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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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책을 읽으면서 인종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특히나 흑인에 대해서는. 인간은 누구나가 평등해야 하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지구상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현실에서 크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보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심각성과 불평등으로 인한 불편함 등을 느낀 것이 영화 <컬러퍼플>과 책 <앵무새 죽이기> 정도랄까. 처음 접하는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아메리카나>를 읽고 보니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과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메리카나>는 1, 2권으로 구성된 책으로 나이지리아 출신의 대학생 이페멜루가 미국 유학을 와서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여성, 인종차별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유학생의 고된 삶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꿈 많던 소녀는 힘든 미국 생활에 지쳐가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오빈제에게조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결국 마음을 닫고 혼자만의 세상 속으로 참잠되어 간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의논의 상대가 되어준 우주 고모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큰 의지가 되어 준다. 단순히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며 공부하는 성공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이페멜루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부당한 차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흑인 안에서도 어디 출신인지, 미국에서 나고 자란 흑인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흑인인지에 따라 그 안에서도 계층이 나누어지고 계급이 정해지는 미국 사회를 보면서 생활 속 깊이 박힌 인종차별을 뼈져리게 느낀다. 힘들었던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현실을 인식하면서 점점 미국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주인공. 작가가 흑인 여성이라 그런지 책에서는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차별과 사회 문제 등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인공 이페멜루는 이후 미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유명 블로거가 된다. 그 블로그의 주제 또한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미국에서 힘든 생활을 하면서 결국 오빈제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이페멜루는 미국에서 다른 남자를 사귀게 된다)오빈제 역시 영국으로 유학을 간 후 미국 유학 생활을 한 이페멜루 못지않은 힘든 삶을 견디며 성장해 나간다. 각자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세월이 흘러 오빈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 된다. 둘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 생각했는데 서로 연락이 닿지 않고 각자 힘든 삶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가 끝이 난 두 사람이 사실 좀 안타까웠다.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이지만 이십 년에 걸쳐 사랑과 이별 그리고 다시 재회로 인해 남긴 것들은 약간의 씁쓸함을 남긴다.

이 소설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나이지리아 출신 흑인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하겠다. 그 과정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도, 안타까운 순간도, 슬픈 순간도 모두 포함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어지는 소설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주의와 여성의 인권, 종교, 이민제도 등 사회문제까지 두루 다루고 있어 사회적 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몰랐던 나이지리아의 문화와 흑인들의 생활을 알게 되는 부분도 무척 흥미로웠다. 미국에서는 뚱뚱하다가 욕이고 날씬하다가 칭찬인데 반해 나이지리아에서는 그 반대라니 그것도 참 재미난 일이다. 흑인의 머리를 만져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흑인들은 미용실도 아무 곳이나 갈 수 없다고 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생활 곳곳에서 차별이 흔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릴 적에 그림을 그릴 때면 "살색"이 있었다. 사람을 그리거나 인형을 그리면 주로 피부에 살색을 칠했는데 이것이 왜 살색인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살색이려니... 하고 칠했던 거 같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서 솔직히 동양인 피부색도 살색의 색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요즘은 살색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 또한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색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활, 사회 곳곳에 인종차별이 뿌리 깊이 박혀있었던 것은 아닐까. 흑인이 바르는 립스틱의 색을 아는가? 색조화장품은? 그러고 보면 정말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에 전혀 몰랐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흑인의 생활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아프리카 문학들을 조금 더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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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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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좀 독특하다. 우선 영화 <어바웃 타임>에 출연한 배우 캐서린 스테드먼의 소설이라는 점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 리즈위드스푼이 영화 제작자가 되어 이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여자 혼자서 무덤을 파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진다. "무덤을 파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자신의 남편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묻기 위해서 무덤을 파고 있는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시작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렇게 시작한 소설은 다시 세 달 전 과거로 돌아가 결혼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대체 그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신혼여행에서 남편인 마크를 손수 매장하고 있는 것일까... 독자로 하여금 잔뜩 궁금하게 만든 다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일어나게 된 상황까지 이어가는데 사실 도입 부분은 매우 흥미로워서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겠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주인공 에린과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마크는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 마크의 실직으로 서로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의 초반 부분은 생각보다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속도가 더디다가 결혼식 후 신혼여행으로 보라보라 섬으로 떠난 그들에게 가방 하나를 발견하는 사건 이후로 점차 속도감이 더해진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바다 한가운데서 발견한 그 가방을 열어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그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엄청난 양의 돈다발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휴대전화기, USB, 권총 한 자루를 지니게 된 그들은 도대체 이것의 출처를 궁금해하면서 알아서는 안 될 것에 점차 접근하게 된다. 사랑했던 사이지만 돈이 개입되면서 서로의 관계는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하고 서로 의심하고 불안해하게 된다. 거대한 행운? 앞에서 두 신혼부부는 앞으로 잘 살아보자고 의기투합하지만 맨 첫 장에서 보았듯 그들의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고 만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 : 15

말씀처럼 욕심을 품음으로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결혼, 신혼여행이 비극의 시작이 되고 만 두 주인공. 돈이 개입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쫓고 쫓기는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막판 이야기는 최고의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죄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 보니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게 된다. 범죄에 물들어가는 인간의 심리를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차라리 그 가방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판도라의 상자는 역시나 열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느끼지만 인간이 유혹 앞에서 얼마나 결연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크는 왜 죽었는지, 누구의 손에 의해 죽게 된 것인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당장 책을 집어 들기 바란다. 올여름 무더위를 잊기에 딱 좋은 소설이다.

또한 휴양지에 가져가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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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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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에게 위로를 건넬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 "힘내~"라는 말이다. 아르테 출판사와 카카오 프렌즈 콜라보 시리즈 3탄이라고 할 수 있는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는 흔히 우리가 무심결에 상대에게 건네는 그 "힘내"라는 말이 힘껏 살아왔지만 뭔가 잘되지 않고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임을 깨닫게 한다. 일반적으로 "힘내~"라는 말 앞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든지, 그래도, 좀 더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힘내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이에게 또 힘을 내라고 하는 말은 지칠 대로 지친 이에겐 위로는커녕 상처와 좌절을 안겨주는 말인 것이다. 짧은 글귀에 강력한 한방을 선사하는 식의 하상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이다. 나는 시인들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짧은 글귀와 단어 속에 엄청난 감정과 엄청난 세계를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함축적이면서도 응축된 단어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되새기는 그것이 바로 시의 감동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카카오 프렌즈들은 제각기 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바로 튜브이다. 그래서 이번 책은 더 반가웠다. 감정에 솔직한 튜브는 화가 나면 초록 오리가 된다. 이 책 곳곳에 다양한 튜브의 표정을 만날 수 있어서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이 있었다. 솔직한 감정의 표현자 튜브와 하상욱의 글은 뭔가 찰떡궁합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간 나온 피치와 라이언 보다 훨씬 더 캐릭터와 글이 잘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참 마음 한구석 씁쓸해지는 현실의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여러 마음이 들었다. 2-30대 청춘들이 읽으면 더 공감하지 싶다. 청춘의 시절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 삶에서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과 상처들을 하상욱 작가는 색다르게 위로하고 어루만지고 있다. 가슴 뻥 뚫리는 사이다식 위로가 통쾌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혼자는 외롭지만 함께는 괴로운 시대.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취업이나 결혼까지도 이젠 꿈인 시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켜야 했던 누군가의 속을 꺼내봤는지 하상욱 작가는 대변인처럼 속시원히 할 말 다 해주고 있다. 이러한 글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딱히 토닥거리는 글이나 오글거리는 위로가 없음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주변이 환기되는 기분이 든다.

 

 

이 땅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전하는 하상욱 식의 위로가 꽤 괜찮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점점 외로운 사람은 많아지고... 관계는 더욱 힘들어지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와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 등으로 지쳐가고 있는 이에게 이 책은 솔직하고 통쾌한 표현으로 세상을 보는 혜안을 뜨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이여!

아픈 일 잊기를,

좋은 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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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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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일지는 모르나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실 좀 불편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한다거나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저돌적이고 쌈닭처럼 납득이나 설득보다는 무조건 싸우려 드는 경향이 있어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미지가 내가 봤을 땐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 불평등, 부당함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분쟁이 되고 다툼으로 커져가는 것은 솔직히 반대 입장이다. 물론 얼마나 답답하고 부르짖는 소리에도 개선이 되지 않았으면 투쟁을 할 정도가 됐겠냐마는... 욕 들어먹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은 그렇다.

그런데 서한영교라는 작가라는 사람이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냈다. 남자가? 페미니스트?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했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면 대체 어떤 삶을 사는 걸까?라고.

 

프롤로그를 지나 1부 첫 장을 펼치는데 작가의 페미니스트 연대가가 쭉 나온다. 십 대 때부터 느꼈던 생각과 우연히 출판사 온라인 게시판과 관련된 사건에서 한국 문단에 뿌리 깊이 박힌 남성 우월주의와 페니스 파시즘을 느끼면서 어딘가 모를 불편함에 남성으로 살아왔던 세계가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여성 불평등과 남성 우월주의를 느끼면서 더 큰 불편감을 갖게 된다. 또한 시력을 잃어가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장애에 대한 불평등과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몸소 체감하게 된다. 시력을 잃어가는 애인을 아내로 맞아 그녀의 눈이 되어주는 삶을 선택한 그. 말이야 쉽지 앞이 보이지 않는 애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 그는 임신, 출산,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이자 남성으로서는 느껴볼 수 없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아내의 젖 먹이며 육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남자. 아빠가 되기 위해 술, 담배도 끊고 공부하고... 육아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그의 노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아마도 출산을 하고 독박 육아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이 책을 본다면 '세상에 이런 남편도 있구나~'라고 할 것이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내와 그의 아들을 돌보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위치, 자기가 해야 할 일,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해야 할 돌봄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감동이다. 말로만 외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묵묵히 그것을 실천하고 노력하는 삶 앞에서 어느 누가 감동받지 않겠는가.

말만 앞세우는 사람을 무수히 봐 왔다. 말이야 누군들 못하겠냐마는 그는 삶 속에서 실천하고 살아가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이러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놀랍고 "우와"의 세계와 "감히"의 세계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관한 전문 서적이라기 보다는 삶에 녹아드는 페미니즘을 한 남성의 시선으로 느껴보는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다.

 

 

 

하나, 지구와 어울려 사는 품위를 갖추며 살겠습니다.

생명 가진 것들과 우정을 나누며

지구와 우주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품위를 갖추도록 애쓰겠습니다.



하나, 곁을 가꾸며 살겠습니다.

곁이 우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기꺼이 우리도 누군가의 곁이 되어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우리가 익히고 배운 지혜들을 나누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나는 인연과 우연, 사연과 운명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 P47

유아차를 끌고 다니면서 문턱의 세계를 만났다. 건널목을 건널 때, 인도로 들어설 때,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숱하게 문턱의 세계와 만났다. 문턱과 불화했다. 비장애인 문명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처음으로 문턱의 세계와 마주하면서 난감했다. 문턱을 넘도록 하는 기술이나 장치가 고려되지 못한 공간들이 눈에 턱턱 들어왔다. 유아차를 끌고 다니기 전까지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문제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삶의 국면에 따라 세계의 문제를 사유하는 강도와 온도는 달라진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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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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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거쳐 온, 또 누군가는 치열하게 지나는 중일지도 모를 10!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감정들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사춘기 시절 10대 때에는 자기 스스로의 감정 조차 뚜렷하게 단정 짓기 힘든, 그런 시기이다. 김세희 작가는 10대 때 느끼는 불완전하고 서툴고 낯선 감정들이 뒤섞인 소녀들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목포 출신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정체성과 세계관, 자아가 온전히 확립되지 못한 10대 시절 소녀들이 겪었을, 감정과 사랑을 진솔한 고백 같은 마음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팬픽, 이반 같은 단어들이 낯선 세대다. 팬픽은 모르지만 나의 10대 때에도 팬레터는 유행했었다. 시대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좋아하는 상대를 향한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김세희 작가의 <항구의 사랑>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10대 시절, 그중에서도 중학교 시절이 절로 떠올려졌다. 지금은 남녀공학이 일반적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10대 시절의 황금기를 또래의 동성 친구들과 어울려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또래의 여자들끼리 함께 지내다 보니 여학생들만 있는 학교의 세계가 전부인 것 마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수개월이 지나자 같은 학년에서도 유독 키가 크고 중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아이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 친구들을 좋아하는 그들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나보다 멋있다는 감정일 수도 있고 동성에게서 이성적 감정을 느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땐 그러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좋아했고 사랑이란 단어를 남발하듯 썼던 거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편지도 정말 많이 썼다. 학교에서 만나면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대화와 편지는 또 다른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수시로 답장을 전하고 쪽지를 전하는 등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을 함께 나누는 일에 서슴지 않았던 거 같다. 같은 동성 친구지만 미묘한 감정이 싹트고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나만 바라봐 주길 바라는 등 수많은 감정들이 오갔던 중학시절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시절의 감정들이 뚜렷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연애의 감정, 사랑의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 작은 딸 아이가 질문을 던져왔다. “엄마, 만약에 엄마는... 내가 여자를 좋아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 펀치를 날리듯 날아온 질문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생뚱맞은 질문을 받으며 나의 10대 시절이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지금 내가 겪었을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표현처럼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딱 10대 때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중학시절 유독 감성이 넘쳤던 나는 친구들에게 숱한 편지를 쓰고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 이유도 없이. 감성의 바다에 표류하던 내 마음은 그저 흔들릴 대로 흔들리며 그렇게 10대를 보냈던 거 같다.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시기에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과정이라고 설명을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동성이 좋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을 했더니 크게 고민하는 눈치 없이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선배를 향한 마음은 자꾸 커져만 가는데... 표현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등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혼란에 빠지기도, 고민을 하기도 한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결국 표현하지만 선배의 사랑과 자신의 사랑은 서로 달랐다. 그것은 주인공에겐 아픔이고 실패라는 좌절을 안겨준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미숙하고 서툴고 낯선 감정들과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내며 생긴 생채기와 상흔들이 딱지가 지고 아물 듯 상처받기 쉬운 소녀들이 자라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지난날의 감정을 돌아보고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한다. 또한 10대 시절에 느낀 감정과 경험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주인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 여운이 꽤 길다. 다시금 나의 10대를 떠올려보게 한 <항구의 사랑>. 문득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찾아 꺼내 읽으면서 추억에 빠져들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누구나 지나왔을 10대의 여린 감성의 시기를 다시 추억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문득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에 관해서 썼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그 모래사장에서 처음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 P168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누군가를 그렇게 원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원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선택했을까?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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