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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 지음 ★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7월15일 초판1쇄 발행


오쿠다 히데오는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소설 《공중그네》의 작가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내세워 지루한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현실세계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불평불만만 싸여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오쿠다 히데오가 내놓은 또 한편의 유쾌한 세상 이야기가 오늘 소개할 이 소설 《남쪽으로 튀어!》라고 할 수 있다. 소설보다는 만화나 영화의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쪽으로 튀어!》라는 괴상한 표제에 조폭 뺨치게 험상궂은 인상을 한 남자의 일러스트가 표지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이 책은 우선 그 겉모습부터가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책을 통해서 한바탕 웃어 제치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봐도 매혹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기대가 딱 반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2권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1권에서는 주인공 소년 우에하라 지로의 좌충우돌 성장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더할 수 없이 독특한 가풍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는 우에하라 지로와 항상 그와 함께 행동하는 절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편을 통해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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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편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주인공은 여전히 우에하라 지로라는 사춘기 소년이지만,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그의 아버지인 우에하라 이치로로 바뀐다. 과거 알아주는 과격한 운동권이었던 공산주의자 이치로는 전편에서도 국민연금 가입을 강요하러 온 공무원을 혼쭐을 내서 쫓아버리고, 아들의 졸업여행에 드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이유로 직접 교장실로 쳐들어가서 교장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리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치로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행동에 떳떳하다. 내가 원해서 일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무조건적으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본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놓고 구속하지 말라는 언뜻 궤변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극히 옳은 소리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인물이 이 우에하라 이치로인 것이다. 그 아버지의 고향인 일본의 남쪽 지역 오키나와 이리오모테 섬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 《남쪽으로 튀어!》의 후편이다. 이야기가 아버지 이치로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부터 이 소설은 유쾌함 속에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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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결코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면서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관계에 따른 여러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불합리한 행위들이 그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연 국민은 국가의 주체로써의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심오하다면 심오하달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 책은 결코 무겁거나 어려운 책이 아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오쿠다 히데오는 훌륭한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 게 아닐까 싶다. 책 읽는 내내 웃게 되는 《공중그네》로 일본 최고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탔다는 사실은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가 만들어 내는 가벼운 웃음 속에 실로 엄청난 내공이 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자못 엉뚱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해봤을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으며 이리저리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데, 그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 사고 속에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에 대한 비판과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재미라는 측면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도 마냥 가볍고 즐거운 오락소설에 그치지 않고 독자의 머릿속에 뭔가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던져 넣을 수 있는 재주, 바로 그 재주가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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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원제목인 《South Bound(サウスバウンド)》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늘씬한 중년의 카리스마 토요카와 에츠시가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역을 맡았고 그와 견주어서 키도 카리스마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여배우 아마미 유키가 그의 부인 우에하라 사쿠라 역을 맡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로는 다소 비중이 줄어들고 이치로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모든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모양이다. 지로의 누나 요코 역에는 요즘 내가 좋아라하는 여배우 키타가와 케이코가 출연하고 그를 좋아하게 되는 오키나와 이리오모테 섬의 순박한 시골 순경 아라가키 역에는 최근 영화 《데스노트》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가 캐스팅 되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분명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이나 이, 박, 최처럼 엄청난 수의 사람이 같은 성을 쓰는 우리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몇몇 성을 제외하고는 같은 성을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음악 카테고리를 접으면서 이제는 내 블로그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아라가키 유이는 잘 알려진 대로 오키나와 출신의 배우이다. 부씨 성이 제주도를 대변하듯이 아라가키는 오키나와의 성인데 이 책의 후반부 배경이 오키나와이기 때문에 순경의 성이 아라가키였다는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아라가키 유이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내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색다른 재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국가라는 권력을 핑계 삼아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에게 어떠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국가라고 이름 붙여진 집단이면 어디든 마찬가지이다. 국민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로 세금을 받아가고 그 돈을 몇몇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집행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우겨대며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곳에 지들 이름으로 생색까지 내가며 펑펑 써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 있는 미국이라는 형님 나라가 시키는 일이면 자기 국민들은 죽든지 말든지 설설 기면서 비위를 맞춰댄다. 이 책에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발생하는 반미감정에 대해서도 느껴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버지 이치로가 그토록 가기를 원하는 환상의 섬 『파이파티로마』는 어찌 보면 우리 역시 항상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파라다이스일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곧 이 책 《남쪽으로 튀어!》를 통해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2008/10/12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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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Guillaume Musso) 지음 ★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12월3일 초판1쇄 발행


예전 방화라는 듣기에도 촌스러운 이름으로 우리영화를 부르던 그 시절, 우리나라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던 대부분의 영화는 헐리우드발 미국 영화였다. 입도 잘 맞지 않는 성우의 목소리를 입혀 만든 싼티 좔좔 흐르는 우리 영화에 비해서 부자나라 미국이 만든 영화는 때깔부터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랬던 그 때 그 시절 영화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미국발 소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천사의 분노》, 《내일이 오면》, 《신들의 풍차》 등 내놓는 작품들마다 대히트를 치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현재의 조앤 롤링 부럽지 않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던 시드니 셀던이었다. 이런 시드니 셀던표 소설의 특징은 주인공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으로 구구절절 파란만장 다이나믹하다는 것이다.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저리 가라할 정도로 사건 사고의 연속인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을 따라 가다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정도로 그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춘삼월 꽃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펴내는 책들마다 모두 이런 식의 비슷한 스토리로 전개되다보니 어느새 시드니 셀던표 소설의 앞에는 싸구려 삼류소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고 말았다. 요 몇 년 사이에 최고의 스타 작가로 발돋움 한 기욤 뮈소의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2007년 세상을 떠난 시드니 셀던 옹이 생각났다. 함께 주문했던 《구해줘》까지 읽고 나니 돌아가신 그 분 생각이 더더욱 간절해졌다. 아, 이건 마치 시드니 셀던의 재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을 가장한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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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카고 빈민가 출신인 마크는 과거 뉴욕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지만 사랑하는 딸이 행방불명된 후 2년째 더러운 뒷골목을 떠돌아다니며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 커너는 그런 마크와 시카고 시절 때부터 함께 해 온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신의학분야의 권위자이다. 라스베가스 출신의 에비는 간 이식 순서를 고의로 바꿔치기 한 의사 때문에 하나뿐인 혈육인 엄마를 잃고 그 의사를 죽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간다. 세계적인 유명 기업인인 대부호 아버지를 둔 덕택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속녀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앨리슨은 뛰어난 미모와 돌출 행동으로 마치 헐리우드 스타들처럼 수많은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리며 타블로이드판 가십 기사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이 네 명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네 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시' 정도의 카피가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현재 처해 있는 입장 자체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 다른 사연을 안고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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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대단히 재미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전개, 마지막에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극적인 반전까지 한마디로 히트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와는 별개로 책의 전체 구성이 지금까지 몇 번은 봤음직한 너무나도 식상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재미는 있지만 감동은 없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는 킬링타임용 소설로는 딱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독서하는 행위 자체를 뭐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인양 호들갑을 떠는 인간들은 질색이다. 위인전이나 시집, 자기계발서 같은 종류의 책만을 좋은 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소설이나 여행기 같은 책들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 가벼움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든 그런 생각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멋진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정말로 이런 식의 반전은 두 말 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도 헐리우드 영화스러운 반전이 아닌가 말이다.(반전의 내용은 여기에서 밝히지 않겠다. 책으로 직접 확인들 해 보시라) 프랑스인임에도 발표하는 소설마다 미국을 배경으로 또 그중에서도 가장 미국다운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에 심각하게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이런 모습은 미국 중심의 문화에서 각 나라별 특징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문화로 변모해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때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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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새로운 하나의 현상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기욤 뮈소의 소설은 발표되는 족족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활자로 만들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비주얼이 느껴지는 그의 소설은 기욤 뮈소 자신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사랑에만 국한된다. 한마디로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남녀상열지사쯤 된다는 소리다. 기구한 운명에 처한 남녀주인공들이 자신들 앞에 닥친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불꽃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가혹한 운명을 이겨내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며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액션이든 스릴러든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수백억짜리 영웅물이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화라면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다. 문제는 이런 극적인 애정 장면이 더 이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 같이 늘씬늘씬한 선남선녀가 얼굴에 시커먼 검댕을 묻힌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마지막에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장면은 '결국에는 또 이렇게 되는구만'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올 만큼 상투적인 감정이입 0%의 식상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때리고 부수는 통쾌한 재미는 있되 인간에 대한 자세한 성찰은 배제되어 있고 스토리 전체가 관객이 예상하는 그대로 흘러가는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는 가벼운 영화를 사람들은 B급 영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지만 읽고 나서 얼마 후면 어디가 어떻게 흥미로웠던 건지조차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기욤 뮈소의 소설을 그래서 나는 B급 소설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2008/09/26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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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겐이치(川上健一) 지음 ★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5월1일 초판1쇄 발행


2001년 《책의 잡지》 선정 올해의 책 1위

제17회 쓰보다 조지 문학상 수상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춘'은 음악, 영화, 문학을 가리지 않고 등장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재료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하게 되지만, 억만금을 준대도 결코 두 번은 경험할 수 없는 '청춘'은 누구에게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시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즐거웠든 괴로웠든 한번 지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절이기에 누구에게나 이 '청춘'의 기억은 아련하다. 가와카미 겐이치의 소설 《날개는 언제까지나》는 이 아련한 '청춘'의 기억을 돌아보는 소설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부모를 대하는 것에도 스쳐 지날 때마다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이성을 대하는 것에도 서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오락가락하고 어른과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끓어오르지만 정작 용기는 쥐꼬리만큼 밖에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의 이야기가 작가의 고향인 아오모리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자신의 '청춘'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가슴 벅찬 추억의 재발견이 될 것이고 반대로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작가의 거짓 망상에 불과한 얘기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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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야구부에서 투수를 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 가와카미 겐이치는 그런 자신의 경험을 십분 살려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하며 청춘소설과 스포츠소설 분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에도 이상이 발견되어 결국 펜을 꺾고 가족과 함께 시골로 요양 차 내려가게 됐다고 한다. 그곳에서 10여년의 세월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완벽한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한 끝에 잃어버렸던 건강과 불타는 창작의욕을 동시에 되찾고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이 소설 《날개는 언제까지나》를 쓰게 됐다고 하니 작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정말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은 아오모리현 도와다 시립 미나미 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야구부원 가미야마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와 함께 만년후보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와지마, 리키이시라는 단짝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뛰어난 야구실력과 훤칠한 외모를 가진 야구부의 실질적인 리더 히가이시, 만능 스포츠맨이지만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가사하라 등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청춘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풋풋한 첫사랑의 대상으로 사이토 다에라는 여학생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성격이 일반적인 청춘소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왕따에 가까운 인물이다.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긴 머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는 존재감 제로의 이 소녀는 주인공 가미야마가 미국방송을 통해서 라디오에서 듣게 된 비틀즈의 「Please Please Me」를 반 친구들 앞에서 엉터리 영어로 열창하는 순간 느닷없이 말을 걸어오면서부터 가미야마에게 있어서는 신경 쓰이는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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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생인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청춘의 기억이란 곧 비틀즈의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국적을 불문하고 그들의 음악이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미친 파급효과는 컸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미야마와 사이토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 역시 1963년에 발표된 비틀즈의 기념비적인 첫 앨범 『Please Please Me』에 수록되어 있는 동명타이틀곡 「Please Please Me」이다. 비틀즈는 가미야마와 사이토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선생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학교 안에서 댄스파티를 여는 야구부원들에게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라 전체에서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에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불순한 음악으로 취급받던 비틀즈의 노래였지만, 그 당시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을 간접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획기적인 음악으로 받아 들여졌었다. 《날개는 언제까지나》는 아버지와 선생님에 대한 반항, 섹스와 이성에 대한 호기심,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과 극적인 첫 키스, 친구간의 우정과 갈등 등의 요소가 골고루 녹아 있는 전형적인 청춘소설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이런 점 때문에 자칫 진부해 보일 소지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글 솜씨가 워낙 탁월한 탓에 잠시의 지루함도 느낄 새 없이 단번에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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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중학생이던 학창시절이 까마득히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됐지만, 그 시절 친구들과 비밀스럽게 공유했던 추억들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 조용히 몸부림 치고 있다. 치기어린 그 시절 어른이 되면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고 내가 원하는 대로 멋진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지만, 현실의 고단함은 내게 어린 시절과 같은 꿈을 꿀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내가 친구들과 나눴던 미래의 꿈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들은 설령 그것이 유치한 어린애의 세상물정 모르는 허황된 헛소리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도 피곤하고 힘들 때마다 가끔씩 머릿속에서 추억으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운을 전해주곤 한다. 옛날 뭉쳐 다니던 일당들과 함께 힘들게 구한 턴테이블 위에 아하나 왬의 음반을 올려놓고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겨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던 몇 년 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청춘은 별다른 설명도 큰 의미도 필요 없이 그 옛날 우리가 그렇게 열광했던 가수의 노래 한 곡만으로도 온전히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가슴에 품었던 거창했던 꿈과 희망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 같은 위치에 서서 유치찬란한 내 꿈을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양 들어주고 내 아픔을 어설프게 함께 나누려 했던 친구라는 존재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내 청춘 시절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08/09/24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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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지음 ★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7월27일 초판1쇄 발행


2001년 제55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 수상

2002년 예술선장(芸術選奨) 문부과학대신상 문학부문 수상


미야베 미유키는 자타공인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여성 추리소설작가다. 그리고 그녀를 이처럼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 바로 이 소설 《모방범》이다. 1995년 11월부터 종합주간지 『주간포스트』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2001년에 상ㆍ하권으로 이루어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2005년에 총 5권으로 구성된 문고본으로 다시 간행되어 나왔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도에 총3권으로 이루어진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는데, 각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익히 알려진 원작의 명성 때문인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내 그 미련할 정도로 엄청난 페이지수의 압박에 지례 겁을 집어먹고 감히 읽을 엄두를 내지도 못하다가 2007년 연말에서야 겨우 용기를 내서 읽게 되었다. Copy cat이라는 영어 단어로도 익숙한 모방범이라는 말은 다들 알다시피 어떤 범죄 사건을 그대로 흉내 내서 따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왜 이 소설의 제목을 《모방범》으로 지었는가에 대한 해답은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대할 때는 이 제목 때문에 과거 한 사건에서 사용된 방식을 차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의 이야기일거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런 것과는 별다른 상관없는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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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17세의 소년 쓰카다 신이치는 언제나처럼 애견 로키를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오가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날따라 공원 쓰레기통을 향해서 무섭게 짖기 시작하는 로키. 그리고 곧 그 쓰레기통 안에서 잘린 여자의 손과 핸드백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이 밖에서 무심코 친구에게 자랑한 돈 얘기 때문에 일가족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끔찍한 과거를 가진 소년 신이치, 언론은 그런 신이치가 이번 사건의 첫 번째 발견자라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잘린 손과 함께 발견된 핸드백의 주인으로 밝혀진 후루카와 마리코의 외할아버지 아리마 요시오에게는 사건 직후 음성을 변조한 정체 모를 괴한으로부터 손녀의 생사를 두고 장난을 치는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에 프리랜서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가 사건에 개입하면서부터 범인의 괴이한 행동은 더욱 심해지고 급기야는 이 사건을 다루는 방송국에 직접 자신의 범죄를 자랑하는 전화를 걸어와 방송을 보던 전 국민을 경악과 분노에 빠뜨린다. 이 소설 《모방범》의 범인들(범인은 두 명이다 *스포일러 아님)은 책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부분에서 모두 밝혀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이 범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그 중 한 명이 어떻게 자신이 벌인 일의 뒷수습을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복잡한 트릭과 모호한 알리바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는 명쾌한 추리를 통해서 마지막 순간에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서 흥분과 재미를 주는 타입의 추리소설이 아니라 범인의 심리와 정신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그와 얽혀있는 사회문제와 인간의 부조리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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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1993년 작 《화차》와 나오키상을 수상한 1999년 작 《이유》를 통해서 일본문학계의 권위 있는 상들을 싹쓸이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가로 인정받게 됐고, 이후 발표한 이 소설 《모방범》으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추리작가로 등극하였다. 그녀의 소설은 대체로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많은데 이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녀의 소설은 길이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 《모방범》도 너무나도 많은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서 중간쯤에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잠깐의 지루함만 이겨낸다면 곧 이어서 범인들의 사악한 범행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며 책장을 넘기는 손에 한층 속도감을 더해 줄 것이다. 인간심리를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찬사를 듣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그래서 자칫 사건과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목일지라도 대충 넘어갈 수가 없다. 한 인물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나중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요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마 요시오는 손녀의 유해를 확인한 뒤 자신에게 걸려온 범인들의 전화를 받고 '힘없는 여자만 골라서 죽이는 비겁한 놈들'이라는 말로 자의식 가득한 그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죄 없는 남자희생자만 한 사람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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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은 2002년 일본 최고의 그룹 「스맙」의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원작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 영화도 한번 찾아서 보게 됐는데, 영화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원작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폭 삭제되거나 역할이 미미할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고 사건 진행은 엄청나게 빠른데 반해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작에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의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는 키무라 요시노라는 특급배우를 캐스팅하고도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미미한 비중으로 그려지고 있고 덩달아서 솔직하고 단순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표현되는 그녀의 남편 마에하타 쇼지도 별다른 역할도 없이 잠깐 얼굴만 내밀다가 급기야는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범인들의 손에 살해당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황당함도 영화의 마지막에는 비할 수가 없다. 나카이 마사히로가 연기하는 범인 아미카와 코이치가 생방송 도중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자 뜬금없이 자신의 몸에 장치한 폭탄을 터뜨리며 자폭하는 장면은 어설픈 CG와 함께 보는 이에게 어이없는 헛웃음만을 유발시킨다. 게다가 손녀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시종일관 놀림감으로 삼고 괴롭히던 아리마 요시오에게 아미카와가 자신과 같은 괴물이 아닌 심성 착한 인간으로 키워달라며 자신의 갓난쟁이 아들을 부탁하는 편지를 남기는 엔딩 장면은 원작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까지 찾아본 내 자신을 원망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설프게 영화화했다가는 오히려 원작의 명성을 깎아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2008/09/23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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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歌野晶午) 지음 ★ 김성기 옮김 / 한스미디어 / 2005년12월26일 초판1쇄 발행


2004년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4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2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소설은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제목을 가진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권의 시집 같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소설은 추리작가 우타노 쇼고의 2003년 작품으로 2004년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4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2위라는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책의 마지막에 숨어있는 기발하다 못해 기가 막히는 반전에 황당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반전의 충격효과가 큰 만큼 이 소설은 내용 전체가 교묘하게 그 반전에 포커스를 맞춰서 짜여 있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반전의 정체가 드러나면 아마도 내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독자가 다시 앞의 내용들을 재확인하는 수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단점 또한 이 반전에서 나온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식의 반전이 처음에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강력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책장을 덮고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면 반전이라기보다는 단지 작가의 말장난에 내 자신이 놀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이 책의 핵심인 반전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그 유명한 『유주얼 서스펙트』의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망발처럼 독서의 의지를 완전히 끊어놓는 천인공노할 스포일러 살포 행위이기 때문에 그 반전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다만, 반전이 생명인 소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이 반전의 특성 상 절대로 영화나 드라마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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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작품 속 화자인 나루세가 사쿠라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여인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려던 사쿠라를 구해주게 된 나루세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녀와 얽히게 되고 고등학교 후배인 기요시가 헬스클럽에서 만나서 한눈에 반한 여성 아이코의 부탁으로 자신에게 어떤 사건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면서 그의 나름대로 평온했던 일상은 점차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으로 변해간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지금 현시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따라 진행되다가 책의 중간쯤부터는 주인공 나루세의 아주 오래된 과거 얘기가 한참 동안이나 나온다. 이 부분에서 과연 이런 과거지사가 사건 해결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데 이 과거사건의 현재와의 인과관계 역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진다. 이 책은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마지막 부분에 모든 사건의 실체가 한꺼번에 드러나며 폭풍처럼 몰아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종반부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전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초중반부에 일어나는 일들이 언뜻 보기에는 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로 작용하며 전체적인 구조가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얽혀있어야 한다. 이 작품도 나중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앞에서 나온 얘기들이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전 자체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다소 무리하고 억지스럽게 설정된 부분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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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반전이 돋보이는 추리소설을 세 개만 뽑아보라고 한다면 엘러리 퀸의 <Y의 비극>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중 최고를 고르라면 단연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다. (얘기 진행상 반전 내용을 공개해야겠다. 스포일러가 신경 쓰이는 사람은 다음 단락으로 건너뛰기 바란다.) 앞에 있는 두 작품의 반전도 정말 기가 막히지만, 마지막이 가까워 오면서 대강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반전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회색의 뇌세포’라 불리는 명탐점 에르큘 포와르가 범인을 지목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를 체험하게 된다. 포와르가 지목한 범인은 1인칭 시점인 이 소설의 화자이자 사건 내내 포와르의 옆에서 조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의사 셰퍼드로 용의자 선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야기의 진행자를 교묘하게 범인으로 감추어 놓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직후, 지금까지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보지 못했던 주인공이 범인이라는 엄청난 반전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그와 동시에 흥미를 끌기 위한 비열한 장치라는 이유를 들어 비난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반전 또한 이처럼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는데, 나는 다른 모든 부분을 떠나서 일단은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강한 충격을 독자에게 준다는 점에서 반전의 묘미를 맛보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작가에서 속았다는 괘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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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가 일본에서 2003년 발표한 초판과 2007년 발간된 새로운 버전의 일본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표지를 보면 마치 시의 한 구절 같은 묘한 느낌의 제목과 어울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이 작품의 표지는 언뜻 보면 로맨스 소설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 예쁘게만 꾸며져 있다. 사전에 이 소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서점에 서서 책 내용을 뒤적여보지 않는다면 도저히 추리소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책의 상품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선택하는데 표지가 하는 역할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표지만을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몇몇 사람들 위주로 표지를 두꺼운 하드커버의 양장으로 만드는 것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속지의 활자 크기도 줄이고 종이의 질도 떨어뜨려서 책 자체의 가격을 내리자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책 한권의 가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싼 건 아니지만, 독서인구 운운하며 책을 읽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 책 가격에 관한 문제다. 쓸데없이 딱딱한 양장으로 포장하고 활자를 쉽게 눈에 들어오게 하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는 코팅을 입히느라 책값을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소설의 장르를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예쁜 표지로 꾸며 놓는 것 또한 분명히 문제가 있다. 책 읽는 즐거움은 예쁜 책 표지를 보고 부드러운 종이를 만지는데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책 안에 인쇄된 글자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일 테니까.


2008/09/23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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