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거다 러너의 말이다.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되는 반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보니 가머스의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를 읽으며 처음 떠오른 단어는 '페미니즘'이었다. "저는 6시 저녁식사를 통해서 화학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여자들이 화학을 이해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테니까요."라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지론에 대해 설명한다. "저는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규칙 말이죠. 여자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그들을 위해 창조된 세상의 그릇된 한계를 보게 될 겁니다. 남성을 단성적 지도력을 갖춰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역할로 몰아넣는 인위적인 문화와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2권, 204쪽)

 

언젠가부터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사람은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 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오해되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한 젠더갈등의 핵심 키워드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한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의 주체에 대해 주목할 뿐 그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즉 페미니스트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성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도 때론 성차별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유와 평등, 해방을 위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지배와 복종, 강압, 억압과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고 대등한 입장에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페미니즘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페미니즘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그것이 가진 비전을 제대로 알리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으며, 이 보다 적합한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시 저녁식사는 인간의 공통점인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2권, 112쪽)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는 '화학에서 배운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에게만 의미 있을 것 같은, 어렵고 복잡할 것만 같은 화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시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엘리자베스는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또, "화학은 삶 그 자체인 동시에,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실제 우리의 삶 자체가 화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행위는 산화-환원 반응이고,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고분자 해중합(분해) 반응이다. 우리 몸을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해서 수많은 필수 화학물질이 생산되고 사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이 모든 화학반응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잘 몰라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화학반응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삶도, 물질의 변환도 에너지의 생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삶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면 밑에서 수많은 화학반응이 끊임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화학반응이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우리의 삶은 지속가능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의 "화학은 삶이며, 변화"라는 것은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는 페미니즘을 넘어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2권, 252쪽)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맺게 되는 인간관계도 화학의 원자 결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도 공유결합처럼 사랑과 헌신, 우정이라는 마음을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뭉치고 결합하여 내가 상대의 일부가 되고, 상대도 나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우리가 된다. 우리는 흔히 사람간의 좋은 관계를 ‘케미가 좋다 (good chemistry)’ 혹은 ‘케미가 맞는다’고 표현한다. 이는 화학반응으로 형성되는 견고한 결합만큼이나 단단한 인간관계를 비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이혼사유 역시 "성격차이 (difference in chemistry)"이다. 인간관계에서 보다 튼튼한 결합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존재가 많을수록 상실감과 공허함이 메워지고, 가치 있는 삶이 지속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좋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좋은 에너지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향상시키는 힘이 된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화학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동성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각종 차별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화학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와 같이 우리 각각은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는 이중적 성격을 띠는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6시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해요. 에이버리와 윌슨, 매드와 여섯시-삼십분, 해리엇, 월터와 어맨다까지 모여서요. 조만간 웨이클리와 메이슨도 만나보셔야 할 거예요. 온가족을 보셔야죠."

"그래요, 온 가족이 모여봐요." (2권, 297쪽)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엘리자베스는 딸인 매들린 (매드), 반려견 여섯시-삼십분과 함께 추가로 가부장적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해리엇, 새롭게 가족이 된 에이버리와 윌슨, 혈연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상처 받은 월터와 어맨다 모두와 손을 잡고 가족이 된다. 가족은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끝없이 일어나는 실수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게 삶"이란 말처럼 (1권, 298쪽), 살아가다 보면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각각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 그러한 경험을 함께 하며 더 단단해진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함께 헤쳐간다. 가족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혼인, 혈연 등으로 이루어지는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를 읽으며 나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의 개념을 사라지고, 원자화된 개인이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을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꼈다. 내가 엘리자베스 조트의 화학강의를 통해 배운 또 하나의 사실이다. 누구든지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다수가 결합한 분자도 가능하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 또는 부부와 아이라는 이른바 정상가족만이 단단한 결합이며, 가족의 기본이 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나고 화학반응처럼 단단히 서로를 지지하며 유지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조트와 그녀가 이룬 가족의 앞날에 빛이 깃들길 바란다. 애독자로서 이에 대한 속편이 출간되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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