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양이를 믿을래 - 인간의 구멍난 마음을 채워주는 고양이라는 기적
째올누나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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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관련 책이 나올 때면 언제나 반갑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고양이 이야기가 뭐 그리 궁금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고양이 집사들에게 물어보라! 어디 내 고양이만 예쁘고 귀엽더냐고. 세상의 모든 고양이는 다 예쁘고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고 누구나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남의 집이건 길에서 만나는 처음 보는 고양이건 그저 반갑고 궁금할 뿐이다.





<차라리 고양이를 믿을래> 작가는 책의 첫 머리에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를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그런데 휴가로 떠났던 치악산에서 만난 고양이와 묘연이 닿아 생각지도 않은 집사의 길을 걷게 된다. 치악산 고양이 체다와 둘째로 들인 올리까지 두 마리의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가 되었다.

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11년 차 고양이 집사다. 내가 고양이 집사의 길을 가리라고 생각도 못 했었고 그것도 6마리의 우다다 패거리를 거느리는 인간이 되리라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묘연은 그렇다. 내가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보니 충분히 알게 되더라.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그만큼 다채롭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일상을 보면 참 단조롭고 단순한 삶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단조로운 삶 속에서 참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고 배우게 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늘상 집을 비우고 밖으로 나다니는 불량 집사인 내가 코로나로 인해 강제 칩거 생활에 들어가면서 고양이들과 더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과 아이들도 얼마나 더 오래 함께 있길 원하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짧기에 어쩌면 더 애틋하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나와 고양이들의 일상은 행복하다. 때론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를 불러일으키기에 마냥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냥이들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삶이 소중하듯 또 다른 누군가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의 이야기는 궁금하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체다와 올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두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져서 절로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느낀다. 묘종이 어떻든 생긴 것이 어떻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 생명이 내게 와서 일생을 함께 한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보드랍고 따스한 작은 생명이 전해주는 마음의 위로와 따스함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양이 집사들이 읽으면 더 공감하고 행복해지는 책이다. 누군가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롭고 재밌고 가슴 아픈 이야기마저 함께 공감하고 아파할 수 있기에.



'인간의 구멍난 마음을 채워주는 고양이라는 기적'이란 말처럼 이 작은 생명체가 전하는 위로와 따스함은 생각보다 크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마음까지도 치유하는 힘이 그들에겐 있다는 사실. 체다와 올리 그리고 무수히 거쳐간 임보 아가들의 이야기가 고양이 집사들은 물론이고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따스한 위로와 행복을 전해줄 것이다.


책을 구입하면 선물로 주는 고양이 가랜드. 체다와 올리의 얼굴로 만든 냥랜드는 센스 넘치는 선물이다. 고양이 많은 집에서 남의 고양이 얼굴을 따다가 냥랜드 걸어두면 뭐 하겠냐 생각하겠지만 세상의 모든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친구다. 예쁘게 가위로 오려서 공중 식물 있는 곳에 걸어두었더니 웃기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남의 고양이 얼굴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우다다 패거리들의 얼굴도 이렇게 만들어서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고 공감했고 체다와 올리와 함께하는 삶에 응원을 보태게 된다.

고양이 집사라면 당연 추천하고 고양이가 없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간접적으로 누려보며 따스함에 위로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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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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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네 명의 여성들이 의기투합하여 오디오 방송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방송을 접하진 않았지만 이 방송은 3만 명의 팔로워와 공감하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전체 순위 1위를 기록하였고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담은 것이 바로 이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책이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는 기대감을 가지고 바로 주문을 했었다. 평소 이수정 박사를 좋아하기도 했고 이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번 책은 더 관심이 갔었다. 무엇보다도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범죄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범죄 영화를 분석하고 영화 속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수많은 영화들이 주제로 삼아온 범죄 영화 중에서도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영화들을 살펴보면서 영화적 내용과 함께 현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범죄 영화 속에서 여성이, 아이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어떻게 피해를 보고 있는지... 영화 속은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이루어지는 폭력성과 불평등 등 수많은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미 봤던 영화라 할지라도 새롭게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에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1938년 연극 <가스등>을 영화화 한 <가스등 Gas Light>과 <적과의 동침>, <곡성>, <미저리>, <살인의 추억>, <기생충>,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등 아주 오래된 영화에서부터 최근 상영작까지 총 16편의 범죄 영화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영화를 중심으로 곁가지들을 뻗어내며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방법의 폭력과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에 민음북클럽 활동으로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란 책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었다.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담담한 기록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고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점과 현실이 안타깝고 화가 났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서도 성매매와 성 착취 등을 다루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 저자는 처음에 이른바 2차라고 불리는 성매매를 나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 분야의 산업 구조가 어떻게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믿음직하게 뭔가 도와줄 것처럼 접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결국 저자로 하여금 성매매를 하게 만드는 일종의 작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딘가로 계속 팔려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p. 382

 

그리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 책을 읽기 전 먼저 구입한 책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구입했지만 아직도 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읽고 나니 읽을 자신이 생겼다. 책에서도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책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의 내용을 다큐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내용을 읽고 나서 바로 넷플릭스에 검색하여 8부작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보았다. 가장 안타깝고 불편하고 화가 났던 부분은 바로 강간을 당한 마리가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피해 상황을 반복해서 진술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강간을 당한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그것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진술을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잔인해도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통념과 잣대로 2차 3차 가해를 하게 되는 현실. 피해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졌겠지... 하는 시선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캐런 듀발과 그레이스 라스무센 같은 형사들이 우리 현실에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마지막에 범인을 잡고 재판이 이뤄지고 연쇄 강간범은 327년 6개월의 형량을 선고받게 된다. 그나마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지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형량이 나올 수 있냐고? 그것은 각각의 범행에 대한 형량을 합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명이 열 번을 강간해도 하나로 퉁친다는 사실. 가중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나라는 특히 성범죄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한 거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이야기해 보자. 평소 심리추리소설, 범죄소설 등을 좋아하다 보니 가스라이팅 소설도 많이 접하는 편이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은 그간 읽었던 수많은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많이 봐 왔다. 가스라이팅을 통해 지배를 하게 되면 결국엔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들을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적과의 동침>을 통해 가정 폭력에 대해 더 깊이 다루고 있는데 가정 폭력범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 가부장적인 사고에 함몰되어 자신의 행동을 가정 폭력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 정도 폭력은 가장의 권위라고 잘못 배운 경우다. 이런 유형은 상담을 통해 사고방식을 고쳐주면 어느 정도 변화 가능하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애착 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여자에게 족쇄를 채우고 의처증을 보이거나 스토킹을 저지르기도 한다. 세 번째는 사이코패스들. 밖에 나가서도 포악하고 안에서도 포악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1부에서는 가정폭력을, 2부에서는 오컬티즘을 통해 억압당하고 세뇌로 인한 피해를, 3부에서는 성범죄를 4부에서는 계층 문제를 마지막 5부에서는 아동 성 착취 등 미성년자 성범죄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n번방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책에서 다룬 수많은 불평등과 폭력 그리고 고통당하는 이들은 여전히 지금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변하고 인식이 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최근 터진 n번방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성범죄와 미성년자 성범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안전한 나라, 인권이 바로 서는 세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진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어디선가 고통당하고 있는 누군가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함께 연대하고 함께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많은지 새삼 느꼈다.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남자들도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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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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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 부문 대상 수상작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사전 서평단 모집을 보고는 얼른 신청을 했다. 고양이 집사인 네게는 고양이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흥미롭고 반가운 소식이니 말이다. 가제본으로 받은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비가 오는 날 비를 피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아파트 경비실을 찾은 것을 계기로 잠시 경비원 할아버지의 조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제법 많은 고양이들이 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아이들은 묘연으로 나와 함께 동거를 시작하였고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초보 집사였던 나도 집사 11년 차에 이르렀고 아이들은 어느새 노묘들이 되었다. 묘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일부러,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고양이 집사들은 알 것이다. 주택에 살고 있다 보니 집 밖에도 고양이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급기야 아예 눌러 앉은 녀석들도 있어 집 안에도 고양이, 집 밖에도 고양이다. 주택에 산다는 점과 주변 사람들의 고마운 무관심 덕분에 고양이들 사료를 주고 챙기는 것에 눈치 보는 일은 없지만 아파트의 상황은 다름을 종종 듣게 된다. 특히 대도시 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 길냥이들 밥 주는 일도 반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파트에서는 길냥이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더럽다고 여기고 혐오하는 시선이 더 많음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들이 얼마나 어렵게, 힘들게 살아가는지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이야기에서도 보면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경비원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안타깝고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라면 하나 끓여서 편하게 먹을 수 없는 현실. 주민들의 눈에 거슬려 혹시 잘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뭐라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주민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깜냥은 할아버지의 조수가 되어 어엿한 경비원 역할을 하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마음 따뜻하게 만든다. 동화책에 나오는 주민들처럼... 깜냥이처럼... 서로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도심에서 길냥이들과 사람들의 관계는 책에서만큼 그리 따뜻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함께 공존하며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와 따뜻함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길냥이들에 대한 시선이 보다 따스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

고양이 집사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어린이 책이지만 어른도 함께 읽으면 마음 따뜻해질 책이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활약이 앞으로 쭉~~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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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향하라" 등 짧은 문장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이 조금 독특한 책을 냈다. 바로 <사람사전>.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사전과 같다. ㄱㄴㄷㄹ... 순서대로 단어들이 등장하고 그 단어들을 정철식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주관적이며 현실적인,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인간적인 단어의 정의들로 가득하다.

 

 

사전답게 책의 뒷부분에는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색인이 별도로 되어 있다. ㄱㄴㄷㄹ... 순서대로 넘버링이 된 단어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사전적 책이니만큼 내가 찾아보고 싶은 단어를 찾아봐도 되고 펼쳐서 읽고 싶은 곳부터 읽어도 상관이 없다. 맨 마지막인 1234번째 단어가 궁금해 책을 다 읽기 전 먼저 살펴보았다. 마지막 단어는 #힘 그 설명을 읽으니 미소가 지어졌다.

"마지막 단어. 왜 힘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끝을 장식하는 영광을 안았을까. 책이 주는 게 힘이니까. 지혜라는 힘. 발상이라는 힘. 재미라는 힘. 감동이라는 힘. 위로라는 힘. 그대가 첫 페이지부터 한 장 한 장 넘겨 여기까지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드셨죠? 맨 마지막 단어는 과연 뭘까 궁금해 다 건너뛰고 여기에 왔다면 이런 말을 드린다. 힘내세요."

 

 

 

<사람사전>을 읽으며 가장 가슴 쿵-- 내려앉게 만들었던 단어 "가만히"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이지? 했다. 문장을 조금 더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할머니라는 단어에서는

"보고 싶다. 보러 간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이젠 쓸 수 없다. 쓸 수 있을 때 썼어야 했다. 볼 수 있을 때 보러 갔어야 했다." 라고 적혀 있다. 내게는 엄마라는 단어가 그렇다. 이젠 보러 갈 수도 없게 되었기에 이 문장을 읽으며 울컥하기도 했다. 이렇듯 읽을 읽는 이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곳곳에서 여러 감정을 소용돌이에 빠질 단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철의 사람사전을 읽다 보면 역시 카피라이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센스 넘치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기존의 단어를 설명하는 딱딱하고 개념적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정철식의 단어 해석은 보다 현실적이고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 따스함이 번졌듯 이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곁에 두고 가끔 펼쳐보며 따스한 감동의 날을 이어나가기에 좋은 책이다. 살아 있는 1234개의 단어들이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희망을, 따스한 위로를 전할 것이다.

 

 

 

 

#500 배려

입으로 격려. 마음으로 염려. 눈빛으로 우려. 박수로 독려. 하지만 배려를 가장한 충고는 구려. 간섭은 질려.


- P151

#19 가방

세사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물건. 학교 갈 땐 책 한 권만 넣어도 무겁고, 여행 갈 땐 온갖 짐을 다 쑤셔 넣어도 가볍고. 가방의 무게는 기분의 무게. 스트레스의 무게.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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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볍고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지만 구병모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묵직하면서도 이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가정폭력,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갑질과 폭력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생채기들을 곧 쉰을 앞둔 중년 여성 시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타투라는 소재를 가져와 냉혹한 현실과 폭력 등으로 시달리는 우리 세대들에게 판타지적인 내용으로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누구나 상처를 안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시미도 그렇고 화인도 그렇고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시미는 젊은 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통해 고통 속에서 벗어났지만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와야 했던 아픔과 어미로서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혼 후 남편은 아이를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았기에 늘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몰래 아이를 지켜봐야 했던 그녀.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의 존재가 오히려 불편하기까지 한 관계가 되었다.

......저기요, 로 시작한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게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있어주지 않으셨거든요 옆에, 일일이 말씀은 안 드리는데 제가 다 혼자 견뎠고 아버지를, 그래서 지금은 뭐랄까요, 이렇게 말예요 뒤늦게, 옷이니 밥이니 엄마 노릇하려고 좀 안 하셨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말하자면요, 그냥 노릇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행세처럼 여겨지거든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가족이 파괴되고 관계가 망가지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된 사람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시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젊은 날 이혼을 하고 자식을 뺏겨 수십 년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산 또 한 사람의 시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픔과 그리움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아이가 성인이 되어 엄마를 이해해 주고 오해를 풀기 바라는 마음으로 견뎌왔을진대 정작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미의 마음은 어떨까... 또한 자식 입장에서는 그토록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을 숱한 날들을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었다.


시미의 시선으로 시미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계속 전개된다. 그 와중에도 또 다른 사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과연 이 스토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진다는 사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느낌의 이야기와 폭력과 공포가 가득한 세상 속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문신을 했다 라면 불량스럽게 여기거나 조직에서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타투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무언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패션의 한 장르처럼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본문에서 피부에 새겨지는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는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쩌면 구병모식 환상이 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걸 말해주세요.

무엇이 당신을 돌봐줬으면 좋겠는지.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시미가 들어섰던 적이 없음을, 아이를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으며 그 간극을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세상의 어떤 당위나 도리나 윤리도 모성을 자연의 순리로 강제할 수 없었고 이미 완전한 타인들을 교착시킬 수 없었다. - P134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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