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지하철이든 높은 건물의 외벽이나 전광판, 신문이나 잡지 어디든 광고가 실릴 수 있는 곳이라면 한번쯤 그럼 광고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깨알같은 사진이 수 백개 수 천개가 모여 모자이크처럼 배열되면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는 광고 사진 말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문득 그런 광고 사진이 떠놀랐다. 사진을 모아 배열하면 큰 형태가 나타나지만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의 사진 또한 단순히 컬러의 배열이 아닌 의미 있는 또 다른 사진인 것이다. 이 소설 역시 그런 형태의 스토리 라인으로 되어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이번 작품은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하는 소설이다. 그동안의 작품이나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을 보니 한번쯤은 들어봤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오랫만에 좋은 작품과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각각 다른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각각 다른 인물과 시점이 있지만 연작 소설인 만큼 이야기들은 조금씩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고리의 매개체는 바로 주인공 쓰카모토 지하루라는 한 여자이다. 그런데 이 여자의 등장은 여느 주인공이랑은 조금 다르다. 분명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고 그녀의 삶을 엿보고 있지만 정작 그녀가 이야기하는 시점은 없다. 각기 다른 9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 속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제목만 보자면 뭔가 서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정작 각 단편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런것과는 상반된다.

 

 

딸인 지하루를 친정집에 맡겨놓은 채 사랑의 허상을 쫓아 밤업소를 떠돌다 스낵바에서 어느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지하루의 엄마 사키코의 이야기가 담긴 '나 홀로 왈츠'를 시작으로 지하루의 옆집에 살며 지하루에가 작으나마 부업을 주며 의대에 다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살지만 정작 지하루와 아들이 관계를 맺자 애써 지하루를 위하는 척 중절 수술을 하도록 하는 여자 이쿠코의 이야기 '바닷가의 사람', 자신의 과거를 숨긴 체 스트립 댄서로 일하며 오빠가 돌아오면 클럽을 그만두기를 고대하며 신입 스트립 댄서로 들어온 지하루를 만나는 여자 레이카의 이야기 '숨어사는 집', 어디든 불평이 많은 어머니와 살며 어머니의 불만 접수로 인해 사죄를 하러 들른 마트 직원 지하루를 만나는 40대 독신남 하루히코의 이야기 '달맞이 고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이발소를 운영하며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여자 지하루를 만나고 딸을 낳은 후 홀연 집을 나간 며드리 지하루를 대신해 손녀 야야코를 기르기로 결심하는 기리코의 이야기 '트리콜로르', 무명 시인으로 현대시 강연을 하는 곳에서 지하루라는 여자를 만나 그녀의 시적 재능을 비웃지만 마음과 다르게 본능적으로 지하루에게 끌리는 남자 도모에 고로의 이야기 '도망쳐 왔습니다', 실수로 저지른 범죄로 숨어다니며 우연히 대폿집에서 만난 사키코와 8년째 살며 병든 사키코가 만나고 싶다는 딸 지하루를 찾아 가지만 뜻하지 않는 일을 목격하게 되는 남자 노토 주지의 이야기 '겨울의 해바라기', 눈으로 고립되는 지역의 시골집에서 편집자로 은둔하며 살던 중 우연히 한쪽 다리가 없는 여자 지하루를 도와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되면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소설 '별이 총총'을 쓰게 되는 남자 고노 야스노리 이야기 '허수아비', 할머니와 살며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과거로 인해 삶에 회의적인 지하루의 딸 야야코의 이야기 '야야코' 이렇게 총 9편의 이야기는 작가가 주로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다는 고향 홋카이도처럼 때론 황량하고 춥고 고단하다. 하지만 별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하나하나 의미 있는 사진이 배열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형태가 되는 광고처럼 저마다의 사람과 이야기는 밝지는 않지만 우주 어딘가에 있는 별처럼 존재하고 그 별들이 모여 쓰카모토 지하루라는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낸다.

 

 

야야코에게는 표지의 파란색이 맑은 밤하늘로 보였다. 미더운 데라고는 없는 공기 방울 같은 별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면 한 여자의 상이 떠오른다. 그이도 저이도 목숨 있는 별이었다. 밤하늘에 깜빡이는 이름도 없는 별들이었다.

-본문 328p 중

 

작가는 마지막 이야기를 생각 한 후 그 앞을 완성해 나아갔다고 한다. 지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창작 욕구로 써내려간 소설 '별이 총총'은 마치 소설속에서 소설을 읽은 듯한 액자식 이야기를 본 듯 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구조적 느낌은 받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이게 이렇게 된거야? 라는 반전 아닌 반전을 선사하는 듯 하여 소설을 읽고는 한동안 놀라우면서 멍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소설 정말 좋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때론 소설이나 영화에 투영된 비루하고 잔혹하며 힘겨운 현실을 반영하여 그려낸 이야기들은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토록 힘든데 굳이 즐겁자고 보고 읽는 이야기에서 현실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삶일지라도 우주를 이루는 의미있는 별이라고 말한다. 온통 하얀 눈과 추위가 떠오르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펼처진 쓰카모토 지하루 라는 여자의 삶과 그것을 이루는 면면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춥고 고단할 지언정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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