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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양양(양주연 지음)
부제는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책만 읽고 다큐멘터리는 아직 보진 못했다.
어느 날 밤, 술먹은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고모가 자살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모처럼 되지 말아 라는 말을 한다. 감독님은 자신에게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족에게 고모는 뭔가 숨겨야 하는 존재였을까. 책은 고모의 흔적을 쫓아간다.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의 가부장 시대에 없는 존재로 언급되지 않았던 고모. 어떤 사연이었을지는 대략 추측은 되었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아빠의 말에서 아빠가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두려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아빠의 누나 ‘양지영’. 앨범속의 40여장의 사진. 고모 사진이 있는 사진첩을 챙기고 다시 그 사진첩을 펼치기 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8년에 아빠와 첫 인터뷰를 한다.
가부장시대에 할아버지는 철도청 공무원이었고 딸이라는 이유로 양지영을 엄격하게 대했다. 양지영은 친구 Y집에 자주 놀러갔는데, Y는 외동딸이라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자신의 집과 친구의 집에서 자신과 친구가 다루어지는 태도가 엄청 달랐던 걸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자기방에 들어가 책을 보고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953년생인 고모 이름은 ‘하숙’이었다. 최희준의 <하숙생>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렸다고 하니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를 설득해 ‘양지영’이 되었다. 아들과 딸이 마주하는 차별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름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양씨 가족의 무덤에는 감독님의 이름인 양주연은 있지만, 고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절 자신에겐 공부밖에 희망이 없다고 여겨 고모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모는 광주의 여학교중 가장 들어가기 어려웠다는 전남여자중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감독님과 고모는 35살 차이. 감독님은 십대 시절, 가족안에서 자신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늘 집을 떠나고 싶었고,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선택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감독님이 태어난 광주라는 작은 도시를 떠나는 방법은 공부를 잘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 뿐이었고 이점이 고모와 비슷한 점이다. 고모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갈수도 있었고 서울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큰딸은 집에 남아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하고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감독님은 광주를 떠날수 있었지만 고모는 그럴 수 없었다.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받은 12색 크레파스. 그런데 남동생은 왜 24색 크레파스를 받았을까.
1972년 고모는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고 여자 동기가 다섯명뿐이었고 졸업한 여성동기는 두명이었다. 감독님도 두번째 대학으로 예술학교를 선택해 성비가 여성이 더 많았지만, 학과나 학생임원으로 나서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놓고 약점이라고 일컫는 고모가 살았던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대학을 다니며 고모는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다. 고모는 1학년때 복학생과 공개연애를 했는데, 대학시절 친구는 ‘특이 사항’ 이라며 고모의 공개연애를 이야기 해주었다. 그 당시 흔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말이다.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이 고모와 닮았다. 고모는 대학교 3학년 혹은 4학년에 남자친구 집에서 사망을 했다. 고모 친구의 말로는 고모의 남자친구는 성격이 강했고, 고모와 나이 차이도 열살 가까이 나서 동년배의 느낌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모를 자주 의심하고 자의적으로 행동을 분석해 시비를 걸었다. 고모의 연애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고모가 남자친구랑 여러번 헤어지려 했지만 남자가 붙잡았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홍승은 작가의 글 <‘화목함’ 연기한 가족들이 열지 않았던 ‘이모의 방’> 을 감독님이 우연히 읽었다는 말이 나와서 나도 오마이뉴스에 기고된 그 글을 찾아 읽었다. 혜자이모는 사랑한 남성이 있었는데 임신을 하자 부모에게 결혼을 서둘러 달라 말했지만, 오빠들이 결혼하기전에는 먼저 시집가서는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80년대 여성에게 혼전임신은 어떤 의미였을까? 임신중절이나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홍승은씨의 엄마는 이혼을 했고 그 이후 알콜중독이 심해지셨다. 홍승은 씨의 엄마는 착한 딸이 아니라 집안의 수치가 되었고 가족들과 멀어졌다.
1932년에 태어난 할머니 정삼례는 첫째로 딸인 고모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들인 아빠를 낳을 때까지 죄인처럼 숨죽여 지냈다.
1959년 태어난 엄마 최혜선은 공부를 잘해 수학 선생님이 되었고 엄마와 아빠는 부부교사였지만, 퇴근 후에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1975년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은 남자 친구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가족안에서 지워져야했다.
1988년생인 감독님은 결혼을 할 때, 아이를 가질까 고민할때 행복만큼이나 잃게 될 것들을 떠올렸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자신의 이름을 뺏어가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었다.
각기다른 네 사람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 왜 아직도 안전이별이라는 말을 하는 세상이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화목한 가정은 나는 해체되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누구는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할까. 가족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다. 없던 존재였던 고모 양지영님을 그려보고 이름을 입으로 불러보았다. 감독님의 추적으로 하나하나 살을 더해 입체적인 존재 양지영으로 살아날수 있었다. 감독님은 당장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아빠에게 가족 묘비에 고모의 이름을 넣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p199 -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뮤리엘 루카이저(시인),<케테 콜비츠(판화가이자 조각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