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2
김주삼 지음 / 책세상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2008년 2월10일 밤 8시 40분쯤 국보 1호 숭례문에 불길이 솟았다. 불길이 솟은 지 5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1시 55분쯤 숭례문은 600년 역사를 뒤로했다. 600년 역사가 잿더미로 변한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울었다.

 

 

1971년 송산리 5호분·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중에 우연히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주인공은 백제 25대 무령왕(501-523 재위)이었다. 1500년 역사를 그 때 사람들은 하룻밤 정리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숭례문과 무령왕릉을 우리는 '문화재'라 부른다. 문화재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전에 '문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Sir E. B. Tylor는 <원시문화Primitive Culture>에서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했다.

 

 

문화활동 결과물이자 증거물이 '문화재'다.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 인류학적인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즉 문화재란,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 한 시대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폭넓은 대상물이자, 인류가 과거에 만들어 현재에 전한 문화적 대상물이다.

 

 

숭례문 화재 전에 쓴 글이지만 이런 점에서 김주삼의 책세상 문고 · 우리시대 052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은 의미있는 읽을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김주삼은 "문화재의 현재 가치에 따라 보존 방법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면서 "무리한 복원 작업을 자제하고, 처리 대상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과학방법론, 담당자들의 기술력, 전문가 협조, 보존과 복원 기록"을 강조한다.

 

 

김주삼의 지적에 따라 1971년 당시 1500년을 하룻밤 청소하듯 정리했던 일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숭례문 화재 후 2년이면 충분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아직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화재가 경제 가치가 아니라 인류학과 문화의 대상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이다.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1장은 문화재의 중요성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개념, 2장은 문화재 보존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여러 손상 원인인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손상과 자연 현상으로 일어난 손상을 살핀다. 특히 3장은 예방 보존 및 복원 방법을 다룬다. 그는 복원보다는 문화재의 현 상태 존중과 수명 연장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방보존이라는 것이 대상물에 손을 대지 않는 보존방법이라는 면에서 보존윤리상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며 여러 연구를 종합해본 결과, 파손이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를 일일이 복원해주는 것에 비해 인력 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84쪽)

 

 

무엇보다 한 번 훼손된 문화재를 아무리 복원해도 '원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든, 자연현상이든 문화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복원이 따라 올 수밖에 없다.

 

 

그럼 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복원 작업에는 '가역성'(reversidility)이 강조된다. 가역성이란 "현재 잘못된 복원이나 향후 복원이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언제라도 최초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복원은 원형 왜곡 금지를 위하여 "복원한 흔적을 보이게 하고, 문화재에 담긴 노화 현상과 역사적인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김주삼은 강조한다. 복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다.

 

 

문화재 보존이든, 복원이든 부러진 의자 다리를 수리하는 것과 아파트를 개보수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삽질 경제가 부활하여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는 요즘 김주삼이 맺음말에서 남긴 글은 문화재 보존과 복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문화재 보존은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예술가들처럼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그 방향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품을 다루는 보존 전문가는 생명 존중이라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에 견줄 수 있어야 한다."(143쪽)

 

 

김주삼 지적은 '보존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특히 이 나라 정권 담당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