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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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작가는 내게 좀 특별하다. 한 권의 책 '쿨하게 한걸음'은 첫 사회 생활 동안 한껏 방황하는 나에게 어떤 삶의 이정표 같고 숨쉬게 해준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걸 읽은 뒤 사표를 던지고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었던 용기는 주인공 '연수' 덕분이었다.

그 이후로 서유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 왔고, 그 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쿨하게 한걸음 뒤로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내가 좀 우울한 감성을 좋아해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책은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좌절과 슬픔이 날 것으로 보여 소설의 공감력이 더욱 커진 것 같다.


지방에서 떠나와 서울에서 팍팍한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 이야기(에트르), 성매매 삐기가 직업이지만 기형도 시를 읽으며 위로 받고 이 생활을 끝내고 싶은 청년(개의 나날), 이혼 후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중년 남성(이후의 삶), 치매인 어머니와 곧 출산하는 딸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년 여성 이야기(변해가네) 등이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동시에 다가올 미래와 겹쳐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많은 감정 이입을 하게 된 단편 소설은 에트르와 개의 나날, 그리고 변해가네이다.


취업준비생 두 자매는 나날이 높아지는 월세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늘 그 자리인 것 같은 하루를 산다. 내년부터 올려야 하는 보증금이나 월세를 감당하려면 일을 더 해야 하던지, 지금의 집보다 더 적은 공간으로 밀려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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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가고 싶은 것과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 보증금을 올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월세를 더 내려면 수입이 늘어나거나 지출을 줄여야 했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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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데도 매일이 팍팍할 때, 우리는 한숨을 쉰다. 뭘 더 짜낼 볼 힘도 없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일 뿐이다. 특히 아직 미래가 한참 남은 20대에게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니 이게 정말 나의 문제인건지, 정부의 무능력인건지, 지구가 망해가는 징조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내 몸을 편히 뉘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충분한데...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단편집 소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에트르만큼은 결말이 뚜렷하지 않다. 자매가 무사히 이사를 했는지, 아니면 일을 더하면서 고단한 일상을 더 쥐어짜는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에서 어떤 위로가 된다. 건조한 일상의 이어짐이 막역한 불행보다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작은 기대감이랄까?
밝음만이 행복과 기쁨으로 이어질 순 없는게 어쩌면 인생인 것 같기도...

그리고 소시민에서도 좀 더 바깥으로 밀려난 성매매 삐기인 나. 가출 이후 변변한 직업 없이 살다 거구의 몸으로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조라는 인물 밑에서 야한 사진을 찾아 헤매고 여러 SNS에 미끼를 던지는 삶이다. 그런 매일 속에서 어느 날 예전에 엄마의 남편이 될 뻔했던 장의 죽음 소식을 듣고 그가 남긴 유언을 듣게 된다.

 

 

유일하게 새 아빠로 낙점된 장은 결국 엄마와 헤어지게 되고 나와도 연락이 끊기게 되는데 장은 그동안 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일기장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사랑이라곤 받아 본 적 없이 살아왔던 나에게 그의 일기장은 뭔가 마음을 건드리게 되고, 야한 사진의 계정 안에서 유일한 숨 쉴 공간이 되는 한 기형도 봇에서 읽은 문장은 조 몰래 훔쳐보는 유일한 문장이자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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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내가 속한 세계의 언어가 아니었다. 포르노를 처음 접하고 호기심으로 꽉 차 속절없이 빠져들던 때처럼 거기 적힌 글들을 홀린 듯이 읽어 내려갔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내용도 있고 알듯 말듯해서 몇번씩 읽어야 하는 글도 있었다. 그런 문장이 왜 나를 건드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라는 문장을 봤을 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던 말이었고 내 안에서 들끓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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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기에 에트르 보다는 조금 더 열린 밝은 결말이었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주인공이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저 문장에서 어떤 희망을 엿보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니까. 지긋지긋한 삶을 조금이라도 지탱할 수 있는 뭔가가 생겼다면 운명의 각도는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괜시리 마음이 가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삶과 비교해 볼 수도 없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어렵지만 어떤 상황에서 주인공이 견디는 태도가 단순히 마음에 들 때이다.


치매 어머니를 요양소에 처음 모시러 가는 날, 딸에게서 곧 출산을 할 것 같다는 전화가 온다.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슬프고, 자식은 자식대로 걱정이지만 아이를 다 키우고 이혼한 상황에서도 의연히 삶을 차분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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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남편이 아니라 전남편이고 내 삶에 어떤 문장도 보탤 수 없게 되었다. 원룸을 계약한 뒤 텅 빈 공간을 둘러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안도의 한숨이 천천히 흘러 나왔다. 몇십년만에 처음 느끼는 홀가분함이었다.
(중략)
읽고 싶은 책을 샀고 눈치 보거나 방해받지 않고 아무 때나 펼쳐서 읽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책을 더듬 더듬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그었다. 그럴 때만 찰나지만 이 생활이 충분하고 완벽에 가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줄거리만 남은 삶에 대해 생각했다. 배경이 지워지고 관계와 상황이 사라지고 묘사와 대사가 없어져 마침내 몇줄로 요약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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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면을 방치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오롯이 홀로서기를 한 여성은 그렇게 단단한 일상을 책과 함께 새겨 나간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선택하고 미래를 바꾸는 용기는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서유미 작가의 책은 우리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 안에서 자생적인 치유와 위로를 건넨다. 물론 아까 말했듯이 표현 방식이나 문체가 꽤 건조한 편인데 이 점을 내가 참 애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말랑하고 과하게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 예찬하지 않고 누구나 겪는 삶의 애달픔을 달래지도 않는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어찌되었든 변화하고자 하는 하는 일말의 희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거기서 독자가 무얼 느끼냐는 오직 우리의 몫일뿐이지만 충분히 무언가를 건져 올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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