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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막 일어나 아침을 준비할 때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자식들이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맞이한 죽음이었다.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별 앞에서 먼저 떠난 이는 삶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고, 남겨진 이들은 되돌릴 수도, 잊을 수도, 없던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준비 없는 이별의 슬픔을 견디며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과 죽음은 끊임없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p. 23)
하이데거는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작 (출생)이 있고, 끝 (죽음)이 있다는 것? 우리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상에 막 태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공포가 공존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된다.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의 경험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서서히 녹아든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이 비극을 면한 자들의 땅과 영원히 단절된 채 섬에 고립되는 것이다.” (p. 136)
우리 각자는 맑은 슬픔, 헛헛한 슬픔, 차가운 슬픔 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되어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작가 오르빌뢰르는 <당신이 살았던 날들>에서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죽음을 인식하면서 더 강렬하게 깨닫게 되는 삶의 아포리즘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항상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상실의 경험도 그렇지만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자체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세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른바 '아포토시스'를 통해 신체 기관들은 생명을 유지한다. 작가는 죽음은 단지 삶에서 마주치는 경험의 일부분을 넘어 생명 작용의 일환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죽음에 삶을 빚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삶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실의 경험을 애써 외면하거나 잊으라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마주하고 상실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면서 떠나간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또 남기고자 했던 말에 대해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존재의 입김은 증발하지 않고 우리 곁에서 삶에 숨을 불어넣고 있음을, 생명과 죽음이 서로 손을 마주 잡았을 때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