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언니가 재미있다며 웹툰을 하나 추천해 주었다. <루나파크>라는 제목이었다. 10여년 전이라 내가 웹툰을 즐겨 보던 때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언니가 하는 거면 거의 다 따라하던 나였기에 재밌다는 웹툰도 컴퓨터를 켜서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휴대폰으로 안 봤던 것 같고 컴퓨터로 봤던 기억이 있다.
특히 머리에 남은 에피소드는 옷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여대생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새로운 계절이 오면 왜 이렇게 옷이 없지? 하는 그런 소소하지만 중요 리스트 중에 손에 꼽는 일이다.
나는 한창 그 웹툰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공감을 하는 나날을 보내며 졸업을 했고 일본에 취업을 해 바다 건너편에 있었다. 그 후로는 연고 없는 외국땅에서 첫 직장을 다니며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느라 한국의 재미있는 것들을 잊고 살았었다. 그리고 인연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가 생겼고 출산 후 귀국해 돌아와 아이가 재잘재잘 말할 때가 되어 이제 한숨 돌리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 이웃들의 새 글을 드르륵 드르륵 마우스로 내리며 눈으로 훑던 중이었다. 그때 젊은 마음이 가득했던 20대를 함께 했던 그 웹툰을 쓴 홍인혜 님(사실 실명을 그제야 알았다)의 책이 나왔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너무 반가웠다. 제목도 어쩜 <고르고 고른 말>이라니...웹툰의 말풍선으로 공감을 건네던 그가 이렇게 멋진 책 한 권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이 기뻤다.
책을 받고 목차를 보았다. 내가 일본에서 일하고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하는 동안 홍인혜 님은 시인이 되어 있었다. 사실 웹툰을 볼 때는 카피라이터인지 몰랐다. (어쩌면 잊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목차들이 하나 같이 다 멋졌다.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약간 두렵기도 했다. 나도 말과 글로 먹고 살았는데 내가 다루던 말과 차원이 다른 말들의 향연에 기가 죽기도 했다.
여러 이야기 중에 재미있었던 것은 '(각별한 말) 이름난 집'이었다. 나의 집에 이름을 붙여준다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회사나 가게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애정이 담기고 가장 편안해야 하는 나의 집에 이름을 붙여 준다면 그 사랑은 배가 되지 않을까. 더 애틋하고 가족 구성원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 들 것 같다. 당장은 집에 이름을 지어 줄 수는 없지만 내년에는 집에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
모두가 칩거 중인 이 시절, 부쩍 집과 친숙해진 사람이 나 뿐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당신의 집을 무어라 부르고 싶은지....이름을 붙이는 것은 좋은 시도다. 이름이 붙는 순간 더 특별해지니까. 우리는 스스로 명명한 것을 각별히 사랑하게 되니까.
그리고 또 좋았던 두 이야기가 있다. 내가 엄마라서 그런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리고 저자의 따뜻한 마음도 여기까지 느껴졌다. 어떠한 '말'이라는 문을 열어 들어갔지만 나는 거기에서 내가 아는 루나파크 님의 이야기로 위로 받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같이 화가 나기도 했다. '말'이라는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는 한 권이었다. '사소한 언어들이 누군가의 하루에 아름다운 파문을 남긴다'라는 본문의 말처럼 나에게도 그 물결이 친 것 같다.
나이를 먹을 수록 말을 조심하게 된다. 말이 나를 갉아 먹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록 우리는 좋은 말을 내뱉으며 몸에 깃들게 해야 하고 자연스레 나오게 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나도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나쁘게 남는 말은 하지 말고 위로가 됐다거나 공감을 받기를 원할 것이다. 게다가 영향력이 있거나 아름다운 말이면 금상첨화다. 내가 만들 수 없으면 좋은 말을 많이 보고 들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제목처럼 고르고 골라서 말해 보자.
#고르고고른말 #홍인혜 #고고말서포터즈 #미디어창비
해외 여행을 가 본 사람 중에 일본에 안 가 본 사람이 있을까? 일본은 가까워서 코로나19 이전에 여행객이 많이 찾아갔고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이라 각 지역의 개성이 두드러져 여러 곳에 가 보는 재미도 있다. 일본 여행 카페만 들어가도 일본 여행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의 글이 넘쳐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일본 여행은 쇼핑이나 음식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일본을 즐기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 가면 여행이 더 재미있어진다. 내 경험을 들자면 나는 나가사키에서 4년 정도 거주했었다. 내가 하는 일 중에는 일본인 자원봉사 안내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게 있었는데 일본인이 한국어로 나가사키를 소개하려면 나가사키의 관광지와 역사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나가사키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친구 놀러 왔을 때도 역사지식을 곁들여 안내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가사키라는 지역에 더 애정이 생겼고 그 도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여행사에서 주최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수업에서도 큐슈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는데 각 도시의 역사를 알고 나니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30개의 도시를 지난다. '역사 덕후'는 아닌 탓에 내가 좋아하거나 익숙한 곳 외에는 사실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두근거렸고 내가 잘 모르는 도시로 여행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살다 온 내 입장에서 보면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하면 반대할 것 같다. 내가 읽어도 어려운 지명, 인명, 시대 등등 나도 잘 모르는 도시들은 읽기 어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일본을 자주 여행하고 일드도 조금 봤고 특히 대하드라마 같은 역사물의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지금은 현대 건물과 옛것이 혼재해 제각각 멋을 뽐내는 도시들이 어떻게 사람이 모이게 되었는지,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울 것이다. 나도 읽으면서 내가 아는 사람이나 사건들이 나오면 괜히 반갑고 내가 몰랐던 것을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
추천을 해보자면 이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도시의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코로나가 끝나면 일본 어디로 여행을 갈 지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로 미리 일본 전국으로 사전답사해 보시기를 바란다.
어릴 때는 길고양이를 그다지 많이 본 적이 없다. 요즘은 길고양이도 많고 반려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렇게 늘기 전에 일본에서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도 일본에 살면서 길고양이를 많이 봤는데 실제로 키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 때 30대 어떤 언니가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10년이나 전이라 생소했고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고양이가 나오는 웹툰에 신문사 고양이 집사의 연재를 즐겨보고 있다. 나도 언젠가 반려묘와의 생활을 꿈꾸기 시작한 건 불과 몇 개월 전부터다. 그래서 이 책은 나처럼 반려묘와 함께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에게 기본적 지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큰 고양이 그림 표지가 눈에 쏙 들어와 품에 쏙 안아보고 싶지만 실제로 함께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참 어렵다. 신경쓸 게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을 미리 읽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혹은 정말 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다. 함께 살고 돌봐준다는 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만화로 되어 있어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길고양이를 괴롭히는 사건을 뉴스로 접했던지라 결코 가볍게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반려묘와의 생활을 꿈꾼다면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만날 묘연을 기대해 본다.
일단 눈에 띄는 표지. 출판하자마자 4만부가 팔렸다니 한국에서도 마스다 미리의 이름이 많이 알려진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려다가신간도 나와서 그냥 같이 사버렸다. 마스다 미리 책은 우울할 때, 마음이 복잡할 때 읽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그래서기분전환용으로 딱 좋은 책이다. 어제 책을 받고 오늘 낮에 바로 읽었다. 마스다 미리의 '오늘'이 길고 짧게 가득한 책이다. 나도 이런 '오늘'이 있었지...하는 생각도 든다. 굉장히 소소한 부분의 공감인데 많은 위로가 된다. '오늘의 인생' 타이틀 폰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