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원태연 필사시집
원태연 지음, 히조 삽화, 배정애 캘리그래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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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삶태기를 격하게 치르고 있는 요즘 시국까지 겹친 터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을 것이다. 원래가 집순이라 외출 횟수가 더 줄어든 것 뿐이지만 나가지 못하는 심리적 우울감이나 해를 보지 못해 오는 우울감이든 다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런 와중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 시절 가장 사랑한 원태연 시인의 신작이 18년만에 출간되었다. 딱히 수를 세고 있지는 않았지만 막상 그 시간을 숫자로 보니 참으로 오래간만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내가 시를 읽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저만큼이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태연 시인이 한창 시집을 활발히 내 줄 때에는 서점에 가면 시집 코너 앞에서 그래도 많이 서성거렸다. 꼭 원태연 시집만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를 좋아하고 많이 읽게 해준 사람이 바로 원태연 시인과 시집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활동을 멈추었고 나의 시에 대한 마음도 멈추었다. 그 당시에도 원태연 시인 말고도 시집 코너에서 좋은 시집을 찾으면 종종 사모으곤 했다. 얼마전에도 고전 시집을 읽었는데 새삼 좋은 시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인지 원태연 시인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나도 시를 읽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만큼 그가 내 어린 시절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책을 여러번 정리하고 처분하면서도 정리하지 못했던게 원태연 시인의 시집들과 에세이였으니.



이번 신작은 필사본으로 나왔으며 기존의 시인의 시 70편과 신작 시 30편을 같이 엮어 출간되었다. 예전 시들을 읽으니 감회가 너무나 새로웠고 신작 시를 읽으면서 아 시인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시들이었는데! 하며 한동안 잊고 있던 시적 감성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필사 시집인 만큼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더 시적 감성에 젖게 해준다.



재미있는건(?) 단락의 마지막에 누군가 직접 쓴듯한 필사를 볼 수 있는데 알고 보니 시인의 필사였다. 아니 작가님 너무 신경안쓰시고 쓰신거 아니세요? ㅋㅋ 이건 뭐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좋게 봐줄 수 만은 없을 듯. 악필은 천재라더니 그말이 맞는거 같기도 하고. 하긴 요즘은 손으로 쓰기 보다는 폰트로 쓰는 시대이니 악필이건 명필이건 작품이 중요하니까. 암튼 뭔가 다른 필사 시집에서는 본적 없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구성인것 같다. 참고로 이 시는 맨 처음에도 나오는데 원태연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시이기도 하다.



사실 원태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읽어야 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뒤늦게 천천히 보니 필사 시집이었다. 필사 시집이 아니더라도 아묻따 읽었을거였기에 딱히 다른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필사라고 하면 시의 내용보다 사실 우선 떠오르는게 '필체'이다. 요즘은 이런 필사 시집이나 캘리그라피가 유행이지만 나로써는 딱히 흥미를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딱히 악필은 아니지만 명필도 아니고 예쁘다고 할만한 글씨도 아니어서 이런 양질의 종이와 감성적인 일러스트, 명시 옆에다가 내 악필을 끼얹는게 다소 양심없는(?) 일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괜히 빈 종이에 연습 한번 해보고 써야겠다 싶어 써보면 꽤 잘쓴 것 같아 필사본에 쓰면 괜히 긴장감이 들곤 해서 글씨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다. 잘 써야지 하는 마음에 더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집중해서 시를 쓰다보니 쓸데없는 생각들은 들지 않았고 글씨를 잘 써야겠다는 마음에 더욱 집중해서 쓰다보니 그 시가 더욱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듯 했다.

시의 내용이 먼저이건 필체가 먼저이건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우선이건 우선된 마음에 집중해 필사 하다보면 어느 덧 시가 마음에 들어와 있고 그 잠시나마 요즘의 우울감은 조금이나마 옅어진다는게 좋았다. 우울감이 들기 쉬운 요즘이라면 원태연 시인의 시와 감성적인 일러스트에 마음을 담아 필사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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