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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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이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 중 가장 유명한 구호 중 하나이며, 국제노동기구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 원칙 중 제1의 원칙이기도 하다. 노동이 상품이 아니라는 의미는 노동력 제공의 주체인 노동자도 상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 회원국의 정책에 지침이 되는 원칙을 선언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을 사물화했던 당시 시대상을 반성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운 노동운동 역사에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 선언이기도 하다. 이미 1944년에 인간의 존엄성은 한점의 의심도 허용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며, 당연히 논증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하지 않는, 또는 존엄성을 저해하는 모든 이론과 주장은 기각되어야 한다. 2021 현재 한국의 노동환경은 어떨까? 필라델피아 선언은 준수하며 더 발전을 이루었을까? 




“김용균은 작업지시, 업무수칙을 위반한 게 아니라 지시를 너무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죽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故 김용균씨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특조위)가 조사결과 발표시 언급한 내용이다. 특조위는 사고 발생의 원인으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원·하청 구조를 지목했다. 민영화를 위해 공정을 무리하게 쪼갠 후 여러 협력사에 외주를 준 결과, 위급상황 대비가 불가능할 만큼 현장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이 특조위의 조사결과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조위는 발전소 노동자 1만 31명에 대한 설문조사, 산재승인 통계, 건강진단 자료 등을 분석하였고, ‘위험의 외주화’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현장에 실존함을 입증해내었다. 발전소 노동자들은 원·하청 중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산재 위험 노출 수준이 결정됐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원청인 발전사 소속 노동자보다 작업 중 최대 8.9배 더 많은 사고와 중독 위험에 노출됐다. 원·하청 여부와 산재 횟수의 상관관계는 0.75로 나타났다. 이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1명 증가하면 연간 산재 사고가 0.75회 증가한다는 의미다.


특조위가 밝혀낸 사실은 또 있다. 특조위는 그동안 위험의 외주화라는 화두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던 중간착취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였다. 하청 협력사들이 현장 노동자의 몫으로 발전사로부터 받은 ‘직접 노무비’의 절반 이상을 지급하지 않고 중간착취한 사실을 지적했다. 특조위가 노동자들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를 토대로 실지급 인건비를 역산한 결과, 하청 노동자는 직접 노무비의 47~61%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균씨와 같은 협력사의 연료운전 노동자들이 발전사 정규직 연봉의 53%만 받는 사이, 협력사들은 두 자리수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었다. 특조위의 발표를 지켜 본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용균아, 엄마 지켜봐줘. 너처럼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거다”라는 절규는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까지 헤집어 놓았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작은 이유는 단 한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P. 54)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21년 1월 한국일보의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기자가 우리나라 간접고용의 실태와 중간착취의 현실에 대해 깊숙히 들여다본 기획기사에서 출발을 하였다. 사용자(원청)와 고용주(용역업체), 노동자로 구성되는 이 ‘삼각 고용’ 구조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위험의 외주화와 더불어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야 하는 중간착취에 대한 내용이다. 간접고용이라는 기이한 고용구조상에서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고, 원청의 불법 행위나 용역업체의 방관은 사라진다. 사실 간접고용의 문제점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해결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일보의 기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라는 신분으로 파견법 개정에 대한 개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에 입법청원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도 만들어 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후속기사를 지속해서 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지옥도에서 언급한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자신들의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중간착취에 대한 한국일보의 기획 연재기사는 21년 1월 25일 "노동의 대가를 도둑 맞은 100명의 이야기" 부터 시작하여 21년 8월 27일 "노무비는 100% 노동자에게... 중간착취 근절한 원청은 어디?"에 이르기까지 34회에 이르도록 계속 되고 있다.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이 ‘마법의 문장’은 수많은 사람을 간접고용의 영역으로 떠밀었다. (P. 201)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불합리와 부조리 앞에서 분노하지만 약자의 지위에 놓인 자신들의 위치에서 불안정한 고용상태 등으로 결국 체념하고 순응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고착화된 구조로 인해 착취는 더 가속화된다. 아니 오히려 착취는 더 약하고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 책에서 언급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중간착취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다. 파견업체는 왜 하필이면 왜 10여명의 이주노동자 중 아프리카인의 월급을 가장 많이 떼어갔을까?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기자들은 그 이유를 직접 언급하기 보다 우리에게 묻는다. 물을 필요도 없이 우리 모두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마법의 문장은 간접고용을 고착화시키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사지에 내몬 참 뼈아픈 말이다.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들은 중간착취 문제가 현재까지 바로 잡히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간접고용의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이 단어를 반복하여 자꾸 말하고 언급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 실재하되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선명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마법의 문장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언급하는 것조차 쓰리고 아프지만 "중간착취"라는 단어를 말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이것이 마법의 문장에 맞서는 마법의 단어인 동시에 중간착취 악습의 관행을 풀어내고 종국에는 스스로 소멸되는 불가사의한 힘이 내재된 '마력 (魔力)'의 단어인지 모른다. 우리가 중간착취를 지속적으로 언급해고 언론화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동료가, 이웃이, 내 가족이 마법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구조화된 착취에 쓰러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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