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 탈근대의 서사와 담론 청동거울 문화점검 43
박진 지음 / 청동거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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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북소녀님께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하신 책, 나는 일단 내가 모르는 책을 접하면 읽은이의 후한평에도 불구하고 일단 나스스로 그책이 나랑 맞는지 확인을 해본다. 그건 간단하다. 인터넷서점에 검색해서 도서정보 보고, 서평 한두개 대충 훑어보면 이게 나랑 맞을 책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 악평이라 하더라도 나랑 맞는 코드의 책도 있다. YES24에는 후기가 없고, 알라딘에는 뒤북소녀님의 후기만 달랑 있었다. 도서관에 있으면 빌려놓고 재미없으면 반납하면 되지만, 구입을 해야 하는경우는 좀 신중해진다. 제목부터 풍겨오는 냄새가 먹물냄새가 서울인터넷도서보관창고에서부터 솔솔 풍겨오지 않는가. 그런데, 뒷북소녀님이 두번 세번 쉬운 책이다라고 강조하신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장르문화 자체를 좋아하고 특히 짬뽕장르에 대한 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다. 헉!!!! 대학논문에서나 보는 딱딱한 인문학적 글들의 남발!!! 하지만, 그 충격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금방 재미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개념자체에 대한 설명을 할때는 추상적인 언어들로 도배를 하지만, 실예로 드는 것들은 내가 익숙하게 접하는 영화와 애니와 소설들이다보니, 표현하는 언어는 일상어가 아니지만 그안에서 박진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면으로도 해석할수가 있구나 하면서 나의 생각의 폭을 확장시키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소설이나 보고싶은 영화가 많이 생길수도 있다. 나또한 책속에 예로 든 책들의 제목을 나의 목록에 추가를 시켜놓기도 했다. 책뒤편에 보면 활용한 논문이나 서적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그걸 접하면서 이 글쓴이는 자신의 언어로 소화를 해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주고 단순히 하위장르로 폄하되는 짬뽕장르의 심오함과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주는 재미있는 책이라는걸 알겠는데, 표현을 그렇게 딱딱하게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쉬운 표현으로 쓸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문헌의 책들로 공부할겸 나의 책 목록에 추가를 시켰는데, 그 다양한 문헌들을 읽었다면 거기서 사용한 표현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썼겠다는 나만의 신빙성(?)가지 않는 추측마저 들었다.
 

  뒷북소녀님의 말처럼, 책은 읽기가 쉽고 재밌다. 특히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중에서 좀더 다양하게 즐기는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더 재미가 있을거 같다. 그리고 인용의 예들이 대중문화들이라 알아듣기가 쉽다는거다. 


  나는 대체 역사물의 메타적 자의식이라는 소제목의 "메타적 자의식"이라는 뜻은 모르겠다. 물론 그안의 내용은 알아듣기 쉬워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스팀펑크(증기기관이 나오는 과거의 과학문명사를 다룸), 슬립스트림(SF보다는 문학적인 비중을 더 준 작품-예, 박민규, 서준환, 조하형 등등), 리보 펑크(사이버 펑크+생명공학)등의 용어를 꼭 알고 그구분을 할줄 알며 대중문화를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해석방법을 이해한다면 대중문화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하게 즐길즐 아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는것이다.


  세개의 장으로 나뉜다. 1.팩션물과 역사 서사물 2. SF서사물  3. 공포 서사물


  요즘 팩션소설이 유행이다. 그현상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나름의 고증과 논리를 가지고 소설을 시작한다면 우리에게 또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역사 학자가 아닌이상, 우리는 그 많은 역사를 알고 책을 접하진 않는다. 내가 읽은 책안에서 작가가 주는 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내에서 역사의 진실을 정의내리는것. 이것이 팩션 혹은 역사 서사물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객관적일수없다. 역사 기록자의 주관이 배여있고, 권력자들의 역사를 다루고 그들의 악행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역사는 정사와 야사를 고루 접하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존의 권력자들에게 속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야비한 짓과 패자들의 역사를 숨긴 역사를 우리는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구일수도 있는 팩션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팩션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팩션류는 우리 독자를 역사학자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요근래 팩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까닭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역사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에서 주어지는 역사만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 역사가가 될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팩션에 대한 열풍은 좋은 현상이 아닐까...
 

  SF 서사물은 철학적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내용으로 갈리는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볼때 디스토피아에 더 개인적으로 끌린다.  스팀펑크의 담론으로 애니메이션 <스팀보이>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인용한다. 둘다 문명의 양가성을 다루고 있지만, 문명을 비판하면서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준다는것은 그 비판의 강도를 약화시킨다는 이야기를 새롭게 들었다. 광주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신 이들이 있을것이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려한 휴가를 보면 그날 그때의 충격적인 영상들만 보여준다. 비평가들이 많이 했던 비평들이 광주항쟁의 본질을 그 끔찍한 영상이 가려버린다는 요지의 평론이었다. 그 비평도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화려한 휴가>라는 충격적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했다는것으로도 나는 또 다른 가치를 주고 싶긴하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벋어나서 문명을 타자화(객관화 시킨다는 말. 거리를 두고 쳐다본다는 말)시켜서 생명론적 우주론적 관점에서 문명을 비판하기에 <스팀보이>보다는 문명의 비판에 대한 깊이가 다르다는 말을 한다.
  SF 제패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화. 뭔말인지 모르겠다. 예로 <카우보이 비밥>을 드는데, 검색을 해보니, 궂이 SF 제패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화"라는 말을 쓸필요가 있나 싶다. 다양한 장르와 짬뽕학!! 이렇게 표현해도 될것을... 이야기의 요지는 <카우보이 비밥>이 다양한 장르와 결합이 되고,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있다는 말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로써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캐릭터들마다 플래시백장면을 자주 활용하면서 개인사를 담고 있고, 호러와 미스터리, 갱스터와 필름 느와르(우리나라에서 뮤지비디오로 활용되었던 끝편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멜로 드라마와 추리물등 다양한 장르가 자유롭게 뒤죽박죽하고 있다. 읽는 이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수 있는 작품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스파이크와 제트)와 미래에 대한 낙관론(페이와 에드)이 충돌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과학문명뿐만 아니라 근대세계에 대한 반성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슬림스트림의 예로써 작가 박민규, 서준환, 조하형, 백민석의 소설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내가 왜 박민규의 작품에서 흥미를 못느끼나 이해할수있었고, 서준환의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과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과 백민석의 <러셔>와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읽고 싶은 생각이 든 작품이다.
  리버펑크는 사이버펑크+생명학을 말하는데, 이 현상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기에 시사점이 크다고 할수있다. 인간의 휴머니즘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실험하고 조작하는것이 과연 옳은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런 윤리적 문제에서 인문학서적들이 간과하는것이 있는데, 만약 자신이 그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데, 죽을 병이 걸렸는데 나는 돈이 많고 머리 없는 아들의 복사품을 제작할수있는 여건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복제물들의 인권도 있을것이고, 인간을 벋어난 타생명체의 인권도 있을것이다. SF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로봇의 인권도 100년 후쯤이면 만날수있지 않을까? 로봇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인간에 의해서 공격을 당한 로봇이 인류를 멸먕시키는 이야기는 <매트릭스>의 전 이야기를 다룬  <애니매트릭스>에서 확인할수 있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풀루토>또한 인간과 로봇사이의 갈등과 로봇의 인권을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만화책이라는걸 느낄수 있다. SF라는 장르는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만을 흔히 생각하는데, 진정한 SF장르는 심오하고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골치아프게 던지는 어려운 놈이다.


  세번째 공포 서사물. 공포라는 장르는 내안에서 보기 싫은  형태를 알수없는 그 무엇을 괴물로 형상화 시켜서 그들을 쳐부수고 살아남아서 극장밖을 나와서 안도감을 안겨주는 장르이다. 공포라는 장르가 다루는 것을 잘 살펴보면 사회속에서 억압받고 배척되고 혹은 두려워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괜히 싫은 아이가 있다. 이유도 없다. 이유없이 밉다. 그래서 괴롭히고 싶기도 하고 파괴시키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안에서 인정하기 싫은 혹은 감추고 싶은 그 무엇을 그아이에게 투사화 시켜서 그것을 타자화 시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유없이 싫거나 이유없이 두려운 존재를 만나면 나는 나자신을 들여다 본다. 공포서사물에 대한 평론들을 접하다 보면 "타자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페미니즘이론을 공부하다보면 한국 공포, 귀신이야기를 통해서 타자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자신을 타자화 시킨다는것은 내 영혼이 내 몸 밖으로 잠시 나와서 멀리서 자신을 개관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말이고, 약자혹은 소수자를 타자화 시킨다는것은 그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려는 의도이다. 한국 공포영화를 예로 들면서, 권력에 대한 본질을 이야기한 것은 참 흥미로웠다.


  글을 읽고 나면 재밌게는 읽었는데, 글로쓰기엔 남감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건 일상적인 용어들로 서술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이런 인문학적 서적들의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로 써보는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책속의 내용을 그래도 옮겨 요약하기보다 그냥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만 적어보는것. 그게 자신의 언어로 소화하는게 아닐까. 나도 "타자화"라는 개념은 처음엔 아주 낯설었다. 그러나 영화평론이나 페미니즘으로 보는 대중문화에 대한 글들속에도 이 타자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했었다. 자주 접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자기내면을 성찰해보는 의미로 활용되기도 하고, 억압받는 약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꺼낸다는것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내언어로 소화한  "타자화"에 대한 나의 짧은 견해이다.


  글로 쓰기 어렵다 하더라도, 하위문화로 폄하받는 다양한 장르를 즐길수있는 방법들을 여러가지로 제시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자기언어로 소화하고 표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텍스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줄 아는 능력을 늘려나가는것도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이 유효하다. 그렇다고 귀가 너무 얇은것도 안좋다. 자기 줏대로 질겅질겅 씹으면서 귀를 열어두는것, 그게 자신만의 텍스트 해석방법의 독특함을 키워주는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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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1
조정래 지음, 장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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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채호가 누군지 몰랐다. 막연히 독립운동가겠지 생각하는 정도의 역사적 무식. 그렇다고 모든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두꺼운 평전을 통해 얻을수는 없지 않은가? 우연히 조정래를 검색하다가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시리즈(현재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까지 나온 상태이며 앞으로도 계속 잡업을 하실 예정인거같다.)가 눈에 뛰었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서 신채호부터 빌려봤다.


  어른 책, 어린이 책 구분없이 잘 찾아보면 동화책중에서도 짧은시간안에 많은걸 얻게 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다. 읽으면서 이게 과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일까 하는 책도 만나기도 한다. 조정래 작가에 대한 신뢰감때문일까? 선뜻 빌렸고, 두시간정도만에 읽으면서 내 무식을 어느정도 해갈시키고 시기적으로 겹치는 역사적 사건들은 내 연대표에 정리를 해두었다. 나는 요근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으면 항상 이 정리철을 펴놓고 밑줄긋고 수정해서 빠진 부분은 써넣고 한다. 한번 시대별로 타이핑을 다시해서 새로 뽑아야 할거같다.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이고 언론가이며, 무장투쟁을 적극지지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의열단을 조직했던 김원봉을 알게 되면서 강력한 무쟁투쟁가들에 대한 기존의 내 시각을 수정해본다. 내 기존의 시각이라고 해봐야 영화 <아나키스트> 수준이었다. 신채호는 테러와 암살이 죄가 아니냐고 일본인이 묻자 당당하게 일본의 식민통치자체가 불법이고 악법인데, 억압받는 민족으로써 강력한 폭력말고 무엇으로 우리의 주권을 찾을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내가 한짓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떳떳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야기 전체적으로 아주 강직한 인물이고 청렴하며 기개가 범인으로 쫓아가기 힘들정도이다. 체질적으로 허약체질이면서도 배고픔과 가난을 항상 달고 살아갔지만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얼굴을 쑥이고 세수할수 없다고 생각할정도 강직한 인물이다. 그래서, 의혈단조직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것도 그러한 마음에서 행한 일일 테다. 짓궂은 생각같지만, 신채호앞에 무폭력, 평화주의 인도의 간디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아마 이론적으론 옳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일절 무시를 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릴때 부터 신동소릴 들을정도로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신학문을 접하고 잘못된것은 바로 고쳐야 된다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독립협회에 가입하면서 의회활동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독립협회의 특성때문에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국민계몽을 위해 신교육 운동에 앞장서면서 모두 한글로 교육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받았던 공부가 모두 한자를 통한 유교주의에 입각함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통한 국민계몽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한글교육운동을 주창한다. 그는 성균관에서 박사가 될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출세의 길을 물리치고 고향에 내려와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1895년 단발령에 의하여 상투를 스스로 자르기도 하고(단발령은 1895년에 내려졌지만 유교적 관습은 오래 오래 지속되었고, 상투를 자르는 행위를 조상에 대한 배신배반행위로 인식하던 당시의 지식층들이었다.) 여성 계몽을 위해 남녀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립운동중 신채호를 성균관에 추천해준 신씨 문중 어른 신기선을 매국행위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공과사를 구분할줄 알고 의지가 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중국 사대주의와 일제의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수정하고 책을 펴내는 일에 힘쓴다. 그는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을 당나라를 끌어 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부정하며 새로운 조선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에 전념하기도 한다.


  민족이라는 단어를 나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무정부주의 혹은 코스모폴리탄? 하지만, 외세의 침략이 있을때 태생적으로 한민족이기에 이념을 달리하며 서로 분열하지 않고 함께 힘을 써서 해방하자는 의미로써 조정래의 민족 이야기와 신채호의 민족에 대한 기개 같은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소한 힘듬에도 쉽게 부러지는 나자신을 보면서 이런 역사적 인물을 대할때마다 경외심이 들기도하면서 한명의 인간을 인간답게 살기위해 투쟁하도록 만드는 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매번 신기할 따름이고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산다는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뒤편에는 다른 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고, 그가 이동했던 역사적 경로등 식민지시대의 견문을 넓히는 짧은 각주도 달려있어서 꽤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내일 도서관에 당장 달려가서 다른 책을 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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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 인권변호사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6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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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평전중에 제일 괜찮은 책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라는 말을 여러 글에서 본적이 있다. 전태일을 혁명투사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이타적이고 인간적인 전태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권 변호사 조영래>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집었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으로 서울생활을 하게 되고, 중학교때부터 집근처 대원암에 자주 놀러다니면서 불경과 한문을 일찍 접하고 배우게 된다. 조영래 가족은 끊없는 가난속에 자녀 모두가 자신이 학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모두 공부를 잘했고 씩씩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부당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것은 따지는 고집쟁이 였던것이 후에 그의 삶을 잘 설명해주는것같다. 그는 크고 높은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자시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겸손하며 작고 아름다운것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생활중 전태일평전을 집필하지만,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다가 죽고 나서야 전태일평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가난속에서도 약자를 보면 자신의 것의 나눌줄 아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서울대전체 수석으로 법대에 들어가게 된다. 고등학교때는 공부벌레들만 모인 경기고등학교 학생들을 한일회담밤대시위(1964.3)에 참여케 할만큼 조직력과 말솜씨가 탁월했다. 대학교를 들어가서는 사카린 밀수사건(1966)규탄 집회에도 참여하고, 6.8부정선거 규탄, 삼선개헌반대 시위 집회에 참여하였다. 대학을 졸업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전태일이 분신(1970.11.13)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71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나, 엉뚱하게도 서울대생 내란 예비 음모(1971.11.12)에 연루되어(박정희가 부정선거의혹을 받자 그것을 무마하고자)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게 되고, 나온지 얼마 안되어 민청학련사건(1974)으로 또 도피생활을 6년 동안 하게된다.


  그 기간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며 필요한 얘기를 적으면서 여기저기 숨어다니며 <전태일 평전>을 완성하게 된다. 도피생활중 아들 일평과 함께 못한것이 너무 미안하여 1980결혼뒤에는 일평과 무현의 눈높이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는 아이를 만나면 아이의 눈높이로 대화하고 어른을 만나면 어른의 눈높이로 대화를 하려는 사람이었다. 조영래는 크고 거창한 일보다 작고 하잘것 없는 일에 더 애정이 많았고, 진정한 삶의 숨결은 오히려 소박한 것에서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후 "시민 공무 법률사무소"를 세워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첫사건은 "망원동수재사건(1984.91~4)"으로 17,000가구의 8만여명이 피해자가 되지만, 서울시는 자신들의 수문관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발뺌만 했다. 수재민들의 집단소송을 5년이 넘는 끈질긴 공방 끝에 서울시의 잘못을 받아내게 된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악습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자청해서 무료로 별론을 했다. 
  1985년 "여성조기정년제" 사건이 1심에서 패한것을 보고, 한국여성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2심에서 무료로 변론을 해서 여성단체와 협력하여 승리를 거둔다. "대미어패럴사건"(노동문제)도 변론하고, "권인숙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7.2)"도 변론을 했다. 그는 환경문제가 곧 인권문제라고 인식하고 환경문제에도 발벋고 나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5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지만, 양김의 분열과 5.16의 핵심인물이었던 김종필까지 가세하여 어처구니없이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조영래도 신문을 통해 두 김씨가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그결과가 그에겐 너무 충격적이었을까....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너무 혹사해서 그럴까? 그 혼란의 휴식기간중 폐암3기를 선고 받는다. 그의 나이 겨우 43세에 그는 세상을 떠난다.


  겨우 43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크고 거창한일의 가치만 칭찬받고 인정받던 사회속에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써 작은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알고 행동하고 약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인권 변호사, 조영래. 그의 삶의 모습을 본받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겸손하며 작은것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고 아는 만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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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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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0페이지의 상당히 두꺼운 책, 그러나 아홉번의 연행, 다섯번의 기소 또는 기소유예, 세번의 징역과 상당량의 집필때문인지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더이상 집필을 할수가 없다. 그래서, 임헌형씨와 대담형식으로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해서 그런지 생각외로 한번잡으면 상당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반쯤 읽었을때 잠깐 쉬고 다른 얇은 책들을 접했는데, 두꺼운 책이라 그런지 쉽게 손이 가지 않다가 다시 잡으니 또 금방 읽힌다. 그만큼 리영희선생님의 삶과 그의 글들이 주는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적인 시선으로써의 한국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상당히 많은 글을 썼는데, 많은 책들이 품절 되어서 최근의 것만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볼수 있다. 예전에 나왔던 책들이 다시 재출간 되길 바래본다. 특히 요즘처럼 공안정국으로 흐를때일수록 제대로 된 논리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이다. 가능하면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 나의 부족한 논리를 단단하게 채우고 싶다. 한국분단에 큰 일조를 하신 미국의 행태가 베트남전쟁의 행태와 거의 비슷한것같아서, <베트남전쟁>이 다시 재출간 되어서 읽을수있으면 좋겠고(대신에 황석영님의 <무기의 그늘 상하>를 구매했다.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다룬 소설이다.), <중국백서>와 <8억인과의 대화>는 중국에 대한 무지한 나의 편견을 깨트리고 싶어서 재출간 되길 바란다. <반세기의 신화>와 <스핑크스의 코>는 반공 우익정권이 숨기고 싶어하는 북한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쟁때문에 월남한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위해서 서울에 내려와 있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집에서 일하던 머슴이 혁명가로 변하여 그의 총에 돌아가셨지만, 그로인한 반공적인 시선은 없이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평양의 대동강에 미국함대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나서 백성을 괴롭힘)으로 인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해방이후 월남하면서 이북출신 기독교신자중에 광적 반공주의와 극우집단이 많았으므로 그들의 민족적 양심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데, 미국숭배하는 극우 반공 기독교집단에 대한 비판을 책 중간중간에서 자주 언급한다. 그는 무신론자이지만, 예수의 제자 부처의 제자가 되고싶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모습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으로써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것이다. 그는 유일신만의 배타적인 기독교를 비판한다. 어떻게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북한에 있는 집단을 단순하게 악으로 매도할수있단 말인가. 책 전체적으로 기독교 국가인 미국자본주의가 하는짓을 세계적인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하는데, 자본주의라는것의 부족한 점을 사회주의가 메꾸어주지 않으면 자본주의 병페도 심각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우익적 지식인 대부분이 친일을 했고, 죄익인사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주춧돌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행방후 세대는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해방후 친일세력이 전혀 제거 되지 않고 미국군정의 편의를 위해서 그 인원이 그대로 사회의 권력층을 장악하고 있으니 지금의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해방은 되었지만, 혼란의 극치와 폭력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인간의 행동과 생존양식에 부정적인 모든 측면이 노출된 것이 해방후 남한 사회라고 이야기 한다. 1945년 12월 미영소의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은 조선이 자치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30년동안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탈린과 장개석 덕에 신탁통치는 5년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38도선을 그어 조선을 분단하자고 한것도 미국이었다. 소련이 일본 패망직전에 북조선에서 진격해오니까 오끼나와에서 미쳐 남조선으로 진격할 여력이 없었던 미국은 스탈린에게 38도선에 의한 분할 통치를 제안했던 것이고 스탈인이 그에 동의 했던 것이다.

 

  그는 통역관으로서 군대생활을 7년이나 하는데, 대한민국의 군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천황군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군대로 사디즘의 집단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중위가 소위를 패면, 소위는 상사를 패고, 상사는 하사관을 패는 폭력집단이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돈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최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전쟁을 몸소체험하며 군대의 폭력과 부정부패의 천국임을 처절히 확인했다. 그의 그런 체험은 전쟁은 무슨 이유나 명분으로도 정당화 되고 합리화 될수 없다고 생각을 확고하게 했다. 전쟁은 악이다라는것이 리영희의 신념이었다. 그또한 나름 지식인으로써 오만함도 있었는데, 전쟁속에서 몇번의 경험을 통해 겸손이라는것을 배우게 된다.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평범한 여인과 스님이 자신보다 더 당당하고 커보였던 경험이 그를 깨닫게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한계도 알았고, 노동자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가 할수있는 머리로써의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진실을 많은이에게 알리기위해서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글을 썼다. 나는 리영희선생님의 그런점이 마음에 든다. 자신이 잘못된것을 알았을때 그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겸손할줄 안다는 것 말이다. 그는 제대후에 공개채용시험을 통해 합동통신사에 합격을 하는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노신(루쉰)의 민족개조론을 비교 하기도 했다. 이광수는 자기민족을 파는 행위였다면 노신(리영희님은 루쉰을 노신으로 부른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다.)은 중국 민족 내부의 결점을 직시하기 위해 비판을 한것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을 한점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그에 걸맞추어 명박과 한나라당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도 같이 비판하는것이 더 긍정적인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그대로 유지하고 기용했는데, 그에 대한 국민대중의 원성과 반대와 이승만정권에 대한 비판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반일정책을 취했다. 자기모순적이며 이율배반적 행동이었다. 이승만의 권력은 1. 미국의 후원  2. 이승만 스스로의 독재권력욕 3. 친일 반역자 집단기용 4. 남한의 반공기독교 5. 미국이 이승만을 위대한 애국자인양 세계에 선전해서 권력을 차지하게 된것이다. 미국은 이와같은 짓을 이란의 팔라비왕과 대만의 장개석,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마로코스에게 되풀이 했다.미국은 공산권을 경계하기 위해 부정부패한 반공우익정권을 지지한것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은 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수 있지만, 그 개인들이 무리를 이루게 되면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가 된다고 한다. 나도 동감한다. 인간집단을 실패를 거듭하는 괴로움속에서 다음에 올 실패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감소하는 정도의 지혜를 획득하는게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는데 역사의 흐름을 보면 충분히 동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 발전은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할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권력층들이 저희들 마음데로 국민을 우롱하지 않고 두려워하게 되는것이다.

 

  쿠테타 정권을 세운 박정희가 케네디 대통령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케네디는 군부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일정상화를 요구하고 베트남사태에 대한 남한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것이 냉엄한 국가관계의 본질이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조속한 선거실시, 민정이양, 군대복귀 세가지 대국민 공약을 선언해 놓고 몇일안가서 그 공약을 뒤집었다. 박정희는 해방후 남로당 비밀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수많은 동지들을 미군정에 팔아넘겼다. 박정희는 기회주의자이자 변절자였다. 케네디가 선택한 [로스토 독재개발이론](집행주체는 군대)를 활용하며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반공주의 군부독재개발을 했다. 미국의 대남한 경제 지원을 일본에게 대행시켰기 때문에 박정희는 목숨걸고 한일회담을 강행한것이 그이유이다. 미국이 부패한 군부 반공우익집단을 지원한 수많은 나라의 사례가 있는데, 그걸 보아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으로 유지되고, 미국 자본주의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고 볼수있다. 

 

  60년대 신문사의 압박때문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1년여동안 노동을 하기위해 돌아다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경혐을 통해 머리에 먹물든 인텔리라는 개인이 그 편안한 직업과 사회문화적 권위를 팽개치고 사회의 천시를 받는 육체노동자가 되려는 생각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뼈져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이점이 참 마음에 든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그는 평생 언론인으로써 지식인로써 많은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고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실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 전달하여 각성시켰다. 그가 그렇게 많이 연행되고 징역을 치룬것은 그의 글로 통해 많은 이들이 생각의 틀을 깨트리고 미국의 행태가 무엇인지 반공우익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하고 투쟁했기에 그의 이름이 연루되지 않는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발로 뛰는 기자는 아니었다. 다만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보니 세계정세에서 들려오는 모든 자료들을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따져서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는 분석형 기자였다. 세상에는 지식인으로써 양심의 소리를 하고 거시적인 관점의 세계를 볼수있는 진실을 알리는 리영희 선생님같은 분도 있고,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행동하는 실천가들도 있다. 나는 어느것이 더 우위에 있따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리영희 선생님같은 지식인들이 행동가들의 지식체계형성에 지대한 공을 주지만, 나는 행동하는 자의 가치를 더 높이 사는 편이다. 리영희선생님도 자신이 정치쪽에는 영소질이 없음을 알고 정치와는 멀리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진실을 알리기에 평생을 힘쓰셨다. 리영희 선생님의 글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또 안재성같은 노동문학가는 노동자 투쟁자들의 실제 역사를 제대로 살려내고 많은이들에게 알리려고 힘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은 다양하게 접하고 읽어야 하며 그속에서 자신의 시선을 가질수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기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더 잘알고 싶고, 그래서 세계적 역사안에서 그들이 한 짓들을 알고싶어서 기회될때 촘스키의 책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도 월등이 떨어지는 북베트남이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을 이겨서 통일을 시킨 호지민의 삶과 지도력에도 관심이 생기고, 베트남의 전쟁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자세히 알기 위해 우리남한 사람이 베트남인민에게 행한짓을 알고 반성하기위해 많이 알고 싶다. 그리고, 8억인구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고, 50년동안 우려먹은 반공이데올로기의 허상도 알고싶다. <반세기화의 신화>와 <스핑크스의 코>를 통해 극우반공 집단의 허를 뚤어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주어진 책들의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이 내것도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상황을 맞을때 그 본질을 깨달을 수없다. 그래서, 모든 책은 자신의 시선으로 비판하면서 그들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9년 6월에 있던 서해교전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는데, 남한측의 호들갑의 허상을 제대로 전달해주면서 지식인들조차 이런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북방한계선"이라는 용어자체가 모순이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려면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가 옳지 않는가. 유엔사령부가 한국해군이 다시 황해도를 침공할 수 없게 하나의 선을 그은것이 "북방한계선"이다. 북한을 대상으로 한것이 아니라 한국정부에 실시한것이다. 왜냐면 남한이 황해도를 침공하면 어쩔수없이 미국이 개입하게 되고 제2의 한국전쟁이 발생할수있는것을 염려하여 유엔사령부가 한국해군에게 "북방한계선"을 그은것이다. 따라서 휴전협정위반이지 "영해침범"이나 "침략"이 아니었던것이었는데, 그당시 지식인들조차 초난리를 떨었던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란 과연 더이상 성찰하고 공부하길 멈춘 사람들인가 하는 회의감 마저 들었다. 이예처럼, 730페이지의 나름 긴 <대화>를 통해서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미국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과 조화를 이해하게 되는 인식의 확장을 크게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품절된 책 외 그의 책을 몇권 충동질로 구입을 해버리게 되었고, 도서관에 있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21세기 아침의 사색>도 읽어보고 싶어지는것이다.


  그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는 많은이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이들이 행동을 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던 거 같다.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분에게 꼬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대화형식이기에 단순한 시간배열보다는 지루하지도 않고 재미가 있다. 내가 이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새대가리인 나로써 갑자기 생각이 나진 않지만, 어쨓든 리영희선생님과의 인연이 차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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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욕망공화국 - 어느 청년백수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서
신승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책제목을 보고 얼핏 어느정도 두께가 있을 책이라고 상상을 했는데, 받아보니 생각보다 부피도 작고 쪽수도 작았다. 포켓용크기정도다. 작가의 말대로 가볍게 읽을수있는 책이며, 지하철에서 오며가며 읽을수있는 책이다. 철학이 전공이라서 그런지, 인터넷바다를 항해하며 습득한 다양한 지식덕택인지, 아주 다양한 어휘들과 어려운 단어들이 춤을 추지만, 그렇다고 크게 개성있게 느껴지는 글은 아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언어들을 자신의 언어로 노래했더라면 개성있고 좀더 시원했을거같은데, 어휘들이 좀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좀 도발적일수도 있고, 많은 소수자의 시선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사람의 다른 책을 사서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 생각을 접게 만들었다. 인란인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김훈의 에세이에서 읽었던 비슷한 내용이 나온거같고, 어디선가 한번 읽어봤던 글들이 여기저기 보이는것같다. (물론 기분상 그렇게 느껴지는건지 진짜 어딘선가 읽은글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하고 자유롭고 거침없어서 반갑고 좋았다. 경험담의 자기고백이 자주 있어서 글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솔직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중적이지 않기때문이다. 우리안에는 수많은 욕망이 존재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을 욕망으로 분석해도 좋을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욕망이란 단어를 부정적인 느낌으로만 주로 사용하는것같다. 비오빠를 좋아해서 콘서트장에서 날밤새워기다리는 고교생의 욕망도,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고싶지만 하지못해 자위를 하거나 야동을 몰래 보는 욕망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빠들의 욕망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위해서 노력하는 욕망도, 소통하고싶은 마음에 싸이의 일촌에 목숨을 거는 네티즌도 모두 다른 형태의 비슷한 욕망인것이다. 그 욕망의 우위를 감히 논할수있을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일까?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울만한 책인거같다. 부담없이 가볍게 조금은 진지하게 읽을만한 책인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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