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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평점 :
고교 때나 대학교까지 나는 쭉 이과생 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난 일명 수포자였다. 그건 물리도 마찬가지. 고등학교 때 물리 교사는 다소 늘 기운이 없어 보이는 학자 타입이었고 학생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그저 자신의 강의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지 못한게 그런 교사들 때문이라는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내탓이 제일 컸던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주인공 수잔은 물리학자이자 교수로 나오는데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자 화자이기 때문에 이야기 전반에는 물리학적인 내용이 깔려있다. 심지어 수잔이 생각하는 사랑까지도. 말하자면 사랑 이야기를 철학으로 풀어낸 알랭드 보통같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양자물리학에서는 깊은 애정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헤어지는 데는 평균 7년에 걸린다고 하죠"
그는 슬픈 표정이 되어 지나가는 전철에 시선을 던졌다.
"그 말은 7년에 지나도 아주 확실한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네, 그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해요. 양자물리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획률론적 추측뿐이라는 거죠"
나는 좌우를 살핀 후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내가 뤼방스 가로 건너갈 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사람이 고체물리학의 어떤 현상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는 예술, 종교 등 신빙성 없는 출처에서 수없이 많이 나온다. 경험적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이 과장 뒤에 숨겨진 실상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입맞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기대하지 못한 입맞춤. 온몸을 마비시키는 종류의 입맞춤 말이다. - 본문 168p 중
소설은 살인이나 음모가 주된 내용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수잔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물리학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단어나 문장, 문맥, 내용을 하나 하나 천천히 씹으며 음미해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설은 묘하게 끌리는데가 있었다. 제목에서와 같이 수잔 이펙트는 수잔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된 이야기를 말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 사건의 중간 중간 수잔의 능력이 발휘되는 환타지적 부분들과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점점 밝혀지는 거대한 음모들이 흥미로웠고 살인 사건이나 수잔 가족들이 그런 음모들로 부터 쫓기면서 여자이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을 지키려는 강한 여전사의 모습으로 맞서면서 느껴지는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도 좋았다. 이 외에도 이야기의 흐름에는 자연 파괴로 인한 세계의 붕괴와 그로 인한 소수 권력자들이 꾸미는 부도덕적 비리와 음모에 관한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저주기도 한다. 각자가 개성이 강한 수잔의 가족은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을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중요한 순간에는 가족만이 발휘 할 수 있는 협업을 보여주면서 가족간에도 몰랐던 서로의 모습이나 마음을 알아가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에서 가깝지만 낯설기도 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단지 물리학적 내용이 전반에 계속 이어졌다면 지루했겠지만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어려울 것 같았던 소설의 이미지는 점점 가독성과 흡입력을 더해가도록 하는 매력을 보여준다.
아쉬웠던 점은 처음에 수잔 가족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계기, 즉 인도에서 가족 각자가 안좋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수배되어 덴마크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처음에는 뭔가 이야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웠다.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알 수 있지만 그런 내용이 처음에 나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이야기에 더 흥미와 흡입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강인한 캐릭터의 여자 주인공은 그동안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졌다. 수전 이펙트에 나오는 수잔은 그동안 내가 만나본 그런 여성 캐릭터의 끝판왕같은 느낌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수잔은 강인한 여전사의 면모 뿐 아니라 모성애 가득한 엄마이자 여자로서의 매력까지 갖춘 주인공으로 그 어떤 캐릭터보다 매력적이다. 그런 수잔은 페터 회의 필체에서 더없이 잘 살아나는 것 같았다. 처음 접해보는 페터 회의 소설은 오랜 경력에 비해 신간이 자주 나오지 않는 다작의 작가는 아니라고 들었다. 다음 신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다림이 기꺼운 작가의 작품으로 충분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