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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평점 :

인간은 자고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생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로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선택과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쌓아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 등을 갑자기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좌절하게 되고 새로운 선택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발의 고독>의 토르비에른 에켈룬 작가 역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 걷기를 통해서 삶을 일깨우고 사유하는 생활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를 몰고 나가는 대신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에 적응한 내 모습은 이전에 상상했던 그런 좌절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은 해방된 삶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습관을 바꿨을 뿐 잃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생활은 느려졌고 맥박은 안정되었다. 세상은 어렸을 때 이후로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내게 활짝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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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갑자기 나는 어디서든 길을 볼 수 있었다. 그 길은 여태껏 그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중요한 길이었다.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오솔길, 수풀 속으로 난 짐승들이 다니는 길, 산울타리를 관통하고 정원들 사이를 들락날락하고 운동장과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집까지 늘 다니던 길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p. 25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르비에른 에켈룬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 도중 쓰러지게 되었고 뇌전증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수 없다는 충격적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이 책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작가가 뇌전증 진단 후 걷기를 통해서 길 위에서 느끼고 바라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있다.

길의 역사는 또한 막 사라지려고 하는 세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선, 사람과 동물이 오가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좁은 오솔길은 도로로 바뀌었고, 두 발로 걷던 길은 마차와 수레가 다니는 길이 되었고, 흙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길로 대체되었다. 더 최근에는 마차와 수레가 승용차와 트럭으로 바뀌었고, 도로는 더 넓어졌다. 늪의 물이 빠지고, 산이 폭파되고, 평원지대에는 자잘하게 부순 자갈들이 깔렸다.
옛날에는 여정을 짤 때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연경관을 개조하고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산을 폭파시킬 수도 있고, 습지의 물을 뺄 수도 있고, 강물의 물길을 파이프를 통해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로막는 물리적 공간의 장애물들을 거의 다 제거했다. 반면에 시간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길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길은 더 많아지고 이동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없애는 등 편리함과 빠른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돌아보면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초반에 기록된 이 문장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편의성과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우리의 손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시킨 결과가 멸종된 동물들과 기후 위기라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에 길은 자연 풍광과 서로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도로는 자연 본래의 풍경을 개조했을 뿐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먹이를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불곰과 순록, 연어, 늑대 같은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동물들의 이동 경로는 가로놓인 거대한 도로들 때문에 막혔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는 어느 날 갑자기 창공을 지배하기 시작한 날아다니는 거대한 금속 흉물덩어리들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해마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이동하는 길도 강물을 가로막은 댐과 다리들 때문에 끊겼다. 수많은 종이 천연 서식지를 잃고 멸종되었다.
p. 21
우리가 당연시 누리며 살아가던 세상 속에서 그 대가로 피해를 입은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혼자 걷는 것과 다른 이와 함께 걷는 것의 차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크다. 그것을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행이 한 명이든 스무 명이든 상관이 없다. 한자냐 혼자가 아니냐가 문제일 뿐이다. 혼자 걸으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귀에 들리는 것은 길을 걷는 자기 발소리뿐이다. 심지어는 본능적으로 그런 소음들조차 줄이려고 애쓴다. 아무런 간섭도 받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노출되고 싶지 않다. 이런 각별한 조심은 또다른 뜻밖의 결과를 낳는데,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을 평소보다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p. 240-241
나는 주로 가족과 여행을 다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혼자 여행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함께 다닐 때와 혼자일 때는 여행에 있어서도 그 차이가 크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조금 외롭고 긴장되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을 해 보니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평소에는 시간 절약과 빠른 이동을 위해서 차를 이용하지만 혼자 여행을 할 때면 조금 다른 방식의 여행을 선택하기도 하고 느린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혼자 걸으면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도 집중하게 되기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가끔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삶을 더 다지게 만드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종종 하려고 노력한다. 차로 달리면 이동하는 도중의 풍경은 그냥 스치게 되지만 걸어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더 많은, 숨어 있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하기라고 한 것처럼 작은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홀로 걷지만 혼자가 아닌, 자연이 말벗이 되어주고 작은 생명들이 친구가 되어주는 여행, 자신과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걷고 또 걸으며 발견한 사유와 걷는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읽다 보면 함께 공감하고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느끼게 한다.
'길은 혼돈 속의 질서'라는 말처럼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에 더 많이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한다.
나의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자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작가의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걷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두 발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걷기를 통해 얻은 진정한 자유의 다른 표현이리라.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의 바깥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나와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는 걷고 또 걸었어요. 나는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었어요. 마치 하루에 몇 시간씩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죠. 처음 4주 동안은 발바닥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겨 매우 쓰리고 아팠지만, 이내 상태가 좋아졌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걷고 또 걸어라. 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 P64
나는 이제까지 얼마나 자주 그 오솔길 위를 걸었을까? 지금은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던 때가 내 생애 최고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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