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50만 부 기념 우리들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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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의지대로 된다." - 쇼펜하우어 -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는, 믿는대로 될 것이다." - 헨리 포드 -

 

 

초등학교 교사로서 경력이 늘어갈수록 나는 학습에 있어 동기부여야말로 학생의 성공과 성취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동기부여는 학습활동에 참여하고, 과제를 완수하고, 학문적 우수성을 위해 노력하려는 학생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동기 부여의 이론적 개념은 언뜻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학생의 동기 부여에 기여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적 동기부여와 내적 동기부여가 그것이다. 외적 동기부여는 외부 소스에서 오는 보상, 인정 또는 기타 유형의 인센티브에 대한 욕구를 말한다. , 칭찬과 금전적 보상 또는 기타 형태의 인정과 같은 외부 보상 등이다. 학생은 부모, 교사 또는 동료로부터 칭찬과 금전적 보상 등을 위해 우수한 학업성적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외적 동기부여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지속 가능한 동기로는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외적 동기부여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 외부 보상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학생은 해당 보상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동기부여의 기제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내적 동기부여는 학업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내재적 요인을 말한다. 지식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갈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주변 세계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타고난 욕구를 가진 학생들은 학업적으로 배우고 탁월해지려는 동기를 부여받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특정 주제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학생은 학급 토론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추가 조사를 수행하며 이해를 심화할 기회를 찾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관심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이러한 내적 동기는 배움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최소한의 요구 사항을 넘어서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내적 동기부여는 종종 학습 과정 자체에서 파생되는 더 깊은 수준의 참여와 만족감으로도 이어질수 있다. 이는 내적 동기가 부여된 학생은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거나 기술을 습득할 때 기쁨과 성취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이다. 내적, 외적으로 나뉘어지는 두 가지 동기부여의 요소들 모두 학업 동기와 성장을 위한 강력한 동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 가지 요인을 잘 이해하고 균형있게 관리하는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본질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활용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위한 외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학습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속성과 파급력, 중요도 관점에서 외적 동기부여 보다는 내적 동기부여가 잘 조성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 스스로가 어떻게 내적 동기부여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들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나를 비롯한 모든 교육자의 숙제일 것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던 시기에 우연히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접하게 되었다. 먼저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라는 책의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청소년 도서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원동력은 이 책이 '공부'의 본질에 대해 동기부여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 어떤 공부방법론이나 일타 강사의 강의도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학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서 자랐지만, 오로지 마음가짐하나로 원하는 대학 모두에 합격한 저자 자신의 사례가 이에 대한 강력한 물증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여느 보통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의 방황과 고난을 겪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친근한 선배의 목소리로 공부에 지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건낸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용기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응원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15년에 이 책의 초판을 접한 후로 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왔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따라서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미래를 그리는 것은 그림 보다는 사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짧은 삶 동안 그려온 궤적은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고, 불분명해 보이는 선들과 잘못 그은 선을 다시 덧대며 수정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빛나는 미래가 차츰 윤곽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이 학습하면서 또,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꿈꿔 나가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이 책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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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브너 무작정 따라하기 - 작가를 위한 단 하나의 프로그램
최은광 지음 / 길벗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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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브너(Scrivener)는 긴 문서나 시나리오, 장편 소설 등 산문을 작성하는 것에 특화된 워드세스프로그램이다. 솔직히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쓰기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부터 논문이나 리포트 등을 써야 하는 학부 및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스크리브너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스크리브너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스크리브너를 홍구하는 문구나 수식어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작가의, 작가에 의한, 작가를 위한", "작가를 위한 단 하나의 프로그램"<스크리브너 무작정 따라하기>를 쓴 저자 최은광 작가가 스크리브너를 소개하는 문구이다. , '빈 화면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라는 책의 표지에 표기되어 있는 문구는 스크리브너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스크리브너는 MS Word나 아래아 한글 같은 범용 워드프로세서와 달리 단순한 문서 입출력 기능에서 그치지 않고, 자료수집과 저장 기능, 전체적인 글의 구조를 형상화할 수 있는 아웃라이닝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스크리브너가 궁극의 집필 프로그램이라고 불리고 있다.

 


 

스크리브너가 가장 크게 두각을 나타낼 때는 긴 글을 쓸 때라고 알고 있다. 작가 자신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한 모든 것을 이 프로그램 안에 다 담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프로그램 자체에 아웃라이너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글 작성시 개요를 잡고 글의 얼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용이하다. 글의 전체적인 구성을 아웃라이닝한 후에 소주제로 나누어 마디마디 별로 글을 잘라 쓴 후에 이렇게 마디별로 쓴 글을 Draft에 폴더 형식으로 저장할 수 있다. 또한 Research 항목에는 텍스트 파일 형식의 자료는 물론, PDF 파일이나, 동영상, 오디오 등 파일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수집한 방대한 자료도 물론 아웃라인화하여 정리할 수 있고, 집필에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개발사인 Literature & Latte에서 스크리브너를 단순한 워드프로세서가 아닌, '생산성 앱'의 범주로 구분한 것도 수긍이 간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보유하고 있는 스크리브너이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려고 하고 있지만 솔직히 스크리브너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크리브너가 보유하고 있는 너무나 방대한 기능 때문이다. PDF파일로 제공하고 있는 스크리브너의 공식 매뉴얼은 800페이지가 넘는다웬만한 전공서적 이상의 분량을 갖추고 있는 공식 매뉴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크리브너는 여타의 워드프로세서나 문서작성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학습이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스크리브너에 관심을 가지고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저 엄청난 진입장벽에 질려 다른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 이미 스크리브너를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도 주로 자신들이 익힌 기능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평소에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스크리브너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사용하기 위해 시도를 해봤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돌렸던 경험이 있다.

 


 

<스크리브너 무작정 따라하기>의 구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Chapter 01 시작하기 전에'에서는 스크리브너(Scrivener)란 어떤 프로그램인지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와 대표적인 기능 그리고 프로그램 설치와 사용환경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다룬다. 'Chapter 02 기초 기능 익히기'에서는 외관과 기본 요소를 설명하고 프로젝트 생성과 실행 저장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문서 작성과 편집하는 방법과 전체적인 글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법과 글의 보관과 발행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Chapter 03 집필의 시작 - 아이디어 정리하기'에서는 텍스트와 웹, PDF, 미디어 등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시놉시스 작성, 코르크보드로 정리하기, 스크래치패드 활용하기 등에 대하 소개하고 있다. 'Chapter 04 집필의 전개 - 체계화하기'에서는 글의 윤곽을 살펴보고, 글의 세부 분류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또한 세부 문서와 프로젝트를 재단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마지막 챕터인 'Chapter 05 집필의 마감 - 다듬어서 출판하기'에서는 인스펙터 활용하기와 글을 마지막 퇴고하는 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한, 퇴고 후 출간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스크리브너 무작정 따라하기>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스크리브러 한국판 가이드북이다. 스크리브너의 명성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이를 글쓰기에 활용해보기 위해 다각다로 시도해봤지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 진입장벽으로 인해 번번히 물러서왔던 필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따라서 나는 이북 버젼과 종이책 버젼을 모두 구매하여 틈틈히 보며 숙지를 하려고 한다. 그동안 스크리브너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사용해보려 했지만 그 방대한 기능에 눌려 포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사람 모두에게 <스크리브너 무작정 따라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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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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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물과 풍경들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하루가 모여 한해가 되고그런 한해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존재하였기에 쓸모와 필요만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삶의 루틴을 벗어나 여유를 풍경으로 두는 ''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상실' '결핍'의 경험은 우리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이러한 온도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킨다. 눈앞에 찬란하게 펼쳐져 있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는 친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지만, 우연히 먼 친척집에 맡겨지면서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게 되는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에는 상실과 결핍을 경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엄마 소가 생산해내는 우유 대신 인간이 만든 이유식을 먹으며 성장하는 송아지처럼 친부모에게서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소녀'가 그렇고, 사랑스러운 자식을 잃고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킨셀러 부부'가 그렇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올 수도 있는 반면에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수도 있다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걷는다는 것은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극복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해'이다이해는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고이미 사건을 겪었거나 체험중인 타인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이해'란 품이 드는 일이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몰이해의 꽃매의 형태로잘 포장된 예쁜 합리성의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예의를 생략하거나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다기오기도 한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오늘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p. 72)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괴물은 점점 더 포악해져간다삶의 의미는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험 앞에 선 사람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또한 소설 <맡겨진 소녀>에서 우리가 지켜본 것처럼 진실한 관계 구축은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하여 어떤 짐이라도 함께 짊어질 수 있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는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인간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있지만공존을 위한 노력이 존재할 때만이 '체험되는 시간' 만들어갈  있다는 것이다단순히 시공간만을 공유하며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체험되는 시간' 아닌 '죽은 시간'이다노력하는  사람만이 같은 장소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할  있다. 민트코프스키의 주장처럼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는 일이다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을  있는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며  시간 속에 함께 했던 경험을 담는 일이다당사자들만이 기억하는 '체험되는 시간' 만들고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손으로 잡을 수 없는 지금  순간이 손가락 사이로 슬그머니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어려운 단어 때문에 쩔쩔맸지만 킨셀라 아저씨가 단어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짚으면서 내가 짐작해서 맞추거나 비슷하게 맞출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처럼." (p. 83)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으며 나는 체험되는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 멋진 대화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은 아니라고 느꼈다처음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졌을 때 소녀는 평소의 자신으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자신으로 변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킨셀라 아저씨와 처음 손을 잡은 순간에 소녀는 그동안 아빠가 자신의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당혹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녀는 킨셀라 부부와 생활하면서 마치 자전거 타는 것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느꼈고, 전에는 갈수 없었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까지 느끼게 되었으며, 결국 자신이 자유로워졌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소녀는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자신의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은  사람 앞에서는 평소의 모습으로 처신해도 된다고 느낄  있는  상대방이 나를 온전히 포용하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온전한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레어 키건의 글은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p. 10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따라서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깊은 감동의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라는 허진 번역가의 소설에 대한 평가가 계속해서 뇌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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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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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 흔히 최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2인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환상의 복식조정도가 되려나? 국내에서는 개코와 최자로 이루어진 힙합 듀오의 이름이기도 해서 <다이나믹 듀오>라는 말은 많이 알려져 있다. 영미권 국가에서 굉장히 친숙하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해서 문득 어원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봤던 적이 있다. 그 결과 찾게 된 것은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물이었다. 바로 <DC 코믹스>의 배트맨/로빈이 그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1940년에 <배트맨 #4>에서 배트맨로빈이라는 두 영웅을 상징하는 말로 "다이나믹 듀오"가 등장했고 이후 현재까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후대 로빈들 역시 다이나믹 듀오라는 칭호를 계승하며 대를 이어오고 있다.

 


기록상의 어원으로 따지면 다이나믹 듀오의 원조는 DC 코믹스의 배트맨과 로빈이지만, 추리 미스터리 분야에서의 환상의 복식조, 다이나믹 듀오를 거론한다면 저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셜록 홈즈존 왓슨일 것이다. 사실 셜록 홈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창조한 캐릭터 중에서 매우 크게 성공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셜록 홈즈를 모티브로 하여 수많은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재창조되었으나 원작자가 만든 고유의 인격과 독특한 매력을 유지하는 불사조 같은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특히 친구인 존 왓슨과의 콤비는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콤비, 그야말로 다이나믹 듀오다. ‘셜록 홈즈는 탐정 캐릭터의 대명사이자 탐정 캐릭터들을 한 단계 진화시킨 캐릭터라고 평가받는다. 과거의 탐정들이 단순히 사건 푸는 사고 기계에 불과했다면, 홈즈는 그런 탐정 캐릭터들에게 인간다운 개성을 부여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탐정콤비, 다이나믹 듀오들은 저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명탐정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소년탐정 김전일과 미유키, 백귀야행 시리즈의 교코쿠도와 세키구치 등 수없이 많다.

 


뜬금없이 다이나믹 듀오를 거론하는 이유는 내가 최근 환상의 복식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워싱턴 포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퍼핏쇼>에 등장하는 워싱턴 포틸리 브래드쇼이다. <퍼핏쇼>의 작가 M. W. 크레이븐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데뷔작인 <퍼핏쇼>2019년 영국추리작가협회(CWA)에서 주관하는 영미 범죄문학 최고의 영광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시리즈의 2<Black Summer>3<The Curator> 역시 같은 상의 후보에 선정되었고, 특히 시리즈의 4편은 CWA에서 최고의 스릴러소설에 주는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상 (Ian Fleming Steel Dagger)'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식스턴 올드 피큘리어 올해의 범죄소설상 (Theakston Old Peculier Crime Novel of the year)' 후보에도 올라 영미권에서는 이미 대형작가임을 검증받았다. 워싱턴 포 시리즈는 영국에서는 현재 5편까지 출간되었고, 또한 시리즈는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TV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M. W. 크레이븐의 워싱턴 포 시리즈가 영미권 범죄문학 독자들은 물론 전세계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캐릭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워싱턴 포 시리즈는 & 틸리 시리즈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관으로서 누구보다 뛰어난 직감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 포는 사실 관계에 서툴고, 냉혹한 현실주의자이다. 반면 '틸리 브래드쇼'는 열 여섯의 나이에 옥스퍼드에서 첫 학위를 따고 박사학위 두 개를 추가로 취득할 만큼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데이터 분석가이자만 소통에 서툴고, 세상을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순수한 면을 가졌다. 이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케미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포와 틸리라는 매혹적인 수사 듀오, 다이나믹 듀오의 탄생이다. <퍼핏쇼>를 통해 시리즈의 첫 포문을 제대로 연 이 매력적인 다이나믹 듀오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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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리커버 에디션)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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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술혁신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는 현시점에 <열두 발자국>은 너무나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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