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집 생활 - 밑줄 긋는 카피라이터의 일상적 글쓰기
이유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블로그에도 공공연히 얘기했지만 나의 대학생 시절 장래희망은 카피라이터였다.
몇 줄의 글을 이리저리 굴려 상품을 가치 있고 근사하게 표현하는 작업이 소위 말해 '쿨'하게 보였다.


관련 학과 수업도 듣고, 신촌에 있는 학원에서 카피 라이팅 수업도 들었지만 재능과 열정이 부족했는지 카피라이터로서의 직업은 갖지 못했다. 그래도 출판업과 마케팅사에서 단 몇 줄의 카피 작업을 해야 했으니 카피라이터 꿈을 1/4 정도는 이룬 셈이다.

처음 문장수집생활의 내용을 접한 곳은 브런치이다.
관심 작가로 등록을 해 놓고 이유미 작가가 쓴 글이 뜨면 그때그때 보았다.
그때 쓴 글이 소설로 카피 쓰기. 그게 책으로 나온 바로 문장수집생활이다.

참 신선했다. 책이라면 나도 얼추 읽는데 역시 작가는 다른 것인지, 같은 문장을 읽고 까먹는 나와 달리, 밑줄 긋고 카피로 쓸 일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하는 카피라이터의 삶은 참 부지런했다.


소설은 삶에 가장 깊이 맞닿아 있다. 때로는 섬세하고 처절하면서, 또 때로는 얼렁뚱땅 설렁 넘어가기도 하는 모순적인 삶을 풀어내는 데는 소설만큼 정확한 것이 없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일상의 제품을 파는 카피가 딱 들어맞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문장수집생활을 읽는 내내 '대학생 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옆에서 사수가 친절하게 글이란 이런 것, 문장이란 이런 맛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옆에 끼고 많은 문장을 찾고 다듬었다면 내가 꿈꿨던 카피라이터를 좀 더 현실적으로 열망해 보지 않았을까?

자칫 딱딱해 보이는 글쓰기의 이론적인 말들은 이유미 작가가 밑줄 그은 소설 속 문장이 어떤 카피로 활용되는지 실제 예를 들며 설명한다. 현대 29CM 온라인 편집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작가의 현실 조언인 셈이다.
그러니 문장수집생활은 생생하게 살아있고, 우리가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교과서로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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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문장]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때는 청소가 최고야. 특히 냉장고 청소가 특효지.
[카피 응용]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개운하게 냉장고 청소 어떠세요?
복잡한 생각 정리에 000이 함께 합니다.

글을 쓸 때 '사적인 시점'을 가져보는 게 중요하다. 내가 겪은 일일수록, 가져봤던 감정일수록 상대도 느꼈을 확률이 높다. 내가 언제 청소를 하는지 떠올려 보자.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마음이 붕 뜨고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청소를 시작하기도 한다. 주변이 정돈되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니까. 그런 포인트를 이용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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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정렬하고 다듬어 새로운 카피로 내놓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이므로 평소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은 사람, 매일 카피를 써야 하는 사람, 글 쓰는 게 막연한 사람이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문장수집생활을 읽으면서 여러 문장에 밑줄을 긋고, 간간이 적고 있는 브런치에 어떤 이야기를 쓸지 아이디어를 얻었으니깐 :)

책의 재밌는 부분이 있다면 앞과 뒤표지가 따로 있어서 앞부분은 문장 속 카피 50개를 소개하는 것이고, 뒤편엔 카피 부록같이 글쓰기의 주의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 책은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들이 꼭 옆에 끼고 있으면 하는 책이다.
뿐만 아니라 50개의 소설 문장도 나오기 때문에 나중에 독서 목록 리스트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그만큼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도 클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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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시기와의 궁합', 타이밍이 중요해서 지금 당장 페이지가 안 넘어간다고 나와 안 맞는 게 아니다. 잘 읽히지 않던 책도 두세 달 정도 묵혔다가 다시 꺼내보면, 그땐 왜 그리 안 읽혔을까 싶게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도 한다. 한 페이지에서 당최 넘어가질 않는다면 과감히 덮어두자.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돼 있다. 책은 그렇게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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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엔 간지럽지만 어쩌면 문장수집생활은 지금 나의 이 시기에 운명처럼 만난 책이기도 하다.
빡빡하고 건조한 회사 생활에서 책 속 문장을 찾아 더듬더듬 위안을 삼는 나에게 여러모로 글에 대한 편견과 어떻게든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안겨 주었으니까. 때론 막막하고 기댈 곳이 없다고 느낄 때 조용히 현재 나의 상황을 글로 풀어본다든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필사하는 것만으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됐다고. 나만의 글을 적어 보고 싶을 때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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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마다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었다. 공감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어 놓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타이핑으로 필사를 했다. 일종의 문장 수집이다. 그런 파일이 쌓이고 쌓여 수백 개가 넘었다. 업무 중 급하게 카피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주제에 맞는 문장을 검색해 카피에 응용했다. 나름의 카피 라이팅 훈련이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쓰고, 다르게 사는 삶.
그게 내가 카피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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