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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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0페이지의 상당히 두꺼운 책, 그러나 아홉번의 연행, 다섯번의 기소 또는 기소유예, 세번의 징역과 상당량의 집필때문인지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더이상 집필을 할수가 없다. 그래서, 임헌형씨와 대담형식으로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해서 그런지 생각외로 한번잡으면 상당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반쯤 읽었을때 잠깐 쉬고 다른 얇은 책들을 접했는데, 두꺼운 책이라 그런지 쉽게 손이 가지 않다가 다시 잡으니 또 금방 읽힌다. 그만큼 리영희선생님의 삶과 그의 글들이 주는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적인 시선으로써의 한국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상당히 많은 글을 썼는데, 많은 책들이 품절 되어서 최근의 것만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볼수 있다. 예전에 나왔던 책들이 다시 재출간 되길 바래본다. 특히 요즘처럼 공안정국으로 흐를때일수록 제대로 된 논리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때문이다. 가능하면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 나의 부족한 논리를 단단하게 채우고 싶다. 한국분단에 큰 일조를 하신 미국의 행태가 베트남전쟁의 행태와 거의 비슷한것같아서, <베트남전쟁>이 다시 재출간 되어서 읽을수있으면 좋겠고(대신에 황석영님의 <무기의 그늘 상하>를 구매했다.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다룬 소설이다.), <중국백서>와 <8억인과의 대화>는 중국에 대한 무지한 나의 편견을 깨트리고 싶어서 재출간 되길 바란다. <반세기의 신화>와 <스핑크스의 코>는 반공 우익정권이 숨기고 싶어하는 북한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쟁때문에 월남한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위해서 서울에 내려와 있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집에서 일하던 머슴이 혁명가로 변하여 그의 총에 돌아가셨지만, 그로인한 반공적인 시선은 없이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평양의 대동강에 미국함대 제너럴 셔먼호가 나타나서 백성을 괴롭힘)으로 인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해방이후 월남하면서 이북출신 기독교신자중에 광적 반공주의와 극우집단이 많았으므로 그들의 민족적 양심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데, 미국숭배하는 극우 반공 기독교집단에 대한 비판을 책 중간중간에서 자주 언급한다. 그는 무신론자이지만, 예수의 제자 부처의 제자가 되고싶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모습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으로써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것이다. 그는 유일신만의 배타적인 기독교를 비판한다. 어떻게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북한에 있는 집단을 단순하게 악으로 매도할수있단 말인가. 책 전체적으로 기독교 국가인 미국자본주의가 하는짓을 세계적인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하는데, 자본주의라는것의 부족한 점을 사회주의가 메꾸어주지 않으면 자본주의 병페도 심각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우익적 지식인 대부분이 친일을 했고, 죄익인사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주춧돌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행방후 세대는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해방후 친일세력이 전혀 제거 되지 않고 미국군정의 편의를 위해서 그 인원이 그대로 사회의 권력층을 장악하고 있으니 지금의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해방은 되었지만, 혼란의 극치와 폭력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인간의 행동과 생존양식에 부정적인 모든 측면이 노출된 것이 해방후 남한 사회라고 이야기 한다. 1945년 12월 미영소의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국은 조선이 자치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30년동안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탈린과 장개석 덕에 신탁통치는 5년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38도선을 그어 조선을 분단하자고 한것도 미국이었다. 소련이 일본 패망직전에 북조선에서 진격해오니까 오끼나와에서 미쳐 남조선으로 진격할 여력이 없었던 미국은 스탈린에게 38도선에 의한 분할 통치를 제안했던 것이고 스탈인이 그에 동의 했던 것이다.

 

  그는 통역관으로서 군대생활을 7년이나 하는데, 대한민국의 군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천황군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군대로 사디즘의 집단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중위가 소위를 패면, 소위는 상사를 패고, 상사는 하사관을 패는 폭력집단이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돈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최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전쟁을 몸소체험하며 군대의 폭력과 부정부패의 천국임을 처절히 확인했다. 그의 그런 체험은 전쟁은 무슨 이유나 명분으로도 정당화 되고 합리화 될수 없다고 생각을 확고하게 했다. 전쟁은 악이다라는것이 리영희의 신념이었다. 그또한 나름 지식인으로써 오만함도 있었는데, 전쟁속에서 몇번의 경험을 통해 겸손이라는것을 배우게 된다.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평범한 여인과 스님이 자신보다 더 당당하고 커보였던 경험이 그를 깨닫게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한계도 알았고, 노동자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가 할수있는 머리로써의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진실을 많은이에게 알리기위해서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글을 썼다. 나는 리영희선생님의 그런점이 마음에 든다. 자신이 잘못된것을 알았을때 그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겸손할줄 안다는 것 말이다. 그는 제대후에 공개채용시험을 통해 합동통신사에 합격을 하는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노신(루쉰)의 민족개조론을 비교 하기도 했다. 이광수는 자기민족을 파는 행위였다면 노신(리영희님은 루쉰을 노신으로 부른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다.)은 중국 민족 내부의 결점을 직시하기 위해 비판을 한것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을 한점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그에 걸맞추어 명박과 한나라당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도 같이 비판하는것이 더 긍정적인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그대로 유지하고 기용했는데, 그에 대한 국민대중의 원성과 반대와 이승만정권에 대한 비판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반일정책을 취했다. 자기모순적이며 이율배반적 행동이었다. 이승만의 권력은 1. 미국의 후원  2. 이승만 스스로의 독재권력욕 3. 친일 반역자 집단기용 4. 남한의 반공기독교 5. 미국이 이승만을 위대한 애국자인양 세계에 선전해서 권력을 차지하게 된것이다. 미국은 이와같은 짓을 이란의 팔라비왕과 대만의 장개석,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마로코스에게 되풀이 했다.미국은 공산권을 경계하기 위해 부정부패한 반공우익정권을 지지한것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은 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수 있지만, 그 개인들이 무리를 이루게 되면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가 된다고 한다. 나도 동감한다. 인간집단을 실패를 거듭하는 괴로움속에서 다음에 올 실패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감소하는 정도의 지혜를 획득하는게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는데 역사의 흐름을 보면 충분히 동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 발전은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할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권력층들이 저희들 마음데로 국민을 우롱하지 않고 두려워하게 되는것이다.

 

  쿠테타 정권을 세운 박정희가 케네디 대통령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케네디는 군부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한일정상화를 요구하고 베트남사태에 대한 남한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것이 냉엄한 국가관계의 본질이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조속한 선거실시, 민정이양, 군대복귀 세가지 대국민 공약을 선언해 놓고 몇일안가서 그 공약을 뒤집었다. 박정희는 해방후 남로당 비밀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수많은 동지들을 미군정에 팔아넘겼다. 박정희는 기회주의자이자 변절자였다. 케네디가 선택한 [로스토 독재개발이론](집행주체는 군대)를 활용하며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반공주의 군부독재개발을 했다. 미국의 대남한 경제 지원을 일본에게 대행시켰기 때문에 박정희는 목숨걸고 한일회담을 강행한것이 그이유이다. 미국이 부패한 군부 반공우익집단을 지원한 수많은 나라의 사례가 있는데, 그걸 보아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으로 유지되고, 미국 자본주의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고 볼수있다. 

 

  60년대 신문사의 압박때문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1년여동안 노동을 하기위해 돌아다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경혐을 통해 머리에 먹물든 인텔리라는 개인이 그 편안한 직업과 사회문화적 권위를 팽개치고 사회의 천시를 받는 육체노동자가 되려는 생각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뼈져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이점이 참 마음에 든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그는 평생 언론인으로써 지식인로써 많은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고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실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 전달하여 각성시켰다. 그가 그렇게 많이 연행되고 징역을 치룬것은 그의 글로 통해 많은 이들이 생각의 틀을 깨트리고 미국의 행태가 무엇인지 반공우익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행동하고 투쟁했기에 그의 이름이 연루되지 않는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발로 뛰는 기자는 아니었다. 다만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보니 세계정세에서 들려오는 모든 자료들을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따져서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는 분석형 기자였다. 세상에는 지식인으로써 양심의 소리를 하고 거시적인 관점의 세계를 볼수있는 진실을 알리는 리영희 선생님같은 분도 있고,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행동하는 실천가들도 있다. 나는 어느것이 더 우위에 있따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리영희 선생님같은 지식인들이 행동가들의 지식체계형성에 지대한 공을 주지만, 나는 행동하는 자의 가치를 더 높이 사는 편이다. 리영희선생님도 자신이 정치쪽에는 영소질이 없음을 알고 정치와는 멀리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진실을 알리기에 평생을 힘쓰셨다. 리영희 선생님의 글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또 안재성같은 노동문학가는 노동자 투쟁자들의 실제 역사를 제대로 살려내고 많은이들에게 알리려고 힘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은 다양하게 접하고 읽어야 하며 그속에서 자신의 시선을 가질수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보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기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더 잘알고 싶고, 그래서 세계적 역사안에서 그들이 한 짓들을 알고싶어서 기회될때 촘스키의 책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도 월등이 떨어지는 북베트남이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을 이겨서 통일을 시킨 호지민의 삶과 지도력에도 관심이 생기고, 베트남의 전쟁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자세히 알기 위해 우리남한 사람이 베트남인민에게 행한짓을 알고 반성하기위해 많이 알고 싶다. 그리고, 8억인구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고, 50년동안 우려먹은 반공이데올로기의 허상도 알고싶다. <반세기화의 신화>와 <스핑크스의 코>를 통해 극우반공 집단의 허를 뚤어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주어진 책들의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이 내것도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상황을 맞을때 그 본질을 깨달을 수없다. 그래서, 모든 책은 자신의 시선으로 비판하면서 그들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9년 6월에 있던 서해교전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는데, 남한측의 호들갑의 허상을 제대로 전달해주면서 지식인들조차 이런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북방한계선"이라는 용어자체가 모순이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려면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가 옳지 않는가. 유엔사령부가 한국해군이 다시 황해도를 침공할 수 없게 하나의 선을 그은것이 "북방한계선"이다. 북한을 대상으로 한것이 아니라 한국정부에 실시한것이다. 왜냐면 남한이 황해도를 침공하면 어쩔수없이 미국이 개입하게 되고 제2의 한국전쟁이 발생할수있는것을 염려하여 유엔사령부가 한국해군에게 "북방한계선"을 그은것이다. 따라서 휴전협정위반이지 "영해침범"이나 "침략"이 아니었던것이었는데, 그당시 지식인들조차 초난리를 떨었던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란 과연 더이상 성찰하고 공부하길 멈춘 사람들인가 하는 회의감 마저 들었다. 이예처럼, 730페이지의 나름 긴 <대화>를 통해서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미국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과 조화를 이해하게 되는 인식의 확장을 크게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품절된 책 외 그의 책을 몇권 충동질로 구입을 해버리게 되었고, 도서관에 있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21세기 아침의 사색>도 읽어보고 싶어지는것이다.


  그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는 많은이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이들이 행동을 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던 거 같다.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분에게 꼬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대화형식이기에 단순한 시간배열보다는 지루하지도 않고 재미가 있다. 내가 이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새대가리인 나로써 갑자기 생각이 나진 않지만, 어쨓든 리영희선생님과의 인연이 차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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