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거부한다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 | '나는 거부한다'(페르 페테르손, 손화수 역, 한길사, 2020) 리뷰


- 저자 페르 페테르손(Per Petterson, 1952~):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막노동꾼으로 생활하다 나중에 도서관 사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7년 단편소설집 '내 입안에 재, 내 신발 속에 모래'(Ashes in My Mouth, Sand in My Shoes)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2003년 '말 도둑놀이'(Out Stealing Horses)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노르웨이의 대표작가가 되었다. '말 도둑놀이'는 현재 43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2007년 최고의 소설 10편'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 노르웨이 비평가상을 수상한 '나는 시간의 강을 저주한다'(I Curse the River of Time)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 옮긴이 손화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크빈헤라드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2002년부터 노르웨이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 번역인협회 회원(MNO)이 되었고 같은 해 노르웨이 국제문학협회(NORLA)에서 수여하는 번역가상을 받았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와 '벌들의 역사' '부러진 코를 위한 발라드' '노스트라다무스의 암호' '파리인간'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등을 번역했다. 스테인셰르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철 따라 찾아오는 노르웨이의 백야와 극야를 벗 삼아 책을 읽고 번역을 하고 있다.


- 구성 / 줄거리: 제1~4장 / 우리가 삶에서 거부해야 할 모든 것을 담은 노르웨이 화제작. 『나는 거부한다』는 삶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토미와 짐은 어느 날 다리 위에서 35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여섯 명의 화자가 각자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 과거의 흉터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한다. ‘거부’라는 것은 단지 소극적인 형태의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부’는 가장 용감하고 확실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삶의 교차로에 서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타협을 거부하고, 용서를 거부하고, 망각을 거부한다. 토미가 무의미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짐이 망각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삶을 향한 의지를 담은 『나는 거부한다』는 읽기는 쉽지만 잊기는 어려운 가족과 친구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다. (책소개 참고)

- 감상:

먼저 책의 물성을 살펴보았다.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작품의 극적인 사건을 그린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글자 크기, 자간 모두 가독성있게 편집되었다. 다만 하나의 장편을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작가 혹은 편집자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특히 각 장을 나눈 기준이.

작품을 읽었을 뿐인데 가본 적 없는 북유럽의 도시와 풍경이 머리에 그려졌다. 전반적으로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며 객관적인 서술방식이 작품의 매력을 살려준다. 핵심 인물인 토미와 짐, 시리, 욘센, 베르그렌 씨 부인이 겪은 몇십 년 간의 일이 책의 큰 줄기이다. 토미, 시리, 쌍둥이가 겪은 아버지의 학대, 짐이 겪은 정신적 문제와 자살시도, 욘센과 베르그렌 씨 부인의 관계 등 인생을 살며 마주쳤을 때 돌파해야만 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불가피해 보이는 일들을 끊임없이 거부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눈 앞에 벌어진, 처절할 정도로 생생한 현실 그리고 살아낼 미래. 이 모두를 거부하는 놀라운 사고의 전환이 인상적인 책이다.

- 서평:

1) 각 인물의 개성과 불친절한 서사
책을 읽으면 각각의 인물의 개성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일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불친절한 서사가 특징이다. 이 불친절함이 초반에는 약간의 혼란을 주지만 뒤로 갈수록 해석의 여지를 열어준다. 서사와 더불어 제목마저도 애매모호한데 의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거부한다'라는 제목도 독특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가 누구인지 '무엇'을 거부하는지 작품 전체를 읽어도 명확히 알 순 없다. 거부라는 단어가 등장하긴 하나 격렬한 저항 또는 드라마틱한 극적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2) 시점 변화와 시간 이동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시점 변화도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한 인물의 관점만 드러난 작품과는 달리 인물 대부분의 생각과 가치관이 드러나 복잡한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해준다.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 약 40~50년의 시간 이동이 빈번한 만큼 흐름을 잘 쫓아가면서 읽어야 한다. 작품 속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며 변화를 비교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개인적으로 시간 이동의 장점을 백번 살리지 못한 소설이라는 점은 좀 아쉽다. 그러나 제목과 내용의 부족한 개연성에도 열린 결말, 해석의 자유 보장이라 생각하면 그리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
사실 작품 서사 목적과 의미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인물별로 고민, 거부의 주체는 있으나 서술 자체가 담담한 편이라 이질적이고 그 점이 반전을 준다. 작품의 메시지는 다분히 자아성찰적이다. '데미안'을 연상케 하는 부분들도 있고 독자마다 발견하는 교훈이 다를 것 같다. 가족, 우정, 사랑 등 여러 테마가 혼합된 형태로 되어있고 하나의 주제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주제의 불명확성, 급변하는 시간의 인과관계가 작품의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톱니바퀴와 양심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인 것 같아." "뭐가?" "양심이란 것은 톱니바퀴나 원형 톱처럼 뾰족한 톱날을 지닌 채 우리의 영혼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이래. 그래서 우리가 나쁜 짓을 하면 뾰족한 톱날에 영혼이 상처를 받고 심지어는 피가 나기도 한대. 그런데도 우리가 나쁜 짓을 계속하게 되는 것은 뾰족하던 톱날이 무뎌져서 그런 거래." "뭐가 어떻게 된다고?" "아주 나쁜 짓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지." - P42

그때 우리는 참 어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세상을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때는 세상이 더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시간도 훨씬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나빠 보이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찢어져버린 세상의 조각들이 어제보다 더 많이 보인다. - P130

"죽음을 거부할 이유는 충분해." ... "거부하셔도 돼요."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어, 친구." "제기랄. 왜 거부할 수 없다는 거죠?" - P133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하얀 환자복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담배를 피워도 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병원 정문 앞에 서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몸을 덜덜 떨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내게 도전과 저항, 일종의 자랑스러움을 가져다주었다. - P190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꺼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각자 알고 있는 지식과 기억을 나누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나누었던 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 나는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 P2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크로드 답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었다."
유홍준 답사의 절정, 실크로드 완결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사막과 오아시스, 미라와 석굴사원을 찾아가는 신비로운 순례길

 

타클라마칸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
오늘날 '초원의 길', '오아시스의 길', '바다의 길' 세 갈래인 실크로드는 크게 동부, 중부, 서부 구간으로 나뉜다. 중국편3인 이 책은 그중 실크로드의 중부 구간에 해당한다. 1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 경제적 번영으로 '서역 55국'에서 6개의 연합국가 형태로 통합을 이룬 '서역 6강(저자)'은 다음과 같다.

 

차사국: 투르판, 뒷날 고창국이 됨.
언기국: 카라샤르
구자국: 쿠차
소륵국: 카슈가르
우전국: 호탄
누란국: 누란, 뒷날 선선국이 됨.

 

이 책은 '서역 6강' 중 역사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언기국 답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도시 답사 이야기이다. 다섯 도시에는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 서역남로의 호탄과 카슈가르, 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누란이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남쪽은 곤륜산맥, 북쪽은 천산산맥, 서쪽은 파미르고원, 동쪽은 고비사막에 둘러싸인 달걀 모양의 타림분지 한가운데 위치한다. 책에 수록된 '신강위구르자치구 실크로드 주요 지명 지도'와 '실크로드 북로 중로 남로 지도'를 보면 친숙하지 않은 지명이 눈에 띈다.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중국 동부의 대도시와는 달리 타클라마칸사막 주변, 천산산맥 아래로 펼쳐진 오아시스 도시는 그 존재감부터 신비스럽다. 누란부터 카슈가르까지 어쩌면 알지 못한 곳이 아닌 알려 노력하지 않은 지역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유산을 간직한, 반전있는 새로운 모습의 오아시스 도시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편과 같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어렵지 않게 눈으로 답사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실감나는 묘사에 가끔 등장하는 소설적 표현이 가미되어
중국 서쪽의 세계, 동서를 잇는 공간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해결해준다. '명불허전'이란 말은 이 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역사와 미술사, 문화를 아우르는 한편의 답사 지침서이니 말이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 자료는 여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끔 도와주고, 뛰어난 필력과 인간적인 감상은 답사의 흐름과 맥락을 잘 보여준다.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데 사막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유적지에 가는 설렘, 내려서 마주친 놀라운 석굴과 벽화, 그 옆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오아시스 도시를 바라보는 뭉클함, 답사할 수 없는 곳을 두고 돌아서는 아쉬움 등 답사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책이다.

 

'서역 6강'의 규모나 장엄함보다 놀라운 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탐험이란 명목으로 행한 문화유산 도굴, 약탈, 훼손이다. 아주 먼 과거에는 정복과 지배, 얼마 안 된 근현대에는 도굴과 약탈의 대상이 된 오아시스 도시들은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사연들을 사진과 글로 함께 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 켠이 무거워진다. 소설에서 얻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감정, 감동을 이 답사기를 통해 얻었다.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역사의 빈 공간이 느껴지는 사람,
몇 조각이 빠진 역사의 퍼즐을 완성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p.72 "8박 9일 실크로드 답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풍광은 쿰타크사막이었다."

 

p.86 "쿰타크사막에서 대자연에 압도되는 경외심이 올라왔다면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 삶의 원초적 향기가 일어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날 또 다른 옛 도시 유적인 고창고성에서는 역사적 향기가 느껴지는데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적 체취가 다가온다. 참으로 위대한 폐허였다."

 

p.170 "우리도 중국을 바라볼 때 중원을 중심으로 했던 왕조만 생각할 것이 아니며 서역과 막북(고비사막 북쪽)의 유목민족들을 함부로 '호(胡)'라고 부르며 오랑캐로 대할 일이 아니다."

 

p.186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p.196 "쿠차의 산에는 장식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은 장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귀신이 도끼질하고 신이 다듬었다."

 

p.210 "쿠차 사람들은 그 푸르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푸른 하늘은 그 자체가 신이다. 푸르름과 있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p.261 "본래 폐사지에 오면 종교로서 불교의 자취는 희미해지지만 역사의 자취가 풍기는 처연함이 일어난다. 불교가 폐기된 흔적이지만 이슬람이 폐불한 벽화의 자취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는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쿰타크사막에서 대자연에 압도되는 경외심이 올라왔다면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 삶의 원초적 향기가 일어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날 또 다른 옛 도시 유적인 고창고성에서는 역사적 향기가 느껴지는데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적 체취가 다가온다. 참으로 위대한 폐허였다. - P86

본래 폐사지에 오면 종교로서 불교의 자취는 희미해지지만 역사의 자취가 풍기는 처연함이 일어난다. 불교가 폐기된 흔적이지만 이슬람이 폐불한 벽화의 자취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는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함을 간직한 사춘기 청소년들과 기묘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상점의 이야기

대만의 아동 문학가이자 동화 번역가인 저우야오핑의 소설 <환환상점>


교환, 어쩌면 기묘한 여행과 같은 것

"언젠가 우리가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환환상점에서는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네게 필요한 것이 되고 네가 간직했던 추억이 내 인생의 소중한 해답이 되며 네가 남긴 흔적이, 내가 털어놓은 비밀이 누구든 필요하면 교환해 갈 수 있는 잔잔한 위로가 된다.


다림의 청소년 문학 <환환상점> 속 '환환상점'은 평범한 가게가 아니다.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물건과 물건, 물건과 사람, 이야기와 이야기,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받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장소다.


이야기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루이, 딩당, 치치, 하오위 등 총 23명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은 일과 거기서 얻은 교훈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서로 무관한 듯하나 알고보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책 속 아이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유형의 물건 또는 무형의 가치와 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교환함으로써 고민을 해결하고 한층 성장하게 되는 데에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주제의 범주도 가족, 친구, 환경,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하다. 때묻지 않고 여리면서도 때로는 치기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뒷이야기가 절로 궁금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래서 이런 가게가 실제로 존재하긴 할까? 책을 다 읽으면 저절로 뇌리를 스치는 질문이다. '환환상점'과 비슷한 가게나 공동체는 현실에도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극히 소수지만 대만, 크로아티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자본 즉 돈이 초월적 가치를 지니게 된 오늘날 사회에서 나와 상대방의 것이 서로의 필요와 욕구가 되는 물물 교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환상점 주인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의 대안으로 진정한 의미의 '교환'을 택했고, 이것이 가게를 연 계기이자 경영 철학이 아니었을까.


*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동 학대 예방 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교환, 어쩌면 기묘한 여행과 같은 것. 누구든 이 책을 보려면 우리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와 바꿔야 한다. - P11

자전거 수리점 주인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우리한테 해 준 말도 특별했다. 특히 "한구석이 없어지고 사방으로 흩어진 것도 다시 조립하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니까. 심지어 더 소중해지지."라고 한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내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빠와 나는 자전거를 나란히 몰았다. 어느새 하늘이 다시금 저녁노을을 조립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에 어떻게 조립될지 알 수 없기에 그 노을이 무척 아름답고 더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 P35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방법이 생기더라.‘라니, 정말 그럴까? 무슨 마녀도 아니고 주문을 외운다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리가. 나야말로 지금 너무 고민스러운 나머지 골치가 아플 지경이지만 이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정작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데. - P82

첫발만 떼면 곧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 - P141

"원래 우리 가게는 나한테 쓸모없어진 쓰레기를 가져다가 내가 필요한 보물로 바꾸는 곳이란다. 그러니까 너한테는 쓰레기지만 누군가는 그걸 ‘보물‘로 여기고 가져갈 수도 있지."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은 이 책은 또 하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이토록 강인한 여성들이 또 있을까.
삶의 파도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싶다면, 그렇게 다시금 내면에 용기와 의지를 새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금이 작가님의 신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김해의 작은 마을 어진말에서 살던 열여덟의 버들이 친구 홍주, 송화와 함께 포와(하와이)로 떠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담은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이 낯선 땅에서 정착하여 살아가기 위해 한 무수한 노력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상황과 처지도 제각각인 이들 그리고 함께 포와를 향한 배에 몸을 실은 여성들은 언제나 서로의 뒤를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이자 자매, 엄마가 되어 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을 꾸려가는 모든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건 바로 이들이 보여준 여성 중심 가족의 특별한 연대다. 이들의 연대는 곳곳에 어려움이라는 인생의 파도타기가 도사리는 포와에 긍정과 희망의 무지개를 띄운다.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유난히도 무지개를 신기해하던 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무지개를 좋아해서 그런가. 바다 위에 둥글게 수 놓였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무지개는 날 좋은 날이면 늘 생각이 난다. 무지개는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만든다. 파도 없이는 무지개가 잘 서지 않는다. 거친 파도 없이는 아름다운 무지개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 문득 어쩌면 이들만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인생의 파도타기를 크게 절감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를 헤치며 무지개를 향해 나아간 이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여성이자 어머니 그리고 1세대 이민자인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는 희로애락을 엿볼 준비가 되었다면... 알로하 버들, 홍주, 송화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 P3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윤광준 작가님의 <심미안 수업>을 감명깊게 읽은 한 독자로서 신간 <내가 사랑한 공간들>의 서평을 쓰게 되었을 때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 책은 '삶의 안목을 높여 주는 공간 큐레이션 20'이라는 표지 내용에 걸맞게 심미안을 가지고 총 20개의 공간을 관찰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서문을 시작으로 본문은 테마별로 5부, 한 부당 4개의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간
2부 ○ 그곳에서 쇼핑을 하면 즐거운 이유
3부 ○ 작품 말고도 볼 것이 많은 예술 공간
4부 ○ 개인 취향과 사회 가치가 제대로 구현된 곳
5부 ○ 보고 듣고 먹고 노는 사이에 안목은 자란다
끝에는 공간들의 주소와 링크가 '윤광준이 사랑한 공간 20 가이드'라는 이름의 부록으로 실려있다.

 

- 공공성과 이야기를 기준으로 선정한 공간들에 대한 깊은 관찰은 공간을 감각적, 미학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현재의 지루한 삶을 몰랐던 새로운 공간으로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며 손짓하는 듯하다.

 

- 인상깊었던 부분은 글 앞쪽에 사진을 배치해 이해를 돕는 여타의 공간 관련 책과는 다르게
요란하지 않고 간결한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배치한 위치였다.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으나 후에는 그 의도를 알 것도 같았다. 사진이 내용 중간 혹은 맨 뒤에 위치해 있어 작가님의 설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과 실제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아는 곳은 떠올리게, 모르는 곳은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 녹사평역의 아름다움을 나처럼 느낀 분이 있다는 사실과 스타필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풍월당 등 가봤던 공간들의 등장이 반가웠다. 이 책 속 대부분의 공간들은 그렇게까지 대중적이진 않다. 이는 곧 명소만이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며 아름다운 공간이 모두 명소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 그리고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잘 알려진 명소를 아름다운 공간이라 여기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요약하면 이 책은 작가님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간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방법을 보여주는 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 그 섬세한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공간을 경험했을 때
온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공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