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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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하나의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다른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또, 부모가 된다는 것, , 가정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본 에세이의 부제처럼 이번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추억과 가정사를 밝히고 있다. 시대와 가치관, 성향의 차이로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는 서로를 외면하고 살았다. 언젠가부터 그와 아버지의 심리적 거리는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서로는 화해를 하지만, 하루키는 아버지라는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 이후 세월이 지나 하루키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미치 몰랐거나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그의 삶에 대해, 또 그와 나눴던 추억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p. 35)


"그 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 87)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 순간들, 행복했던 추억과 고통스러운 기억 모두 현재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 또는 뼈아픈 추억으로도 받아들 일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특정 시점, 특정 장면 등에서 느꼈던 기억으로 아버지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냈었던 하루키가 아버지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삶과 역사는 하루키 자신의 삶과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떠올리는 기억이자 본 에세이의 부제이기도 한 '바닷가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에피소드처럼 우리는 가정 안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에세이를 읽으며 아버지와 나와 공유했던 추억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 아이와 쌓아나갈 추억에 대해도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 아이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 내 아이는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하루키의 『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느끼는 죄송한 마음과 아직은 낯설고 서툰 부모로서 자식과 함께 살아갈 앞날에 대한 벅찬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p. 62)


"사고방식과 세계를 보는 시각은 달라도, 우리 사이를 잇는 연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하나의 힘으로 작용했던 것은 분명하다." (p. 87)



에세이에서 하루키가 밝힌 것처럼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은 분명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세상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아이의 꿈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이라는 존재 아닐까? 하루키가 말했듯이 사고방식과 세계를 보는 시각은 달라도, 우리 사이를 잇는 연 같은 것이 우리 안에서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 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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