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신작, 아코디언이 나왔다. 나에게 천명관 작가는 남다르다. 수능을 본 뒤 처음 혼자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사온 책이 천명관 작가의 <고래>와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었다. 그동안 소설 지문을 수능 형식에 맞춰 단락을 나누고 각 단락의 주제를 얼른 파악해 정답을 찍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읽다가 고래는 처음으로 널널한 시간을 마주하며 천천히 오랫동안 곱씹어 읽은 책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지금껏 내가 문학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고 살아가는 모든 용기를 내는 원천이 되었다. 이야기의 힘이, 이야기라는 매체가 사람을 살리는구나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인생책 5권을 알려달라고 한다면 고래는 당연히 들어간다. 다만 그 책의 교훈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저 이야기의 맛과 재미를 오롯이 느껴보라고만 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모든 글에 의미나 해석 혹은 판단을 내리지 말고 그저 이야기꾼이 재미나게 쓴 글만 읽어보라고. 소설을 읽는데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이번 신간 아코디언이 기대된 이유도 이거였다. 책 뒤표지에 쓰인 "올해 가장 압도적인 서사!"라는 카피와 출판사에서 제공한 '직원들이 가장 기대하는 책'이라는 서술도 한몫했다. 왠지 이번에도 이야기에만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소설의 키워드앵벌이, 글자, 음악, 생존, 연대, 아코디언내가 정리한 단어다. 저 키워드는 소설의 주인공 동이가 엄마와 헤어지고 앵벌이 집단에 들어가면서 어렵게 성장하면서 그간 겪는 일들로 산다는게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일단 제쳐두고 어떻게 하루를 넘겨야 하는가에 대한 생존에 관한 기록이자 함께 생존하는 연대의 큰 핵심 줄거리다. 아..! 너무 재미없게 썼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보시라.(제발)시간 순삭이다. 솔직히 고래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출근길과 퇴근길에 아코디언을 읽다가 지하철을 놓칠 뻔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아침에 읽다 만 뒷장이 너무 읽고 싶어 마음이 근질근질거렸다. 그래서 연이는 도대체 어디간거야? 죽은거야 뭐야?어느 장을 펼쳐도 사는 일은 녹록치 않고 그 상황에서 그나마 인간 구실을 하느라 바쁜 동이의 삶을 두손 모아 응원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빨리 다음장을 읽고 싶다고!!!너무 궁금해!!!이 책의 매력은 잔혹하리만큼 끔찍하고 우울한 현실에서도 기어이 선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동이의 힘에 있다. 나쁜 짓이 곧 생존의 무기가 되는 시대에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책임감으로 인간이 어느 때에 가장 인간다워지는지 동이를 통해 배운다. 아마 이것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면 교훈이랄까.은은한 희망, 은은한 분노아코디언 책에서 찾아낸 희망의 단어는 '은은한'의 수식어에 감싸여 있었다. 폭팔적이지 않고 직선적일 수 없어 더욱 가련한. 그러나 은은하게 타오르는 작은 희망에 기대 동이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꽤 마음에 남는다. 영화와 같은 몰입감으로 단 이틀만에 후루룩 읽어버린 <아코디언>. 이사를 앞두고 책장 정리를 하는 중이지만 가장 처음 서평단의 기회를 통해 가제본을 읽게 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 맨 중앙에 살포시 채워 넣었다. 매일 아침, 저녁. 전투복을 입고 회사로 가는 길목과 전투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동이와 친구들의 뜨겁고 은은한 열기에 감동했다. 오랜만에 느낀 감동이어서 그랬나?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도 한동안 자꾸 앞장을 다시 들춰본 이유는 혹시 내가 빠뜨린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몰라 작은 감동을 다시 찾아 주워담고 오롯이 더 이야기에 흠뻑 녹아들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마지막 결말은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지만..(힝 작가님 왜그러셨어요.. 힝)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 삶도 원래 그런거고..이번 포스팅은 천명관 작가의 신작 <아코디언>을 창비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기회를 얻어 제일 먼저 읽고 남기는 소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