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 지음 ★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7월15일 초판1쇄 발행
오쿠다 히데오는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소설 《공중그네》의 작가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내세워 지루한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현실세계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불평불만만 싸여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오쿠다 히데오가 내놓은 또 한편의 유쾌한 세상 이야기가 오늘 소개할 이 소설 《남쪽으로 튀어!》라고 할 수 있다. 소설보다는 만화나 영화의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쪽으로 튀어!》라는 괴상한 표제에 조폭 뺨치게 험상궂은 인상을 한 남자의 일러스트가 표지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이 책은 우선 그 겉모습부터가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책을 통해서 한바탕 웃어 제치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봐도 매혹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기대가 딱 반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2권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1권에서는 주인공 소년 우에하라 지로의 좌충우돌 성장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더할 수 없이 독특한 가풍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는 우에하라 지로와 항상 그와 함께 행동하는 절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편을 통해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 * *
하지만, 후편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주인공은 여전히 우에하라 지로라는 사춘기 소년이지만,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그의 아버지인 우에하라 이치로로 바뀐다. 과거 알아주는 과격한 운동권이었던 공산주의자 이치로는 전편에서도 국민연금 가입을 강요하러 온 공무원을 혼쭐을 내서 쫓아버리고, 아들의 졸업여행에 드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이유로 직접 교장실로 쳐들어가서 교장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리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치로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행동에 떳떳하다. 내가 원해서 일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무조건적으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본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놓고 구속하지 말라는 언뜻 궤변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극히 옳은 소리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인물이 이 우에하라 이치로인 것이다. 그 아버지의 고향인 일본의 남쪽 지역 오키나와 이리오모테 섬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 《남쪽으로 튀어!》의 후편이다. 이야기가 아버지 이치로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부터 이 소설은 유쾌함 속에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 * *
이 책은 결코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면서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관계에 따른 여러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불합리한 행위들이 그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연 국민은 국가의 주체로써의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심오하다면 심오하달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 책은 결코 무겁거나 어려운 책이 아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오쿠다 히데오는 훌륭한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 게 아닐까 싶다. 책 읽는 내내 웃게 되는 《공중그네》로 일본 최고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탔다는 사실은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가 만들어 내는 가벼운 웃음 속에 실로 엄청난 내공이 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자못 엉뚱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해봤을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으며 이리저리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데, 그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 사고 속에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에 대한 비판과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재미라는 측면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도 마냥 가볍고 즐거운 오락소설에 그치지 않고 독자의 머릿속에 뭔가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던져 넣을 수 있는 재주, 바로 그 재주가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 *
소설은 원제목인 《South Bound(サウスバウンド)》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늘씬한 중년의 카리스마 토요카와 에츠시가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역을 맡았고 그와 견주어서 키도 카리스마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여배우 아마미 유키가 그의 부인 우에하라 사쿠라 역을 맡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로는 다소 비중이 줄어들고 이치로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모든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모양이다. 지로의 누나 요코 역에는 요즘 내가 좋아라하는 여배우 키타가와 케이코가 출연하고 그를 좋아하게 되는 오키나와 이리오모테 섬의 순박한 시골 순경 아라가키 역에는 최근 영화 《데스노트》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가 캐스팅 되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분명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이나 이, 박, 최처럼 엄청난 수의 사람이 같은 성을 쓰는 우리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몇몇 성을 제외하고는 같은 성을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음악 카테고리를 접으면서 이제는 내 블로그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아라가키 유이는 잘 알려진 대로 오키나와 출신의 배우이다. 부씨 성이 제주도를 대변하듯이 아라가키는 오키나와의 성인데 이 책의 후반부 배경이 오키나와이기 때문에 순경의 성이 아라가키였다는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아라가키 유이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내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색다른 재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국가라는 권력을 핑계 삼아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에게 어떠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국가라고 이름 붙여진 집단이면 어디든 마찬가지이다. 국민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로 세금을 받아가고 그 돈을 몇몇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집행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우겨대며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곳에 지들 이름으로 생색까지 내가며 펑펑 써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 있는 미국이라는 형님 나라가 시키는 일이면 자기 국민들은 죽든지 말든지 설설 기면서 비위를 맞춰댄다. 이 책에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이와 같은 경우에 발생하는 반미감정에 대해서도 느껴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버지 이치로가 그토록 가기를 원하는 환상의 섬 『파이파티로마』는 어찌 보면 우리 역시 항상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파라다이스일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곧 이 책 《남쪽으로 튀어!》를 통해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2008/10/12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