 때도 여러 서랍 중에 이 음악은 어떤 서랍에 넣으면 될지 판단해 카탈로그를 만들고 머릿속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죠.
현대 음악은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다란 편견 어린 시선에 현대 음악을 잘 이해하는 법은 역시 많이 듣는 것이란 조언을 한다. 여러번 들어보지도 않고 피하기만 하는 것도 어리석고, 여러번 들어보지 않았는데 잘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다.
인생을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나를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남기면, 그것이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면 기술을 아무리 배워도 소용없죠. 기술적으로 뭔가를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다가가거나 퀄리티가 있는 작품이 될 수는 없거든요.
자신을 속이지 말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임할 것 그리고 잣니이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힘주어 말할 것. 진은숙 선생님은 이것이 작곡가로서 가져할 자세라고 말한다. 단순히 작곡가나 창작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며 모든 인생에게 귀감이 되는 조언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삶, 나의 주관을 가지는 삶.
개인적으로 진은숙과의 대화에선 김상욱 물리학자와의 대화가 가장 재밌었는데, 김상욱 물리학자는 우리나라에서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물리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다정한 과학자면서 진은숙 선생님은 물리학을 좋아해 독학으로 몇 십년간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 정통한 사람과 그 분야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대화가 얼마나 재밌는지 이 부분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 진은숙 선생님이 조금만 젊었어도 음악이 아니라 물리학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여전히 나아가는 중인 진은숙 선생님의 다음 여정도 늘 응원한다. 한 명의 청중으로서 여전히 선생님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오지 않았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