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결심 -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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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결심(이화열 지음)

부제는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이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존엄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작가님은 <서재 이혼 시키기> <지지 않는 하루> 등을 쓴 에세이 작가이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시어머니 아를레트와 편안한 습관처럼 30년을 지냈고, 어느날 어머님은 조력사를 원하고 작가님이 그 옆을 지키면서 죽음과 늙음에 대해서 사유한 철학에세이 이다. 작가님은 시어머니와 평어로 대화하는데 존댓말을 쓰지 않고 평어로 표현한 부분이 그들 관계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안락사는 의사의 손을 빌려 죽음에 이르는 것이고, 조력사는 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스스로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다. 프랑스에는 안락사와 조력사 둘 다 혀용되지 않아서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하기로 신청한다. 조력사 비용은 만유로(협회 수수료, 행정비, 화장비 포함)이다. 한국돈으로 1유로가 1674원이니 1600만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너무 가난한 사람은 조력사나 안락사도 선택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벨기에의 안락사는 스위스에 비해 까다롭다고 한다. 전화로 마지막 결심을 확인하는 인터뷰장면이 등장한다 .스위스에서는 환자 내면의 고통도 죽음에 이르는 ‘충분한 이유’로 간주한다고 하는데, 충분한 이유는 어떤 기준일까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내면의 고통은 워낙 주관적일수 밖에 없는데, 어떤 근거로 그 고통의 크기를 확인하는 것일까하는 궁금함.

<서재 이혼 시키기>에 보면 작가님은 철학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죽음과 늙음에 대한 사유가 깊고 단단하다. 그리고 문장들도 담백하다. 그 담백한 문장을 내기까지 평소에 얼마나 그 주제에 대해 생각했을지 상상해본다.

아를레트는 낙상사고후 등이 점점 굽었고, 황반변성으로 시력이 흐려졌다. 내향적인 성격에 가족을 챙기는 일이 전부였고 유일한 취미가 독서였는데, 그 독서의 즐거움을 잃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서 오디오 북을 종일 틀어 놓으신다. 걷는게 버거워서 거의 집에만 있고, 눕고 일어나려면 도움없이는 불편해 종일 의자에만 앉아 있고, 듣는 건 희미하고, 보이는 건 어둠일때 혼자 있는 집에서 느끼는 그 적막감과 고립감은 어떨까. 그 밤은 얼마나 길까. 하루는 한 달 같고, 밤은 너무나도 길고, 새벽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어른들이 자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오래 살아온 집에서 머물길 원하는 이유는 뭘까. 그녀에게 집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삶은 아직 자신이 결정한다는 감각이 허락되는 공간이다. 식탁위에 무엇을 놓을지, 커튼을 열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 그 일상의 사소한 결정들이 ‘나는 아직 삶의 주인이다’라는 감각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작가님과 시어머니 아를레트는 목요일마다 샴페인을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 그녀가 가질수 있는 몇 안되는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아를레트의 딸 안느는 어린시절 아를레트가 아들 올비를 더 편애했다고 생각한다.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안느가 미워보이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안느의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은 든다. 조력사 직전, 아를레트는 손자들과 통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안느는 알았다고 해놓고 할머니를 찾는 자신의 자녀들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에게 손자들 전화를 바꿔준다. 마지막 가는순간에도 어머니 마음의 평온보다 자녀들을 달래는 일이 더 중요한 안느가 안타까웠다. 남편 올비의 무해하고 중립적인 태도가 결국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온 안느라는 존재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를 해왔다는 점에 동의한다.

나의 어머니도 외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미해결 과제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환청이 들리고 혼잣말을 해서 정신과 약을 복용하길 원했지만, 할머니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을 드시지 않았다. 그모습에 화가 난 엄마는 6개월정도 할머니집을 방문도 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매번 만나면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친척들에 대해 욕을 퍼붓는 모습이 엄마는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할머니가 엄마집에 가면 엄마는 자기 방안에 들어가서 앓아 눕는다. 여동생(엄마와 둘이 산다)은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때론 무섭고 공황이 올 것 같았다고 최근에 나에게 말해주었다. 동생이 어린시절 그 둘 사이에서 경험한 감정이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나는 그때 우울증으로 내방에만 누워 있었으니 동생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엄마의 미해결 문제를 왜 여동생이 중간에서 감당해야하는지 좀 속상해서 엄마에게 다시 상담을 받으며 외할머니(엄마에게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어린시절의 분노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하는게 아니냐며 지나가는 말로 던진 적이 있다. 할머니의 나이가 98세이니 곧 돌아가실텐데, 미해결과제를 풀지 못하고 떠나보낼지도 모르지만 그건 엄마의 몫이다.

돕는다는 건, 돕지 않는 법을 아는 일이기도 하고, 소통은 말이나 기술이 아니라 늙음을 이해하고 침묵을 듣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은 순간이지만 삶은 과정이고 슬픈 건 고독한 죽음이 아니라 어쩌면 외로운 삶일지 모른다. 작가님은 사람은 결국 살아온대로 죽는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 죽고, 단호한 사람은 단호하게 죽는다. 관계의 단절로 외로운 사람은 죽음조차 외로울수 밖에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속에 영화 <씨 인사이드> 이야기가 나온다. 2007년 영화다. 안락사라는 개념을 몰랐지만, 존엄한 삶은 무엇인지 죽음조차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존엄하게 마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사람들은 이유를 찾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원칙이 없기에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평소 죽음에 대해서, 늙음에 대해서 늙음으로 인한 삶의 주도권을 점점 잃어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공부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98세의 외할머니도 77세의 어머니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지지 않는 하루>에는 작가님의 암투병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죽음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잠식한다고 본다. 나의 죽음을 떠올렸을때, 나의 부모의 죽음을 떠 올렸을때 나는 어떻게 준비를하고 어떻게 떠나 보낼것인가(떠날 것인가). 어떤 감정들이 들까. 두려움, 공포, 슬픔, 분노 등등 그 감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감정들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오랜시간 충분히 한다면 우리는 어느날 죽음이 왔을때 생각보다는 덜 당황하고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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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 이민, 장애, 나이듦, 그리고 돌봄의 세계에서 내가 배운 것
루아나 지음 / 메멘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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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멜버른의 케어러(루아나 지음)

부제는 이민, 장애, 나이듦, 그리고 돌봄의 세계에서 내가 배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교사셨고 , 현재는 호주에서 살고 계시며 요양보호사와 장애인지원사 일을 하고 계신다. 신경 다양인 아들이 태어나면서 돌봄과 장애 분야에 관심이 생기셨다고 한다. 여기서 “신경다양인”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발달장애나 자페를 장애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사람이 2층 식당에 가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자신의 장애를 탓하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갈수 있도록 만들지 않은 가게와 그것에 대한 배려나 정책이 없는 한국사회의 문화를 문제시 삼으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깐 발달장애인이나 자폐인, ADHD가 있는 사람을 기존사회에 녹여 사회성을 키우도록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은 그들과 어떤식으로 소통할지 고민하고 그들의 사고로 대화하는 것도 공부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주가 한국과 이렇게 다르구나 충격을 받는다. 호주에서는 모든 사람이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도 대학을 간 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달랐다. 한국사회에서는 더욱더 돌봄노동이 중요해지는 사회(노령화 사회)가 되어가건만 여전히 그들의 급여는 낮고 소모품 취급받고 일하는 환경도 너무 열악하다. 작가님은 한국에서 교사일을 하시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건강을 잃어 다시는 노동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짧은 시간 근무하는 조건의 일도 많았고 비정규직도 정규직 못지 않게 월급을 받는 문화이기에 조금씩 요양보호사 일과 장애인 지원일을 하면서 시간을 점점 늘여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정규직도 마찬가지이지만)이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긴 시간 여행을 떠나더라도 미리 공지만 해주면 대체인력이 있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다시 원래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일과 장애인지원일을 하며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그건 제대로 된 급여가 책정되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책을 읽고 북토크를 들으면서 이나라는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을까 싶었다.

물론 호주가 판타지 같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호주는 느리고, 사람들이 불편함을 견디는 인내심이 크다고 했다. 한국의 다이나믹함이 맞는 사람은 호주가 심심할 수도 있을것 같다. 장애인들이 그들의 이동권 투쟁을 위해 아침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탄 것만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불편하다며 장애인 투쟁자들을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나라이다.

과연 선진국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느린 것을 수용하고 다른 것을 수용하고 불편함을 인내할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약자들이 행복할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어느 위치에서는 약자인 것을 우리들은 망각하고 있거나 자신은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쉬는 시간도 스펙이 되는 것들만 하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해질수 있을까. 행복은 무언가를 가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속에서 이미 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시선과 철학으로 얻을수 있는, 부단히 노력하는 어떤 태도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호주의 노동자를 대하는 문화나 약자나 소수자들을 다양성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부럽기만 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상상하게 해주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호주는 한국의 78배 넓이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장애지원이나 요양보호사 지원의 제원을 높은 소득세에서 채운다고 한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세금을 내는 문화는 한국에서는 없다. 그것조차 투쟁을 해서 어렵게 얻어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되고, 그 과정속에서 장애를 얻고 병을 얻는다. 나와 관련이 없는 영역이 아니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한 일을 미래에 내가 겪을일이라고 생각하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할 이유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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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 숨쉬기 맨손문고 1
김대성 지음 / 곳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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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 숨쉬기(김대성) - 맨손문고1

대성쌤에게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했다가 이제서야 책을 펼쳐 읽어봤다. “맨손“문고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나는 달리기라는 종목이 내게는 매력적인 종목은 아니다. 10km 정도는 완주하는게 힘들지 않을정도의 체력이고 싶어서 종종 뛰긴 하지만, 나는 달리기가 그렇게까지 재미가 있진 않다.

헬스장에서 꾸준하게 운동한지 4년차인데 근육만 크게 키우는게 목적은 아니고 몸무게를 더 가볍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체력을 기른다는 측면에서 항상 유산소 운동을 먼저 하고 나머지 근력운동을 한다. 항상 30분 이상 유산소를 하려고 한다.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걷는 시간을 많이 줄이고 뛰는 시간이 늘었다. 대성쌤은 한때 자가면역질환때문에 힘든시간이 있었다. 몸에 열을 내면 좋지 않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어서 땀이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규칙이다. 나는 유산소를 하는 목적이 땀을 왕창 내는 것이다. 땀을 많이 흘려야 유산소 운동을 잘한 것 같은 만족감이 든다. 처음에는 속도 7~8로 해서 천천히 뛴다. 그리곤 천천히 마음으로 10까지 세면서 8로 뛰고, 8.5로 뛰고, 9로 뛰고, 9.5, 10, 10.5 까지 올려 간다.(컨디션 좋을땐 11까지 올려본다) 호흡이 가빠진다. 호흡이 가빠지면 내 심장에도 근력이 생기는구나 싶어 만족해 한다. 좀 힘들다 싶으면 다시 8정도로 낮춰서 천천히 뛰고 7.5로 내리고 다시 7까지 내리면서 천천히 뛴다. 가쁜 숨이 돌아오면 다시 속도를 천천히 올리며 앞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두세번 하면 20분에서 25분이 흐른다. 좀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 속도를 5.6으로 낮춰 천천히 걸으며 헤드폰을 끼고 유튜브에서 크로스핏 운동영상을 본다. 요즘엔 홍범석님 크로스핏 영상을 자주 본다. 달릴때 헤드폰을 끼지 않는 이유는 영상에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달릴때는 달리는 나에게만 집중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달리는 나라는 멋짐에 탐닉하는 것이다. 4~5분정도 걷고 기운이 조금 나면 다시 헤드폰을 벗고 앞의 과정들을 반복한다. 항상 30분이상 유산소를 하자고 하지만, 대부분 40분정도 하게 된다. 컨디션이 좋으면 50분에서 60분정도를 할때도 있다. 겨울에는 땀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헬스장의 반팔 옷 위에 집에서 가져온 긴 팔 티를 입고 뛴다. 헬스장 의자에 앉아 3~4분 쉬며 기운을 회복한다. 탈의실에 가서 긴팔 옷과 헬스장 반팔티를 벗고 땀을 닦은 후 개인적으로 들고 다니는 나시티를 입는다. 운동하는 내 근육이 보여야 운동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든, 트레킹을 하든, 달리기를 하든 항상 찍찍이 무릎보호대(얇은 것)를 찬다. 무릎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오래 운동하고 싶은 마음에 무릎을 늘 신경 쓴다. 처음에는 하체 운동하는 일이 적었는데, 항상 무릎 보호대를 하고 유산소도 하고 트래킹도 하고 하체운동도 조금씩 하다보니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하체운동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서 만족스럽다. 내가 운동하는 목적은 오래 운동을 할수 있게 내 몸을 다루는 것이다. 내 엉덩이는 거의 절벽이었는데, 최근에는 약간의 엉덩이 근육이 생겨서 그것도 조금 신기하다.

헬스장에는 몸 좋은 사람이 좀 있다. 그들이 부러울때가 가끔있지만, 나에게 중요한건 근육질의 멋진 몸을 만드는게 아니라 오래 즐겁게 운동하는 것이라는 걸 내게 말한다. 헬스가 오래 할만한 운동이라는게 근육이 금방 만들어지는게 아니라는데 있다. 아주 천천히 내 몸에 근육이 만들어지는 걸 보는게 재미있다. 늘 하던 부위의 운동들이 있지만, 조금씩 잘 하지 않던 부위의 운동도 조금씩 해본다. 후면 삼각근이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영상에서 본 여러 방법이나 헬스장에서 다른 몸 좋은 아저씨가 하는 운동을 따라 해보다가 근육이 먹히는 느낌을 알았을때 기분이 좋다. 아 이런 자세와 각도로 운동을 하면 근육이 빵빵해지는 느낌이 드는구나 하는 깨달음. 유산소를 포함해서 1시간 반 이상 운동을 하는데 어쩔때는 2시간까지 갈때도 있다. 한시간 반이 기본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몸이 말을 하면 그때는 운동을 일찍 마무리 한다. 운동을 하기 싫은 것인지, 몸이 안좋은 느낌인지 잘 구분하는게 중요하다. 헬스운동이 늘 재미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재미있기만 한 것은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그 재미없을때 묵묵히 해야 얻는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냥 묵묵히 운동한다. 이럴땐 내 몸을 달래면서 적은 무게로 가볍게 운동을 한다. 그리고 계속 종목을 바꿔가는 것으로 지루함을 이겨내며 운동할때도 있다.

55페이지에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애쓰는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이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애쓰고 있는 것을 알아봐 주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때가 있다.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는데 이 일을 오래할 수 없는 없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바란다. 물론 많은 사람이 알아봐주는 것 까진 바라진 않는다.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자주 남기는 이유는 그 사람의 작업을 알아봐주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 알아봐주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그 작업자는 지치게 되고 자신이 하는 작업에 회의를 느낄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멋진 글을 쓴 사람이 또 다른 작업을 이어가길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리뷰를 쓰는 편이고 이 좋은 책을 다른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뷰를 남긴다. 나는 대성쌤이 누가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너무 숨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는데 애쓰는 일을 오래 할 수 없다. 아니 애쓰는 것도 누군가가 알아봐 주어야 오래할 수 있다. 대성쌤이 문학의 곳간을 121회나 열어온 것은 대단한 것이다. 애쓰는 일을 10년 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뒤늦게 나마 문학의 곳간이 내게 얼마나 멋지고 귀중한 것인지 알아서 다시 합류했다. 문학의 곳간을 오래 이어가길 나도 참여자로서 애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운한 마음은 조금씩 내비쳐야 한다. 그래야 뜬금없이 눌러든 서운한 마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다. 눌러든 마음이 터져 나와 상대 혹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어느 강도로 어떤 방식으로 어느 빈도로 내비칠지는 고민해봐야 하고 내 비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적절한 내비침 수위와 강도를 조절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서운한 마음을 내 비치는 것은 상대와 관계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기반이라는걸 알아주어야 한다.

달리기를 매개로 글쓰기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하고 <코로만 숨쉬기>라는 책도 낸걸 보면 달리기는 대성쌤에게 특별하다. 그래서 한번에 10km씩 뛰려고 하기보단 무릎이나 몸 컨디션에 맞춰 어느날은 30분 달리고 어느 날은 40분 달렸으면 싶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자주 뛰게 되고 무릎에도 덜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계속 하려면 내 생활의 세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주 내 생활의 우선수위를 체크하는 편인데 무게중심이 늘 변한다. 운동은 늘 우선순위 앞부분에 있다보니 다른 일보다는 운동을 우선적으로 해왔다. 대성쌤도 오래오래 달리기를 즐기며 사색하고 건강을 지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코로만 숨쉬기> 후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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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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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양주연 지음)

부제는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책만 읽고 다큐멘터리는 아직 보진 못했다.

어느 날 밤, 술먹은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고모가 자살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모처럼 되지 말아 라는 말을 한다. 감독님은 자신에게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족에게 고모는 뭔가 숨겨야 하는 존재였을까. 책은 고모의 흔적을 쫓아간다.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의 가부장 시대에 없는 존재로 언급되지 않았던 고모. 어떤 사연이었을지는 대략 추측은 되었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아빠의 말에서 아빠가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두려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아빠의 누나 ‘양지영’. 앨범속의 40여장의 사진. 고모 사진이 있는 사진첩을 챙기고 다시 그 사진첩을 펼치기 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8년에 아빠와 첫 인터뷰를 한다.

가부장시대에 할아버지는 철도청 공무원이었고 딸이라는 이유로 양지영을 엄격하게 대했다. 양지영은 친구 Y집에 자주 놀러갔는데, Y는 외동딸이라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자신의 집과 친구의 집에서 자신과 친구가 다루어지는 태도가 엄청 달랐던 걸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자기방에 들어가 책을 보고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953년생인 고모 이름은 ‘하숙’이었다. 최희준의 <하숙생>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렸다고 하니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를 설득해 ‘양지영’이 되었다. 아들과 딸이 마주하는 차별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름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양씨 가족의 무덤에는 감독님의 이름인 양주연은 있지만, 고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절 자신에겐 공부밖에 희망이 없다고 여겨 고모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모는 광주의 여학교중 가장 들어가기 어려웠다는 전남여자중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감독님과 고모는 35살 차이. 감독님은 십대 시절, 가족안에서 자신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늘 집을 떠나고 싶었고,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선택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감독님이 태어난 광주라는 작은 도시를 떠나는 방법은 공부를 잘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 뿐이었고 이점이 고모와 비슷한 점이다. 고모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갈수도 있었고 서울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큰딸은 집에 남아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하고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감독님은 광주를 떠날수 있었지만 고모는 그럴 수 없었다.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받은 12색 크레파스. 그런데 남동생은 왜 24색 크레파스를 받았을까.

1972년 고모는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고 여자 동기가 다섯명뿐이었고 졸업한 여성동기는 두명이었다. 감독님도 두번째 대학으로 예술학교를 선택해 성비가 여성이 더 많았지만, 학과나 학생임원으로 나서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놓고 약점이라고 일컫는 고모가 살았던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대학을 다니며 고모는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다. 고모는 1학년때 복학생과 공개연애를 했는데, 대학시절 친구는 ‘특이 사항’ 이라며 고모의 공개연애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 당시 흔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말이다.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이 고모와 닮았다. 고모는 대학교 3학년 혹은 4학년에 남자친구 집에서 사망을 했다. 고모 친구의 말로는 고모의 남자친구는 성격이 강했고, 고모와 나이 차이도 열살 가까이 나서 동년배의 느낌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모를 자주 의심하고 자의적으로 행동을 분석해 시비를 걸었다. 고모의 연애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고모가 남자친구랑 여러번 헤어지려 했지만 남자가 붙잡았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홍승은 작가의 글 <‘화목함’ 연기한 가족들이 열지 않았던 ‘이모의 방’> 을 감독님이 우연히 읽었다는 말이 나와서 나도 오마이뉴스에 기고된 그 글을 찾아 읽었다. 혜자이모는 사랑한 남성이 있었는데 임신을 하자 부모에게 결혼을 서둘러 달라 말했지만, 오빠들이 결혼하기전에는 먼저 시집가서는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80년대 여성에게 혼전임신은 어떤 의미였을까? 임신중절이나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홍승은씨의 엄마는 이혼을 했고 그 이후 알콜중독이 심해지셨다. 홍승은 씨의 엄마는 착한 딸이 아니라 집안의 수치가 되었고 가족들과 멀어졌다.

1932년에 태어난 할머니 정삼례는 첫째로 딸인 고모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들인 아빠를 낳을 때까지 죄인처럼 숨죽여 지냈다.
1959년 태어난 엄마 최혜선은 공부를 잘해 수학 선생님이 되었고 엄마와 아빠는 부부교사였지만, 퇴근 후에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1975년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은 남자 친구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가족안에서 지워져야했다.
1988년생인 감독님은 결혼을 할 때, 아이를 가질까 고민할때 행복만큼이나 잃게 될 것들을 떠올렸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자신의 이름을 뺏어가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었다.

각기다른 네 사람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 왜 아직도 안전이별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이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화목한 가정은 나는 해체되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누구는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할까. 가족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다. 없던 존재였던 고모 양지영님을 그려보고 이름을 입으로 불러보았다. 감독님의 추적으로 하나하나 살을 더해 입체적인 존재 양지영으로 살아날수 있었다. 감독님은 당장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아빠에게 가족 묘비에 고모의 이름을 넣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p199 -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뮤리엘 루카이저(시인),<케테 콜비츠(판화가이자 조각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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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 Dear my body, Dear myself
이유진 지음 / 마고서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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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이유진)


유진 씨가 오랜시간 힘내어 쓴 글을 읽었다. 나는 몸이 크게 아픈 경험은 없지만, 우울증을 오래동안 겪어(앓아) 왔다. 아토피라는게 막연히 힘든 병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토록 사람을 괴롭게 하고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병인줄 몰랐다. 저자는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솔직하게 적었다. 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함께 공감하고 읽을수 있게 글을 써주신 것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아토피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나는 왜 남들과 다른지, 왜 나여야 하는지 원망스러웠다고 하셨는데, 나는 우울증(무기력) 때문에 오랜시간 괴로워하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며 이렇게 고통스러워 할까.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나의 우울증의 경력(?)은 30년이다. 30년동안 많이도 괴로웠고, 무얼 할 의지가 꺽이고 지쳐서 죽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 내 옆에는 짝지가 있었다.

무기력으로 낭비한 시간이 많았다. 무기력으로 흘려 보낸시간이 많았다. 저자가 아토피 때문에 휴식의시간을 강제로 보내고 나서 몸이 괜찮아졌을때는 그 잃어버린 시간만큼 보상하기 위해 자신을 치열하게 다그쳤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무기력으로 낭비한 시간을 상쇄하기 위해 무기력에서 벗어나면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썼다. 그 애씀을 보고서 사람들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곤 했다. 나는 언제 다시 무기력해질지 두려웠다. 그래서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늘 긴장하며 지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무기력으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면 정말 살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무기력과 애씀의 반복. 그 반복이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고 지치게 했다. 

나의 우울증 경험을 감히 저자의 아토피 경험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때 내게 마음을 써 주시는 글들을 댓글로 달아주셨던 것 같다. 

책에는 저자의 상담경험도 나오는데, 나의 상담 경험도 떠올랐다. 저자는 메일을 통해 상담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곤 했는데, 나는 예전에 그 생각을 못한게 아쉽다. 아마 저자보다 글쓰기에 대해서 흥미가 적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게도 너무 고마운 상담선생님이 생각나서 선생님에게 긴글을 문자로 보냈다. 

나의 제일 첫번째 목표는 우울증과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다. 죽으려고 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짝지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의 예의이자 기본이기도 하다. 저자도 아토피와 상담 치료에 대해서 당분간 보류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토피가 난치병이기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 들인 결과다. 

저자는 아토피와 우울증때문에 오랜시간 힘들어 했지만, 나는 저자가 가진 힘을 믿는다. 나라면 그렇게 못살아 왔을 것 같은데, 저자는 나보다 훨씬 내면의 힘이 크다고 믿는다. 

읽기 시작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고맙고 고마운 책이다. 페미니즘 활동은 약자의 말하기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며 언제든 한 명이라도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고 했다.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는 몸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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