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내 인생 최고로 쓸데없는 데다가 부피까지 큰 물건을 집에 들이는구나. 게다가 그게 다른 것도아니고 캐리어라니. 지난 세월을 캐리어 크기만큼의 세계 속에서 살아온 내가 바로 그 캐리어 크기만큼의 쓸데없음을 받아들이게 된 이 상황이 인생의 거대한 농담 같아서 심란한 와중에 웃기기도 했다. - P161

"아, 의사가 곡기를 먹으라고 해서."
와 나는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저렇게 가장 게으른 방식으로 부지런할 수 있다니. 가장 한심한 방식으로 현명할 수 있다니. 곧 죽어도 곡물로 밥을 지어 먹거나 식당에 들러 사 먹을 부지런은 없지만, 와중에 뻥튀기를 골라 사 먹는 부지런(이라고 할 수 있다면)은 있는 것이다. 대단해. 묘한 근성이 있어.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동족을 향한 본능적 이끌림이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도 정확히 성연 같은 30대가 되어 있었으니까. - P199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힘든 시기가 어느새 저 멀리 지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게 J의 ‘진짜 미친 사리곰탕면‘ 덕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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