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Guillaume Musso) 지음 ★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12월3일 초판1쇄 발행


예전 방화라는 듣기에도 촌스러운 이름으로 우리영화를 부르던 그 시절, 우리나라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던 대부분의 영화는 헐리우드발 미국 영화였다. 입도 잘 맞지 않는 성우의 목소리를 입혀 만든 싼티 좔좔 흐르는 우리 영화에 비해서 부자나라 미국이 만든 영화는 때깔부터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랬던 그 때 그 시절 영화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미국발 소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천사의 분노》, 《내일이 오면》, 《신들의 풍차》 등 내놓는 작품들마다 대히트를 치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현재의 조앤 롤링 부럽지 않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던 시드니 셀던이었다. 이런 시드니 셀던표 소설의 특징은 주인공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으로 구구절절 파란만장 다이나믹하다는 것이다.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저리 가라할 정도로 사건 사고의 연속인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을 따라 가다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정도로 그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춘삼월 꽃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펴내는 책들마다 모두 이런 식의 비슷한 스토리로 전개되다보니 어느새 시드니 셀던표 소설의 앞에는 싸구려 삼류소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고 말았다. 요 몇 년 사이에 최고의 스타 작가로 발돋움 한 기욤 뮈소의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2007년 세상을 떠난 시드니 셀던 옹이 생각났다. 함께 주문했던 《구해줘》까지 읽고 나니 돌아가신 그 분 생각이 더더욱 간절해졌다. 아, 이건 마치 시드니 셀던의 재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을 가장한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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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카고 빈민가 출신인 마크는 과거 뉴욕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지만 사랑하는 딸이 행방불명된 후 2년째 더러운 뒷골목을 떠돌아다니며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 커너는 그런 마크와 시카고 시절 때부터 함께 해 온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신의학분야의 권위자이다. 라스베가스 출신의 에비는 간 이식 순서를 고의로 바꿔치기 한 의사 때문에 하나뿐인 혈육인 엄마를 잃고 그 의사를 죽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간다. 세계적인 유명 기업인인 대부호 아버지를 둔 덕택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속녀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앨리슨은 뛰어난 미모와 돌출 행동으로 마치 헐리우드 스타들처럼 수많은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리며 타블로이드판 가십 기사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이 네 명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네 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시' 정도의 카피가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현재 처해 있는 입장 자체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 다른 사연을 안고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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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대단히 재미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전개, 마지막에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극적인 반전까지 한마디로 히트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와는 별개로 책의 전체 구성이 지금까지 몇 번은 봤음직한 너무나도 식상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재미는 있지만 감동은 없다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는 킬링타임용 소설로는 딱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독서하는 행위 자체를 뭐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인양 호들갑을 떠는 인간들은 질색이다. 위인전이나 시집, 자기계발서 같은 종류의 책만을 좋은 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소설이나 여행기 같은 책들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 가벼움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든 그런 생각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멋진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정말로 이런 식의 반전은 두 말 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도 헐리우드 영화스러운 반전이 아닌가 말이다.(반전의 내용은 여기에서 밝히지 않겠다. 책으로 직접 확인들 해 보시라) 프랑스인임에도 발표하는 소설마다 미국을 배경으로 또 그중에서도 가장 미국다운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에 심각하게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이런 모습은 미국 중심의 문화에서 각 나라별 특징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문화로 변모해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때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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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새로운 하나의 현상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기욤 뮈소의 소설은 발표되는 족족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활자로 만들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비주얼이 느껴지는 그의 소설은 기욤 뮈소 자신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사랑에만 국한된다. 한마디로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남녀상열지사쯤 된다는 소리다. 기구한 운명에 처한 남녀주인공들이 자신들 앞에 닥친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불꽃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에는 가혹한 운명을 이겨내고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며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액션이든 스릴러든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수백억짜리 영웅물이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화라면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다. 문제는 이런 극적인 애정 장면이 더 이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 같이 늘씬늘씬한 선남선녀가 얼굴에 시커먼 검댕을 묻힌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마지막에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장면은 '결국에는 또 이렇게 되는구만' 하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올 만큼 상투적인 감정이입 0%의 식상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때리고 부수는 통쾌한 재미는 있되 인간에 대한 자세한 성찰은 배제되어 있고 스토리 전체가 관객이 예상하는 그대로 흘러가는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는 가벼운 영화를 사람들은 B급 영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읽을 때는 흥미진진하지만 읽고 나서 얼마 후면 어디가 어떻게 흥미로웠던 건지조차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기욤 뮈소의 소설을 그래서 나는 B급 소설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2008/09/26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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