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부산 센텀시티 롯데에서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독자와의 만남이 있다고 해서 무심결에 선택한 책이 <개밥바라기별>이다. 60이 넘은 작가와 내가 통할만한 연결고리 있을까 싶어서 별 기대없이 읽었다. 그런데, 시대는 달라도 젊음이 갖는 특성은 비슷하기때문일까?  마지막 작가의 말중에 "너의 모든것을 긍정하라"라는 대목에선 눈물마저 흘러내린다. 여전히 고전에 대해서 지루함이라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긴하지만, 고전이 고전일수밖에 없는건 인간의 속성혹은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현재의 표현과 방식이 다르기에 젊은이들이 읽을때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삶을 많이 산 사람일수록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이 고민한 사람일수록 고전에 대한 이해력의 깊이가 커진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아직은 고전을 거의 읽지 않는편이고 그다지 읽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언젠가 고전이 나를 부를때 그때 만나련다.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장씨"와의 만남은 자신이 책으로 접하는 지식과 현실의 괴리를 풀수있는 해답으로 주인공 준에게 다가온다. 전국의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행자생활등의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기에 나는 오히려 그 경험이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누구는 작가의 개인경험담을 끊임없이 재탕 삼탕하는것을 보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문학적 감수성 보다는 체험의 직접성을 더 좋아하는지라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체험의 소설화는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만들지 않고 우리곁의 이야기로 머물게 한다. 나는 작가의 사소설을 좋아한다. 어쩌면 소설이라는 문학자체가 대부분 작가의 사소설이 아닐까? 처음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전의 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그런데, 읽어가다보니, 자꾸 화자가 누구인지 헤깔렸었다. 오른쪽밑에 보니, 준, 인호, 영길, 미아, 선이, 상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 이름이 그 단락에서 화자가 되어서 이야길 한다는걸 알아차리고 금방 이야기를 따라잡을수 있었다. 화자가 자꾸 바뀌면서 이야기를 연결시켜가는 모습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배경으로한 영화-와 <라스트데이즈>-커트 코베인의 자살의 순간을 담은 영화-와 닮아 있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이야기하는 화자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기때문에 그러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감정속으로 직접적으로 들어갈수있어서 소설의 주인공은 "준"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소설속의 여러 젊은이들이 모두 주인공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준은 기존의 학교교육과 평균적인 삶의 진행방식에 회의를 느끼는데, 나는 왜 그 나이때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이 든다. 왜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학생을 잡아두는것에 대하여 반항한번 제대로 못했는지, 왜 학생들의 두발권과 옷을 자유롭게 입을 권리조차 선생님에게 의해 제재를 받아야 하는건지, 왜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자체가 오로지 대학을 가기위한 공부여야 되고, 점수로 인간의 등급이 결정되는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반항하지 않았을까....나이 서른즈음이 되어서야 사회인문학학 책들을 접하며 내가 12년넘게 대학까지 합하면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보같은 교육을 받아왔다는걸 깨닫는다. 바보같이 살도록 무의식적으로 세뇌를 당하며 살아온거같다. 사회에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나로 살게 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도록 교육을 받아왔던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스스로 나의 답을 하나하나씩 찾아 가는중이다. 아직도 나는 소설속 준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당시 주인공 "준"처럼 반항을 하거나 학교를 떠나서 사회를 경험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닌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아니 친구들과의 추억거리도 없는 암흑시대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준과 같은 그런 행복(?)한 추억혹은 방황의 기억은 없다. 다만, 준이 베트남에 가기전에 겪었던 많은 경험을 오히려 20대때 동안 오랜시간에 걸쳐서 방황으로 경험했다. 나도 배낭여행이랍시고 떠나보았지만(나는 결국 3일만에 돌아왔었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의 의미를 제대로 즐기는 스타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소설속에 나오는 말처럼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는 말에 동의를 표하고 싶다.

  준이 사랑(?)했던 미아와의 관계. 그당시 준은 오직 자신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어있었다. 미아는 여자가 대학을 가겠다해서 아빠에게 뺨을 맞은 것처럼 현실이 싫었고 가족이 싫어서 현실을 벋어 나고자 했다. 그래서, 준이를 만나면 현실의 이야기는 하지않고, 읽었던 책이야기나 영화이야기만 했다. 그러자, 준이는 화를 내며, "왜 니 이야기는 하지않고, 책속의 이야기만 하니? " "나는 이 현실이 싫단 말이야" 그 지점에서 둘간의 벽이 보였다. 준은 책속에서 읽는 진실이 자신이 체험한 것이 아니기에 자신이 발을 딛고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했다. 그래서, 그는 우연히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장씨"를 따라 전국을 유랑하며 힘든 노동을 잠깐(?)이나마 경험하게된다. 그는 몸으로 직접 겪는 삶을 체험하고 싶었던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고 하지만, 육체적 노동을 통한 삶은 참 힘들다는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장씨와의 자유로운 삶을 이별하고 자신만의 여행을 하다가 행자노릇도 잠시 하게된다.

  작가의 말은 소설과 달리 작가가 인문학서적을 많이 읽고 철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참 딱딱하였다.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라는 이말이 나에게 눈물을 떨구게 만들었다. 별볼일 없었던거 같고, 초라했던 나의 삶, 그 삶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방황했던것이다. 그러니, 그방황의 모든것을 긍정하라는 그말. 그말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모든 사람이 준이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는다. 현실과 자신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과정하나하나가 각자의 방황이며 각자의 삶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준에게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그림을 그리던 정수, 부잣집 도련님 상진, 돼지라고 불리던 인호,  장씨아찌에게 그림을 배우던 선이, 집을 벋어나 독립하고 공부를 하기위해 직장생활하며 밤에는 공부를 하던 미아의 각각의 삶을 모두 긍정하고 싶다. 누가 누구보다 더 멋진 방황을 하고, 더 멋진 성장을 하고 그런것은 없는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것뿐이다. 어떤이는 기존의 사회에 잘 적응하고 진입하는것이 가치있다고 여길것이고 어떤이는 준처럼 자신과 제대로 만나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삶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라는 주인공의 메세지가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래서, 이젠 나의 짧았던 3일의 배낭여행도 긍정하고 싶다. 지금 내가 서있는곳에서 발을 딛고 내가 할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황석영작가와 <개밥바라기별>로 처음 만났지만, 요근래 나왔던 <바리데기>보다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로 먼저 만났던 <오래된 정원 상,하>, <모랫말 아이들>, <객지>, <삼포가는길><무기의 그늘 상,하>-베트남전 이야기, <심청, 연꽃의 길>등이 더 읽고 싶어졌다. 준의 베트남의 경험이 <무기의 그늘>을 만드러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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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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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스스로도 무식한 접근이라면서 "봉고차 인신매매범"이 갑자기 줄어든것이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인신매매 시장에 뛰어듦으로써 공급이 늘었다고 하는 답변에 최소한 90점이상의 점수를 줄수있다는 망발적 발언을 보고 속으로 미친새끼라고 욕을 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논문도 쓰는 경제학자라는 양반이  여성주의시각에서 보면 거의 망발에 가까운 이야기를 최소한 90점이상의 점수를 주겠다는 당당함에 어이를 상실했다. 책의 시작이 첫섹스와 동거에 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세자빈이 되는 나이가 13세였음을 이야기하며 첫섹스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과연 자발적인 섹스냐는 말이지.. 신분상승의 유일한 길로써 궁에 들어가게 된것을 어떻게 자발적인 섹스개념과 연결을 시키냐는 말이다. 나는 공부를 했다는 사람일수록 이런 망발에 가까운 생각들을 뜬금없이 하는 분들을 보면 섬찟할때가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두부분이 걸려서 나의 분노를 짧은글로 무마시켜본다. 그래도 현시대의 우리네 모습을 경제학적으로 아주 잘 분석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도입부의 두 망발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권하고 싶다. 토론거리가 많은 책이고, 10대와 20대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수능 참고서보다 더 읽어야 될 책이다.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고민을 던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평균 임금(월급)은 약 119만원 이라고 한다. 여기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해서 숫자를 뽑아보니깐, 우연의 결과지만 대략 88만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건 세전(稅前) 임금이다. 아니, 12년에 걸쳐 거기다가 4년 또는 대학원까지 거쳐서 배운 사람이 버는 월급이 꼴랑 88만원이라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까? 물론 고임금정규직 직장에 진입할수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갈수록 그 범위는 좁아질것이다. 한학기 등록금이 이제 500만원에 가까워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서도 자녀 대학뒷바라지가 당연하다는 부모인식이나, 당연히 부모가 대학등록금지원을 해줘야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무능력한 20대 젊은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등학생의 반정도는 대학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대학들도 경쟁력을 가지려고 노력할것이고 부모들도 자신들을 위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수있을것이다. 공무원 양산사관학교인 대학교를 궂이 4000만원가까이 들여서 보낼필요가 있을까? 예전처럼 공부많이 하고 좋은 대학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수있던 시대는 물건너 갔음을 부모들이 정확하게 볼수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20세전후로 동거를 하고 독립을 하고 결혼을 고민하고 어떻게 돈을 벌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때, 우리네 젊은이들은 세상모르고 오로지 공부만하는 어린애로 남아있다.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학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행정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토의와 주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나와 경쟁력있게 활동하겠는가. 18살이나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두발에 대한 자유권조차 확보못한 시점이니 말해 무엇하랴. 도대체 언제까지 선생들은 학생들을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길것인가. 투표권도 만 18세로 낮춰져야한다. 왜 우리들은 학생들을 아이로만 보는가. 판단력의 부실? 그건 어른들 생각일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권리는 그들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한다. 자신스스로 피흘리며 쟁취하지 않고 공짜로 얻은 시민권이나 투표권에 대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때문이다. 서구의 민주주의를 쫓아가다보니 프랑스처럼 투표권을 얻기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 공짜로 얻었기때문에 사람들이 투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학생이, 거기다가 고졸여성이 얻을수있는 직업의 기회는 얼마나 넓을까?  그들이 선택할수있는 길은 대부분 비정규직뿐이다. 대학을 보내기에는 너무 많이 들고, 안보내자니 그들의 미래는 너무 어두워 보인다. 근데, 그건 10대와 20대들이 고민을 해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까지 걱정해서 그들이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를 대신짊어지는것은 아이를 여전히 어린애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짐의 무게는 상당하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 대학은 스스로 벌어서 가야하고,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면 가지 말고 다른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책은 사회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볼수있게 한다. 다른 나라들의 다양한 사례들과 비교를 하지만 시원한 답을 주는것은 아니다. 결국은 각자의 몫이다. 길을 아는것과 길을 걷는것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길을 잘 걷기 위해선 아는것이 필수적이다. 10대 20대들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나는 정부가 사교육시장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교육종사자들의 수와 그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찬성하지 않을것이다. 강제적이고 확고한 정책이 있지 않고서는 사교육시장은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가생식하며 번성할것이다. 사교육시장이 죽지 않으면 공교육은 살아나지 못한다. 모두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받고 공교육에 들어와서 뭘 배우겠는가.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기살 깍아먹기 사교육을 하는지 걱정스럽다. 안하기는 불안하고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 사교육종사자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때문에 갑작스레 사교육을 금지시킬수는없고 5년정도의 시간을 두고 그동안 그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할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5년뒤엔 엄격하게 금지 시켜야 한다. 물론 내생각이다. 20대들은 세대내 경쟁뿐만아니라, 세대간 경쟁또한 해야 한다. 정말 치열해진다. 그 좁은문에 들어가기위해 옆사람을 밝고 일어서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다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절실하다. 남들처럼 산다고 행복해지는것이 아니다.




  세계화라는것이 좋은것이 아니다. 세계 1등이 무엇이 중요할까. 사람답게 사는게 중요하다. 적게 벌더라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경제 정책들을 보면 참 살벌하다. 큰공룡만 살아남게 만드니깐. 근데, 획일적인 집단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주 작은 변동사항에 의해 무너져버린다. 다양성만이 살길이다. 영화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어마어마한 외계인은 지구의 아주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되어버는 이치와 같다. 우리사회는 너무 획일화된 창의적이지 않은 1등만 추구한다. 다양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소수자도 살만한 세상이 내가 살기좋은 세상이다. 진지하게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아는것은 고통스럽지만, 나자신을 제대로 아는것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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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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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장편동화를 읽으면서 동화는 꼭 해피엔딩이여 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피엔딩이 아닌 동화를 만나서 나는 참 반가웠다. 박기범님의 동화집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아버지가 등장하는 <손가락 무덤>, 정리해고를 다룬 <아빠와 큰아빠>, 오세영의 그림일기를 인용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다룬 <독후감 숙제>, 자기 동네의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부자 동네 학교에다니면서 겪는 주인공의 쫄아드는 마음을 그린 <전학>, 보통아이로 봐주지 않고 문제아로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아로써 살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문제아>, 촌지문제와 싱글맘의 이야기를 다룬 <김미선 선생님>, 아파트개발을 위해 쫓겨나는 철거민을 그린 <끝방 아저씨>, 죽어가는 촉산농가의 문제를 다룬 <송아지의 꿈>,1988년 6월 분신자살한  민중 해방 박래전 열사(실제 인물)를 그린 <거울꽃 삼촌>,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어진이>까지...  이 동화집은 어른 소설집으로 담기 힘든 많은 아픈 이야기들을 담는다. 결말이 꼭 해피엔딩이 아닌것도 많다. 

 
  나는 아이들도 이런 세상을 조금씩 맛보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것만 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아픔에 대해서 어떻게 알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동화집을 읽으면 궁금할게 많을거같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데, 대답하는 어른의 가치관이 참 중요할거 같다. 사람의 힘으로도 되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타인에 대한 이해의 동기로 잘 활용해서 설명할 어른이 많이 있을까? 과거에는 모두 가난했다. 그래서, 먹고 살기 너무 힘들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란것을 잘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지금은 중산층의 자녀로 이쁨받으며 자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너무나 크다. 세상의 부조리함속에서 어른으로써도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때가 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의 반응들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드는 동화집이고, 나와 다른 타인의 아픔과 환경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기에 좋은 동화집인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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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탈장르의 네트워크들 - 탈근대의 서사와 담론 청동거울 문화점검 43
박진 지음 / 청동거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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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북소녀님께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하신 책, 나는 일단 내가 모르는 책을 접하면 읽은이의 후한평에도 불구하고 일단 나스스로 그책이 나랑 맞는지 확인을 해본다. 그건 간단하다. 인터넷서점에 검색해서 도서정보 보고, 서평 한두개 대충 훑어보면 이게 나랑 맞을 책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 악평이라 하더라도 나랑 맞는 코드의 책도 있다. YES24에는 후기가 없고, 알라딘에는 뒤북소녀님의 후기만 달랑 있었다. 도서관에 있으면 빌려놓고 재미없으면 반납하면 되지만, 구입을 해야 하는경우는 좀 신중해진다. 제목부터 풍겨오는 냄새가 먹물냄새가 서울인터넷도서보관창고에서부터 솔솔 풍겨오지 않는가. 그런데, 뒷북소녀님이 두번 세번 쉬운 책이다라고 강조하신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장르문화 자체를 좋아하고 특히 짬뽕장르에 대한 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다. 헉!!!! 대학논문에서나 보는 딱딱한 인문학적 글들의 남발!!! 하지만, 그 충격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금방 재미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개념자체에 대한 설명을 할때는 추상적인 언어들로 도배를 하지만, 실예로 드는 것들은 내가 익숙하게 접하는 영화와 애니와 소설들이다보니, 표현하는 언어는 일상어가 아니지만 그안에서 박진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면으로도 해석할수가 있구나 하면서 나의 생각의 폭을 확장시키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소설이나 보고싶은 영화가 많이 생길수도 있다. 나또한 책속에 예로 든 책들의 제목을 나의 목록에 추가를 시켜놓기도 했다. 책뒤편에 보면 활용한 논문이나 서적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그걸 접하면서 이 글쓴이는 자신의 언어로 소화를 해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주고 단순히 하위장르로 폄하되는 짬뽕장르의 심오함과 다양한 해석의 길을 열어주는 재미있는 책이라는걸 알겠는데, 표현을 그렇게 딱딱하게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쉬운 표현으로 쓸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문헌의 책들로 공부할겸 나의 책 목록에 추가를 시켰는데, 그 다양한 문헌들을 읽었다면 거기서 사용한 표현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썼겠다는 나만의 신빙성(?)가지 않는 추측마저 들었다.
 

  뒷북소녀님의 말처럼, 책은 읽기가 쉽고 재밌다. 특히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중에서 좀더 다양하게 즐기는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더 재미가 있을거 같다. 그리고 인용의 예들이 대중문화들이라 알아듣기가 쉽다는거다. 


  나는 대체 역사물의 메타적 자의식이라는 소제목의 "메타적 자의식"이라는 뜻은 모르겠다. 물론 그안의 내용은 알아듣기 쉬워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스팀펑크(증기기관이 나오는 과거의 과학문명사를 다룸), 슬립스트림(SF보다는 문학적인 비중을 더 준 작품-예, 박민규, 서준환, 조하형 등등), 리보 펑크(사이버 펑크+생명공학)등의 용어를 꼭 알고 그구분을 할줄 알며 대중문화를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해석방법을 이해한다면 대중문화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다양하게 즐길즐 아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는것이다.


  세개의 장으로 나뉜다. 1.팩션물과 역사 서사물 2. SF서사물  3. 공포 서사물


  요즘 팩션소설이 유행이다. 그현상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나름의 고증과 논리를 가지고 소설을 시작한다면 우리에게 또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역사 학자가 아닌이상, 우리는 그 많은 역사를 알고 책을 접하진 않는다. 내가 읽은 책안에서 작가가 주는 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내에서 역사의 진실을 정의내리는것. 이것이 팩션 혹은 역사 서사물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객관적일수없다. 역사 기록자의 주관이 배여있고, 권력자들의 역사를 다루고 그들의 악행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역사는 정사와 야사를 고루 접하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존의 권력자들에게 속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야비한 짓과 패자들의 역사를 숨긴 역사를 우리는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구일수도 있는 팩션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팩션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팩션류는 우리 독자를 역사학자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요근래 팩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까닭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역사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에서 주어지는 역사만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 역사가가 될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주는 팩션에 대한 열풍은 좋은 현상이 아닐까...
 

  SF 서사물은 철학적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내용으로 갈리는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볼때 디스토피아에 더 개인적으로 끌린다.  스팀펑크의 담론으로 애니메이션 <스팀보이>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인용한다. 둘다 문명의 양가성을 다루고 있지만, 문명을 비판하면서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준다는것은 그 비판의 강도를 약화시킨다는 이야기를 새롭게 들었다. 광주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신 이들이 있을것이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화려한 휴가를 보면 그날 그때의 충격적인 영상들만 보여준다. 비평가들이 많이 했던 비평들이 광주항쟁의 본질을 그 끔찍한 영상이 가려버린다는 요지의 평론이었다. 그 비평도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화려한 휴가>라는 충격적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했다는것으로도 나는 또 다른 가치를 주고 싶긴하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벋어나서 문명을 타자화(객관화 시킨다는 말. 거리를 두고 쳐다본다는 말)시켜서 생명론적 우주론적 관점에서 문명을 비판하기에 <스팀보이>보다는 문명의 비판에 대한 깊이가 다르다는 말을 한다.
  SF 제패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화. 뭔말인지 모르겠다. 예로 <카우보이 비밥>을 드는데, 검색을 해보니, 궂이 SF 제패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화"라는 말을 쓸필요가 있나 싶다. 다양한 장르와 짬뽕학!! 이렇게 표현해도 될것을... 이야기의 요지는 <카우보이 비밥>이 다양한 장르와 결합이 되고,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있다는 말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로써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캐릭터들마다 플래시백장면을 자주 활용하면서 개인사를 담고 있고, 호러와 미스터리, 갱스터와 필름 느와르(우리나라에서 뮤지비디오로 활용되었던 끝편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멜로 드라마와 추리물등 다양한 장르가 자유롭게 뒤죽박죽하고 있다. 읽는 이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수 있는 작품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스파이크와 제트)와 미래에 대한 낙관론(페이와 에드)이 충돌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과학문명뿐만 아니라 근대세계에 대한 반성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슬림스트림의 예로써 작가 박민규, 서준환, 조하형, 백민석의 소설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내가 왜 박민규의 작품에서 흥미를 못느끼나 이해할수있었고, 서준환의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과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과 백민석의 <러셔>와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읽고 싶은 생각이 든 작품이다.
  리버펑크는 사이버펑크+생명학을 말하는데, 이 현상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기에 시사점이 크다고 할수있다. 인간의 휴머니즘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실험하고 조작하는것이 과연 옳은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런 윤리적 문제에서 인문학서적들이 간과하는것이 있는데, 만약 자신이 그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데, 죽을 병이 걸렸는데 나는 돈이 많고 머리 없는 아들의 복사품을 제작할수있는 여건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복제물들의 인권도 있을것이고, 인간을 벋어난 타생명체의 인권도 있을것이다. SF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로봇의 인권도 100년 후쯤이면 만날수있지 않을까? 로봇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인간에 의해서 공격을 당한 로봇이 인류를 멸먕시키는 이야기는 <매트릭스>의 전 이야기를 다룬  <애니매트릭스>에서 확인할수 있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풀루토>또한 인간과 로봇사이의 갈등과 로봇의 인권을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만화책이라는걸 느낄수 있다. SF라는 장르는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만을 흔히 생각하는데, 진정한 SF장르는 심오하고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골치아프게 던지는 어려운 놈이다.


  세번째 공포 서사물. 공포라는 장르는 내안에서 보기 싫은  형태를 알수없는 그 무엇을 괴물로 형상화 시켜서 그들을 쳐부수고 살아남아서 극장밖을 나와서 안도감을 안겨주는 장르이다. 공포라는 장르가 다루는 것을 잘 살펴보면 사회속에서 억압받고 배척되고 혹은 두려워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괜히 싫은 아이가 있다. 이유도 없다. 이유없이 밉다. 그래서 괴롭히고 싶기도 하고 파괴시키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안에서 인정하기 싫은 혹은 감추고 싶은 그 무엇을 그아이에게 투사화 시켜서 그것을 타자화 시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유없이 싫거나 이유없이 두려운 존재를 만나면 나는 나자신을 들여다 본다. 공포서사물에 대한 평론들을 접하다 보면 "타자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페미니즘이론을 공부하다보면 한국 공포, 귀신이야기를 통해서 타자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자신을 타자화 시킨다는것은 내 영혼이 내 몸 밖으로 잠시 나와서 멀리서 자신을 개관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말이고, 약자혹은 소수자를 타자화 시킨다는것은 그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려는 의도이다. 한국 공포영화를 예로 들면서, 권력에 대한 본질을 이야기한 것은 참 흥미로웠다.


  글을 읽고 나면 재밌게는 읽었는데, 글로쓰기엔 남감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건 일상적인 용어들로 서술되지 않았기때문이다. 이런 인문학적 서적들의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로 써보는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책속의 내용을 그래도 옮겨 요약하기보다 그냥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만 적어보는것. 그게 자신의 언어로 소화하는게 아닐까. 나도 "타자화"라는 개념은 처음엔 아주 낯설었다. 그러나 영화평론이나 페미니즘으로 보는 대중문화에 대한 글들속에도 이 타자화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했었다. 자주 접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자기내면을 성찰해보는 의미로 활용되기도 하고, 억압받는 약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꺼낸다는것을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내언어로 소화한  "타자화"에 대한 나의 짧은 견해이다.


  글로 쓰기 어렵다 하더라도, 하위문화로 폄하받는 다양한 장르를 즐길수있는 방법들을 여러가지로 제시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자기언어로 소화하고 표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텍스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줄 아는 능력을 늘려나가는것도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이 유효하다. 그렇다고 귀가 너무 얇은것도 안좋다. 자기 줏대로 질겅질겅 씹으면서 귀를 열어두는것, 그게 자신만의 텍스트 해석방법의 독특함을 키워주는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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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1
조정래 지음, 장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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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채호가 누군지 몰랐다. 막연히 독립운동가겠지 생각하는 정도의 역사적 무식. 그렇다고 모든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두꺼운 평전을 통해 얻을수는 없지 않은가? 우연히 조정래를 검색하다가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시리즈(현재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까지 나온 상태이며 앞으로도 계속 잡업을 하실 예정인거같다.)가 눈에 뛰었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서 신채호부터 빌려봤다.


  어른 책, 어린이 책 구분없이 잘 찾아보면 동화책중에서도 짧은시간안에 많은걸 얻게 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다. 읽으면서 이게 과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일까 하는 책도 만나기도 한다. 조정래 작가에 대한 신뢰감때문일까? 선뜻 빌렸고, 두시간정도만에 읽으면서 내 무식을 어느정도 해갈시키고 시기적으로 겹치는 역사적 사건들은 내 연대표에 정리를 해두었다. 나는 요근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으면 항상 이 정리철을 펴놓고 밑줄긋고 수정해서 빠진 부분은 써넣고 한다. 한번 시대별로 타이핑을 다시해서 새로 뽑아야 할거같다.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이고 언론가이며, 무장투쟁을 적극지지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의열단을 조직했던 김원봉을 알게 되면서 강력한 무쟁투쟁가들에 대한 기존의 내 시각을 수정해본다. 내 기존의 시각이라고 해봐야 영화 <아나키스트> 수준이었다. 신채호는 테러와 암살이 죄가 아니냐고 일본인이 묻자 당당하게 일본의 식민통치자체가 불법이고 악법인데, 억압받는 민족으로써 강력한 폭력말고 무엇으로 우리의 주권을 찾을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내가 한짓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떳떳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야기 전체적으로 아주 강직한 인물이고 청렴하며 기개가 범인으로 쫓아가기 힘들정도이다. 체질적으로 허약체질이면서도 배고픔과 가난을 항상 달고 살아갔지만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얼굴을 쑥이고 세수할수 없다고 생각할정도 강직한 인물이다. 그래서, 의혈단조직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것도 그러한 마음에서 행한 일일 테다. 짓궂은 생각같지만, 신채호앞에 무폭력, 평화주의 인도의 간디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아마 이론적으론 옳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일절 무시를 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릴때 부터 신동소릴 들을정도로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신학문을 접하고 잘못된것은 바로 고쳐야 된다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독립협회에 가입하면서 의회활동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독립협회의 특성때문에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국민계몽을 위해 신교육 운동에 앞장서면서 모두 한글로 교육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받았던 공부가 모두 한자를 통한 유교주의에 입각함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통한 국민계몽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한글교육운동을 주창한다. 그는 성균관에서 박사가 될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가졌지만, 출세의 길을 물리치고 고향에 내려와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1895년 단발령에 의하여 상투를 스스로 자르기도 하고(단발령은 1895년에 내려졌지만 유교적 관습은 오래 오래 지속되었고, 상투를 자르는 행위를 조상에 대한 배신배반행위로 인식하던 당시의 지식층들이었다.) 여성 계몽을 위해 남녀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립운동중 신채호를 성균관에 추천해준 신씨 문중 어른 신기선을 매국행위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공과사를 구분할줄 알고 의지가 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중국 사대주의와 일제의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수정하고 책을 펴내는 일에 힘쓴다. 그는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을 당나라를 끌어 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부정하며 새로운 조선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에 전념하기도 한다.


  민족이라는 단어를 나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무정부주의 혹은 코스모폴리탄? 하지만, 외세의 침략이 있을때 태생적으로 한민족이기에 이념을 달리하며 서로 분열하지 않고 함께 힘을 써서 해방하자는 의미로써 조정래의 민족 이야기와 신채호의 민족에 대한 기개 같은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소한 힘듬에도 쉽게 부러지는 나자신을 보면서 이런 역사적 인물을 대할때마다 경외심이 들기도하면서 한명의 인간을 인간답게 살기위해 투쟁하도록 만드는 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매번 신기할 따름이고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산다는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뒤편에는 다른 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고, 그가 이동했던 역사적 경로등 식민지시대의 견문을 넓히는 짧은 각주도 달려있어서 꽤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내일 도서관에 당장 달려가서 다른 책을 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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