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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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지 않은 해리 포터의 원고를 자신의 딸들이 읽도록 구해오라는 말도 안되는 상사의 지시로 동분서주 어렵게 구해 무사히 전하데 되고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해리포터을 읽어보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는 영화속 이야기처럼 마치 그 아이들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출간 전 미리 읽어보는 행운을 갖게 된 소설 피터 스완슨의 이 소설은 내가 읽는 첫번째 소설이다.

안정된 수입과 직장, 40대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외모도 준수한 싱글 하지만 그래서 더이상 이룰것도 꿈꿀것고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던 남자 조지 포스. 어느날 꿈에 그리던 첫사랑과 재회 후 그녀에게서 기묘한 부탁을 받게된다. 그녀를 잊지 못했던 그는 어느덧 그녀의 부탁을 승낙하지만 그녀애 대한 비밀을 듣게되고 낯선 괴한에게 폭행까지 당한다. 매일이 정말 다이나믹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조지 포스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머리속으로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살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조지 포스와 같이 막상 정말 일어난다면 거기에 응할까? 나 같은 경우는 겁이 많아 분명 거절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첫사랑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수배된 후 종적을 감춘 후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조지 포스는 그에 응한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재미로 응했다고 하기에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여자였고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여전히 아름다운 꿈에 그리던 첫사랑이라는 이유가 제일 큰 것 같다. 그런 그녀는 그에게서 정말 아낌없이 빼앗는다. 목숨까지도.

읽는 내내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와 흡입력 있는 필체로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본 듯 한 느낌이었다. 조지가 과거에 처음 리아나를 만나 읽어나는 일과 시간이 흐른 후 현제의 리아나를 만나 일어나는 일들이 교차로 나오는데 이런 구성은 현제의 조지의 심리나 리아나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사건들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지만 술술 읽히는 필체와 이해와 흥미를 높이는 이러한 구성은 이 소설의 장점으로 다가왔다. 신분을 속이고 사랑하는 남자와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거짓된 삶은 곧 드러나게 되고 점점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일본 소설 화차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살인 사건과 점점 알 수 없는 그녀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소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홀려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한 호구 남자의 러브스토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러브스토리 라고는 했지만 소설속에서는 사랑은 느끼지 못했다.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오드리, 리아나 혹은 제인이라는 여자나 첫사랑과의 만남을 꿈꾸면서도 평소 만나 온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이어오고 있는 조지 포스에게서 진심은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정체와 음모는 조지의 망상같은 상상이 이어지지만 그 또한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욱 리얼함이 느껴진다. 우여곡절 끝에 사건이 해결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여느 소설처럼 행복한 결말이 아닌 그 뒤의 삶은 계속 되고 좋지 않은 결과나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그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조지가 그랬던 것처럼 단지 믿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모를까. 리아나 역시 그런 조지의 마음을 알기에 그에게서 아낌없이 뺏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사건들은 이런 마음때문에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진실을 알 수 없는 결말도 좋았다. 소설을 다 읽고 조지 처럼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흥미진진한 흡입력과 읽고 난 후에 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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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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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아 행복하지만 머지않아 죽게 된다는 자신의 미래를 보는 신비하지만 두려운 체험을 하고도 그 사람과의 사랑을 선택하는 미오, 성장하게 되면 죽게 되는 병을 앓고 있지만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되기 위해 죽음을 향해 성숙해지는 시즈루,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백혈병 말기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좋아하는 소년과의 여행을 떠나려는 아키, 태양에 노출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소년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태양으로 발을 내딛는 카오루, 호흡기 없이는 숨쉴 수 없고 한쪽 다리를 병으로 잃고 언제 재발할 지 모르는 암을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눈치 챘겠지만 이들은 모두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무모한 선택을 하는 주인공들이다. 하루만에 단숨에 읽어내려간 니콜라 윤의 이 소설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책을 처음 받아보고 빠르게 휘리릭 넘겨보았을 때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중간중간 손글씨나 표, 그림같은 삽화가 끼어 있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소설일 것 같았는데 그 예감은 적중했다. 소설 속 주인공 소녀 매들린 역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꿈많은 10대 소녀이지만 사랑조차 꿈꾸기 힘들 정도로 아픈 소녀이고 그런 소녀 앞에 운명적으로 한 소년이 나타난다. 그리고 소년을 사랑하게 된 소녀는 무모해지기로 한다. 위에 나온 영화나 소설 주인공 처럼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 같지만 또 전혀 다른 놀라움과 전률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17살 소녀 매들린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되어 죽을 수도 있어 멸균 상태의 새하얀  방과 집 밖으로는 평생 나와본적이 없다. 어느날 옆집으로 한 가족이 이사오고 거기에서 운명이 될 소년 올리를 만난다. 만났다고는 하지만 매들린은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와 간호사 카라 외에는. 하지만 소년을 본 순간 여태껏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지면서 죽을 지도 모르는 모르는 무모한 여행을 떠난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하지만 그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작가마다의 다양한 사랑에 대한 정의와 이상관, 감성들도 다 달라 이런 다양한 사랑에 관한 형태를 볼 수 있는게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이자 묘미이다. 여기 한 형태의 사랑은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목숨을 걸어야만 숭고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어떤 것 때문에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은 허구이자 상상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두고 상상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런 무모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수없이 나올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아이는 내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다. -88p 중


사랑은 모든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모든것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매들린은 평생 밖에 나와보지 못한만큼 모든 것이 처음이다. 영상이나 책으로만 보는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 그리고 그 가운데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는 첫사랑. 모든게 처음이라서 매들린의 눈으로 본 세상이나 사랑은 순수한 느낌이다. 편견따위 없는. 태초에 사랑이 막 태어났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매들린과 올리의 사랑을 보면 슬픔 보다는 순수한 설래임과 정화되는 마음이 느껴진다.

소설의 말미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이것이 소설에 대해 약간의 호불호를 불러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놀라움과 기쁨의 반전과 더 없이 완벽한 결말이었다.  10대 소녀와 소년의 사랑을 더 없이 잘 표현한 풋풋한 문체와 보면서도 웃음짓게 만드는 귀여운 삽화, 사랑과 인생을 표현한 니콜라 윤의 이상관까지 모든 것(everything)이 좋았던 내가 원한 모든 것(everything)을 가진 로맨스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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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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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표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일본에는 별의별 도서대상이 다 있구나 였다. 일본 서점 대상은 이제 흔히 들을 수 있는 타이틀이지만 철도 서점 대상은 처음 들어본 대상이었다. 참 깨알같이 나누었구나 싶다. 일본에서는 철도가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 그런지 철도서점 대상도 있을법 하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뗄래야 뗄 수 없는 펭귄 일러스트! 몇 해 전 TV에서 본 남극의 황제 펭귄이 관한 다큐를 보고 단숨에 좋아진 동물이기도 해서 철도 역무원 모자를 쓴 펭귄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제목도 그렇고 명물처럼 여겨지는 가게에서 배달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동물들처럼 펭귄이 역무원으로 일한다는 내용인 건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했다. 띠지에는 감동 판타지라고 적혀 있지만 감동은 있어도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 처럼 전철에서 진짜 펭귄과 마주친다면 이게 판타지인가 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은 4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서로 얽힌 연작처럼 읽혀지는 구성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네 사람이 한적한 전철역의 분실물 센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고 보면 한없이 지루하고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여기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조합의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특별하게 해준다. 공업단지 밖에 없는 한적한 무인역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 말하기도 힘든 이곳에는 빨간머리를 한 역무원과 펭귄이 있다는 것. 한적하다고는 하나 도심 한가운데 펭귄이 있다는 건 무척 위화감이 든다. 분실물 센터로 가는 도중 펭귄을 만난 인물들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흠칫 놀라지 않을까. 그리고 날라리 같은 인상을 주는 빨강머리와는 대조적으로 착실하게 차려입은 역무원 유니폼과 공손한 말투의 분실물 센터의 역무원 모리야스 소헤이 라는 청년. 이 두 조합 만으로도 소설은 벌써 특별 해진다. 소설의 첫인상은 물론 지루할 만큼 평범했다. 죽은 애완묘의 유골함을 잃어버린 여자에서 시작해 처음 받은 러브레터를 잃어버린 히키코모리 고딩, 거짓말로 일관된 삶을 살던 어린 주부, 소중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중년의 남자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그 지루함과 평범함은 뭔지 모를 마음속의 감동이 겹겹이 계속 쌓여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작은 돌로 촘촘하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돌탑이 오랜 시간 굳건히 서 있는 것처럼 하나 하나의 이야기에서 공감과 거기서 오는 감정들이 쌓여 마지막 이야기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감동의 탑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교통수단으로는 버스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타고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전철은 나에게 아주 친근한 느낌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타 왔음에도 분실물 센터에 가 본 적은 없다. 종착역에 있다는 것 밖에는 모른다. 소헤이가 일하는 분실물 센터의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것인지 말 것 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찾아가지 않더라도 때에 따라 소중히 보관해 준다는 것. 당연히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그 물건은 어떤 의미인지. 없어서는 안되는 건지, 이대로 잃어버린 채로 있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파기하고 싶은지. 여기에는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에 깃든 각자의 기억과 추억이 서려있어 그것들을 간직할지 잊을지 아니면 파기할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분실물에 대해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내가 뭔가를 잃어버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들 것 같았다. 찾는다는 한가지 선택지만을 생각해왔던 것에서 그 물건이 나에게 가진 의미를 말이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하찮은 것인지 반드시 찾아야 할 소중한 것인지 아니면 소헤이의 분실물 센터처럼 언젠가 찾으러 갈때까지 보관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물론 펭귄이 있는 특별한 분실물 센터처럼 언젠가 찾으러 올지도 모를 물건을 오랫동안 보관해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여러가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소홀히 했던 것과 단지 물건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잊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빨강머리 역무원 소헤이와 펭귄이 있는 펭귄철도 분실물 센터는 그래서 단순히 물건 뿐 아니라 우리가 잊었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찾아 주는 특별한 곳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이런 분실물 센터는 없겠지만 나토리 사와코의 이 특별한 소설을 읽으면서 펭귄이 있는 특별한 펭귄철도에 마음을 싣고 소중한 것을 찾아주는 분실물 센터로의 여행은 어떨까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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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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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때나 대학교까지 나는 쭉 이과생 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난 일명 수포자였다. 그건 물리도 마찬가지. 고등학교 때 물리 교사는 다소 늘 기운이 없어 보이는 학자 타입이었고 학생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그저 자신의 강의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지 못한게 그런 교사들 때문이라는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내탓이 제일 컸던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주인공 수잔은 물리학자이자 교수로 나오는데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자 화자이기 때문에 이야기 전반에는 물리학적인 내용이 깔려있다. 심지어 수잔이 생각하는 사랑까지도. 말하자면 사랑 이야기를 철학으로 풀어낸 알랭드 보통같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양자물리학에서는 깊은 애정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헤어지는 데는 평균 7년에 걸린다고 하죠"
그는 슬픈 표정이 되어 지나가는 전철에 시선을 던졌다.
"그 말은 7년에 지나도 아주 확실한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네, 그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고 해요. 양자물리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획률론적 추측뿐이라는 거죠"
나는 좌우를 살핀 후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내가 뤼방스 가로 건너갈 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사람이 고체물리학의 어떤 현상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는 예술, 종교 등 신빙성 없는 출처에서 수없이 많이 나온다. 경험적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이 과장 뒤에 숨겨진 실상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입맞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기대하지 못한 입맞춤. 온몸을 마비시키는 종류의 입맞춤 말이다. - 본문 168p 중




소설은 살인이나 음모가 주된 내용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수잔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물리학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단어나 문장, 문맥, 내용을 하나 하나 천천히 씹으며 음미해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설은 묘하게 끌리는데가 있었다. 제목에서와 같이 수잔 이펙트는 수잔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된 이야기를 말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 사건의 중간 중간 수잔의 능력이 발휘되는 환타지적 부분들과 이야기가 더해갈수록 점점 밝혀지는 거대한 음모들이 흥미로웠고 살인 사건이나 수잔 가족들이 그런 음모들로 부터 쫓기면서 여자이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을 지키려는 강한 여전사의 모습으로 맞서면서 느껴지는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도  좋았다. 이 외에도 이야기의 흐름에는 자연 파괴로 인한 세계의 붕괴와 그로 인한 소수 권력자들이 꾸미는 부도덕적 비리와 음모에 관한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저주기도 한다. 각자가 개성이 강한 수잔의 가족은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을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중요한 순간에는 가족만이 발휘 할 수 있는 협업을 보여주면서 가족간에도 몰랐던 서로의 모습이나 마음을 알아가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에서 가깝지만 낯설기도 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단지 물리학적 내용이 전반에 계속 이어졌다면 지루했겠지만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어려울 것 같았던 소설의 이미지는 점점 가독성과 흡입력을 더해가도록 하는 매력을 보여준다.

아쉬웠던 점은 처음에 수잔 가족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계기, 즉 인도에서 가족 각자가 안좋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수배되어 덴마크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처음에는 뭔가 이야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웠다.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알 수 있지만 그런 내용이 처음에 나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이야기에 더 흥미와 흡입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강인한 캐릭터의 여자 주인공은 그동안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졌다. 수전 이펙트에 나오는 수잔은 그동안 내가 만나본 그런 여성 캐릭터의 끝판왕같은 느낌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수잔은 강인한 여전사의 면모 뿐 아니라 모성애 가득한 엄마이자 여자로서의 매력까지 갖춘 주인공으로 그 어떤 캐릭터보다 매력적이다. 그런 수잔은 페터 회의 필체에서 더없이 잘 살아나는 것 같았다. 처음 접해보는 페터 회의 소설은 오랜 경력에 비해 신간이 자주 나오지 않는 다작의 작가는 아니라고 들었다. 다음 신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다림이 기꺼운 작가의 작품으로 충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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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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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최근 사람의 평균 수명을 찾아보는 거였다. 한국이나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식생활도 비슷한데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꼽히는 장수 국가로 알려져 있다. 빨간 띠지에 무시무시하게 악마의 길이라느니 16년 후에 죽는다느니 했으니 딱히 작품집을 읽는데 필요한 지식은 아니지만 뭐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도 최근들어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복지에 대한 법이 바뀐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나왔는데 작가가 말한 악마의 길은 창작의 고통을 겪는 작가의 길이고 그런 고통을 받는 작가들, 여기서 말하는 작가들이란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말하는데(생각해보니 자기 자랑 같음) 평균 수명이 최근의 평균 수명과 비교했을때 대략 10년 정도 적은 수치였다. 뭐 나같은 사람이야 그런 고통은 티끌만큼도 알 수가 없겠지만 수명과 맞바꾼 피고름의 결과라니 쉽게 볼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오쿠다 히데오 선생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니 선생님 모쪼록 건강 챙기세요 선생님 작품 길게 보고 싶으니. 쓰고보니 뭔가 아무말 대잔치 같은건 안비밀. 무튼 그렇게 탄생한 이번 작품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이 한데 모아져 엮어진 책이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단편 6편과 작가가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와의 대담 2편, 그리고 그야말로 쇼트 쇼트 스토리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단편들 모두 오쿠다 히데오 만의 유쾌하고 가독성 있는 필체가 잘 녹아 있어 각각이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단편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등장인물이 같아 연작처럼 읽을 수도 있지만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서 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다음에 나오는 세번째 단편 '드라이브 인 서머'였다. 이 이야기는 한 부부가 한 여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젊은 남자을 태우고 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데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 있어 답답하면서도 실소가 터지는 웃픈 스토리로 오쿠다 히데오 만의 유쾌하고 엉뚱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월드컵 때 실제로 있었던 일본과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크로아티아 사람의 입장에서 쓴 단편보다 더 짧은 이야기 쇼트 쇼트 스토리 '일본 vs 크로아티아'는 작가 자신도 바보같은 스토리지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고백 했는데 이 이야기는 바보 같다기 보다는 약간 병맛같은 느낌의 독특한 이야기이다. 일본 사람(작가 본인)이 크로아티아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는 자체가 그리 말이 되지 않지만 그마저도 오쿠다 히데오 작가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뉴스에 나온 사건을 보고 모티브를 삼아 쓴 단편 '더부살이 가능'과 17살의 소녀와 엄마의 심리를 잘 그린 단편 '세븐틴', 그리고 작가가 7살때 실제로 큰이모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성장소설 '여름의 앨범' 까지 각각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7살 소년의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의 단편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여기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좋았던 이야기이다.

단편 외에도 작가가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와의 대담은 글을 쓸때 어떻게 영감을 받고 어떤 고충이 있는지 등등 소설로 말하는 작가가 아닌 실제로 작가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그동안 장편 소설로만 접해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집은 나에게 뭔가 보물같은 느낌이랄까. 출판사에서 받은 단편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써낸 단편들을 모아 대담과 함께 엮어낸 이번 작품집은 오쿠다 히데오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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