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이라는 세계 -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양필성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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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이라는 세계 : 목적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Study, 독학을 대하는 자세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독학(獨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외롭게 책과 씨름하는 고독한 미식가, 아니 공부광 이미지만 떠오른다.


스스로 홀로 독(獨)을 써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책을 베개 삼아 공부하는 개념으로 느껴진 셈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가졌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진정한 의미의 독학이란 자신을 어떤 좁은 경계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나 학교라는 정해진 테두리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는 폭넓은 책과 다양한 경험들을 스승 삼아 나만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자발적인 과정으로 위상을 바꿔도 좋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학습 방법은 주로 교과서 위주의 암기식 공부였다. 하지만 교과서는 항상 정해진 정답만을 알려주는 안전하고 범위를 정한 공간일 뿐이다. 방대한 지식을 적은 쪽수에 맞게 요약해 놓은 일종의 '지식 다이제스트'일 뿐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이제 그 한정된 범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책과 지식, 스승들을 나의 즐겨찾이에 포함시키는 주체적인 자세로 변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독학은 단순히 시험 점수를 높이거나 외부의 평가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스스로의 내면적인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며, 그렇게 키워낸 사고력은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분야에 확장되어 통용될 수 있는 나만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배움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예를들면,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단순하고 작은 의문 하나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지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진짜 배움의 과정이다. 외부에서 억지로 주입된 지식은 금방 휘발되지만, 자신의 적극적인 호기심에 응답하는 형태로 쌓아 올린 지식은 굳이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는 의문의 씨앗이 얼마든지 널려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

결국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나만의 삶의 방식을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한다. 남과 비교하여 내 잘 난 멋을 뽐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면 구조를 바꾸고 사고의 깊이를 넓히는 것이 독학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독학의 가장 중요한 매체인 독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접근 방식은 꽤 신선한 충격을 준다. 

보통 우리는 어렵고 난해한 책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고, 나중에 내공이 쌓이면 읽어야지라며 미루곤 한다. 그리고, 무덤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저자는 어려운 책이라도 일단 도전하여 끝까지 읽어보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읽어내면 분명히 남는 것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어린 시절 읽었던 철학 책은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펼쳤을 때 비로소 그 책이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배경지식이 부족한지를 깨닫고 그 빈틈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독학자를 위한 독서의 훌륭한 방법론이다.

칼 마르크스의 저작이나 유명한 사상서들이 지레짐작했던 것보다 의외로 읽기 쉬울 수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내가 생각해도 책의 난이도는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지레 겁을 먹고 책을 덮어버린다면, 우리는 평생 그 위대한 사상들과 교감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된다. 설령 진짜 어렵다 하더라도 '어떤 부분이, 왜 어려운지'를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나의 공부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 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책을 피하기보다 기꺼이 부딪혀보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 것은 독학의 여정에서 매우 귀중한 경험이다.


책을 읽을 때 곁에 국어사전과 백과사전, 지도를 두라는 조언도 매우 실용적이다. 학창 시절이 아닌 일반 직장인의 삶에서 교양서나 소설을 읽으며 매번 사전을 뒤적이는 것은 솔직히 번거로운 일이다. 스마트폰이 해결해준다고 힌트를 스스로에게 주지 말자. 사전에서 유튜브로 통하는 길은 짧은 손길 하나로 충분하다. 종이 사전과 지도를 준비하는 마음자세부터 가져보자.

어떤 글을 읽을 때 단어의 정확한 뜻이나 지명,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전체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채 뉴스를 보는 것과 같다. 최근 유튜브에서 본 한 영상이 떠오른다. 컴퓨터 수리 기사가 방문해 부품을 설명하는데, PC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아내에게는 남편과 기사가 나누는 CPU, 램, 보드 교체 등의 대화가 마치 외계인들의 언어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해력과 이해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배경지식'이다.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책을 읽었을 때 거두는 독서의 소화력과 현실 적용력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다. 당장 모르는 것이 있다면 곁에 사전을 두고 즉시 찾아가며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처음에는 더디겠지만, 이러한 과정이 누적될수록 배경지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책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언어를 배운다는 과정은 독학과는 꽤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책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언어적 센스가 있는 사람의 특징'을 읽으며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찾아보거나 간판,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어 단어에 호기심을 갖는 편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해당이 되었다. 최근에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증에서 시작된 언어에 대한 관심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더듬더듬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문자를 처음부터 다시 익힌다는 것이 결코 쉬운 도전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외국어 독학의 본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저자가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질문의 중요성'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가장 절실하게 와닿는 대목이다. 챗GPT와 같은 AI를 활용할 때, 내가 어떤 질문(프롬프트)을 던지느냐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하나의 핵심 역량으로 떠오른 지금,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지식이 아닌 융합적인 배경지식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배경지식들을 엮어내고 새로운 관점을 결합하는 능력을 갖춰야만 AI에게도 날카롭고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즉,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의문 표출을 넘어 새로운 창조적 기법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서 소개하는 '알고 싶은 것을 제대로 조사하는 7단계'는 무척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어떤 궁금증을 해결할 때 단순히 표면적인 검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종교적, 지역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교차 검증하는 과정도 책에서 얻은 노하우이다. 이러한 다각적인 시점을 나의 질문 속에 녹여낼 수 있다면, 직장에서 작성하는 기획서나 리포트는 물론 개인적인 글쓰기에서도 남들과 차별화되는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독학을 생활화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프리노트' 습관도 당장 실천해 보고 싶다. 떠오르는 의문과 호기심을 흘려보내지 않고 즉시 메모하며 기록해 두는 것. 이는 배움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를 수동적인 수용자에서 적극적인 탐구자로 바꿔주는 훌륭한 장치다.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이 책은 분량이 아주 방대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통찰로 가득하다. 단순한 '공부 기술'이나 '암기 노하우'를 나열한 실용서를 기대했다면 이 책은 좀 거리가 있다. 오히려 독학을 결심한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몰입하고 호기심을 확장해야 하는지 등 '배우는 자의 태도와 철학'을 묵직하게 다룬다. 

지식의 양보다 교양의 깊이를, 정보의 단순한 축적보다 사고력의 성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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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몸 - 최신 의학이 밝혀낸 면역, 질병, 노화의 비밀 ㅣ 프린키피아 9
줄리아 엔더스 지음, 질 엔더스 그림,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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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바라보는 발칙한 시각과 충격, 그리고 유쾌한 신체의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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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몸 - 최신 의학이 밝혀낸 면역, 질병, 노화의 비밀 ㅣ 프린키피아 9
줄리아 엔더스 지음, 질 엔더스 그림,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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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몸 : 우리 몸을 바라보는 발칙한 시각과 충격, 그리고 유쾌한 신체의 역사 여행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나 신체 부위, 그리고 면역이라는 방어 시스템을 활자로, 또 그림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단순히 병을 예방하거나 노화를 늦추기 위한 실용적인 의학 지식을 얻겠다는 지적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엄습하는 노화를 체험하고 어떻게 해서든 늦추려는 아둥바둥 집착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평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면서도 정작 내가 가장 모르고 있던 '내 몸'이라는 또다른, 작은 우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보다 그렇지 못하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비슷한 책에 기웃거리게 된다.

이토록 위대한 몸은 지금까지 만났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궤도를 달린다.

이 책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하라'는 조언 대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장기들이 어떤 진화의 역사를 뚫고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어떤 기막힌 메커니즘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는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맹신하던 얄팍한 상식들이 기분 좋게 부서지거나, 내 몸속의 세포와 박테리아들이 나쁜 영향과 좋은 영향을 동시에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새로운 시각과 충격을 동시에 만끽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첫 번째 장기는 바로 "폐".

우리는 매연과 미세먼지를 마시고, 때로는 담배 연기를 폐 깊숙이 밀어 넣으면서도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폐는 상당 부분이 손상되더라도 살아가는 데 당장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놀랍도록 묵묵하고 강인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허술해 보이면서도 경이로운 기관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24억 년 전, 지구에 끔찍한 유독가스 사고가 발생했다. 이 폐기가스의 이름은 산소다.

책에 묘사된 것처럼, 우리가 1분 1초도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산소가 사실은 24억 년 전 초기 생명체들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던 최악의 유독성 폐기물이었다는 발상은 난생 처음들어보는 관점이다. 식물과 일부 박테리아가 뿜어낸 이 골칫거리 가스를 역으로 생존의 에너지원으로 탈바꿈시킨 생명체들의 적응 과정은 위대한 코미디이자 드라마 한 편이 아닐까? 의학계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릴 만큼 저자의 표현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무의식적으로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이 실은 얼마나 치열하고 소중한 대사 작용인지, 그리고 폐라는 장기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진화의 결과물인지 새삼스럽다. 심지어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자주 들어본 활성산소조차도 단순히 세포를 늙게 만드는 질병의 원흉이 아니라, 세포들이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느낌표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암세포를 적발하는 유용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몸을 바라보던 생각에 부끄러움을 던진다.


단순한 방어벽으로만 여겼던 면역체계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백미다.

우리는 흔히 면역세포를 세균과 바이러스를 무자비하게 찔러 죽이는 전사로 이미지를 그리지만, 현대 의학이 밝혀낸 면역체계의 진짜 목표는 전쟁이 아니다. 내 몸을 최대한 잘 파악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킬러세포들은 무턱대고 세포를 파괴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세포를 붙잡고 오늘의 일과를 불심검문한다. 상대방이 암세포나 감염 세포로 변이했음을 순순히 인정하면 아주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자가 분해되도록 돕는다. 물론 가끔은 속기도 하지만.

익숙한 이름의 보조 T세포들은 상황의 맥락에 따라 킬러세포를 진정시키거나 부추긴다.

면역세포들조차 인간의 사고처럼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의 축적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최근 끝이 날카로운 것에 찔려 파상풍 예방접종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사고 발생 후 72시간 내에 접종을 하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물질이 몸에 들어와 잠복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면역체계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적응할 수 있는 생물학적 골든 타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물질에 대해서도 백신의 작용이 조금이라도 발빠르게 주어지면, 내 몸의 인공지능들이 재빠르게 데이터를 업데이트하여 면역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주사 한 방으로 혹시라도 모를 끔직한 고통을 예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책을 읽으며 얻은 우리 몸 면역체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꽤난 신선한 충격을 준 부분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새로운 관점이다.

인간은 결코 단일하고 고결한 영혼으로 이루어진 독립적 개체가 아니다라, 수십조 개의 나만의 고유 세포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외부 미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맹렬하게 뒤엉켜 살아가는 일종의 군집이라는 정의다.


이러한 인식은 SF 문학이나 철학에서 다루는 자아 해체와 코즈믹 호러, 즉 우주적 공포라는 가상의 테마를 일상의 공포로 끌어 내린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에서 인류가 기이한 외계 바다와 소통하며 인간 인지의 한계와 타자의 존재를 깨닫듯, 내 몸이라는 껍데기 속에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존재들이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뭔가 좀 찝찝해진다.


우리는 '나쁜 균'과 '좋은 균'을 철저히 분리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6,500만 년 전 우리 조상이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태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는 지금의 모습으로 번식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사고가 오히려 임신을 유지하는 생존의 기술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으스스한 존재가 오히려 미래의 희망이 되었다는 역설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장 속에 바글거리는 대장균과 세균들 중 유익균이 없다면, 우리는 음식물의 섬유질을 소화하지 못하고 극심한 설사와 탈수에 시달리게 된다. 장세포 에너지의 약 10%는 바로 이 박테리아들과의 협력을 통해 생성된다.

내가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의식과 육체조차, 사실은 이 무수한 이물질들의 조용한 타협과 협력, 때로는 나에게 역행하려는 배신의 메커니즘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모래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낯선 공존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아를 유지하며 살아가듯, 내 몸속의 타자들 역시 묵묵히 나를 위해, 혹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삶의 수레바퀴를 열심히 땀나게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억 년을 거쳐 진화해 온 장기들의 장대한 역사를 살피다 보면, 우리 몸의 꼭대기 왕좌에 앉아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뇌의 위치를 다시 가늠하게 된다. 뇌는 호흡기나 소화기, 면역체계가 가진 까마득한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역사를 지닌 초보적이고 최근에 생긴 신생 기관에 불과하다고 한다.


신생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해치우는 뇌는, 역설적으로 그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숱한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동화 오류다.

이는 응용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역사적 심리 실험에서 인간의 인지 편향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뇌는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 인지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의식적인 관여를 줄이고 무의식적인 자동화 시스템에 일을 맡겨버린다. 오랜 숙련을 거친 도예공이나, 수십 년간 환자의 혈압을 재고 차트를 읽어온 전문의가 때로는 갓 들어온 초보 의사나 학생보다 더 어이없는 오진과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뇌가 스위치를 끄고 자동 비행 모드로 전환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뇌의 폭발적인 발전 덕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맹신하는 뇌의 이성적 판단이 생물학적인 한계로 인해 언제든 엉뚱한 궤도로 이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래되고 본능적인 장기들이 묵묵히 제 할 일을 오차 없이 수행할 때, 가장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뇌는 편향과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 책은 독자를 끝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유쾌한 산책과도 같다. 어려운 의학 용어를 남발하거나 단순한 건강 지침을 나열하는 대신, 장기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서이자, 세포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보는 시트콤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내 몸을 바라보는 생각의 렌즈'를 교체해 준다는 데 있다.

나의 건강, 나의 질병, 나의 노화라는 일차원적인 고민을 넘어, 내 안에 얼마나 경이로운 지성과 오랜 역사, 그리고 이질적인 타자와의 눈물겨운 공생이 뒤엉켜 장엄한 교향곡을 만들어내는지 감탄하게 된다.

의학적 지식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하고도 흥미로운 철학적 화두를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안성마춤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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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즈 - AI 시대,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가
세스 고딘 지음, 송보라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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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부족을 찾는 여정, 그루에게 모든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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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즈 - AI 시대,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가
세스 고딘 지음, 송보라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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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즈 : 나만의 부족을 찾는 여정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Frankie Goes to Hollywood의 'Two Tribes(두 부족)'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묘한 기분이 생생하다. 이 노래는 밴드가 가진 악동 같은 이미지에 수위 높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너무 직설적인 가사 때문인지 이래저래 금지곡 취급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냉전 시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두 이념의 충돌을 두 개의 '부족'에 빗댄 그 노래는, 어딘가 불온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을 뛰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념이니 전쟁이니 하는 무거운 거죽을 벗겨내고 나면, '트라이브즈(부족)'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원초적인 욕망에 끌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고, 나와 비슷한 주파수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각자의세계에서 공동된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세스 고딘의 ‘트라이브즈’를 읽으면서, 오래전 CD에서 흘러나오던 그 단어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묘한 연관성에 흥미가 배가되었다.


책에도 록밴드가 등장한다, 밴드명만 들어보았지, 음악은 생소한 Grateful Dead가 그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항상 고민하는게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노출할까?'

'어떻게 해야 보편적인 히트를 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밴드는 빌보드 탑 40에 드는 대중적인 앨범 단 한 장 없이도 무려 1,3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수익을 냈다. 그들의 비결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 쩔쩔매는 대신, 자신들의 철학에 열광하는 좁고 깊은 팬덤, 이른바 '데드헤드'라는 부족을 꽉 쥐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2-14-70' 같은 자신들만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끈끈함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K Pop이 대세가 된 지금과 유사한 트렌드를 이미 50년 전에 구축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만나게 된다. 티켓팅을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고, 라이브의 불법 음원 녹음을 오히려 장려하며 팬들이 다른 팬들에게 녹음한 음악을 즐기게 하여 더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부족의 형태를 가진 집단은 동네 마을회관, 취미 모임, 혹은 한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처럼 지리적인 한계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 물리적인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처럼 AI 기술이 발전하고 온갖 소통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이런 연결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고, 멀리 퍼져나간다. 지역의 한계를 훌쩍 벗어나니,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적인 크고 작은 부족들이 수없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빅뱅같은 더많은 가능성과 성공의 크기를 키우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저자는 부족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연결의 중요성과 리더의 덕목에 대해 평안한 챕터 형태의 글이지만, 현대사회를 꿰뚫는 통찰로 독자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리더가 세상에 남기는 흔적에 대한 통찰이다. 보통 회사를 차리고 윗자리에 오르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재활용도 안 되는 거대한 폐기물들을 남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니 그것이 대단한 업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진짜 리더가 이끄는 부족은 물건이 아니라 연결을 남긴다고 말한다.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설립한 어큐먼펀드의 사례가 딱 그렇다. 그녀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돈 몇 푼 쥐어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현지의 기업가들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전 세계의 헌신적인 후원자들을 자율과 존중이라는 가치로 묶어 동참의 일원으로 일구어냈다. 물건이 남긴 부산물은 언젠가 썩고 소멸되지만, 리더가 진심으로 엮어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촘촘해지고 거대해지며, 새로운 가치를 끝없이 생산해낼 수 있다.  연결 자체가 거대한 화학 작용이 되어, 혼자서는 절대 바라보지 못했을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위키피디아의 기적 같은 성공이나 스피나커라는 게임 회사에서 등장하는 리더십도 결국 본질은 같다. 위키피디아의 지미 웨일스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거나 근태를 관리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비전에 동참하고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판을 깔아주었을 뿐이다. 스피나커의 젊은 직원 역시, 팀원 하나 없는 척박한 상황에서 소식지라는 아주 소박한 도구를 무기로 삼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고 어떤 벽에 부딪쳤는지 솔직하게 써서 직원들 우편함에 돌렸다. 그러자 각자 자기 일만 하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위에 군림하면서 채찍질을 한 게 아니라, 같이 걸어나갈 목적지를 보여주고 함께 걷는게 어떠냐며 손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부족의 일원이 되었고, 힘찬 발걸음을 서로의 힘에 기대어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아무리 기가 막힌 도구가 널려 있어도 앞장서겠다는 리더의 각오와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안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치여 타협하고, 관료주의에 순응하며 튀는 못이 정맞는다며 복지부동이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문화 처럼 수직적이고 정해진 틀을 중시하는 상황 속에서는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직장인들의 하루를 지배한다. 하지만 세상을 흔들고 변화를 만들어낸 위대한 부족은 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이단자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현실에 안주한 평범한 이가 될 것인가, 이단자라 낙인 찍힐 지언정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내가 될 것인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을 보라. 

잡스는 금전적인 보상을 주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며 부족원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논쟁하며 뭉치게 만들었다.

물론 잡스가 등장하면 다들 핑계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잡스처럼 타고난 카리스마도 없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끔찍이 두려운데 내가 무슨 리더가 되겠어.”

하지만 세스 고딘은 이 변명을 박살낸다

카리스마가 넘쳐서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리더의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카리스마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돈이 없건, 직급이 낮건, 매력이 부족하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해 첫발을 떼는 용기라고 말한다.


의기양양한 패기가 유일한 무기라면 어때, 한 번 도전해볼 만 하잖은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웬만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고 또 어떤 자리에 서야 할까? 단순히 정해진 일을 착실히 해내는 안주하는 사람들의 시대는 저물어간다.

이제는 룰을 깨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공통의 비전으로 점과 점을 연결하는 리더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생각해보자.

‘당신의 개인적인 흥미, 당신의 마니아적인 취미, 당신이 유독 잘하는 그 고유한 영역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게 만들 것인가?’

내 경우, 록 밴드들의 음악과 그 복잡다단한 역사를 파고드는 일에 꽤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전설적인 밴드들의 앨범을 모으고, 그들의 라인업 변화가 음악에 미친 영향을 파헤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나의 여가시간만의 즐거움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퇴근 후 방구석에서 낡은 CD나 뒤적거리는, 나 혼자만의 유별나고 고독한 취미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다른 기회가 있다고 속삭인다. 마니아적인 취향과 남다른 열정을 그냥 방 안에 가둬두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적 서사와 철학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나와 비슷한 향수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보라고. 진심이 누군가와 맞닿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나만의 작지만 단단한 '부족'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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