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를 피하는 법
리처드 로퍼 지음, 진영인 옮김 / 민음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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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제목만 봤을 때에는 죽음에 관한, 그것도 고독사에 관련된 에세이로 생각을 했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책이 유품정리사가 다양한 죽음을 통해 느낀 삶의 의미 등을 기록한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었기에 뭔가 그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죽음에 관한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보니 소설이라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자 제목과는 상반되게 유쾌하고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족 없이 외롭게 죽은 이들의 신원 파악과 재산 조사 등의 업무를 하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죽음에 관해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유품정리사라는 직업도 고독사 하는 이들의 신원 파악이나 재산 조사, 가족을 찾는 일, 장례절차까지 맡는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독사를 피하는 법>에 등장하는 주인공 앤드루는 구청 직원으로 공중 보건법에 의거한 사망 사건을 담당하며 가족 없이 홀로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 주는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앤드루는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얼떨결에 아내와 아이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일이 점점 꼬이게 된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앤드루. 자신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인해 점점 거짓말은 커져가고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모든 직원들이 그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유부남으로 알고 있다.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의 에피소드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점점 부풀려지고... 이로 인해 그의 삶은 점점 더 외롭고 고독해져만 간다. 수많은 고독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일을 담당하면서 자신도 이들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얼떨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가 자신의 삶을 더 외롭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그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 간의 오해와 단절, 그리고 그를 외롭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삶을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후반에 가서 앤드루의 가슴 아픈 과거사가 밝혀진다.) 새로 들어온 신입 페기와 함께 고독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앤드루는 점점 그의 삶에 그녀가 크게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친구처럼 지내는 둘 사이에 거짓말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 있는 앤드루. 결국 그는 페기의 영향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고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는 앤드루의 과거와 마음의 상처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조금 더 그를 이해하게 된다.

다소 찌질한 캐릭터인 앤드루가 페기를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고 삶이 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처받은 앤드루는 어쩌면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자기방어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텨간 게 아닐까 싶다.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스스로 외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앤드루가 고독사 현장 업무를 통해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깨달으며 페기의 적극성에 맞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닐까.

앤드루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앤드루의 직업적인 고독사 현장의 여러 죽음들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마음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흥미롭고 재미난 소설이 아니라 앤드루의 삶을 바라보면서 독자 또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유쾌하지만 명쾌하게 말해주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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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진여행지 - 디지털카메라 사용자를 위한 지침서
허흥무 지음 / 미진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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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진 책이라면 사진과 함께 촬영 정보와 카메라 조작법이나 촬영 방법 등의 정보로 채워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진여행지>책은 단순히 사진에 관련된 정보만 기록된 것이 아닌, 더 다양한 정보와 수없이 찍어본 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진정한 노하우를 비롯해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상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어 기존의 사진 관련 책과는 차별화된 인상적인 책이었다.



목차를 살펴보자면 총 6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각 지역마다 풍경이 아름다운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받고서 머리말을 읽은 후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중심의 내용들을 먼저 살펴보았다. 경상권 여행지들의 풍경들을 먼저 읽은 후 다음으로는 제주편의 이야기를 읽었다. 책을 마주한 이들이라면 꼭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내가 관심 가는 장소나 지역부터 읽어도 무관하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을까. 사진을 좀 찍어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특히 풍경 사진의 경우 그 장소에 간다고 해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의 풍경을 담기 위해 어쩌면 수도 없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열정과 노력과 끈기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두해로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다. 사진가는 부지런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부지런함의 결과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자발적으로 사진이 좋아서, 풍경에 미쳐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때론 위험을 무릅쓰고 담아낸 풍경들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그 숱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사진 선배의 따뜻한 조언 같은 글들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기어이 해 낸 작가의 의지와 노력이 느껴져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거 같다.


모든 사진들이 다 아름답고 멋지지만 서울 세계불꽃축제 사진은 더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

사진들을 보노라니 우리나라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나라라는 걸 새삼 느끼면서 언택트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사진 한 장 한 장이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되었다.

책 중간중간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진을 좀 더 잘 찍을 수 있는 비법? 같은 정보도 모아놓았다. 사진을 처음 접하거나 나도 사진을 좀 잘 찍어보고 싶다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 한 권의 내용만 따라 해도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진을 보면서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찍으려는 대상에 따라 카메라의 작동법만이 아닌, 시간대나 날씨 빛의 각도, 배치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참 많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꽃 사진은 이렇게 찍고 불꽃은 이렇게 찍고... 등등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상황에 따른 촬영법이나 상황에 따른 대처법 등도 세세하게 안내하고 있어 참 친절한 책이다.

지금껏 사진 책들을 살펴보면 이론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면 <대한민국 사진여행지>책은 마치 함께 출사를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사진사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이런 식으로 찍어보라며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는 기분이다. 글로 다 설명이 어렵지만 책을 읽어 보면 얼마나 자상하게 가르쳐주는지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에도 풍경 사진을 잘 찍는 10가지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모아두었다. 그리고 각 지역별 촬영지마다 주소와 자차 이용, 대중교통 이용 등 처음 가는 사람들을 위해 정보도 꼼꼼하게 정리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장소에 따라 촬영하기 좋은 시간, 위치, 계절 등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

신기하게도 사진 한 장에서도 촬영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같은 풍경이라도 찍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감정과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흥무 작가는 단순히 사진만 잘 찍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아름답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담긴 결과물도 다르다. 블로그 생활을 하다 보면 댓글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바라쿠다님은 섬세하고 따스한 분이라는 걸 평소 느끼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섬세하고 꼼꼼함은 물론이고 굉장히 감성적이며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은 사진 책이 아닌 사진 에세이를 읽고 있는 착각이 들 만큼.

정보도 사진도 많지만 글도 꽤 많다. 그래서 사진 안내서이기도 하지만 사진 여행 에세이기도 한 책이다.




아마도 머리말에 쓰인 이 글이 허흥무 작가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마음을 담아 모든 걸 다 쏟아낸 듯한 책.


처음부터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한 결과물을 놓고 분석하고 재도전하고... 고민하였기에 발전도 있는 법이다. 아마도 허흥무 작가도 처음엔 고민하면서 사진 관련 책들도 살펴보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본 개념은 물론이고 경험을 토대로 해야만 알 수 있는 촬영법이나 노하우를 적은 책들은 거의 볼 수 없어 아쉽고 답답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고민하고 노력한 끝에 제대로 모든 것을 담은 사진 책을 만들어보고자 작정하고 쓴 책인 거 같다.

<대한민국 사진여행지>책은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정보를 토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사진 실력은 물론이고 어렵지 않게, 쉽고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고 사진을 취미로 혹은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들에게도 또 다른 방향으로 배울 점과 느끼는 부분이 많을 책이다.

또한 사진 촬영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에 나온 풍경과 여행 이야기들을 작가의 시선을 따라 함께 여행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풍경이 마음에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올 컬러판 사진책인데 출판 과정에서 사진들의 톤이 전체적으로 어둡게 인쇄되어 실제 담은 사진의 그 감동과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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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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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리소설이나 심리 스릴러 소설의 경우에는 특히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만나게 되면 그 작가의 작품은 꾸준히 믿고 보는 편이다. B. A. 패리스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이 바로 <비하인드 도어>였다. 심리 스릴러물 중에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굉장한 작품으로 기억하는 책이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이 작가의 신작들은 꼭 챙겨서 읽는데 이번에 B. A. 패리스의 신작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비하인드 도어>, <브레이크 다운>, <브링 미 백>에 이어 이번에는 <딜레마>로 돌아왔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강력하고 숨통을 조여오는 가스라이팅의 모습을 보여준 <비하인드 도어>가 나에겐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으뜸으로 꼽는다. 모든 작품이 다 흥미롭고 대단한 내용들이지만 비하인드 도어가 너무나 강력한 인상을 남겼기에 그 이후에 나왔던 브레이크 다운은 살짝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브링 미 백은 브레이크 다운보다도 정서적 폭력, 심리 스릴러 다운 면은 약간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이번 <딜레마>는 작가가 다시금 늘어진 나사를 바짝 조은 느낌이 <비하인드 도어>의 첫 작품에서처럼 신선하고 작가 특유의 뛰어난 심리 묘사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흔히 우리가 스릴러물이나 심리소설을 읽을 때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번 <딜레마>에서는 거대한 사건이나 무시무시한 반전 이런 거 없이 한 가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벌어지는 심리에 대해 파고들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진실을 묻어둔 채 살아가는 우리의 흔한 일상과 너무 닮아 있어 더 공감되고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큰 줄기는 남편과 아내가 각기 다른 딸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고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정작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마음 졸이고 각자 괴로워하는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는 요일과 시간에 따라 남편 애덤과 아내 리비아의 입장에서 쓰이고 있다.

처음에 6월 9일 일요일 오전 3시 30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리비아와 애덤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어떻게 맞물리는지 알 수가 없다. 모호한 표현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짐작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깔아놓고 있다.


그 새벽 애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미친 듯이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애덤은 경찰에게 붙잡힌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달리냐고 묻자 애덤은 자신의 딸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바로 이 대목이 이 책의 핵심이자 본격적인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된다. 대체 딸 마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독자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든 후 그 이후부터는 딸 마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애덤과 리비아 각자 딸과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딸 마니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애덤은 왜 저렇게 폭주하는 걸까? 궁금증을 던져놓고 이제는 전날 아침의 시간으로 돌아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애덤과 리비아는 리비아가 열일곱 살 때 흔히 말하는 사고를 쳐서 임신을 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애덤과 리비아. 제대로 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학업도 중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사랑의 힘으로 둘은 건강한 가정을 이끌어가게 된다. 하지만 리비아의 부모님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리비아를 용서할 수 없어 연을 끊어 버렸다. 아들과 딸을 훌륭하게 잘 키워내고 어느새 독립할 나이가 되었고 생계도 안정적으로 되었으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되었다. 변변한 결혼식도 못 올린 그녀는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에 거대한 파티를 계획하게 되고 그날만을 위해 행복한 꿈을 꾸며 지내왔다.

홍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딸 마니가 엄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없다고 엄마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빠 애덤에게만 말하고 깜짝 선물로 파티 당일 짠~ 하고 나타날 계획이었다. 딸이 돌아온다는 사실은 아빠인 애덤만 알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사실. 그런데 딸이 홍콩에서 카이로 -암스테르담 - 런던을 경유해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하게 되는데 딸이 카이로에서 탈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애덤은 딸의 행방을 알기 위한 피 말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딸에게선 비행기의 연착으로 환승에 문제가 생겼다는 문자가 와 있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 두절이 된다. 딸이 사고 비행기에 탔을지 안 탔을지는 애덤도, 독자도 너무나 궁금한 부분이었다. 딸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리비아는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아내가 가장 행복해할 파티날에 딸의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말지 애덤은 고민하게 되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그 심정을 정말 탁월하게 묘사했다. 또한 단순히 현재의 상황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며 함께한 시간들 속에서 서로 다르게 느끼는 감정들과 마음의 상처를 입는 부분 등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감정과 심리를 실낱 하게 묘사하고 있다.

숨겨서는 안 되는 중대한 비밀을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 고민하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심리가 너무도 공감되어 숨이 막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가족의 의미, 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저지르는 거짓말들. 숨겨진진실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비하인드 도어 이후로 다시금 숨 막히고 심장을 죄어오는 통증을 느낀 작품이었다. 진정한 가족 심리스릴러 소설이다.

정말 심리스릴러의 대가다운 작품이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가 된다.



마니가 내가 임신한 나이인 열일곱 살 생일을 맞이했을 때 나는 마니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어떻게 부모님은 나와 연을 끊을 수 있었지?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마니가 무슨 일이든 하게 해줄 거야.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줄 거야.

어쩌면 신은 내가 운명에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해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는 걸까. - P130

속 좁은 생각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그런 생각은 그 힘들던 시간을 떠올릴 때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걱정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어떤 건지 남편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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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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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고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생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로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선택과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쌓아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 등을 갑자기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좌절하게 되고 새로운 선택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의 고독>의 토르비에른 에켈룬 작가 역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 걷기를 통해서 삶을 일깨우고 사유하는 생활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를 몰고 나가는 대신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에 적응한 내 모습은 이전에 상상했던 그런 좌절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은 해방된 삶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습관을 바꿨을 뿐 잃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생활은 느려졌고 맥박은 안정되었다. 세상은 어렸을 때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내게 활짝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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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갑자기 나는 어디서든 길을 볼 수 있었다. 그 길은 여태껏 그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중요한 길이었다.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오솔길, 수풀 속으로 난 짐승들이 다니는 길, 산울타리를 관통하고 정원들 사이를 들락날락하고 운동장과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집까지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p. 25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르비에른 에켈룬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 도중 쓰러지게 되었고 뇌전증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충격적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이 책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작가가 뇌전증 진단 후 걷기를 통해서 길 위에서 느끼고 바라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있다.



길의 역사는 또한 막 사라지려고 하는 세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선, 사람과 동물이 오가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좁은 오솔길은 도로로 바뀌었고, 두 발로 걷던 길은 마차와 수레가 다니는 길이 되었고, 흙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길로 대체되었다. 더 최근에는 마차와 수레가 승용차와 트럭으로 바뀌었고, 도로는 더 넓어졌다. 늪의 물이 빠지고, 산이 폭파되고, 평원지대에는 자잘하게 부순 자갈들이 깔렸다.

옛날에는 여정을 짤 때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연경관을 개조하고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산을 폭파시킬 수도 있고, 습지의 물을 뺄 수도 있고, 강물의 물길을 파이프를 통해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로막는 물리적 공간의 장애물들을 거의 다 제거했다. 반면에 시간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p. 20


길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길은 더 많아지고 이동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없애는 등 편리함과 빠른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돌아보면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초반에 기록된 이 문장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편의성과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우리의 손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시킨 결과가 멸종된 동물들과 기후 위기라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에 길은 자연 풍광과 서로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도로는 자연 본래의 풍경을 개조했을 뿐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먹이를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불곰과 순록, 연어, 늑대 같은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동물들의 이동 경로는 가로놓인 거대한 도로들 때문에 막혔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는 어느 날 갑자기 창공을 지배하기 시작한 날아다니는 거대한 금속 흉물덩어리들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이동하는 길도 강물을 가로막은 댐과 다리들 때문에 끊겼다. 수많은 종이 천연 서식지를 잃고 멸종되었다.

p. 21


우리가 당연시 누리며 살아가던 세상 속에서 그 대가로 피해를 입은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혼자 걷는 것과 다른 이와 함께 걷는 것의 차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크다. 그것을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행이 한 명이든 스무 명이든 상관이 없다. 한자냐 혼자가 아니냐가 문제일 뿐이다. 혼자 걸으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귀에 들리는 것은 길을 걷는 자기 발소리뿐이다. 심지어는 본능적으로 그런 소음들조차 줄이려고 애쓴다. 아무런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노출되고 싶지 않다. 이런 각별한 조심은 또다른 뜻밖의 결과를 낳는데,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을 평소보다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p. 240-241


나는 주로 가족과 여행을 다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혼자 여행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함께 다닐 때와 혼자일 때는 여행에 있어서도 그 차이가 크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조금 외롭고 긴장되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을 해 보니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평소에는 시간 절약과 빠른 이동을 위해서 차를 이용하지만 혼자 여행을 할 때면 조금 다른 방식의 여행을 선택하기도 하고 느린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혼자 걸으면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도 집중하게 되기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가끔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삶을 더 다지게 만드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종종 하려고 노력한다. 차로 달리면 이동하는 도중의 풍경은 그냥 스치게 되지만 걸어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더 많은, 숨어 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하기라고 한 것처럼 작은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홀로 걷지만 혼자가 아닌, 자연이 말벗이 되어주고 작은 생명들이 친구가 되어주는 여행, 자신과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걷고 또 걸으며 발견한 사유와 걷는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읽다 보면 함께 공감하고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느끼게 한다.

'길은 혼돈 속의 질서'라는 말처럼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에 더 많이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한다.

나의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자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작가의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걷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두 발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걷기를 통해 얻은 진정한 자유의 다른 표현이리라.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의 바깥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나와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는 걷고 또 걸었어요. 나는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었어요. 마치 하루에 몇 시간씩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죠. 처음 4주 동안은 발바닥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겨 매우 쓰리고 아팠지만, 이내 상태가 좋아졌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걷고 또 걸어라. 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 P64

나는 이제까지 얼마나 자주 그 오솔길 위를 걸었을까? 지금은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던 때가 내 생애 최고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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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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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이상욱 작가의 소설 <기린의 심장>은 9개의 단편 이야기들이 묶여진 소설집이다.

첫 페이지를 펼쳐 <어느 시인의 죽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딱 첫 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아! 이 작가 뭔가 독특한데?'였다. 뭔가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점이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묘하게 재밌고 끌렸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일 것만 같은) 첫 번째 단편을 읽고 이상욱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다음 이야기도 빨리 읽고 싶어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꼽자면

<어느 시인의 죽음>과 <라하이나 눈> 그리고 <허물>과 <하얀 바다>였다.

지구를 침공해 인간을 먹고 사는 외계인 가브들의 이야기는 SF적이면서도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가브들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의 기준 등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림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열심히 달리며 산 그는 육체의 동기화로 다이어트를 대신해 주는 베타의 삶을 사는 이야기 <라하이나 눈>

돈 있는 자는 마음껏 먹고 놀면서 몸짱이 되고 돈이 필요한 자는 끊임없이 달리고 칼로리를 소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모든 칼로리가 모두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고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기발하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 같다. 파출소에 있게 된 한 소설가에게 경찰 k가 들려주는 동물원 이야기는 마치 기묘한 이야기의 한 장면 같다. 기린의 심장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인간의 끝없는 욕구와 욕망에 대한 시선을 담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알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다.

뱀이 된 소년의 이야기인 <허물>의 내용을 읽노라니 정밀아의 <심술꽃잎> 노래가 절로 떠올랐다. 할머니 집에 맡겨진 아이는 언제 엄마가 데리러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버림받았을지도 모를 불안함이 소년을 뱀으로 변하게 한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문득 애니메이션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도 생각이 났다. 

<허물>은 아릿한 통증이 밀려오는 이야기였다. <하얀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의 죽음 그 슬픔과 아픔의 내용을 보면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중 <입동>도 절로 떠올려졌다. 세상은 녹아내릴 듯 더운데 내 안은 시리도록 차갑고 혹독하기만 한 시간들.

<연극의 시작>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김용균 씨의 죽음도 생각났고 대구지하철 방화사건도 생각나게 했다.

이렇듯 소설은 9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지요. 협곡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저는, 그럼에도 삶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주는 안식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비가역성(非可逆性)을 담보로 합니다. 그 담보가 저는 두려웠습니다. 할 수 있다면 맹수를 만난 타조처럼 땅속에 머리를 묻고 영원히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삶과 죽음, 고통과 안식, 유한과 무한, 가역과 비가역, 돌이켜보면 저는 평생을 이 갈등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p. 153~154 <허물>


작가가 9편의 이야기 속에서 담고자 한 것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이상욱 작가의 9편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심오하며 신선하고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재미도 있지만 그 속에 왕따, 자살, 성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도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신인작가인데도 단편마다 글의 힘이 느껴졌고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어떤 내용들은 조금 더 이야기를 확장시켜 장편으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롭고 좋았다.

단편소설이 재미와 여운을 주기가 쉽지 않은데 출판사 측에서 범상치 않은 작가를 발굴했기에 이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전 서평단을 꾸려 보란 듯 작가와 작품을 알리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경쾌하진 않지만 너무 묵직하지도 않고 적당히 여운과 잔상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어쨌거나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새로운, 꽤 기대되는 신인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사전 서평단 선정으로 가제본을 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그림자 속엔 어두운 마음이 숨어 있거든. 원하던 걸 얻지 못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몸에 병이 찾아오면, 그림자에 숨어 있던 어두운 마음이 슬그머니 나타나 발목을 움켜쥔단다. 그러니 아빠와 삼촌을 미워하지 마라. 저 나이가 되면 누구나 그림자에 쫓기며 사니까.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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