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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텔카스텐 - 글 쓰는 인간을 위한 두 번째 뇌
숀케 아렌스 지음, 김수진 옮김 / 인간희극 / 202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텔카스텐 : 아이디어와 메모로 새롭게 나의 지적 세상을 만드는 방법
메모는 단기 기억을 저장하여 뇌의 한계를 돌파하는 고마운 매체의 역할을 한다.
하루에도 수십가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사람이든지 매번 열쇠 들고 나가는 단순한 일도 까먹는 사람 모두에게 메모는 부족한 뇌의 메모리와 망각을 지켜주는 우수한 도구이다.
남긴 메모를 잊지 않게 계속해서 리마인드 해주고, 실수를 줄여주는 기본적인 기능뿐 아니라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할 때 보다 효율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는 가이드 역할도 하며, 며칠 뒤면 뇌의 어느 부분에서도 찾을 수 없게 증발되는 좋은 아이템의 영속성을 일년이고 이년이고 지켜준다.
메모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다면 글쓰기에도 접근하는 방식이 틀려질 수 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항상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
아무런 문자가 없는 흰색 종이는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고, 평상시 머리 속에 뛰놀던 아이디어도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주제를 정해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지만 쉽사리 페이지를 넘어갈 수 있는 글이 쏟아져 나오지 못한다.
이에 반해 메모가 정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접근방향이 다르다.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조사하고 생각을 해서 글로 옮기는 방식이 아니다.
이미 구축한 메모 상자에 모여 있는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서로 어울리게 하고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테마를 글을 쓰는 주제로 정하는 방식이다.
이미 박스에 넣기 위해 메모를 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정리하고 있고, 상자에 집어넣는 순간 기존의 메모들과 새로운 메모는 어울리는 결합점을 찾아, 연결은 물론 때로는 새로운 화학적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글 쓰는 이는 불꽃 튀는 아이디어들의 결합과 재배치를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로 변환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다작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글은 거친 원석 형태로 묻혀 있었기 때문이고, 궁극적인 원출처는 바로 내 머리 속이다.
글을 써내려 가는데 있어 통제력의 중요성이 언급된다.
글 쓰는 과정 동안 처음에 생각한 아이디어에 함몰되지 말고 여러가지의 선택지를 열어 놓는 방식을 권고한다. 글을 쓰다 보면 보면 쟁점이 변하거나 다루던 자료가 생각보다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처음 시작할 때의 관점과 다른 주장을 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경우의 수를 감안하고 글쓰기를 시작하면 관심, 의욕들이 조율된 상태로 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운다.
메모 상자를 통한 정보의 체계적인 정리를 일구어 낸 루만의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다.
30년간 58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을 써낸 다작 교수인 그는 수많은 책을 읽어가며 메모하는 방식을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재정의하여 여러 아이디어들이 병합되고 연계되는 폭발적인 작용으로 글을 쓰는 원천을 만들어냈다. 독서와 경험이 기본적으로 생성된 상태에서 자신이 획득한 정보들을 어떤 방법과 과정으로 체계화시키고 창작의 원전으로 삼을까 라는 과제를 남겼다. 책에서 소개된 방법을 자신만의 상황에 맞게 재조정하는 방식은 충분히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메모의 힘은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고, 실제 회사 업무를 하다 보면 나름대로의 활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무실 데스크의 필수품 중 하나가 포스트 잇이라는 사실만 봐도 우리는 메모를 다양하게 이미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메모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것이다.
읽고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메모로 기록을 남겨 불안전한 우리의 뇌에게 외장형 장치를 하나 마련해주는 파워업의 과정이다.
항상 손 가까이 펜과 메모장이 있다면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디어와 책 한 페이지의 중요한 문장,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적을 수 있고, 수집되고 누적된 메모는 우리 뇌와 소통하며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글을 통해 체계화되고 현실화된다.
글을 쓰면 읽은 내용을 이해하고, 배운 것을 기억하고, 생각의 의미가 서로 통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공적인 글쓰기에 이르는 여섯 단계"에서는 단계 별로 우리가 몰랐거나 간과했던 세부적인 방법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지식을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만들어가는데 유용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여섯 단계는 크게 이렇게 구성된다.
① 분리하기와 연결하기
② 이해를 위한 읽기
③ 스마트하게 메모하기
④ 아이디어 발전시키기
⑤ 통찰 공유하기
⑥ 습관화하기
①을 제외하면 단계별 제목만으로 무슨 내용으로 엮어 나가는지 파악이 된다.
물론 세부적으로 제시되는 노하우는 단계를 충실하게 채워 나갈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실천하기 쉽지만 효과는 따따블인 책 읽기 방법도 그 중의 하나다.
한 손에 펜을 든 채 텍스트를 읽으라는 조언이다.
어, 생각해보면 원래 그랬었다.
학창 시절에는 텍스트를 손으로 써가며 머리 속에 집어넣고 노란 형광 펜으로 밑줄을 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책은 그냥 눈으로 읽었고 가끔 좋은 문장은 카메라로 찰칵 찍어 놓고 수많은 스마트폰 사진관 속에 파묻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단순히 책 내용을 암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손의 감각을 익히자는 의도는 아니다.
책과 대화를 하자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다.
읽고 이해한 내용을 원문과는 다른 맥락을 지닌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구체화시키고, 메모에 적어 주관적인 생각을 기록해본다. 메모 속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이어지는 길을 터주는 방식이다. 다른 시점 다른 책에서 정리한 내용들이 서로 뜻하지 않는 부분에서 만나 새로운 생각으로 팡! 하고 터지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이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파인만이 강조한 말을 하나 인용해 본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일지라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양자역학 책을 더듬 더듬 읽으면 처음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페이지를 집중해서 읽어본다.
-아, 이게 이런 의미인거 같다.
처음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텍스트를 두번째 읽게 되면 조금은 이해한 거 같고 다음 페이지로 넘겨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붙는다. 하지만, 이 상황은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친숙하다고 실제 아는 게 아니다. 우리는 무언 가에 친숙해지면 잘 알게 되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며칠 뒤 기억에서 정보를 꺼내 자신 있게 설명하고 다른 데이터와 섞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했고 스스로 속였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외부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저자는 강하게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글 쓰는 이를 위한 두번째 뇌라는 부제처럼, 메모 상자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만능상자다.
메모를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머리속에서 축제의 불꽃이 팡팡 터지며 규칙에 따라 정리된 상자 속 카드들은 체계적이고 연결적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과 노력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메모하기라는 과제, 생각보다 쉽지 않다.
메모법에 대한 다양한 도서가 출판되는 상황 자체가 정답은 없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제일 중요한 일은 메모의 힘과 누적된 지식의 정리가 글을 쓰는데 최고의 지혜를 가져가준다는 사실이다.
에버노트를 몇 년 간 쓰고 있지만, 막상 스크랩만 해 놓을 뿐 제대로 정리하거나 활용하지는 못한다.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저장하지만 쌓이는 양은 많은데 다시 뒤적거리며 보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글쓰기한 작업들은 그나마 정리도 되고 가끔 활용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디바이스보다는 손으로 쓰는 방식이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생각들의 끝을 잡아내기 더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적어내고, 시간이 흘러도 흥미를 유지하며 개선해 나가는 훈련을 통해 우리의 글쓰기 지상 과제는 조금씩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