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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8
정유성 지음 / 책세상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땅을 살아가는 '남성'이 '여성'을 말하고, '성평등'을 실제 삶에서 실천한다면 남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남자다움'이라는 가부장성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문화에서 남성이 여성을 진정 인간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에 뛰어던 사람이 있으니 '정유성'이다. 그는 <따로와 끼리>를 통하여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남성지배문화를 벗기기 위해 나섰다. 그가 남성지배 문화가 뿌리를 내린 우리 시대를 '위기'로 규정한다. 사람의 위기다. 그리고 남성의 위기다.

 

 

<따로와 끼리>는 과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남성지배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남성지배문화라면 남성이 삶을 지배하고, 기득권을 가져 자신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남성지배문화에서 여성들에게 군림했던 남성들은 위기를 맞을 밖에 없다.

 

 

이제 남성들은 차츰 홀로 서기 시작한 여성들과 '관계의 위기'에서 흔들릴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드러난 '존재의 위기'까지 느끼게 된다. 지금, 여기의 '남성임'은 가건물처럼 부실돼 빗물이 새고 바람이 드는데, 그렇다고 그 동안의 억압 때문에 거세된 감성으로 그 아픔과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다.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힘과 권력을 앞세워 위악을 떨자니 달라진 세상이 그걸 받아주지 않는다. 그나마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여성적 본성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에 있지만 이를 체험하고 드러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본문 50쪽)

 

 

'지배문화'와 '무너짐'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유성은 "먼저 사람과 삶의 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고 부순,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도 파괴되고 있는 남성의 존재성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파괴되고 있는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 모순을 해결하게 위하여 남성의 존재성을 되짚어 보아야 하지만  남성지배문화라는 거대 담론에 따른 '남성성의 신화'에 가려져 스스로를 찾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노력하여 벗겨준 남성 존재성에 오히려 상실감까지 더해저 더 무너지고 있다. 무너짐은 거듭 남성이 되고, 남성으로 살고자 기를 쓰고 만들고 지켜온 남성의 존재성을 더욱 억압하고 폭력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한다.

 

 

<따로와 끼리>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남성문제란 무엇인가에서 '일상적 파시즘 - 따로와 끼리'를 통하여, 남성지배문화는 파시즘과 일맥상통함을 강조한다. 가족부터 민족까지 아우르는 단일한 '동일자(同一者)'는 위계에 따라 서열화되고, 독점과 지배, 권력지향, 가부장성의 주인공인 남성지배문화를 낳게 되었고, 다른 이들은 덜 떨어진 미분화된 객체로 삼고 타자화하는 '따로와 끼리' 문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확대된 가족주의이며 연고주의와 연관된다. 개인의 삶은 파괴되고 "일상생활의 영역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주의 또는 부계 혈통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의 아비투스를 강화"시켜난다고 말한다.

 

 

일상화된 파시즘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남성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남성은 '억압과 폭력의 남성지배문화'를 만들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된 문화에 매몰되고 진정 세상은 아버지가 없는 사회, 남성지배문화의 근본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장 남성은 누구인가에서는 남성되기, 남성만들기 - 분리와 이행, 남성이기, 남성으로 살기 - 억압과 폭력, 남성지키기, 망가지기 - 남성 중심 성문화를, 3장은 남성담론 - 남성문제, 남성학, 남성운동, 남성성의 신화와 이데올로기, 남성학의 등장과 남성문제 담론의 문제점을 통하여 남성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열쇠를 찾고자 한다.  

 

 

남성지배문화가 낳은 '따로와 끼리'는 '가름과 나눔'의 문화로 우리 사회의 학연, 혈연, 지연이라는 문화를 낳게 되었다. 이런 파생을 그는 '사생아'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학연이라는 끼리, 지역이라는 끼리, 친분이라는 끼리를 통하여 각료가 인선되는 것을 많이 본다. 대통령과 다른 끼리는 '따로'가 되어 가르고 나누어 결국 다른 사람들은 피해의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반문화적이고, 남성지배문화는 "반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며, 반공동체적이 반사회적인 동시에 반인간적, 반역사적인 속성을 갖는다. 이는 사회를 어지럽히고 그 구성원들을 질곡으로 몰아넣는 사람답지 못한 잘못과 모자람의 시작이다".(26쪽)

 

 

능력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기력한 사람, 사람관계를 파편화, 도구화시키는 것, 인민과 시민은 없고, 국민 아니 백성을 만든 사회, '나'라는 개인은 없고 가족만 있는 사회, 물질화된 사람을 만든 것은 바로 이 문화 때문이다.

 

 

이런 반문화적이고, 반인간적인 문화는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조선 역사를 보면 양반 기득권 세력이 가부장성을 배태시킨 장본인들이다. 여성이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막은 자들이 양반지배세력들이다.

 

 

양반지배세력이 낳은 남성지배문화가 아직도 배태되어 있는 우리 시대 문화인 반사회, 반인간, 반역사, 반자연, 반생명적인 문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는 남성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때 가능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 말처럼 남성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이 정유성 생각이다.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틀은 곧 가부장성, 남성다움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남자 아이는 가부장성과 남성다움이라는 틀에 박혀 배우게 된다.

 

 

정유성은 "여자 아이는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라는 '인격적 동일시personal identification'를 성정체성을 얻을 수 있지만 남자 아이들은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위치적 동일시positional identification'를 통해 남성의 성 정체성을 배운다"(45쪽)고 말한다.

 

 

이렇게 배운 남성 성 정체성은 인격과 사이를 통한 배려와 나눔, 섬김보다는 남성끼리 경쟁, 여성을 비하시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끊임없는 경쟁은 파괴를 낳게 되고, 여성을 비하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남성지배문화가 나은 병폐는 많다. 이 지배문화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남성들은 변질된 모습으로 남성지배문화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그 예의 하나가 바로 남성 중심 성문화다. 남성중심성문화는 사회적 지배를 튼튼히 하고 문화적 남성우월주의라는 환상을 서로에게 심어주는 남성지배문화의 상징이라고 정유성은 말한다.

 

 

성기 비교, 성경험 자랑과 같은 남성들 사이에서 과장된 자랑은 쉽게 드러난다. 이런 성적 담론은 여성들의 생명력에 대한 그들의 거듭된 무기력감, 열패감의 '투사기제projektionsmechanismus'로 변질되어 남성지배담론은 '성신화'를 만들었다. 성적 콤플렉스, 성적 능력 과시, 성 상품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남성과 남성, 여성과의 관계까지 파괴시켰다.

 

 

"결국 물화된 성성을 남성 성문화의 중심으로 삼고, 남성성을 지키는 남성 지배문화 담론으로까지 부풀렸다가 성문화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과의 관계, 남성들끼리의 관계, 심지어 스스로와의 관계마저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61쪽)

 

 

극복할 길은 있는가? 남성지배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지배성문화다. 영계문화, 원조문화가 하나의 반증으로 아버지 뻘 되는 이들이 딸같은 아이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겉으로는 비판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남성들 스스로 나서는 것이 없음을 정유성은 지적한다.

 

 

성평등과 건강한 성문화를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함으로 문제 해결은 첫 발을 내딛는다. '뒤집어 보기'다. 우리는 현실, 전통,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것에 익숙하다. 원칙과 추상 뒤에 숨어 살아왔다. 남성지배문화를 한 번 뒤집어보면 해결 방안을 알 수 있다.

 

 

'다르게 느끼기'다. 틀과 만들어진 느낌에 적응하는 것이 쉽고, 친숙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잃어버린 느낌을 다시 찾아야 한다. 나와 다른 환경에 살면서, 정리해고, 가난, 배우지 못함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고 눈물과 괴로움에 민감해져야 한다. 눈물 조차 상실해버린 우리 시대에 이웃이 당하는 고통을 알고 함께 울고, 함께 해결해가야 한다. 끼리가 아니라, 가름이 아니라 '함께'라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어보기'다. 끼리와 따라는 모든 것을 나누어버렸다. 자기와 다른 사람은 온전한 사람까지도 가르고 나누어 버렸다. 이 가름은 지연, 학연, 구조, 제도, 행정구역을 넘어 학문 세계까지 서로 가르고, 나뉘어 따로 논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삶이 아주 커다란 생명 나무에서 여러 생명들과 촘촘히 얽힌 채 이어지듯이 좀 더 맥락을 잡고, 이어지고 얽힌 매듭을 짚는 이어보기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빠져나오기'다. 따로와 끼리, 가름와 나눔은 좋은 것이 좋다,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을 만들게 한다. 지배문화에 익숙하기에 지배자는 지배에 익숙하고, 피지배자는 억압에 익숙하다. 그런데 뒤집에 보고, 다르게 보고, 이어보기 시작하면 따로와 끼리는 '아닌 것은 아닌 문화'였음을 알게 된다. 이 문화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제 '가로지르기'다. "우리를 사로잡은 그물은 오래된  새 모순, 새로운 옛 모순처럼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모순'들로 촘촘히 그리고 뒤엉켜 있다. 이렇게 새롭게 짜여진 현실의 그물망에 새로운 길을 내며, 그 구조를 혼란시키고자 문화적 모순의 장을 '가로지르면서' 담론적 실천을 수행하고자 하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89쪽)

 

 

결국 여성과 남성은 사람이다. 성별로 나누어지기 전에 '인간'으로 태어났다. 인간으로서 나눔과 섬김이 필요한 이유다. 존중이 필요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으로 끼리와 따라라는 남성지배문화가 아닌 섬김과 나눔, 존경, 평등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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