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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 인권변호사 ㅣ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6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평점 :

전태일 평전중에 제일 괜찮은 책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라는 말을 여러 글에서 본적이 있다. 전태일을 혁명투사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이타적이고 인간적인 전태일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권 변호사 조영래>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집었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으로 서울생활을 하게 되고, 중학교때부터 집근처 대원암에 자주 놀러다니면서 불경과 한문을 일찍 접하고 배우게 된다. 조영래 가족은 끊없는 가난속에 자녀 모두가 자신이 학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모두 공부를 잘했고 씩씩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부당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것은 따지는 고집쟁이 였던것이 후에 그의 삶을 잘 설명해주는것같다. 그는 크고 높은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자시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겸손하며 작고 아름다운것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생활중 전태일평전을 집필하지만,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다가 죽고 나서야 전태일평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가난속에서도 약자를 보면 자신의 것의 나눌줄 아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서울대전체 수석으로 법대에 들어가게 된다. 고등학교때는 공부벌레들만 모인 경기고등학교 학생들을 한일회담밤대시위(1964.3)에 참여케 할만큼 조직력과 말솜씨가 탁월했다. 대학교를 들어가서는 사카린 밀수사건(1966)규탄 집회에도 참여하고, 6.8부정선거 규탄, 삼선개헌반대 시위 집회에 참여하였다. 대학을 졸업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전태일이 분신(1970.11.13)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71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나, 엉뚱하게도 서울대생 내란 예비 음모(1971.11.12)에 연루되어(박정희가 부정선거의혹을 받자 그것을 무마하고자)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게 되고, 나온지 얼마 안되어 민청학련사건(1974)으로 또 도피생활을 6년 동안 하게된다.
그 기간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나며 필요한 얘기를 적으면서 여기저기 숨어다니며 <전태일 평전>을 완성하게 된다. 도피생활중 아들 일평과 함께 못한것이 너무 미안하여 1980결혼뒤에는 일평과 무현의 눈높이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는 아이를 만나면 아이의 눈높이로 대화하고 어른을 만나면 어른의 눈높이로 대화를 하려는 사람이었다. 조영래는 크고 거창한 일보다 작고 하잘것 없는 일에 더 애정이 많았고, 진정한 삶의 숨결은 오히려 소박한 것에서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후 "시민 공무 법률사무소"를 세워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첫사건은 "망원동수재사건(1984.91~4)"으로 17,000가구의 8만여명이 피해자가 되지만, 서울시는 자신들의 수문관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발뺌만 했다. 수재민들의 집단소송을 5년이 넘는 끈질긴 공방 끝에 서울시의 잘못을 받아내게 된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악습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자청해서 무료로 별론을 했다.
1985년 "여성조기정년제" 사건이 1심에서 패한것을 보고, 한국여성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2심에서 무료로 변론을 해서 여성단체와 협력하여 승리를 거둔다. "대미어패럴사건"(노동문제)도 변론하고, "권인숙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7.2)"도 변론을 했다. 그는 환경문제가 곧 인권문제라고 인식하고 환경문제에도 발벋고 나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5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지만, 양김의 분열과 5.16의 핵심인물이었던 김종필까지 가세하여 어처구니없이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조영래도 신문을 통해 두 김씨가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그결과가 그에겐 너무 충격적이었을까....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너무 혹사해서 그럴까? 그 혼란의 휴식기간중 폐암3기를 선고 받는다. 그의 나이 겨우 43세에 그는 세상을 떠난다.
겨우 43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크고 거창한일의 가치만 칭찬받고 인정받던 사회속에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써 작은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알고 행동하고 약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인권 변호사, 조영래. 그의 삶의 모습을 본받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겸손하며 작은것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고 아는 만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