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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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교회와 기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중학교 1학년 성탄절을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감리교의 김창준 원로목사와 장로교를 대표하는 윤인구 목사의 설교가 신앙의 길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163p). 일제 강점기의 시회적 시련을 치르면서 기독교의 사명에 대해 도산 안창호와 고당 조만식 장로로부터 배우고 깨닫기 시작했다(164p). 그리고 교회신학과 교의학보다는 ‘인간의학’으로서의 철학과 인문학 분야에 더 큰 관심과 기대를 갖었다고 한다(165p). 그래서 그는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기보다 철학도로서의 신앙인이 되었다(166p).

최근에 다시 펼쳐본 바빙크의 #개혁교의학개요 “1장 사람의 최고선” 의 마지막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해결되는 수수께끼다.”라는 문장이다. 바빙크의 사유를 빌려 생각해본 바로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근원, 존재(이유), 목적 등 답을 알고 있다. 아니, 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답으로 생각하며 믿고 싶어하는 것들, 누가봐도 오답인 것들에 투자하는게 답을 알고 있는 자에겐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답정리는 전교1등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과정이다. 책을 읽는 동안 성경의 전도서가 오버랩되었다.

이 책은 과거 두란노서원에서 ‘신앙인을 위한 인문학적 과제들’을 정리해서 출판된 책이다. 가독성이 좋았지만, 생소한 인문학적 기본 베이스에 익숙해지지 않아 초반에 매우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1강은 인문학과 더불어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비교하여 인문학이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는 학문인지를 소개한다 2강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이다. 여기까지는 내용적으로도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어서 깊이 인내해야 했다. 3강은 종교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을 종교의 모순, 죽음, 신앙의 체험 등으로 살핀다. 그리고 4강에서는 앞에서 언급되었던 파스칼과 키르케고르의 관점들을 빌려와 기독교와 진리의 문제를 다룬다.

내게 3강과 4강은 매우 명확하고 동의가 되었지만 2강에서 3강으로 인문학에서 기독교로 넘어갈 때에 비신앙인들에게는 비약이 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완벽히 극복할 수는 없다. 오직 신앙이 생길 때 모든게 풀어진다.

감사한점은 스스로 이 책을 읽진 않았을 것 같다.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다.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걸음”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책의 제목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해준다.

18p 인문학은 인간과 역사에 나타나는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사회과학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 자체를 연구하며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81p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을 현실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전인적인 작용과 활동에서 그 본질과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118p 이런 죽음에 이르는 병은 과학이나 정신적 태도로 태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의 말씀이라는 극약 처방과 신의 사랑이라는 수술을 받는 것 같은 자기부정의 원리가 필수 조건이 된다. 앞에서 거론한 파스칼의 말처럼 신앙은 내 생명과 전 인격을 건 도박이다. 잃게 되면 자아라는 전체가 무로 돌아간다. 그러나 얻게 되면 자아는 물론 영원과 삶의 실제를 차지한다. 이처럼 종교는 정신적 심각성, 생명의 고귀성, 인격의 절대성이 요구되며 그것으로부터 주어지는 문제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신의 참여인 것이다.

150p 그러므로 기독교가 요청하는 것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질서를 인정하며 그 질서를 통해 신의 뜻과 인간의 의의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서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질서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자연 법칙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법칙은 알 수 있어도 그 의미와 가치와 목적은 제대로 모른다. 그것은 자연 법칙을 지배하고 있는 자연을 초월한 질서가 더 큰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83p 파스칼과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종교적 진리는 주체적인 것이라는 키르케고르의 견해에 이르게 된다. 키르케고를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보는 이유는 그가 최초로 ‘주체성이 진리이다’라는 결정적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218p 지혜로운 시인이었던 괴테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염세주의의 대표자인 쇼펜하우어도 의지의 무의미한 영속성을 믿었다. 모든 것을 긍정하려고 노력한 니체마저도 세계의 운명을 생각할 때는 영구회귀(永久回歸)의 사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223p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심 사이에는 커다란 질적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 자비는 범신론적인 넓은 사랑을 말한다. 생명계의 공감과 동일한 운명에 대한 동정심에서 기인한 사랑이다. 모든 동물에게도 똑같이 생명의 존엄성이 있으며, 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의 근원은 넓은 자비심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은 생명계로 향하는 공감이나 동정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계의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사랑을 초월적 실재이신 신으로부터 받아 완성시킨다는 데 본래 의미와 목적이 있다. 우리는 동정심을 넓히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 의해 인간의 운명과 생명을 구출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의미다.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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