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원태연 필사시집
원태연 지음, 히조 삽화, 배정애 캘리그래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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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삶태기를 격하게 치르고 있는 요즘 시국까지 겹친 터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을 것이다. 원래가 집순이라 외출 횟수가 더 줄어든 것 뿐이지만 나가지 못하는 심리적 우울감이나 해를 보지 못해 오는 우울감이든 다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런 와중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 시절 가장 사랑한 원태연 시인의 신작이 18년만에 출간되었다. 딱히 수를 세고 있지는 않았지만 막상 그 시간을 숫자로 보니 참으로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시를 읽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저만큼이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태연 시인이 한창 시집을 활발히 내 줄 때에는 서점에 가면 시집 코너 앞에서 그래도 많이 서성거렸다. 꼭 원태연 시집만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읽게 해준 사람이 바로 원태연 시인과 시집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활동을 멈추었고 나의 시에 대한 마음도 멈추었다. 그 당시에도 원태연 시인 말고도 시집 코너에서 좋은 시집을 찾으면 종종 사모으곤 했다. 얼마전에도 고전 시집을 읽었는데 새삼 좋은 시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인지 원태연 시인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나도 시를 읽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만큼 그가 내 어린 시절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책을 여러번 정리하고 처분하면서도 정리하지 못했던게 원태연 시인의 시집들과 에세이였으니.



이번 신작은 필사본으로 나왔으며 기존의 시인의 시 70편과 신작 시 30편을 같이 엮어 출간되었다. 예전 시들을 읽으니 감회가 너무나 새로웠고 신작 시를 읽으면서 아 시인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시들이었는데! 하며 한동안 잊고 있던 시적 감성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필사 시집인 만큼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더 시적 감성에 젖게 해준다.



재미있는건(?) 단락의 마지막에 누군가 직접 쓴듯한 필사를 볼 수 있는데 알고 보니 시인의 필사였다. 아니 작가님 너무 신경안쓰시고 쓰신거 아니세요? ㅋㅋ 이건 뭐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좋게 봐줄 수 만은 없을 듯. 악필은 천재라더니 그말이 맞는거 같기도 하고. 하긴 요즘은 손으로 쓰기 보다는 폰트로 쓰는 시대이니 악필이건 명필이건 작품이 중요하니까. 암튼 뭔가 다른 필사 시집에서는 본적 없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구성인것 같다. 참고로 이 시는 맨 처음에도 나오는데 원태연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시이기도 하다.



사실 원태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뒤늦게 천천히 보니 필사 시집이었다. 필사 시집이 아니더라도 아묻따 읽었을거였기에 딱히 다른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필사라고 하면 시의 내용보다 사실 우선 떠오르는게 '필체'이다. 요즘은 이런 필사 시집이나 캘리그라피가 유행이지만 나로써는 딱히 흥미를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딱히 악필은 아니지만 명필도 아니고 예쁘다고 할만한 글씨도 아니어서 이런 양질의 종이와 감성적인 일러스트, 명시 옆에다가 내 악필을 끼얹는게 다소 양심없는(?) 일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괜히 빈 종이에 연습 한번 해보고 써야겠다 싶어 써보면 꽤 잘쓴 것 같아 필사본에 쓰면 괜히 긴장감이 들곤 해서 글씨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다. 잘 써야지 하는 마음에 더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집중해서 시를 쓰다보니 쓸데없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고 글씨를 잘 써야겠다는 마음에 더욱 집중해서 쓰다보니 그 시가 더욱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듯 했다.

시의 내용이 먼저이건 필체가 먼저이건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우선이건 우선된 마음에 집중해 필사 하다보면 어느 덧 시가 마음에 들어와 있고 그 잠시나마 요즘의 우울감은 조금이나마 옅어진다는게 좋았다. 우울감이 들기 쉬운 요즘이라면 원태연 시인의 시와 감성적인 일러스트에 마음을 담아 필사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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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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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은 아니지만 조금은 낯이 부끄럽게도 난 어떤 형태의 예술이건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들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려운 주제임에도 그것을 나같은 사람이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지만 그것들을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의 묵직한 무게감이 있다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냥 봐도 난해한데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면 그건 최악인 것. 미술 작품 보는걸 좋아하지만 딱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것도 그렇다고 꾸준히 전시회를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작품을 보거나 그 작품이나 작가의 히스토리를 보는 것만은 좋아하는 편이다. 나에게 미술이란 흥미는 있으나 어려운 분야이고 알고 싶은 분야이다. 사진도 마찬가지. 천경우라는 작가는 그래서 처음 듣고 접하는 낯선 작가이다. 더더구나 작가가 하는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를 하는 전시형태를 직접 본 적 조차 없다. 그런 작가의 작업노트라니 일단 궁금했고 흥미로웠지만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난해하거나 복잡한 것들 중에서도 그 작품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작품들이 좋을때가 있다. 그게 소설이건 영화건 시이건 미술작품이건 말이다. 그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나만의 느낌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 물론 여기에 실린 25개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에게는 그저 낯설었을뿐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읽는다면 누구든 어렵다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읽고도 어려운 작품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주 낯설지만 어쩐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 좋다 라는 느낌이랄까.

이 책이 실린 작품 중 가장 인상깊었고 참여까지 하고 싶었던 건 ‘고통의 무게(The Weight of Pain)’ 였다. 빨간 보자기 속에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돌을 담아보라는 거였는데 고통을 어떻게 한낱 돌맹이로 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나라면 얼마만큼의 돌을 넣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나라면 아무것도 싸지 않을 것 같았다). 단순한 행위임에도 그 순간 사람들은 한없이 진지하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서로 마주 앉아 서로의 어깨에 손을 한동안 얹어 놓는다거나 인도의 도시락 배달부에게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배달해주고, 땅속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이프에 자신만의 메세지를 새겨 넣는 등 많은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들이 하나하나 내 마음에 그렇게 자리잡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 좋다’ 라는 느낌이 서서히 마음에서 퍼저나갔다.

소소한 기억의 장소들은 흩어지고 미디어 속 세계에서 떠도는 타인의 삶, 가상의 공간을 배회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점점 늘어간다. 동일한 시대,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각자의 내면과 시간 속으로 우리는 매일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는 대로 스스로가 속한 공간 고유의 그림을 담고 살아간다.

본문 85p 중

나에게 전시회란 완성된 결과물을 선보이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물음이 비로소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울림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는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와도 같은 일이며 그것은 크고 작은 역사와의 만남이기도 하다.

본문 121p 중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낯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도 같다. 내게 그 첫 번째 누군가는 작업의 대상이 되거나 작업에 참여하여 공동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다.

본문 124p 중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프로젝트들을 실현해 오는 과정 중 늘 결정적인 단계는 불안하고 작은 모험을 위한 첫 편지를 띄우는 일이었다. 스스로 자초한, 혼자서는 실현 불가능한 어려운 작업의 조건들은 항상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숨겨진 좁은 통로를 찾는 노력을 요구한다.

본문 165p 중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어떤 프로젝트라도 결코 작가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다. 이는 평정심과 겸손함을 조금 더 갖게 해주지만 불안감 또한 감수해야 한다는, 변하지 않는 작업의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위태로움은 어느덧 내가 사랑하는, 새로운 발견을 위한 설렘과 흥분의 여건이 되어 있었다.

본문 202p 중

공공장소에서의 퍼포먼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예측 불허의 위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개방성과 익명성이 주는 공공장소의 자유로움은 때론 한없는 소외의 섬으로의 안착이 되기도 한다.

본문 209p 중

한번은 자세히 보니 한 참가자가 자신의 손을 상대의 어깨 위로부터 1센티미터쯤 공중에 벌을 서듯 살짝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대의 손의 무게를 감지하지 못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편히 상대의 어깨에 온전히 의지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힘이 빠져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상대도 편히 내려놓는다. 어떤 이들의 맞잡은 두 손은 오랜 관계의 확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적당한 짐은 적당한 가벼움이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배운 진리는 이상하게도 정작 제때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 퍼포먼스는 산세바스티안을 시작으로 베를린, 브레멘, 프라하를 거쳐 서울, 코펜하겐까지 다리가 놓이듯 몇 년 동안 이어졌다. 어느 도시를 가도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특별한 작은 충돌의 경험들만이 쌓였고 모두가 고유했다. 의지함burden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의지됨support이 있었다.

본문 258p 중

나에게 전시는 완성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장소의 새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다. 만남이 쌓여가는 동안 이 사진들은 나이가 들고 사진의 주인들과도 조금씩 이별을 하고 있다. 그리고 「Thousands」의 여정은 계속된다.

본문 316p 중

설치가 끝나면 항상 도로는 원상 복구되었고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작품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시민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로 에너지 원료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도 우리 곁에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길 기대하였다. 때로는 우리가 자리를 내줄 미래와의 대화같이도 느껴졌다.

본문 344p 중

직접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작품들의 의미를 느끼고 보면서 정작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작품이나 작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작품 활동을 하는가 하는 궁극적인 물음이었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하니 답을 알 수는 없으나 책을 다 읽고 북마크 해둔 마음에 남는 문구들을 읽다보니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소통」. 꽤 긴 시간 머나먼 거리의 다른 나라에서 수 백 수 만의 사람들과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하나 하나의 디테일한 작품 설치를 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수고로움에는 낯선 나라와 공간,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 타인들에 대한 이해까지도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대로 직접 느끼는 물리적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소통을 위한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히 어렵다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참여를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물리적 소통 없이는 느낄 수 없다. 같이 있어도 손바닥만한 액정속에 갇힌 지금의 사람들을 위해 그 수고로움이 계속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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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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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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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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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는 밤, 혼자, 순찰, 수상한 소리나 움직임, 미스터리한 사건, 죽음 정도라서(미스터리 처돌이) 이 소설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다. 작고 얇은 문고본이라 흠 금세 읽겠군 하면서 시작한 소설은 내 예상과는 한참 비켜간 그것이었다.

 

일단 소설의 형식은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남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경비 일지 또는 일상의 잡담같은 형식인데 정말 누군가의 블로그를 들어다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일기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자신의 관심사를 순서없이 올린 듯 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 만약 이런 블로그가 있다면 읽어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건 안비밀. 마음만 먹으면 두세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두번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보다는 이 소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내가 뭘 느껴야할까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말하자면 내게는 조금 어려웠달까.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않고 그것을 하는 것. 이 이야기는 천삼백팔십세개의 문장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천삼백팔십세개의 문장에 매달려 있는 천삼백팔십세 개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문장이 천삼백팔십세 개일 때 단어는 일만일천육백사십두 개가 된다. 나는 그것을 다시 자음과 모음으로 나눌 수 있고 그것이 쓰여진 분과 초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며 비트와 코드와 서버로 이루어진 공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그것을 우리의 내면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떠돌게 내버려둬야 한다.

본문 9p 중

 

두번을 읽고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소설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그냥 정말 블로그에 ‘나’가 공유한 일기를 읽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원래 그런거 아닌가). 아직 졸업하지 않은 대학원생 ‘나’는 문학과 시, 영화에 관심이 많고 코딩에 대해서 배우는 프랑스에 있는 학교 에콜42에 입학하고 싶어한다. 연초에 쓰기 시작했으므로 한 해 동안의 계획도 써보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서울의 관문이랄 수 있는 서울 스퀘어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의 생각과 일들을 일기로 쓰기도 하며 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 있었던 일이나 거기서 만난 관심이 가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쓴다. 실존하는 시인의 이름으로 좋지 않은 일화를 썼다가 항의를 받기도 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늘어놓는, 도시의 혁명을 꿈꾸는 조지(훈)이 해킹으로 밤의 미디어 파사드에 그들의 메세지를 내보내는 일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하기 그지 없는 블로그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런 내용이 아닌 정말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기록했다면 읽어볼지도 모르겠다.

 

 

반면, 야간 경비원이기에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블로그 기록 형식의 소설은 이들을 낮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경비원이라는 존재는 분명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만 유니폼 너머의 그들의 존재는 사람들의 인식속에는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의 죽음, 인식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평소 그들을 신경써서 인식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높은 빌딩에 몰래 올라가 전경을 찍거나 밤의 고요함을 틈타 파사드에 메세지를 송출하는 도시해커. 요즘은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시대니까. 좋은 말로 해서 힙스터거나 아니면 관종이거나. 아니면 처우가 좋지 못한 '투명 인간'들에 대한 관심 촉구이거나 이려나. 작가의 말에도 해설이 부족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지돈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읽기 어려운 문장들은 아니었으나 딱히 재미있다고도 하지 못하지만 흥미로운 소설이었달까. 말도 안되게 어렵거나 지루했다면 두번은 못읽었을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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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후지사키 사오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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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기 밴드 Sekai no Owari의 멤버 후지사키 사오리의 데뷔소설이자 첫 소설로 단숨이 158회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른 소설 <쌍둥이>는 그녀의 유년시절에 대한 자전적 성장 소설이자 밴드가 결성되고 꿈을 이루기 까지의 성공담을 담은 이야기이다. 친구를 사귀는데 서툴어 늘 피아노가 가장 친한 친구인 14살 소녀 나쓰코는 어느날 자신과 비슷하게 외로워 보이던 한 학년 선배인 쓰키시마에게 말을 걸고 둘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가 된다. 쓰키시마의 마음과는 달리 나쓰코는 쓰키시마에게 이성적으로도 좋아하지만 그런 쓰키시마는 나쓰코에게 때때로 상처되는 말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게 가끔 만나는 친구로 인연을 쌓아가던 중 쓰키시마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미국 유학을 가게 되고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애써 쓰키시마가 없는 생활을 해왔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돌아오고 싶다던 쓰키시마에게 나쓰코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지만 그 순간 쓰키시마는 쓰러지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쓰키시마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되고 가끔 나쓰코를 만나 이야기 하지만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게 되어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연을 이어간다. 대학을 간 나쓰코와 프리터로 살아가는 쓰키시마는 어느날 밴드를 결성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과정에서 두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도 주지만 다른 듯 닮음을 알고 이제는 자신의 꿈이 된 밴드를 위해 고군 분투 한다.

쓰키시마는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만큼 늘 우울감을 느끼고 공항장애 때문에 불연듯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다 성격도 제멋대로라 나쓰코에게 자주 상처를 준다. 화자인 나쓰코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쓰키시마와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다. 자기가 내킬때 나쓰코를 불러내고 찾아오면서 상처되는 말은 서슴없이 하고 밴드를 할 생각도 없는 나쓰코에게 당연하다는 듯 밴드 멤버로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말들로 나쓰코에게 상처를 준다. 그럴때면 늘 피아노와 함께 하고 마음의 상처도 혼자 견뎌내는 나쓰코에게는 유학을 가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쓰키시마는 그저 사치스러운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쓰키시마가 싫었다. 쓰키시마만 아니었다면 나쓰코는 어쩌면 피아노로도 성공가도를 갈지도 모른다. 마음의 병쯤은 하나쯤 있는 지금의 많은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은듯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쓰코는 왜 쓰키시마를 놓지 못할까. 쓰키시마에게 그토록 휘둘리면서 상처받고 도리어 사과를 하는걸까. 그러지 말라고 몇번이나 마음속으로 말했지만 그럴수록 쓰키시마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쓰코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병이라는 방패 뒤에서 나쓰코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쓰키시마가 싫었다.

어쩌면 쓰키시마가 아니더라도 피아노로 성공할 수 있는 나쓰코였고 쓰키시마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소녀 시절 피아노를 제외하면 그로 인해 위로도 많이 받았으며 숨쉬게 해준 유일한 사람으로, 반쯤은 억지였지만 밴드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이라서일까. 그건 나쓰코만이 알 일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들이나 생각들을 반드시 누군가 공감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위로받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밴드 멤버로서 전혀 다른 분야인 소설에 도전하게 된 것도 같은 밴드 멤버인 후카세의 제안이라고 한다. 실제로 쓰키시마의 캐릭터는 후카세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고 멤버중 한명은 쓰키시마가 처음 무대를 할 때 처럼 삐에로 분장을 하고있다. 작가인 사오리가 소설을 쓰면서 힘들어 하면서도 자신을 투영한 나쓰코에게 위로도 받으며 함께했듯이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함께 성장했고 밴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꿈을 이루었다는 것만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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