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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최근 사람의 평균 수명을 찾아보는 거였다. 한국이나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식생활도 비슷한데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꼽히는 장수 국가로 알려져 있다. 빨간 띠지에 무시무시하게 악마의 길이라느니 16년 후에 죽는다느니 했으니 딱히 작품집을 읽는데 필요한 지식은 아니지만 뭐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도 최근들어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복지에 대한 법이 바뀐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나왔는데 작가가 말한 악마의 길은 창작의 고통을 겪는 작가의 길이고 그런 고통을 받는 작가들, 여기서 말하는 작가들이란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말하는데(생각해보니 자기 자랑 같음) 평균 수명이 최근의 평균 수명과 비교했을때 대략 10년 정도 적은 수치였다. 뭐 나같은 사람이야 그런 고통은 티끌만큼도 알 수가 없겠지만 수명과 맞바꾼 피고름의 결과라니 쉽게 볼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오쿠다 히데오 선생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니 선생님 모쪼록 건강 챙기세요 선생님 작품 길게 보고 싶으니. 쓰고보니 뭔가 아무말 대잔치 같은건 안비밀. 무튼 그렇게 탄생한 이번 작품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이 한데 모아져 엮어진 책이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단편 6편과 작가가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와의 대담 2편, 그리고 그야말로 쇼트 쇼트 스토리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단편들 모두 오쿠다 히데오 만의 유쾌하고 가독성 있는 필체가 잘 녹아 있어 각각이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단편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등장인물이 같아 연작처럼 읽을 수도 있지만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서 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다음에 나오는 세번째 단편 '드라이브 인 서머'였다. 이 이야기는 한 부부가 한 여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젊은 남자을 태우고 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데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 있어 답답하면서도 실소가 터지는 웃픈 스토리로 오쿠다 히데오 만의 유쾌하고 엉뚱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월드컵 때 실제로 있었던 일본과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크로아티아 사람의 입장에서 쓴 단편보다 더 짧은 이야기 쇼트 쇼트 스토리 '일본 vs 크로아티아'는 작가 자신도 바보같은 스토리지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고백 했는데 이 이야기는 바보 같다기 보다는 약간 병맛같은 느낌의 독특한 이야기이다. 일본 사람(작가 본인)이 크로아티아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는 자체가 그리 말이 되지 않지만 그마저도 오쿠다 히데오 작가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뉴스에 나온 사건을 보고 모티브를 삼아 쓴 단편 '더부살이 가능'과 17살의 소녀와 엄마의 심리를 잘 그린 단편 '세븐틴', 그리고 작가가 7살때 실제로 큰이모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성장소설 '여름의 앨범' 까지 각각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7살 소년의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의 단편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여기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좋았던 이야기이다.
단편 외에도 작가가 좋아하고 영감을 받은 아티스트와의 대담은 글을 쓸때 어떻게 영감을 받고 어떤 고충이 있는지 등등 소설로 말하는 작가가 아닌 실제로 작가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그동안 장편 소설로만 접해왔기 때문에 이번 작품집은 나에게 뭔가 보물같은 느낌이랄까. 출판사에서 받은 단편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써낸 단편들을 모아 대담과 함께 엮어낸 이번 작품집은 오쿠다 히데오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