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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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현실의 순수한 열망이 빚어낸 결정체다각각의 사상에는 열망의 실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욕망을 꿰뚫고 있는 시대적 사상들에 인류가 매혹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사상의 발전사는 인류의 욕망과 절망, 그리고 희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 의해’ 탄생하였지만사상 중에서는 ‘인류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들이 많았다사상이 ‘현실의 일면만을 반영하거나, ‘인간을 담지 못하고 변질되고때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어떤 면에서 보면 사상이라는 것은 모순투성이고 불안정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본질을 담아내지 못한 새로운 구속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념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된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인간이 희생되었던 사례를 많이 지켜봐 왔다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 받는 민주주의도 이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현실적이지 않은 제도로 여겨져 주목 받지 못했고소크라테스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희생되었다.하지만 불변의 진실은 사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야말로 좋은 변화의 출발이라는 점이다

 

"그는 거대한 장막의 끄트머리를 들췄습니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가장 무시무시한 난제인 양자 세계의 딜레마를 꿰뚫는 최초의 연약한 빛줄기입니다." (p. 155)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은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서 인류의 사상과 과학의 발전의 역사를 픽션과 논픽션의 영역을 넘나들며 서술하고 있다. 그 역사는 세상의 숨겨진 법칙과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쾌락과 고통이 점철된 역사다. 누군가는 조각난 진실의 단면에 접근하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의미와 파급효과에 의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진실 그 자체에 충격을 받고 세상을 외면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소설에는 공기 중에서 질소비료를 채취해내어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동시에 염소 가스라는 대량살상무기로 절망을 선사한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방정식을 처음으로 풀어냈지만, 이를 통해 블랙홀이라는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같이 증명해 낸 슈바르츠 실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수학의 심장 중에서도 핵심부에 접근하여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진실의 한 단면을 목격하였지만 그 진실이 가진 파급효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결국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된 삶을 택한 수학자 그로텐디크의 이야기도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와 방식을 취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고 있는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을 대표하는 소설은 책의 제목으로도 차용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이다. 이 단편에서는 인류의 가장 값진 보물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학 이론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폭넓고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다. 양자역학은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입는 옷에서 부터 생활에 필요한 필수용품들, 스마트폰과 컴퓨터과 같은 전자기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양자역학의 축복으로 인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양자역학의 세례를 받고 있고, 양자역학도 현실속에서 기적과도 같이 작동하고 있지만, 인류 중 그 누구도 양자역학이 품고 있는 역설과 모순,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없으면 삶의 근간이 무너질 정도로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양자역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세상, 그리고 삶이 내포하고 있는 진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인류가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진실을 구하기 위해 애써온 여정이 마치 우리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질서와 혼돈으로 얼룩져 있는 세계에서 상실과 결핍의 아픔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믿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는, 어쩌면 이해가 불가능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진실의 한 단면을 딛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우리의 삶과 같지 않은가?

 

이 소설이 질서와 혼돈이 뒤섞인 세상에서 한줄기 절망의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수 있는 건 책을 향한 수많은 찬사처럼 이 책은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고,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위로가 되어줄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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