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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 첫 번째는 제목, 두 번째는 표지 사진이었다. 원래 서점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늘 가보고 싶던 교토의 서점이라니... 이건 안 읽고는 배길 수 없는 어떤 것!
원래도 임경선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작가의 이름보단 책의 내용이 더 흥미롭고 매력 있었다. 귀여움의 나라라고만 느꼈던 일본을, 교토라는 정서의 도시로 독자를 이끌었으니. 어디 한번 따라가볼까?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선 작가의 [서문]에 잘 나와있다.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토에 대해서라면, 이 도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관되게 품어온 매혹적인 정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그 시간 속에서 교토 고유의 정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이곳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교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정서'와 '태도'에 관한 책이다. 오랜 것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잘 유지하기 위한 교토 상인들의 규율, 통제, 배려를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중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한 몇 에피소드를 보자면.
교토에 다녀왔습니다_세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노포: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일본에선 가업을 잇는 일이 우리나라보다 흔하다. 우리는 무조건 서울로 가서 성공해야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지금의 모습을 보자면 어디 시골이라도 부모님이 경영하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어 그곳에 터를 잡고 부모님의 가업을 잇고 싶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노포를 생각한다면 이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토에서는 창업한지 100년 된 가게라도 아기 걸음마 수준에 해당될 정도로 곳곳에 대대손손 내려오는 가업이 많다. 그래서 스스로 노포임을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이 저절로 불려주기를 기다릴 뿐. 그만큼 세월을 녹아내리려면 엄청난 독창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의외로 교토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만들어야 할 제품을 만들 뿐. 그렇게 쌓아온 신용으로 오랜 시간 동안 손님이 이어지고 나의 고유한 색으로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자부심이 있는 노포 주인들은 손님에게도 인성과 기본 매너를 암묵적으로 기대한다. 그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장사가 아닌 인간 대 인간, 면 대 면으로 가치를 주고받는 진중한 행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때로는 돈을 버는 일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_진정한 호사
한때 나도 명품을 너무 사고 싶어 짝퉁이라도 알아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내 자존심에 '그래도 짝퉁은 좀' 하고 마음이 넘어가서 망정이지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의아하지만 아마도 내 안이 너무 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잘 하는 것 없고, 얼굴이 죽이게 이쁜 것도 아니고 애인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뭐라도 나를 포장해 줄 수 있는 게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명품 가방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나를 충만하게 하는 것, 보면 내 웃음을 띠게 하는 것, 내가 하루를 살아내고자 하는 가치 등이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나를 지탱하는 것임을.
그런 면에서 교토 사람들은 정말 일찍이도 안 것 같다. 천 년의 역사를 굳이 자랑하며 드러내지 않고, 단지 진짜 교토의 가게라면 계절감을 표현하는 예쁜 꽃을 꽂는 것이 전부니 말이다. '원조' '오랜 전통' '대대로 내려오는 집' 따위의 큰 간판을 걸 것이 아니라 소박한 공간에서 의연하게 그 자리를 꼿꼿이 지키고 있는 교토의 가게를 상상해 본다.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반면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 간다. 그것이 '진짜'의 인생이니까."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전체적으로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작가가 바라본 교토의 도시, 그 안의 사람들의 모습이 정갈하고 따뜻하면서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의 도시로 유명한 교토의 상인이 자신만 잘났다고 앞지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공존'의 배려로 함께 한다는 게 놀라웠다. 아마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함을 계승하기 위해 그런 태도를 저절로 체득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옛것을 오래도록 지키고자 하는 순수하고 정성된 마음이 교토의 분위기를 이루는 큰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힘은 혼자서 안 되고, 자기 통제와 규율 없이 안 되고, 모순적일지라도 변화 없이는 안 된다. 하지만 각자의 마음에 나와 남을 배려하고자 하는 단단한 구심점, 내가 진짜라는 자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현재의 역사를 미래로 이어나갈 수 있겠지.
오랜만에 나의 내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좋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나의 고유한 가치관으로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다 보면 언젠간 삶이라는 어떤 모양이 만들어지겠지.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었으니, 꼭 교토에 다녀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