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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ㅣ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엉뚱하게도 표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일본에는 별의별 도서대상이 다 있구나 였다. 일본 서점 대상은 이제 흔히 들을 수 있는 타이틀이지만 철도 서점 대상은 처음 들어본 대상이었다. 참 깨알같이 나누었구나 싶다. 일본에서는 철도가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 그런지 철도서점 대상도 있을법 하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뗄래야 뗄 수 없는 펭귄 일러스트! 몇 해 전 TV에서 본 남극의 황제 펭귄이 관한 다큐를 보고 단숨에 좋아진 동물이기도 해서 철도 역무원 모자를 쓴 펭귄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제목도 그렇고 명물처럼 여겨지는 가게에서 배달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동물들처럼 펭귄이 역무원으로 일한다는 내용인 건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했다. 띠지에는 감동 판타지라고 적혀 있지만 감동은 있어도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 처럼 전철에서 진짜 펭귄과 마주친다면 이게 판타지인가 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은 4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서로 얽힌 연작처럼 읽혀지는 구성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네 사람이 한적한 전철역의 분실물 센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고 보면 한없이 지루하고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여기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조합의 등장인물(?)들이 소설을 특별하게 해준다. 공업단지 밖에 없는 한적한 무인역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 말하기도 힘든 이곳에는 빨간머리를 한 역무원과 펭귄이 있다는 것. 한적하다고는 하나 도심 한가운데 펭귄이 있다는 건 무척 위화감이 든다. 분실물 센터로 가는 도중 펭귄을 만난 인물들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흠칫 놀라지 않을까. 그리고 날라리 같은 인상을 주는 빨강머리와는 대조적으로 착실하게 차려입은 역무원 유니폼과 공손한 말투의 분실물 센터의 역무원 모리야스 소헤이 라는 청년. 이 두 조합 만으로도 소설은 벌써 특별 해진다. 소설의 첫인상은 물론 지루할 만큼 평범했다. 죽은 애완묘의 유골함을 잃어버린 여자에서 시작해 처음 받은 러브레터를 잃어버린 히키코모리 고딩, 거짓말로 일관된 삶을 살던 어린 주부, 소중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중년의 남자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그 지루함과 평범함은 뭔지 모를 마음속의 감동이 겹겹이 계속 쌓여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작은 돌로 촘촘하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돌탑이 오랜 시간 굳건히 서 있는 것처럼 하나 하나의 이야기에서 공감과 거기서 오는 감정들이 쌓여 마지막 이야기에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감동의 탑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교통수단으로는 버스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타고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전철은 나에게 아주 친근한 느낌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타 왔음에도 분실물 센터에 가 본 적은 없다. 종착역에 있다는 것 밖에는 모른다. 소헤이가 일하는 분실물 센터의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것인지 말 것 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찾아가지 않더라도 때에 따라 소중히 보관해 준다는 것. 당연히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그 물건은 어떤 의미인지. 없어서는 안되는 건지, 이대로 잃어버린 채로 있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파기하고 싶은지. 여기에는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에 깃든 각자의 기억과 추억이 서려있어 그것들을 간직할지 잊을지 아니면 파기할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분실물에 대해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내가 뭔가를 잃어버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들 것 같았다. 찾는다는 한가지 선택지만을 생각해왔던 것에서 그 물건이 나에게 가진 의미를 말이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하찮은 것인지 반드시 찾아야 할 소중한 것인지 아니면 소헤이의 분실물 센터처럼 언젠가 찾으러 갈때까지 보관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물론 펭귄이 있는 특별한 분실물 센터처럼 언젠가 찾으러 올지도 모를 물건을 오랫동안 보관해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여러가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소홀히 했던 것과 단지 물건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잊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빨강머리 역무원 소헤이와 펭귄이 있는 펭귄철도 분실물 센터는 그래서 단순히 물건 뿐 아니라 우리가 잊었던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찾아 주는 특별한 곳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이런 분실물 센터는 없겠지만 나토리 사와코의 이 특별한 소설을 읽으면서 펭귄이 있는 특별한 펭귄철도에 마음을 싣고 소중한 것을 찾아주는 분실물 센터로의 여행은 어떨까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