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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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토니 어워드 6개 부분을 수상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Dear Evan Hansen> 소설로 재탄생 되었다. 사실 뮤지컬은 문외한이라 잘 몰랐는데 토니상은 이보다 더 많은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엄청난 히트 뮤지컬이라고 한다. 실제로 뮤지컬을 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감동의 쓰나미를 맞았다고. 작품은 늘 외톨이로 지내는 에번 핸슨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성장 소설의 좋은점은 가볍고 쉽게 읽히면서 그 안에 든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아 많은 생각할 거리와 어쩌면 나의 인생도 조금은 성장 할 수 있는 메세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 소설은 단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역시 소년 에번 핸슨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걸 생각해보고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소설은 에번 핸슨이라는 소년의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편지를 쓴 사람은 에번 자신. 받는 사람도 에번이다. 에번은 학교에서 늘 외톨이로 지내며 매일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는 소년이다. 상담 교사로부터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라는 숙제를 받고 매일이 지옥같지만 그렇지 않은 척 편지를 쓴다. 여느날처럼 쓴 편지가 또 다른 외톨이 소년 코너 머피의 손에 들어가고 그 후 갑작스럽게 코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코너의 소지품에서 에번의 편지를 발견한 코너의 부모님은 에번이 코너의 단짝 친구라고 오해를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코너 부모님의 눈물과 수많은 질문들, 순간의 거짓말들은 점점 겉잡을 수 없는 일들로 번지고 점점 진실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 거짓말들로 인해 에번도 점점 변화해 간다. 코너의 단짝이라는 이유로 추도식에서 대표로 추도문을 읽게되고 생각나는대로 말한 것들은 순식간에 퍼진다. 그로인해 에번은 외톨이 소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년이 되고 평소 짝사랑하던 코너의 여동생 조이와도 좋아하는 관계가 되지만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소설은 그런 과정에서 소심하고 외톨이었던 에번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


사실 성장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과정이야 어떻든 아주 행복한 결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느 성장 소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같은 결말을 예상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코너 가족과도 원만하게 오해를 풀고, 조이와도 관계가 여전히 좋으며 외톨이었던 에번은 우울증 따위 없었다는듯 보통의 소년으로 거듭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죄책감은 더해지고 조이와는 더이상 만날 수 없으며 여전히 우울증 약을 옆에 두고 세상에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그래서 사실은 읽으면서 마음을 많이 건드리는 소설이었다. 에번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관계에 서툴고 사교적이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며 내 의견을 그다지 피력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라서 에번에게서 공감하면서도 아파하고 피하고 싶다가도 화가나고 답답했으며 동정심도 갔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에번은 더욱 성장했으며 세상에 한뼘이라도 나올 수 있었다. 에번에게 공감했던 만큼 나 역시 조금은 마음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어렵기만 했던,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친구라는 관계에서도 에번은 자라나 있었다. 비록 그게 거짓말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행착오가 필요한 아직은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 에번의 인생에서는 아주 작은 점이자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답답한 틀에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진정한 시작이 되었을 일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에번이 단번에 씻은 듯한 보통의 소년으로 끝이 났다면 오히려 소설을 읽고 난 후에 그렇게 여운이 오래 남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것 같다. 우리의 삶은 그 후에도 계속될 테니까 에번이건 나이건 한뼘이라도 나아가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짧은 소설 속이 아닌 진짜 삶을 살아가니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속담이 있다. 사과는 나무에서 멀찌감 치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만든 이의 작품일 뿐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속담을 인용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떨어진다‘는 부분을 말이다. 그 속담의 논리에 따르면 사과는 꼬박꼬박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는 건 선택지에 없다. 그러니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과의 운명이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땅에 부딪쳤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다. 긁힌 자국도 거의 없이 착지하는가. 아니면 그 충격으로 박살 나는가. 그 둘은 전혀 다른 운명이다. 생각해보면 나무와의 거리나 사과가 열린 나무의 종류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땅에 닿는가다.

​본문 394p 중


에번은 상처를 많이 내면서 나무에 떨어졌다. 비록 그 상처 때문에 아프고 때로는 죽고싶을 때도 있을 테지만 사과의 달콤함과는 무관할 것이다. 상처 많은 사과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과의 맛과는 무관하므로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에번처럼 상처많은 사과라서 어디서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내면의 달콤함은 그 누구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에번처럼 천천이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나무에서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줄, 어쩌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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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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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이란 레고와 같은 거니까, 견고하게 완성했다 싶어도 까짓것 금세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
(중략)
하지만 다르게 만들려면 우선 부서뜨려야만 해,
사와코 말에 다부치는 웃으며, 간단해요, 라고 말했다. 부수는건 간단해요, 아깝다는 생각만 안 하면 되는 거죠.
-217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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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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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한 때에 아메리칸 드림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가난한 나라를 떠나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우는 북아메리카의 나라 미국으로 삶을 터전을 옮겨가 그 중에는 성공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실패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누구든 받아들이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합법이건 불법이건 그 곳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21세기를 들어서 미국은 물론 전 지구적인 문제인 에너지 위기로 기회의 땅은 붕괴되고 100년 후 2114년 새로운 아메리카 드림을 갖고 떠나는 미국 탐사 원정대가 버려진 땅 북아메리카로 출발한다. 소설은 그런 원정대가 미국땅에 도착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소설은 웨인이라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그는 미국 탐사 원정대의 아폴로호에 밀항하여 미국으로 떠난다. 붕괴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리라는 꿈을 안고 떠난 청년 웨인과 저마다 다른 희망을 갖고 미국 탐사길에 오른 탐사 대원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으로 미국땅에 첫발을 내딛는데 희망과는 다른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는다. 근 미래를 그린 많은 S.F. 작품들을 보면 인류가 초래한 붕괴된 지구의 모습은 비슷하다. 에너지 위기와 무분별한 환경 파괴는 이제는 인류의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기정 사실이 되거 가고 있고 그 속에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지만 파괴될 지언정 과학 기술은 지금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다. 붕괴의 위기가 닥친후 몇백년 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많은 이민자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버려진 땅이 되어버린 미국에는 100년전 떠나지 않고 남은 미국의 후손들이 원주민이 되어 살아가는데 원정대가 이들과 만나는 모습은 흡사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들인 탐험가들이 그곳의 원주민들과 만나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들은 각자 다른 부족생활을 하고 있었고 쉼없이 석탄을 넣어야만 움직이는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그런 모습은 인간의 문명이 오히려 퇴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원정대가 처음 뉴욕에 도착에 황금으로 보였던 모래 사막과 그에 따른 원시화된 환경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인간도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이 점이 미래를 그린 S.F. 작품들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웨인을 비롯한 미국 대륙을 횡단하려는 탐사대들은 떨어져가는 식량과 물에 점점 지치고 이성을 잃어간다. 원정대의 탐사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미국의 원주민을 만나 가까스로 살아나고 그들은 다시 떠나는데 폐허라고 생각했던 라스베거스에서 예상하지 못한 옛 모습의 라스베가스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웨인은 자칭 미국 45대 대통령이라고 하는 찰스 맨슨이라는 중년의 남자를 만나는데 10대로 이루어진 멕시코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군대를 가진 기묘한 느낌의 남자이다. 원정대를 버리고 스스로 떠난 스타이너 선장과 죽은 두 명의 원정대원을 제외하고 아폴로호의 엔지니어인 맥네어와 핵 물리학자 앤 서머스를 맨슨이라는 남자는 아주 극진히 환영한다. 그 곳에서 웨인은 자신의 힘드로 작으나마 새로운 미국을 회생시켜가는 맨슨을 보고 또 다른 희망을 갖게되는데 이 찰스 맨슨이라는 자칭 미국 대통령은 겉과 다르게 또 다른 음모를 갖고 있는 남자다. 전염병이 돈다는 이유로 도시를 파괴하고 기괴한 영상으로 웨인 일행을 라스베거스로 유인한 한편 웨인을 비롯한 원정 대원들을 자신을 도와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끌어들이려 한다. 뭣모르고 배웠던 그 옛날의 콜럼버스는 지금 생각해보면 탐험가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라기 보다는 '침략자'에 가깝다.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들이고 그 곳에 사는 진정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악의 없이 그들을 환대했다. 하지만 그 침략자들은 그들의 탐욕으로 인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온갖 전염병을 퍼뜨리며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다. 순수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과 달리 찰스 맨슨은 그 침략자들을 단순한 침략자들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제거하려 한다. 종내에는 자신이 건설한 작은 왕국 라스베거스도 자신과 함께 날려버리려 한다. 분명 찰스 맨슨은 정신이상자에 미치광이 소시오패스다. 하지만 탐사라는 이름하에 미국땅으로 향하는 탐사 원정대 역시 침략자임에 분명한게 아닐까. 웨인을 비롯한 원정 대원들 모두 저마다 순수한 미국 탐사가 아닌 각자의 탐욕으로 미국길에 오른것은 분명하니까. 작가는 붕괴를 예견할 수 있는 현대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S.F.라는 장르를 통해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경고하는 메세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1981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만큼 작품은 지금 나오는 S.F. 작품들이 그려내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느낌과 아주 비슷해서 처음 작품이 나온 시기를 보고 놀라웠다. 어딘지 환상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색다른 미래를 그린 '밸러드풍'의 소설은 작가가 던저주는 묵직한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작품을 읽는 내내 생생하게 머리속에서 영상화 되어 마지막까지 몰입감을 놓지 않게 해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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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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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든 높은 건물의 외벽이나 전광판, 신문이나 잡지 어디든 광고가 실릴 수 있는 곳이라면 한번쯤 그럼 광고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깨알같은 사진이 수 백개 수 천개가 모여 모자이크처럼 배열되면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는 광고 사진 말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문득 그런 광고 사진이 떠놀랐다. 사진을 모아 배열하면 큰 형태가 나타나지만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의 사진 또한 단순히 컬러의 배열이 아닌 의미 있는 또 다른 사진인 것이다. 이 소설 역시 그런 형태의 스토리 라인으로 되어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이번 작품은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하는 소설이다. 그동안의 작품이나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을 보니 한번쯤은 들어봤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오랫만에 좋은 작품과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각각 다른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각각 다른 인물과 시점이 있지만 연작 소설인 만큼 이야기들은 조금씩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고리의 매개체는 바로 주인공 쓰카모토 지하루라는 한 여자이다. 그런데 이 여자의 등장은 여느 주인공이랑은 조금 다르다. 분명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고 그녀의 삶을 엿보고 있지만 정작 그녀가 이야기하는 시점은 없다. 각기 다른 9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 속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제목만 보자면 뭔가 서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정작 각 단편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런것과는 상반된다.

 

 

딸인 지하루를 친정집에 맡겨놓은 채 사랑의 허상을 쫓아 밤업소를 떠돌다 스낵바에서 어느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지하루의 엄마 사키코의 이야기가 담긴 '나 홀로 왈츠'를 시작으로 지하루의 옆집에 살며 지하루에가 작으나마 부업을 주며 의대에 다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살지만 정작 지하루와 아들이 관계를 맺자 애써 지하루를 위하는 척 중절 수술을 하도록 하는 여자 이쿠코의 이야기 '바닷가의 사람', 자신의 과거를 숨긴 체 스트립 댄서로 일하며 오빠가 돌아오면 클럽을 그만두기를 고대하며 신입 스트립 댄서로 들어온 지하루를 만나는 여자 레이카의 이야기 '숨어사는 집', 어디든 불평이 많은 어머니와 살며 어머니의 불만 접수로 인해 사죄를 하러 들른 마트 직원 지하루를 만나는 40대 독신남 하루히코의 이야기 '달맞이 고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이발소를 운영하며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여자 지하루를 만나고 딸을 낳은 후 홀연 집을 나간 며드리 지하루를 대신해 손녀 야야코를 기르기로 결심하는 기리코의 이야기 '트리콜로르', 무명 시인으로 현대시 강연을 하는 곳에서 지하루라는 여자를 만나 그녀의 시적 재능을 비웃지만 마음과 다르게 본능적으로 지하루에게 끌리는 남자 도모에 고로의 이야기 '도망쳐 왔습니다', 실수로 저지른 범죄로 숨어다니며 우연히 대폿집에서 만난 사키코와 8년째 살며 병든 사키코가 만나고 싶다는 딸 지하루를 찾아 가지만 뜻하지 않는 일을 목격하게 되는 남자 노토 주지의 이야기 '겨울의 해바라기', 눈으로 고립되는 지역의 시골집에서 편집자로 은둔하며 살던 중 우연히 한쪽 다리가 없는 여자 지하루를 도와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되면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소설 '별이 총총'을 쓰게 되는 남자 고노 야스노리 이야기 '허수아비', 할머니와 살며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과거로 인해 삶에 회의적인 지하루의 딸 야야코의 이야기 '야야코' 이렇게 총 9편의 이야기는 작가가 주로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다는 고향 홋카이도처럼 때론 황량하고 춥고 고단하다. 하지만 별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하나하나 의미 있는 사진이 배열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형태가 되는 광고처럼 저마다의 사람과 이야기는 밝지는 않지만 우주 어딘가에 있는 별처럼 존재하고 그 별들이 모여 쓰카모토 지하루라는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낸다.

 

 

야야코에게는 표지의 파란색이 맑은 밤하늘로 보였다. 미더운 데라고는 없는 공기 방울 같은 별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면 한 여자의 상이 떠오른다. 그이도 저이도 목숨 있는 별이었다. 밤하늘에 깜빡이는 이름도 없는 별들이었다.

-본문 328p 중

 

작가는 마지막 이야기를 생각 한 후 그 앞을 완성해 나아갔다고 한다. 지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창작 욕구로 써내려간 소설 '별이 총총'은 마치 소설속에서 소설을 읽은 듯한 액자식 이야기를 본 듯 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구조적 느낌은 받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이게 이렇게 된거야? 라는 반전 아닌 반전을 선사하는 듯 하여 소설을 읽고는 한동안 놀라우면서 멍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소설 정말 좋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때론 소설이나 영화에 투영된 비루하고 잔혹하며 힘겨운 현실을 반영하여 그려낸 이야기들은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토록 힘든데 굳이 즐겁자고 보고 읽는 이야기에서 현실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삶일지라도 우주를 이루는 의미있는 별이라고 말한다. 온통 하얀 눈과 추위가 떠오르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펼처진 쓰카모토 지하루 라는 여자의 삶과 그것을 이루는 면면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춥고 고단할 지언정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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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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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것은 참 그로테스크하다. 결혼한 후로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을 나기사는 지금 또 한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도, 아니 상대가 귀찮게 여겨질 때조차, 밤이 되면 같이 자고, 아침이 밝으면 같은 식탁에 앉는다. 조그만 불쾌함도 말의 어긋남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상 속에 묻히고, 밤과 낮이 되풀이되고, 부부가 아니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세상에서는 그런 걸 인연이라고 하리라. 그러니 인연이라는 것은 나날의 조그만 불쾌함의 축적이다. -268p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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